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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감동이 짓누르데…” | |||||||||||||||||||
뮤지컬 <명성황후> 대구 특별공연을 보고서 | |||||||||||||||||||
□ 뮤지컬 <명성황후> 12월 6일부터 29일까지 대구 특별공연 훌륭한 예술작품을 대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필자는 뮤지컬 <명성황후> 초연 이후에 열 번 이상 이 공연을 쭉 보아오면서도 작품을 대할 적마다 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고마움과 희열을 느낀다. 그러면서 마음에 각인된 것은 ‘역사의 교훈을 잊은 민족에게는 발전이 없다’는 뮤지컬이 남겨준 신념이다. 요즘과 같이 일본에서 독도영토 분쟁을 야기시키고 역사교과서 망언 등을 스스럼없이 하는 현실에서는 지난날 명성황후의 시해에서 보듯 역사의 되짚어보는 계기로서 이번 공연은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그래서 이번이 두 번째인 대구 특별공연이 있기까지 필자는 가슴 설레며 그 과정을 지켜봤다. 그것은 최고의 명품 뮤지컬로서 작품을 대하는 마음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창작극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 뮤지컬을 제작한 윤호진 에이콤 대표를 비롯한 제작진들의 열정에 답하는 길이요, 한편으로는 대구 공연을 유치한 고도예술기획 김종성 대표의 대구지역을 문화예술의 도시, 뮤지컬의 도시로 거듭나게 하려는 마음 씀에 대한 칭송에서다. 특히 이번 대구특별공연에는 명성황후 역의 이태원 외에 그 역에 더블 캐스팅된 이혜경 배우가 출연하는바 그 배우에 대한 기대가 많기 때문이다. 이혜경은 고향이 필자와 같은 영덕이고, 어린 시절을 영해에서 보냈다 하니 더욱 관심이 커서 공연시간 내내 기대심을 갖고 관람했다. 그는 ‘아가씨와 건달들’ ‘사운드 오브 뮤직’ 등 굵직한 뮤지컬에서 보여준 빼어난 기량을 바탕으로 열연을 펼쳐 공연 내내 관객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은 인물이다.
□ 총명했던 민자영, 16세에 조선의 국모가 되다 진정 탁월한 작품이 뭔지를 보여주고 있는 뮤지컬 <명성황후>를 이해하려면 먼저 명성황후에 관해 개략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명성황후는 조선조 26대왕인 고종의 왕비이며, 대한제국의 첫 황후이기도 하다. 경기도 여주에서 여흥 민씨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이름은 자영이다. 8살에 아버지를 여읜 민자영은 어머니와 함께 여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와 감고당에서 거주했으며, 친척인 대원군의 부대부인 민씨의 도움으로 시아버지 대원군의 마음에 들어 1866년 16세 나이로 왕비가 됐다. 그 후 고종을 도와 정치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던 대원군과 사사건건 대립하게 된다. 일본에 대해선 철저히 반대했던 명성황후는 한반도에서 열강의 침입이 강화되는 때에 일본인에 인해 최후를 마치게 된다. 1897년 10월 8일의 새벽에 벌어진 일명 ‘여우사냥’으로 불리어지는 일본의 치밀한 작전에 의해 일국의 황후가 궁에서 시해된 사건은 그 당시 힘없는 조선의 통한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명성황후는 시해된 직후 대원군에 의해 폐위되고 서인으로 강등됐다가 같은 해 고종에 의해 복호됐고,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하면서 ‘명성(明成)’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황후로 추봉되어졌다. 죽은 지 2년 만인 1897년에야 명성황후의 장례는 국장으로 엄숙히 치러져 현재 홍릉에 안장돼 있다. □ 다시 봐도 불후의 명작, 뮤지컬 ‘명성황후’는 빛났다 평일이지만 계명아트센터의 객석은 꽉 찼다. 필자는 함께 온 분들을 안내하고서는 자리에 앉아 이전에 보았던 뮤지컬의 무대를 떠올리면서 공연장을 가득 울러 퍼질 웅장하고 감동의 뮤지컬을 진지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7시 반 공연시간이 되자 서곡과 함께 서막이 오른다. 비행기 소리가 들려오면서 무대 상공으로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연기가 자욱하다. 한반도에서 일제 강점기를 끝내게 만든 1945년 8월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투하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그러면서 연도가 1945년부터 거꾸로 흘러 1896년에 멈추어지고, 히로시마 지방법원에서 일본인들의 자칭 ‘민비 살해’공판으로 뮤지컬 <명성황후>는 시작된다. 일본인 재판장은 명성황후 시해 주범 12명에게 증거 불충분이란 사유를 들어 일본형법 제165조에 의거 전원 석방 판결을 내린다. 이어서 일본의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듯이 일본의 번성과 승리를 축하하는 웅장한 코러스가 무대에서 울려 퍼진다. 또 다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명성황후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 이야기들이 하나 둘씩 펼쳐진다.
이어서 민자영이 왕비로 간택되던 해인 1866년부터 1882년 임오군란이 발생한 이후 명성황후가 행방불명되었다가 환궁하기까지 궁중의 역사가 공연을 통해 비밀의 하나둘 베일을 벗는다. 명성황후는 고종의 편이 되어 자신의 시아버지 대원군과 끊임없는 갈등이 지속되는데, 대원군은 실권을 쥐고 있으면서 쇄국정책과 섭정을 계속 이어나가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며느리인 명성황후는 뛰어난 지략과 정치적 야심을 갖은 여인으로서 대원군의 정치생활을 흔들어 놓는다. 혼돈의 시대에서 1874년 고종은 친정을 선포하고, 그해 뒷날 순종인 왕자가 탄생한다. 5장에서 7장까지는 조선을 넘보는 서양 오랑캐들의 활동은 계속되는데 개화파와 수구파의 갈등이 심화된다. 국내외 정세가 어수선한 장면들, 특히 수구파와 개화파간의 알력을 희화화하여 안무와 함께 탁월한 연출력으로 표출되는 게 돋보인다. 1882년 임오군란으로 왕비는 충주로 피신을 갔다가 돌아오고, 대원군은 청나라로 추방된다. 여전히 한반도 점령에 야심을 꾸고 있던 일본은 명성황후가 그들의 계획에 걸림돌이라며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1막과 2막 사이에는 12년이란 세월의 틈이 있는데 이 시기에 갑신정변(1884), 일본의 청일전쟁 선포(1894) 등 일본이 조선정부에 대한 간섭이 지속된 시기다. 대연회의 화관무가 연주되면서 제2막이 올랐는데 시기는 명성황후 시해가 벌어진 1895년이다. 그해 봄 경회루에서 갑오경장을 축하하는 성대한 연회로 제8장이 시작된다. “조선에 아침이 밝아오네, 조선에 개화 꽃이 피어나네”가 합창으로 울리는 사이 고종과 명성황후는 ‘개혁으로 새나라의 기틀을 새로이 만들고, 풍요로운 국가를 건설하자’는 각오를 다지고, 각국 외교사절들은 새로이 태어난 조선을 축복해준다. 왕조와 백성을 지키려 명성황후는 고종을 도와 노련한 정치가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제9장에서 궁 밖의 소녀 한명이 “이상하다. 눈꽃 날리네. 눈꽃 날려 매화꽃 없네…”는 참요를 부른다. 그 노랫말로 왕비와 조선의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해주는 대목 등에서도 뮤지컬은 세밀하고도 탄탄한 구성을 하고 있는 게 매력적이다.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는 명성황후의 지략에 당황한 미우라는 ‘민비암살계획’을 서두른다. 제10장과 제11장에서 세자가 삼강오륜을 배우고, 명성황후가 불어를 익히는 사이에도 일본의 미우라는 ‘여우사냥’ 계획을 구체화 시키면서 결행의 날을 모의한다. 명성황후를 그림자처럼 따르던 용장 홍계훈이 명성황후를 위한 지킴이로서 충절과 연모를 보이지만 일본인에 의해 처절하게 죽음을 당하고 만다. 그 후 1985년 10월 8일 새벽, 잔혹한 일본인에 의한 '여우 사냥'이 시작된다. 회전무대 안쪽에서는 명성황후를 보호하려는 상궁들이 다급하게 몸부림치는 장면과 함께 회전 무대를 따라 궁녀들이 일본 낭인들의 칼에 흩어진다. 명성황후를 잃은 고종의 비애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제13장에서 고종이 부르는 뮤지컬 “궁금하다 황천후토, 뜻하심이여. 한 목숨 보존조차 힘들었던 삼십년. 기구하여라 힘겨움도 한스럽더니 이제 다시 기막힌 날을 보네” 노래는 명성황후의 기막힌 죽음에 하늘의 뜻인지, 어쩌다 이런 비극을 보게 되었는지 탄식에서도 확연히 나타난다. 그렇게 2막이 내려졌다.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 맺음막은 비탄에 잠겨있는 온 백성에게 명성황후의 혼이 나타나 "백성이여 일어나라" 뮤지컬을 부르는 대목이다. “어린 나이에 힘이 없어 부모님을 지키지 못하고 원수의 칼날에 떠나보내고… 착하고 순한 백성들이 이 땅을 어찌 지킬꼬, 한스러워라 조정의 세월…”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는 이혜경(명성황후 역)의 가창력과 호소력이 넘쳐나는 노래에 관객들은 우렁찬 박수로 환호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아! 노래 잘한다“는 말이 나왔다.
□ 뮤지컬 <명성황후>는 역사의 교훈이자, 한국인의 자긍심 이번 뮤지컬은 필자로 하여금 역사가 무엇이고, 지도자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금 강한 신념을 주었다. 조선의 이익을 위해 외교에 힘쓰면서 백성을 사랑하며 애국심 넘쳐났던 조선의 여인. 아시아의 그 어떤 왕후보다도 그 능력과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던 명성황후는 19세기 말 당시 조선이 겪었던 시대적 아픔의 상징이었다. 비록 외세에 의해 처참한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애국, 애민정신은 훨훨 불타올라 오늘날에 이어지게 된 것이 아닌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나라의 역사, 대한민국이 성립되기 전에 나라를 보호하고 융성의 길을 걸어왔던 숱한 선각자들! 그 속에서 명멸하지 않고 웅혼으로 남아 가슴을 적셔주는 것은 명성황후의 못다 이룬 꿈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희망이 없다’는 말은 뮤지컬 <명성황후>가 후세인들에게 부국강민(富國强民)이 되어라는 원혼이자 강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 문화예술의 도시, 대구로 거듭나기 위한 시민들의 합창 대구는 뮤지컬의 도시요, 문화예술의 메카 중심지다. 지난 12월 6일부터 오는 29일까지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명성황후>는 그 울림이 매우 강하다. 필자는 이번 공연을 보고서 지금까지 보아온 열 번 이상의 관람보다 마음속에서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건 일본이 한국을 대하는 고자세적인 태도가 마치 110년 전의 상황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역사의 교훈을 통해 극일 마음의 발로로써 불후의 명작 뮤지컬 <명성황후> 대구 특별공연에 시민들의 호응이 일제강점기 하의 국채보상운동과 같은 애국운동으로 번져났으면 하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저물어가는 2013년도 끝 무렵을 장식하기 위해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던 자랑스런 대구에서 공연되는 이 불후의 명작을 많은 시민들이 본다면 그 개개인에게 분명 역사관과 함께 애국과 애민을 떠올리게 하는 민족혼으로 자리 잡을 거라 생각한다. 명성황후가 비명에 간지 116년이 지난 이제, 조선의 국모로서 애민정신과 나라사랑하던 마음이 달구벌 하늘아래에서 장엄하게 펼쳐지고 있다. 뮤지컬 ‘명성황후’가 현재와 같이 국내외적 상황에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바로 알고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혼불로 가져야 함이 후세의 도리가 아닌가. 이번 대구 특별공연을 보고나서 예술소비운동본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공연 제작진과 출연진의 노고와 함께 대구가 뮤지컬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특별공연을 마련해준 고도예술기획 김종성 대표에 대한 감사함도 물론 크다. 아직 뮤지컬 <명성황후>의 공연에 취해 있는 내게서 지금 딱히 떠오르는 생각은 함께 공연을 보고 헤어진 지인이 남긴 말이다. “그 공연을 보고 나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이 가슴속을 짓누르데예…” yejuson@hanmail.net *필자/손경찬. 시인·칼럼니스트ㆍ예술소비운동본부장 | |||||||||||||||||||
기사입력시간 : 2013년 12월12일 [14:08:00] |
첫댓글 가슴 진한 감동이 지금도 전해 오는 듯 찡 합니다.
정말 작은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명성황후의 절규......
내 몸속세포하나 하나까지 일으켜 세워 백성들이여 일어나라 !! 명 하심에
나 자신이 명성황후가 되었습니다 .
만 백성을 끌어안은 어미처럼......
모든 주변 사람들이 치유 될수있는 힐링의 에너지원이 될 수 있음을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글을 읽고 있으니 저에게 아직도 공연이 게속됨을 느낌니다^^♥
회장님 덕분에 귀한 공연 감상했습니다.
늘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