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山淸郡 삼장면 대포리 덕산사입구 표지석
2021년3월-古方정경수書
천년고찰 산청 내원사(內院寺) 본래 명칭 ‘덕산사(德山寺)’ 되찾았다
원경복
승인 2021.04.04 20:06
신라 태종 무열왕 때 원효대사 창건 전해져
1609년 화재 소실 뒤 재창건 때 ‘내원사’로
작년 10월 실증자료 발견…조계종 승인받아
1300여년 전 ‘덕산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던 산청 ‘내원사’가
실증자료의 발견으로 본래 명칭을 되찾았다.
4일 산청군과 대한불교 조계종에 따르면 삼장면 대포리 장당계곡에 위치한
산청 ‘내원사’가 원래 이름인 ‘덕산사’로 변경등록됐다.
덕산사의 안내문에 따르면 신라 태종 무열왕 4년(657)년에 원효대사가 처음 세웠다고 기록돼 있다.
이후 동방의 대보살로 불렸던 무염국사(801~888)가 상주하며 수많은 수행자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오래된 사찰들이 그러하듯 천여년이 지난 광해군 1년(1609)에 원인모를 화재로
절터만 남기고 전소됐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1959년 원경스님이 절을 다시 세우고 내원사로 이름을 바꿨다고 전해진다.
그동안 문헌 상 기록 외에 기존의 내원사가 덕산사의 자리에 세워진 것을 실증하는 자료를 발견하지 못해
내원사는 본명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대웅전의 위치고증을 위한 시굴조사에서
덕산사의 사찰명이 새겨진 기와가 발굴돼 비로소 내원사가 덕산사의 사지(寺址)에 지어진 것을 확인했다.
산청군과 내원사는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명칭 되찾기를 진행했으며,
지난 3월 중순 대한불교 조계종은 내원사의 사찰명을 덕산사로 변경하는 것을 승인했다.
이후 군은 3월 26일자로 전통사찰 변경등록을 완료했다.
실제로 내원사의 기원인 ‘덕산사’는 산청군 시천·삼장면에서는 아주 낯익은 이름이다.
옛 부터 인근 지역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리잡은 터를 ‘덕산’이라고 불러 왔다.
시천면 초입의 남명 조식 유적지 인근을 입덕문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을 넘어 안으로 들어서면 통칭해 덕산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이름을 덕산으로 지었고 강변에 조성된 시장의 이름도
덕산시장으로 부른다. 하물며 농협하나로마트의 이름도 덕산지점이다.
내원사에는 보물 제1113호 ‘산청 내원사 삼층석탑’과 1990년 보물 제1021호로 지정됐다가
2016년에 국보 제233-1호로 승격된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다.
비로자나불 대좌의 중대석 안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국보 제233-2호)’는 부산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납석사리호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다 먼저 국보로 지정(국보 제233호)로 됐다가 비로자나불이
국보로 승격되면서 불상과 사리호의 관련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지정명칭과 지정번호가 변경됐다.
일광 덕산사(내원사) 주지스님은
“덕산사의 이름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게 돼 기쁜 마음이 헤아릴 수 없이 크다”며
“원래 명칭을 찾기 위해 노력해 주신 산청군 관계자 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원경복기자
산청군과 내원사가 ‘덕산사’ 명칭 되찾기를 진행해 최근 대한불교 조계종으로부터 사찰명
변경 승인을 받았다. 사진은 산청 덕산사(德山寺) 전경. /사진제공=산청군
산청군과 내원사가 ‘덕산사’ 명칭 되찾기를 진행해 최근 대한불교 조계종으로부터 사찰명
변경 승인을 받았다.
사진은 산청 내원사 안내문. /사진제공=산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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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다. 신라 말기에 무염국사(無染國師)가 창건하여
덕산사(德山寺)라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959년에 중건되어 내원사라고 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심우당(尋牛堂)·비로전(毘盧殿)·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으나 건물의 규모는 한결 같이 작다.
비로전 안에 봉안되어 있는 보물 제1021호인 석남암사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1,2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 석불은 이 절에서 30리 밖에 떨어져 있는 보선암에서 모셔왔다고 한다.
대좌 중대석에서 불상 조성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영태이년명 납석제 사리호(永泰二年銘蠟石製舍利壺)’가 발견되었다.
또한 보물 제1113호인 대웅전 앞 내원사삼층석탑은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이다.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의,
지리산 동쪽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인 덕산사(德山寺)를 찾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산청을 대표하는 사찰은,
지리산 천황봉으로의 등산로가 있고 여름의 시원한 계곡으로,
대원사(大原寺)가 널리 알려 졌지만,
대원사와 비교적 가까운곳에 있지만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찰 이기도 합니다.
덕산사(德山寺)는 지리산 동쪽 자락인,
장당골(長堂谷)과 내원골(內院谷)이 합류하는 위치의 좋은 자리에 자리한 사찰로,
주차장에서 다리를 건너면 바로 경내로 들어갈수 있는데,
다리를 건너 경내로 들어서면,
담장 옆에는 아담한 바위 위에 작은 돌을 올려둔 모습을 볼수 있어,
"내원사 철광 연꽃돌" 이란 안내문과 함께,
설명문이 있어 들여다 보게 됩니다.
이곳의 "철광 연꽃돌"은 내원사 계곡에서 발견된 돌인데,
깨어진 부분이 연꽃모양과 닮아 있어 연꽃돌이라 하며,
철광 연꽃돌은 좋은 기를 뿜어내고 있어,
5~10분정도 두손을 얹어 놓으면 좋은 기(氣)를 느낄수 있다고 합니다.
내원사(內院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로,
신라 태종 무열왕 때 무염국사(無染國師)가 창건하여 덕산사(德山寺)라 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959년에 원경(圓鏡)스님에 중건되어 내원사라고 하였다가
2021년 3월에 덕산사(德山寺)로 조계종 총무원의 개칭 인가를 받아 오늘에 이른다고 합니다.
경내로 들어서면,
대웅전의 서편에는 보물 제1113호로 지정된 "내원사 삼층석탑(內院寺 三層石塔)"이 자리하고 있어,
높이 4.8m의 크기이며,
석탑의 북쪽에는 법당터가 있었고,
주변에는 석등의 부재(部材)와 석탑의 상륜부(相輪部) 석재, 여러 석조물의 조각 등이 놓여 있어,
이곳의 사찰은 남향한 1탑 가람 배치를 하였던 양식으로 보여지며,
이 석탑은 9세기 경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래층 받침돌의 면석에 2개의 가운데 기둥을 새긴 것은,
지리산 주변 지역에 있는 석탑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삼층석탑 옆에는 사찰의 중심건물로 금당격인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어,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익공계 팔작지붕인데,
전각의 규모에 비해 유독 지붕이 커보이며,
1960년대 지었다고 하니 원경(圓鏡)스님이 중창 하면서 세운듯 합니다.
대웅전에는 중앙에 불단을 조성하고,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상이 협시하고 있는 삼존불을 모셨으며,
삼존불은 법의 주름이 두껍고 전체적으로 강한 느낌을 주는데,
봉안된 탱화는 법당을 중건한 시기와 같으며 삼존불 뒤로 후불탱이 있습니다.
대웅전 윗쪽 서편에는 아담한 규모의 "비로전"이 자리하고 있어,
비로전에는 국보 제233호로 지정된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南巖寺址 石造毘盧遮那佛坐像)"이 모셔져 있어,
서기 766년(혜공왕 2)에 제작된 전체 높이 117㎝, 불상 높이 108㎝의 불상으로,
원래 이 비로자나불상은 지리산 자락에 속하는 산청 지역의 한 산봉우리쯤에 위치한 거대한 바위 위 절터에 있었는데,
이곳에 흩어져 있던 석조대좌와 광배 조각도 이 불상과 한 조를 이루는 것으로 확인되어,
지금은 이곳 내원사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머리의 육계(肉髻)는 높고 큼직한 편이나 약간 파손 되었고,
머리칼은 소발(素髮)이며 머리 윤곽은 둥글고 완만한 편이며,
얼굴은 둥글고 부피감이 풍부하여 8세기 신라 불상의 원만상(圓滿像)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단아한 눈, 단정한 코, 작고 예쁜 입, 팽창된 뺨의 부피감이 이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이러한 얼굴의 원만상은 8세기 불상 가운데에도 가장 우수한 편에 속하기 때문에,
이 불상은 당대의 뛰어난 명장(名匠)의 손에 의하여 제작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불상의 상체는 건장하고 당당한 모습이며,
자연스러운 가슴, 허리의 굴곡, 어깨나 팔의 부피감 등에서 사실미를 잘 표현 하였고,
오른손은 약간 들어 가슴 부근에 대어 주먹을 쥐었으며,
왼손은 무릎과 거의 수평이 되도록 내려 주먹을 쥐었는데,
두지(頭指: 집게손가락)만 곧게 세워 오른손 주먹 속으로 넣었습니다.
불의(佛衣)는 대의(大衣)를 통견으로 입어 전신을 감싸고 있는데 두께가 얇아 육체의 굴곡을 드러나게 하였으며,
옷주름 역시 가는 돋을띠 주름을 촘촘하고 유려하게 표현하여 8세기 불상 옷주름의 한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결가부좌한 하체의 너비는 비교적 넓은 편이나,
높이는 낮아서 높은 대좌 위에 앉아야 시각상 안정감을 줄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상대·중대·하대로 이루어 졌는데,
8각의 하대에는 아래를 향한 연꽃무늬를 새겼고,
중대는 8각의 각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겼으며, 상대에는 2겹의 연꽃무늬를 새겼습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에는 연꽃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비바람에 의한 마멸 때문에 세부표현은 명확하지 않지만 당당하고 세련된 모습의 석불상(石佛像) 입니다.
대웅전의 동편에는 3칸의 아담한 전각도 볼수있어,
성격이 비슷한 칠성각, 천왕각, 산신각이 한지붕에 3개의 전각을 모아 두었는데,
가운데 있는 "천왕각(天王閣)"은 일반적으로 사찰의 입구에 볼수있는 전각으로,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모시는게 일반적인데 경내에 들어와 있어 특이하고,
산신각(山神閣)과 칠성각(七星閣)은 다른나라의 사찰에서는 찾을수 없는,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한 경우이기도 합니다.
여느 이름난 사찰과는 달리,
산문인 일주문과 사천왕문도 없으며,
절이라기 보다 어느 양반집 후원같이 정갈하고,
조용하며 그윽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사찰로,
경남 산청의 지리산 자락의 사찰인 "덕산사(德山寺)" 입니다.
첫댓글 덕산사에 대한 좋은 자료에 감사드립니다.
국보 제233호로 지정된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南巖寺址 石造毘盧遮那佛坐像)
귀중한 보물에 대해서도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