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골프매니아이다. 그것도 '중독'의 직전에 이른 정도의 '하고집이'이다. 정규홀은 물론이고 퍼블릭이나 파쓰리, 실외연습장, 때로는 스크린까지 찬밥 더운 밥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명절이면 의례껏 같이 뭉쳐 돈 덜드는 방식으로 예약하여 긴 시간을 골프로 보낸다. 이번 설도 예외는 아니다. 전주에서 보내는 닷새의 연휴 기간에 나흘이 골프 일정이다. 내일 하루만은 22일에 있을 정규홀을 대비한 컨디션 조절을 위하여 쉬기로 했다. 이만하면 정말 '하고집이'라는 호칭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오늘은 셋째날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이 곳에서 5km 떨어진 김제시의 퍼블릭 연습장 '에스페란자'이다. 오전은 찬기운이 있을것 같아 피하고, 12시에 서둘러 점심을 먹고 9홀을 치기 위해 달려갔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의 주말과 전혀 다르다.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가 같은 것일까. 명절의 이튿날 해가 다는 따뜻한 오후, 가족. 친지. 친구들과 조를 이루어 나오기 좋은 시간이다. 1인용 소형카트가 동이 날 정도로 사람들이 넘쳐난다. 4명 1조로 늘어선 줄이 대충봐도 20줄이 넘어 대기자가 100명을 상회한다. 소요시간을 문의하니 2시간 반에서 3시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왕 나왔으니 달리 방법이 없다. 둘이서 퍼팅으로 판에 천원짜리 내기도 하고 1시간 정도는 부설 연습장에서 볼을 친다. 그러고도 한참을 더 기다려 무려 3시간만에 타석에 들어선다. 다행히 해걸음에는 마칠것 같다.
출발하면서 뒤를 돌아보니 이미 오후 4시인데 대기자는 늘어 아직도 50명이 넘어보인다. 해 전에 마치기 어려워 6시부터는 라이트를 켜서 진행한다고 한다. 참으로 골프인구가 많이 늘었다. 이런 소규모의 시골 퍼블릭은 물론이고 정규홀과 도심 사무실 주변의 스크린에까지 '하고집이'들은 넘쳐난다. 근래 '신중년'의 씀씀이가 커진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들은 테니스는 격한 운동이라 근접하기 어렵고 등산은 밋밋하니 뭔가 격조(?)가 있어보이는 골프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근래의 인구증가는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다.
현실이 이러한 데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소비심리가 위축된다는 걱정만 하고 이런 매니아들이 지갑을 열 장소를 마련해 주지 못하는 것이다. 시대가 어느 때인가. 우리의 아들.딸들이 세계로 나가 국위를 선양하고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지 않는가. 관련 산업의 번창으로 세계속에서 우리가 벌어오는 부는 또 얼마나 큰가. 그런데 우리의 골프장은 '특별소비세'를 물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아직도 골프를 일부 극소수의 부유층만이 즐기는 호화스포츠로 인식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물며 일부 공직자들은 가명을 쓰고 쉬쉬하며 도둑질하듯 하고 있으니 뭔가 잘못되어 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이 참여하는 '프레지던트컵'이 열린다. 이 대회에서 명예대회장이 되는 대통령이 이제서야 그 중요성을 깨닫고 관계 장관들에게 '육성방안'을 강구하라는 당부를 했다.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시급하게 활성화, 대중화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남녀의 구분없이 우리나라는 이미 일본을 제치고 세계최강 미국과 어깨를 겨룰만한 골프선진국이 되었다. 그리고 곳곳마다 부유층 근처에도 가지못하는 중산층 이하의 평범한 아마츄어 '하고집이'들이 오늘처럼 줄을 서고 있다. 이들이 갈 만한 적정가격의 필드를 만들어주고 즐거운 마음으로 소비하고 건강한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그러면 나라의 경제도 국민의 심신도 더욱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