나라를 구한 아내
김재하
60이 넘어 은퇴한 후에 나는 이곳 안산에 와서 손자를 돌보면서 주말 부부로 9개월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60대는 ‘세월이 60km 속도로 지나간다.’ 는 말이 실감 난다. 나이만큼의 속도로 ‘세월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우스운 말인데, 한편으론 씁쓸하다. 아내는 최근에 자신에게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남편이 퇴직 후 지난해부터 주말부부를 하고 있으니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 아니냐?’는 소리를 화실 동료들이 했단다. 아내는 7년 전부터 매주 수요일에는 화실을 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동료들과 이야기도하고 나름의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아내도 지난 2021년부터 외손녀를 집에서 돌보면서 어린이집에 보내며 지내고 있는 중이다. 주중에는 데리고 있고 주말에는 딸네 집으로 데리고 간다. 주중에 서너 번 딸아이가 와서 도와주고 잠을 자고 간다.
아내는 지난해 9월까지는 손자와 외손녀와 퇴직한 남편, 주말에 집에 오는 아들 내외의 식사 해결에 2년여를 고생했다. 그러다가 9월부터 남편이 손자를 데리고 아들 집으로 가면서 독립생활로 가사노동의 고통을 한시름 덜은 셈이다, 그동안 아기들을 돌보면서 퇴직한 남편의 식사 준비가 어려웠을 것이다.
전생에 나라를 구할 만큼의 공적이 있어야 나이 들어서 남편을 보살피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그만큼 우리의 부부관계는 남편들의 일방적인 아내의 헌신을 바탕으로 한다는 말이다. 결혼하고 40년을 살아가고 있다. 강산이 네 번 바뀐 시간이다. 20대 후반에 동갑네로 결혼해서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장인, 장모도 돌아가시고 아버지,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결혼해서 살면서 양가 부모님 상복(喪服)을 함께한 부부는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한단다. 아내가 나에게 지지난해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들으라고 지나가는 말로 했었다. 그러니 우리 부부는 양가 부모님 상복을 모두 함께한 부부로 이혼은 꿈도 꾸지 못한다.
지난 3월 16일 통계청의 황혼이혼 증가 보도를 보고 놀랐다. 지난해 국내 이혼 건수가 3년 연속 줄면서 25년 만에 10만 건 미만으로 떨어졌단다. 그에 비해 이혼한 부부 6쌍 중 1쌍은 30년을 함께 살다가 갈라선 것으로 이 같은 '황혼이혼'은 10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단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혼인·이혼통계'를 보면 지난해 이혼은 9만3000건으로 전년보다 8.3%(8300건) 감소했다. 코로나 19가 처음 발생한 2020년(-3.9%) 이혼 건수가 3년 만에 감소하기 시작해 2021년(-4.5%)에 이어 3년 연속 남이 되길 선택한 부부가 줄었다. 코로나 19가 이혼율 감소 커다란 일조를 한 것이라니 씁쓸하다. 연간 이혼 건수가 10만 건 미만으로 줄어든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9만1000건) 이후 무려 25년 만이다.
세상사 외환위기로 경제적으로 어렵고, 코로나 19로 ‘개떡 같은 세상’에서 부부간에는 끈끈한 연대와 애증으로 이혼은 남의 일이 되었다. 어찌 보면 황혼 이혼 방지책이 외환위기, 코로나19 같은 것은 가혹한 일이고, 나이 들어 떨어져 사는 황혼 주말부부가 대책인 듯 생각되어 헛웃음을 등 뒤로 몰래 감춘다. 세상의 아내들은 ‘전생에 모두 나라를 구한 여성’들이 아닌가 한다. 아내들에게 ‘부엌으로부터의 해방’을 안겨주고 단순노동인 ‘설거지나 세탁기 사용 등 기계적인 가사는 이제 남자들이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아내도 40년을 함께 살면서 가부장적인 제도를 벗어나지 못한 삶에서 가사노동의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늦게나마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올린다. 요즘의 부부는 가사분담을 똑같이 하자고 한다. 젊은 여성들은 당당히 요구한다. 시부모와 남편에게 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젊은 여성들이 ‘남편 밥해주고, 아이 키우려고 결혼하는 것이 싫어서 결혼하지 않는다.’ 고 한다. 우리 모두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동참하여야 한다. 나는 퇴직 후에 ‘나라를 구한 아내’와 주말부부로 살고 있다. 7080 여성들이 느끼는 가사분담과 가정생활을 다시 뒤돌아본다. 오랜만에 손위 동서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 동서가 부엌으로 가 설거지를 하는 것을 보고는 오랜만에 우리가 방문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교원으로 정년퇴직한 손위 동서는 매일 설거지는 책임지고 맡아서 한다고 한다. 자기는 음식을 맛있게 요리하거나 밥을 맛있게 지을 수가 없어서 단순 노동인 설거지를 매일 해주기로 처형과 상의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퇴직하면 자칫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 처음 몇 개월은 등산도 다니고 시간을 잘 활용하지만, 산에 가는 것도 6개월을 지나면 시들해지고 갑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나는 누구인가?‘ 의문을 가진다는 것이다. 퇴직 후의 부부간에는 남편들의 잔소리가 많아지고 서로에 대한 간섭이 많아져서 ’오월동주(吳越同舟) 동맹자로서 원수가 된다.‘ 고 한다.
손자를 보살피며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살며 주말부부로 지내는 나도 ‘나라를 절반 정도는 구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집에 있으면 아내가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는 아내의 지시가 나름은 어려웠었다. 퇴직 후에 주말부부로 지내고 부터 금요일이 기다려진다. 나라를 구한 아내를 만나러 가는 오늘이 금요일이다. 우리를 주말부부로 만들어준 손자와 외손녀에게,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