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당선생님께서 프리스타일에 올리신 글입니다.
글중에 ‘事理(사리)의 順逆(순역)’과 ‘勢力(세력)의 向背(향배)’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수묵화와 나의 삶 2010.8.4
거의 매일 수묵으로 그림을 그린다.
나이 마흔 중반에 그림 삼천 장을 연습하고 또 구겨버려서 경지를 얻겠다는 문구를 인장에 새기고 서양화에서 수묵화로 변신했다는 중국 대가의 얘기를 책에서 읽고 용기를 얻어 시작한 수묵화.
선생도 없이 혼자 가는 길이니 삼천 장이 아니라 만 장은 망쳐야 나름의 경지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2 년 전 여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천 장 남짓 그렸으니 만 장을 그리려면 20 년은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니 나이 70 후반이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 나도 愚公移山(우공이산)하고 磨斧爲針(마부위침)의 각오로 나가면 태산도 오르고 알프스도 넘을 수 있으리라는 기개를 가져본다.
어느 분이 그림 전시회를 언제 하냐고 추어주셨지만, 아직은 먼 얘기이고 하게 된다면 2017 년 丁酉(정유)년 정도에 해볼 생각은 있다.
한 장의 그림을 그리고 또 망칠 때마다 미미하지만 하나의 교훈을 얻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교훈들이 하나로 뭉쳐 작은 進展(진전)을 이룬다.
표현이 안 되어 늘 불편해 하다가 어느 순간 손끝에서 절로 이루어질 때도 있으니 ‘아니, 이게 되네, 언제 늘었지?’ 하고 감탄을 할 때도 있다. 그러면 다시 의욕이 솟고 그리는 회수도 잦아진다.
물론 다시 슬럼프가 온다. 그러면 다시 좀 뜸하게 된다. 때로는 스스로가 밉기까지 하다.
그러나 예전에 그린 그림들을 어쩌다가 펼쳐보면 봐주기 민망할 정도일 때도 있다. 그러면 기분이 다시 좋아진다. 예전 그림이 스스로 창피하다는 것은 그간 눈이 더 생겼고 솜씨가 늘었기에 가능한 까닭이다.
오픈 다이어리에 그림을 올리는 것은 현재 내가 보기에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그 그림들을 다시 볼 때 야, 내가 이런 것도 선을 보였다니 참 창피하구나 하고 느끼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로서 즐거움이자 흥취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수양이고 나아가서 道(도)이다. 세상이 좋아져서 먹과 붓, 종이를 사는데 드는 비용은 정말이지 거의 공짜에 가깝다. 종이 몇 만원 어치 사오면 수백 장은 그릴 수 있으니 실로 저렴하다.
그렇다고 내가 安貧樂道(안빈낙도)의 삶을 살고 있다는 그런 건방진 겉멋을 부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액면 그대로 그림 그리는 비용이 저렴하다는 얘기를 할 뿐이다.
나는 골프나 테니스를 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에 가졌던 묘한 열등감 내지는 자존감 같은 것 때문이다.
영국이 19 세기 동안 세계를 거머쥐고 지배하다보니 영국 귀족들의 취미가 세계로 퍼져나간 것, 그러니 나는 영국 귀족 취미 같은 것까지 손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은 자존감이라 해도 말이 되고 또 열등감이라 해도 부인하지 못한다. 실은 그냥 스포츠일 뿐인데 말이다.
그렇기에 주변에 골프 치는 친지들에 대한 반감 같은 것은 전혀 없다. 다만 나는 그렇다는 것일 뿐.
친한 선배가 야, 너 골프 안 치면 사업하기 어려워, 너 돈 벌고 싶지 않냐? 하고 다그치듯이 지적해왔을 때 나는 그냥 웃었다. 네, 그러지요 뭐, 저는 사업하지 않고 돈 벌지 않을 요량입니다 라고 속으로 대답하면서.
사실 핑계도 여러 개 만들어 두었다. 어깨를 다친 적이 있어 그렇습니다, 운동신경이 둔해서 해도 안 되요 등등, 하지만 실은 모두 핑계거리.
자기 합리화는 또 이렇다. 한 번 나갈 때마다 드는 그 엄청난 돈이면 화선지를 사도 일 년 치를 살 것이고, 마누라 가져다주면 얼굴이 활짝 피어날 정도의 돈을 그런 곳에 쓰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스스로의 내 항변이다.
내 보기에 사회생활 하면서 영국 귀족 스포츠 하는 것이나 학생이 외국 유학 가겠다는 것이나 모두 같아 보인다. 그래서 후배나 어린 친구가 인사 오면 겉말이 있고 또 속말이 있다.
겉으로는 야, 대단한데, 열심히 공부하고 다녀오면 성공할 꺼야 하는 말. 그러나 속으로는 이런 말을 해준다, 그래, 그런 데 다녀와야지 ‘스펙’을 얻을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말이야, 그런 시시한 스펙 따위 없이도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자네 모습이 보고 싶다네.
외국을 배타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존감의 결여가 나는 싫을 뿐이다.
이런 나는 과연 타고난 反骨(반골)인 것일까, 아니면 나름 强骨(강골)인 것일까?
둘 다 맞는 말일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사마천의 史記列傳(사기열전)을 읽던 당시 내 운명의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사기열전에는 영웅호걸이나 왕후장상도 나오지만 도적도 나오고 사악한 사람도 소개된다. 선악으로만 따지면 사마천은 훌륭한 자나 선한 자만 열전에 올려야 할 터인데, 나쁜 놈이나 이상한 놈도 열전에 올리고 있으니 참 이상하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어려서 읽던 위인전과는 전혀 다른 생각이었다.
그 때 나는 그것을 내 식으로 받아들였다. 아, 그래, 좋은 놈이나 나쁜 놈을 떠나 그 시대에 자신의 개성을 강렬하게 표현했던 사람들을 모두 모아 놓은 것이 사기열전이구나, 그렇다면 이건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강렬하게 살다 가면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第一流(제일류)는 최고를 뜻하는 말이지만 그게 아니라, 나름의 흐름을 창조한 獨流(독류) 또는 一流(일류)의 삶을 살다 가면 되는 것이구나 하고 느꼈으니 이미 그 당시 나는 반골과 강골의 삶을 선택해버렸던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소설 구운몽에서 세상의 길은 ‘事理(사리)의 順逆(순역)’과 ‘勢力(세력)의 向背(향배)’에 따라 결정된다는 문구와 만나게 되었다.
‘옳고 그른 길’이 있지만 또 한편 ‘세가 따르거나 멀어져가는 길’이 있다는 말이다.
옳은 일이고 만인이 따르는 길이라면 나서는 데 주저함이 없겠지만, 옳긴 하지만 따르는 이가 적을 경우 또 옳지는 않아도 따르는 이가 많은 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스무 살 시절의 겨울 밤, 자취방에서 나는 이 문제를 놓고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자, 생각은 또 다시 변했다. 옳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틀렸다는 일이 과연 틀린 것인지, 과연 누가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인지, 그것부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문제였다.
선악을 내 모르겠으니 오로지 세력의 向背(향배)만 봐야 하는 것일까?
또 과연 일시적으로 세가 모인다 해도 그것이 과연 오래가는 것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거품인지도 내 어떻게 알 수 있으리?
이런 생각들이 내 나이 마흔의 숙제였고 또 주제였다.
善惡(선악)이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고, 가진 지식과 경험에 따라 달라지며, 나아가서 처한 입장에 따라 달라지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다시 한 번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자신이 실로 옳고, 絶代善(절대선)이라고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눈을 부릅뜨고 나서는 사람들도 허다하니 참, 나 원 세상 한 번 살다가기가 정말로 만만치 않구나 싶었던 것이 나이 五十(오십)의 일이었다.
붓을 들어 화선지에 선을 긋는다.
그러면 묻는다, 방금 그어놓은 이 먹선이 참인지 가짜인지 선인지 악인지를 그을 때마다 묻게 된다.
그어놓은 선은 이후에 그리는 선들과의 관계 속에서 좋은 선이 되기도 하고 나쁜 선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갖은 정성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망쳐놓은 최초의 선이었음을 다 그리고 난 후에야 알게 될 때도 있으니 종이에 내려놓는 이 먹선의 좋고 나쁨과 세력의 향배를 내 어이 미리 알 수가 있겠는가!
천재화가 石濤(석도)는 말을 남겼다. 一筆(일필)이 萬筆(만필)이라고.
아직 그 의미를 모르겠다. 그냥 ‘개멋’이었는지 혹은 최초의 선을 긋는 것만으로도 그 선악과 향배를 알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다음의 心得(심득)인지를.
그저 아직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되면 또 그려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다. 그러나 다 살고 나서야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창밖에는 여름 나절 소나기가 시원하고 싱그럽다.
[출처]<a href='http://www.hohodang.com/?bbs/view.php?id=free_style&no=434' target='_blank'>호호당 블로그</a>
첫댓글 짧은 인생이지만, 저도 사회생활을 하면 할 수록 정의가 정의가 아니고 불의가 불의가 아닌거 같다는 생각을 할때가 많습니다.
친절하게 글도 옮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윗자리로 갈수록 안보이던 많은 것들이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