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목소리
윤 춘 화
어머니가 생각날 때면 오래전 일기장을 펼쳐보곤 한다. 일기를 읽고 있으면 그날의 장면들과 함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새벽 2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어머니가 옷을 벗고 기저귀와 씨름하고 계신다. 그냥 볼일을 보라 하니 언짢은 표정을 지으신다. 잠시 망설이더니 포기한 듯 가만히 계신다. 잠시 후, 볼일이 끝난 줄 알고 기저귀를 빼니 그제야 볼일을 보신다. 기저귀에는 도저히 보실 수 없었나 보다. 이불을 바꾸고 다시 주무시라 하니 밖에 나가고 싶다고 한다.
거실로 나온 어머니는 배란다 너머로 보이는 고속도로를 바라보고 계셨다. 쉴 새 없이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며 “다들 바쁘네.” 하신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자 하니 싫다고 하셔서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살포시 안아드리니 가만히 내 손을 잡는다. 살은 없고 뼈만 몸에 닿는다. 마음이 아려온다.
지금은 혼자 거실에 앉아 고속도로를 바라본다. “다들 바쁘네.”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주르륵 눈물이 흐른다.
어머니는 농사꾼이시다. 평생 농사밖에 모르셨고 집을 떠난 적이 거의 없었다. 지병이 있어 끼니와 약을 잘 챙겨 먹어야 했다. 전화를 드리면 잘하고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몸을 움직이기 힘들고 헛것이 보인다며 자식들을 부르는 일이 잦아졌다. 새벽에 불려 다니기를 여러 번 하다 우리 집에 모시고 오기로 했다.
사위를 백년손님이라며 어려워하시는 분인데, 그런 분이 딸네로 오셨다. 현관문을 열어주며 잘 오셨다고 손을 잡는 사위에게 멋쩍게 웃으시며 “미안하네”라고 하셨다. 그렇게 함께 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오랜 시간 파킨슨병을 앓으셨다. 약을 먹으면 괜찮을 줄 알고 무관심했던 것이 탈이었다.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카페에도 가입하고 진료 때마다 어머니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병을 다스려 나갔다. 파킨슨은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가 감소하면서 나타나는 질병으로 진행을 더디게는 할 수 있지만, 완치는 불가능한 병이라고 한다. 병에 관한 공부를 시작하고 식사와 약을 잘 챙겨 드리니 조금씩 안정되어갔다.
어머니는 노인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셨다. 학교에 다녀 본 적 없는 어머니는 센터의 프로그램들을 신기해하셨다. 평생 농사일만 했는데, 아이처럼 그림에 색칠도 하고 만들기도 하면서 호사를 누린다며 좋아하시기도 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당신 이름을 쓰고 싶다고 했다. 만들기가 끝나고 이름을 적으라고 하는데 적을 수 없어 속상했단다. 공책과 연필을 준비하고 연습을 했다. 진지하게 연습하는 어머니를 보며 아들과 처음 글자 연습할 때가 생각났다. 병원에서 기다리는데 대기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보고는 환하게 웃으셨다. 내친김에 글자를 가르쳐 드리겠다 하니 좋다고 하셨다. 큰아들 이름부터 막내아들 이름까지 적고 또 적으셨다. 진즉에 한글 공부를 좀 시켜 드릴걸…….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휴일이 되면 어머니를 고향 집에 모시고 갔다. 친구들과 이웃들이 반갑게 맞아 주시며 빨리 다시 오라고 한다. 농사철에는 아들이 하는 농사일을 거들기도 했다. 성에 차지 않는 듯 불평도 하셨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곳은 포도밭이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아들에게 시작되는 잔소리에 다 나으신 듯하다. 돌아갈 시간이 되어 집을 바라보시며 한숨 쉬는 모습이 애처롭기도 했다. 병이 다 나으면 돌아가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그 바람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렇게 다섯 해를 함께 살았다. 병은 점점 진행되어 약을 먹어도 몸이 둔해지고 치매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하였다. 사위에게 아들이라고 하기도 하고 센터에서 집에 보내 달라며 문을 잡고 울기도 하셨다. 점점 아기가 되어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안타깝고 지쳐갔다.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결국 요양병원에 입원하셨고, 코로나로 인해 면회가 자유롭지 못해 자주 찾아갈 수 없었다. 그러다가 몇 해 전 따스한 봄날, 부활절 아침에 어머니는 세상과 이별하셨다. 자식이 여럿 있었지만 혼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셨다. 한 부모 열 자식 건사해도 열 자식 한 부모 건사하지 못한다는 말이 맞는 듯하다.
순간순간 어머니 생각이 난다. 함께 힘겹게 오르던 계단, 빨래 개키며 아들들 흉보던 일, 좋아하는 떡을 내밀었을 때 환하게 웃던 모습이 그립다. 고향 집에 간다고 환하게 웃음 지으시며 준비를 서두르시던 어린아이 같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싶다.
지금도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쉴새 없이 달린다. “다들 바쁘네”.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