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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추위에 콧등이 얼어 붙을 것 같기만 한 날,
내 친구를 실은 버스는
역시 친구녀석의 차인 검은색 자가용의 선도를 받으며
얼어 붙은 강줄기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무릎 위에 얹어놓은 제법 큰 가방이
차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가방 속에는 며칠 전, 공테이프를 사서
노래 하나를 연이어서 녹음을 한 테이프와
고물이긴 하지만 성능이 빵빵한 야전과 스피커가 들어 있었다.
창밖을 눈부시게 비추는 따스한 햇빛이 이틀밤을 꼬박 새우다시피한
눈꺼풀을 더욱 무겁게 내리 누르고 있었다.
슬슬 졸음이 몰려왔다.
스스르 감긴 눈 사이로 지나간 잔상들이 밀려왔다.
자치기 놀이와 깡통차기, 숨기살이, 콩서리 등 말이 필요없이
손발이 척척 맞았던... 어릴적 같이 뛰어놀던 모습들...
고무줄 놀이하는 여자 아이들 고무줄을 빼았아 줄행랑 치던 일,
개구리를 잡아 감추고 있다가 학교에서 제일 예쁘다고 소문난
여자아이 등 뒤에 불쑥 집어넣어 기절 시켰던 일...
그러다 상급생 누나들한테 붙잡혀 뒈지게 얻어맞고 한대 더 맞았던 일...
입가에 웃음이 슬며시 번졌다.
동네에서 제일 잘살아 얻어먹을 것이 많았던 친구...
서울에 사는 그 녀석의 친척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젤리형태의
오색과자들을 가져오면 녀석은 등교길이던 하교길이던 쉬는 시간이던...
다른 친구들 몰래 나를 불러내 달콤한 과자를 몇개씩 내 손에 쥐어 주곤했었다.
처음 과자를 받던 날, 그 오색영롱한 색깔에 취해
내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을 느꼈었다.
하나 밖에 없는 동생 생각이 나 먹지를 못하고
호주머니 속에 넣고 쪼물락 거리다보면 주머니 속의 때와
내 더러운 손때가 끈적끈적한 과자에 뒤엉켜
그 아름답던 색깔이 무채색이 되었었다.
무채색으로 튀튀하게 변한 과자를 양지바른 울타리 밑에서
동생하고 아주~ 아주~ 아끼면서 야금야금 먹던 생각이 떠올랐다.
입에서 녹는듯한 달콤함...
파란 하늘이 높기만 하던 가을,
오후 수업을 마치고 철길을 따라 집으로 오던 중
빨갛게 잘 익은 홍시감 두개를 책가방 속에서 꺼내
하나를 건네주며 해맑게 웃던 녀석...
내가 그 감을 받아들고 머뭇거리자
"너 또 동생 생각나서 그러는 거지? 이거 동생 갔다 주고 얼릉 먹어.
너 점심도 안 먹어서 배 고플 거 아냐?"
하면서 자기가 들고 있던 주먹만한 홍시감을 내게 덮석 내밀던 녀석.
"넌 배 안 고파?"
"나? 난 도시락 먹었잖아...."
차가 비포장 길을 오르는지 덜컹거리는 울림에 눈을 떴다.
야트막한 산 위, 양지바른 곳에 여러개의 무덤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떠지지 않는 눈 사이로 어렴풋이 보였다.
저 세상으로 떠나 숨을 쉬지 않은 자와
이 세상에 남아 숨을 쉬는 자와의 마지막 이별이 다가 오고 있었다.
죽어도 화장은 싫다며 땅 속에 묻히기를 바랐던 녀석...
"난 말이야, 그동안 죽는게 두려웠어. 미칠 것 같았어.
죽기전에 내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니까...
내가 왜 진작 죽음하고 친해지려고 노력을 안했는지 후회돼.
이 나이 먹도록 죽음이 항상 내 곁에서, 내 삶과 함께 따라 다녔다는 것을
왜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살았는지 모르겠어.
아직 해야 될 일들이 많은데...
나 고민 많이했어. 나보다도 마누라와 아이들 땜에...
나야 가면 그만이지만 저녀석들 어떻게 살까 하고...
근데 그런 미련도 버렸어. 저만큼 키워 놓았으면 됐지, 그치?
이젠 지들이 알아서 지들 세상 살야야 되는 거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야.
아무 미련없이 나 편안하게 눈 감아도 되는 거지?
아내한테도 그랬어.
살다가 정말정말 당신을 위해서 함께 살아줄 사람이 나타나면
나 깨끗히 잊어버리고 떠나라고,,,
근데 말이야, 정말 불에 타기는 싫어...
해부용으로 넘기고 싶지도 않아. 내 몸에 부끄러운 상처가 너무 많거든...
넌 날 이해할 수 있지?"
"그럼, 이해하고 말구...
누가 누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삶이 아니잖아.
네 하고 싶은대로 해. 그게 너를 위해서도 좋은 거구...
네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좋은 거야..."
"우리 고등학교 때 산으로 소풍갔었던 거 떠올라?
야, 그때 정말 신났잖아. 넌 춤을 안 춰서 모르겠지만
내가 모자 뒤집어 쓰고 웃도리 교복 거꾸로 입고
앞에 나가 음악에 맞춰 신나게 트위스트 추던 거 봤지?
춤추고 나서 오락상으로 콘사이스 받았잖아.
글구 우리랑 같은 장소로 소풍왔던 여자학교 얘들 있잖아.
걔네들 멀찌감치 쭈욱~~~ 서가지고
내가 춤추는 거 보며 소리치고 난리 부르스였잖아.
그때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어.
넌 그때 내 기분 모를 거야. 야, 한 오십명도 넘었을 거야.
그 여자얘들이 나만 보고 있었잖아. 흐흐흐...
그래, 그게 좋겠다.
설운도 노래 있지? 상하이 트위스트...
신나고 재밌잖아.
네가 그 일 좀 해 줘.
내가 땅에 누어 완전히 묻힐 때까지 그 노래 계속 틀어줘.
집사람이나 아이들도 슬퍼만 하지 않고 틀림없이 웃어줄 거야.
어때? 내 아이디어?
마지막으로 술도 한잔씩 나누고 말이야, 신나게 노는 거야...
내가 왜 이런 부탁 하는 줄 알지?
땅에 묻히는 순간까지 울음속에서,,,
아니 더 이상, 나 때문에 아내나 아이들을 울리고 싶지 않아.
아내나 아이들이 지금까지 운 것만해도 한강물만큼은 될 거야.
더군다나 여자 아이들이라 더 하겠지?
글구,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아내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 해맑은 웃음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아내한테 이런 말하면 펄쩍 뛸 거야.
관습적인 장례절차 때문에 황당해 하겠지?
더군다나 형제들이나 집안 어른들 눈치도 봐야 하니까...
그러니까 네가 내 부탁을 좀 들어줘.
넌, 내에 치인구니이까 꼬오옥 들어 주울 거지이?..."
답답하다며 휠체어를 타고 병원밖에 나온 녀석은
제법 살갖을 파고 드는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기분이 날아 갈 것 같다며 좋아했다.
점점 시간이 길어지면서 앉아 있기도 힘이 부친 녀석은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온 힘을 모아 마지막 하고 싶은 말들을 토해냈다.
"그래, 그래,,,
넌 내 친구잖아.
내가 꼭 그렇게 해 줄께, 걱정하지마,
그때 네가 상으로 탄 콘사이스도 내 차지였잖아.
우리들이 너랑 같이 소주도 마시고 신나게 트위스트 출께.
내가 태어나서 처음 추어보게 될 춤이지만 엉성하다고 흉보면 안 돼.
자, 이제 그만 들어가자,,,"
버스가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곳에 다다르자 친구 녀석들이
앞 뒤로 달라 붙어 관을 둘러메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뒤를 따르던 나는 슬슬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친구 녀석들이야 어떻게 하면 그 친구의 마지막 소원을
무리없이 잘 해낼 수 있을까 하고 상의를 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친구 아내나 누이들에게는 몇번이나 말을 꺼내보려고 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할 것 같은 두려움에...
말조차 꺼내기 어려워서 입을 다물고 말았었다.
친구 녀석들도 처음에는 "아내를 끔찍히도 생각했다"느니
"과연 그 놈 답다"느니 하면서 동조를 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겁이 나는지 하나, 둘 발뺌을 했다.
"살아서도 기발하더니 죽는 순간까지 기발한 생각을 했다, 야"
"마지막으로 신나게 함께 노는 것도 좋지 뭐."
"우리야 친구니까 괜찮지만 그 집 어른들께 혼나지 않을까?"
"에이, 설마 그러실려고... 세상 하직한 사람의 마지막 부탁인데..."
"야, 슬퍼서 눈물 나오는 사람한테 울지도 못하게 하는 심보는 뭐냐?"
"맞아, 맞아, 저만 아는 순 이기적인 생각이잖아."
"에구구... 난 모르겠다. 너한테 유언을 했으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
관이 내려지고 얼어붙은 땅이
조그만 포크레인의 굉음에 묻혀 파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베에 둘러 쌓인 친구가 관에서 나와 땅 속에 반듯이 드러 누었다.
산에 오를 때부터 흐느끼던 울음소리가 점점 통곡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상복을 입은 친구 아내는 땅에 쓰러져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고
아이들 또한 엄마를 붙잡고
"아빠! 우리 아빠 어떻게 해~~~ 엄마, 아빠가 흙속에 묻히잖아.
답답해서 어떻게 해!!!"하며 엉엉 울었고
친구의 나이 많은 누이들은
"나를 놔두고 네가 먼저 가다니 이 놈아~~~ 이럴 수가 있냐..."
하면서 파인 땅 속으로 들어갈 태세로 발버둥을 치다가
숨이 넘어갈듯 컥컥 거리고 있었다.
이때다.
마지막으로 친구가 부탁한 건데...
마지막으로 친구가 원하는 건데...
이 세상에서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는데...
나는 얼른 가방을 열어 젖히고 야전을 꺼내 노래를 크게 틀었다.
"짠자라, 짠자라, 짠짜라...
학창시절에~ 함께 추웠던~
잊지 못할 상하이 트위스트~"
고요!
갑자기 시간이 정지해 버린 것처럼 모든 것이 움직임을 멈췄다.
통곡을 하던 친구의 아내도 아이들도 누이들도 나이 많으신 친척분들도...
모두들 입을 벌린채 나를 뚫어지게 노려봤다.
"나팔바지에~ 빵집을 누비던~
추억 속의 사랑의 트위스트~~~
짜라라잔~~~잔~~~"
평생 춤이라곤 추어본 적이 없던 나는 벌떡 일어나
마지막 가는 친구를 위한 엉성한 춤사위를 연신해댔다.
'네 영혼이 있다면 내 앞에 서라.
그리고 네 기쁜 모습을 네 아내와 아이들과 누이들에게 보여줘라.
그리고 네가 그토록 원했던
아내와 아이들의 미소띤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거라...'
"이것이 무슨 행동이냐? 초상집에서 뭐한다더니...
네가 지금 뭐하는 짓이냐?"
정신을 차린 친구의 큰누나가 나에게 다가왔지만
난 괘념치않고 엉덩이를 흔들어 댔다.
눈치빠른 친구 한 녀석이 황급히 나서서
친구의 큰누나를 붙잡고 말을 하는 것이 보였다.
"상하이 상하이 상하이 트위스트 추면서
난생 처음 그녀를 알았고~~~
상하이 상하이 상하이 트위스트 추면서
온 동네를 주름잡았던~~~"
고요하던 주변이 갑자기 부산거리더니
술병과 안주들이 날라오는 것이 보였고, 친구녀석들이
내 주변을 에워싸고 함께 몸을 흔들어 댔다.
친구 한 놈이 술병을 들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술을 따르는 모습이 보였다.
"자, 날도 추운데 한잔씩 하시죠.
아무리 땅이 꺼지도록 슬픔이 일어도, 폭포같은 눈물이 쏟아져도
지금 이 순간부터 봉분이 완성될 때까지는 신나게 놀아야 합니다."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을 잊지 못할 추억의 트위스트~
그녀와 함께 신나게 추던 잊지 못할 상하이 트위스트~
단발머리에 미소가 예뻤던 추억 속의 사랑의 트위스트~
짜라잔 짜자~~~"
친구의 유언을 전해 들었는지 울음을 그친 친구의 아내가
배시시 웃는 모습이 모였다. 아이들도 옷깃으로 눈물을 훔치며
엄마를 바라보고 미소짓는 모습이 보였다.
나이들은 어른들은 기가 막히다는 듯 멀건히 서서
우리들의 춤사위를 지켜보고 있었다.
"상하이 상하이 상하이 트위스트 추면서~
그녀에게 빠져버렸던~~~
터질 것만 같은 이 가슴은 잊지 못할 사랑의 트위스트!!!
짜라자 짠잔자~~~"
얼빠진 사람처럼 넋놓고 있던 포그레인 기사는
괜찮다며 친구들이 한잔 따라주는 술을 사양하고
빙그레 웃으며 파낸 흙을 다시 덮기 시작했다.
처음에 온 산을 집어 삼킬 듯 울려대던 포크레인 소리가
노랫소리에 장단을 맞추는 악기의 연주소리처럼 들렸다.
"에고, 그 놈이 그랬단 말이야? 그럼 진작 말하지 않고서...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해? 그 놈이 마누라랑 자식 새끼들 하고
울면서 헤어지기 싫었단 말이지?"
"아이고 얘야, 처음 만났을 때 걔한테 웃었다며?
그 웃음 그대로 보내 주거라... 아, 좀 웃어봐~~~"
파였던 흙이 금새 채워지고 땅을 다지는 모습이 보였다.
내 눈가에 알지못한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죽은 자와 산자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것인가?
내 앞에 서서 신나게 춤을 추워야 할 녀석은 무덤에 흙이 다 채워질 동안
얼어붙은 땅 속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난 믿는다.
네가 마지막으로 원했던 것들을 모두 다 이루고
맘 편히 저 세상으로 갔다는 것을...
첫댓글 실화인가요? 웃음이 나면서도 정말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장례문화, 고인의 유언이라면 괜찮은데요~ 사오정님 오랜만에 반가웠습니다. 이젠 좀 자주 오세요^^
비요일님,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제가 밥 얻어 먹으러 다니느라고 자주 못오게 되네요. 되도록이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근데 비요일은 일주일 중 몇번째 날에 있나요? 첫번째 있었으면 좋겠어요. 왜냐면요, 세상이 맑아지잖아요. 모두들 숨쉬기에 편안한 세상, 맛있는 저녁시간 되세요.
반가워요 사오정님... 외출 준비중에 잠시 들어왔습니다. 오후에 다시읽고 다시 답글 달게요 ㅎㅎㅎ
또다른나님, 저도 반갑습니다. 아직 눈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지 않나요? 이상하다... 누가 벌써 다 치웠지... 난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는데... 아무튼 외출한다니까 괜히 심술나는데요. 낑~~~ ^^* 아이고, 벌써 외출하고 돌아왔을 시간이네요. 심술나는 거 취소합니다.
사오정님... 실화인가요? 나도 내 친구들이 그렇게 웃으며 신나게 보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근데요... 사오정님이 "상하이 상하이 상하이 트위스트 추면서~" 그건 안 어울리니까 본인의 실화는 아닌 것 같은데... ㅎ~ 찡~허게 읽고갑니다.
역시 내가 존경하는 사오정님~그 사이에 꿈을~~ㅎㅎㅎ
그럼 지금껏 꿈이야길 하신건가요? 어디까지 믿어야할 지..? 사오정님 말해주세요. 꿈인지 생시인지?
서해바다님, 기름냄새 많이 가셨나요? 숨이나 제대로 쉬고 있는지 걱정되네요. 이렇게 댓글을 달아 주신 거 보니까 건강하시죠?
하하하... 비요일님, 궁금하세요? 이거 밝히면 거짓말쟁이로 찍히는데... 아이구... 제가 원래 허풍쟁이 거든요. 거짓말도 잘 하구요.^^* 근데 제가 꿈을 꾼 것은 아니구요. 사실입니다. 어느 부분이 사실이냐면요.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이 상하이 트위스트 노래를 자기가 묻힐 때 들려달라고 가족들에게 유언을 했고 실제로 그 음악 아래서 장례를 치뤘다고 제가 아는 사람이 아주 색다른 장례식을 경험했다며 들려주었습니다. 웃을 수도 없고 울수도 없어서 난감했다고 말하면서요. 그래도 가족들이 슬픔에 젖어 있는 것보다는 좋아보였다고 하더군요. 나머지는 (이야기 구성상) 픽션입니다. 죄송해요. 혼동을 일으키게 해서요.^^*
죄송하긴요? 이러한 허풍은 떨만도 한데요 뭘~ 사오정님의 답글을 읽으며 혼자 큭큭 웃었습니다. 허탈했다기보단 넘 익살스러워서였지요...ㅎㅎ 허풍쟁이가 아니시구 익살쟁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