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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자와에서 야마가타에 가면서 NHK 대하드라마 “고우~공주들의 전국” 을 회상!
2022년 11월 4일 야마가타현의 최남단으로 우에스기씨 가 번주로 다스린 요네자와번 이었던 요네지와시
(米沢市) 의 호텔에서 체크 아웃을 하고는...... 배낭을 메고 5분을 걸어서 요네자와 역 에 도착합니다.
기차역 기계 에서 420엔에 기차표를 끊어 09시 39분 신칸센 기차에 오르니 기차는 북쪽으로 너른 들판을
달려서 10시 30분에 야마가타(山形)역 에 도착하는데, 어제 우리가 센고쿠시대의 중심 요네자와를
열심히 보았던지라 2011년에 제작 및 방영한 NHK 의 대하드라마 “고우~공주들의 전국” 이 떠오릅니다.
NHK 의 대하드라마 시리즈의 50번째 작품으로 에도 막부의 제2대 정이대장군 도쿠가와 히데타다
의 둘째 부인 고우/스겐인 (江/崇源院) 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이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1573년 부터 1626년 까지이니, 공간적 배경은 센고쿠 시대 후기 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일본입니다.
고우 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교토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 북쪽 오미의 성주 아자이 나가마사 와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 사이의 3녀 로 솔직하고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주특기지만, 초반 모습
은 오지랖 넓게 여기저기 참견하다가 2번째 남편인 히데카츠와 혼인하고 또 사별한 이후로는 얌전해 집니다.
훗날 도쿠가와 2대 쇼군의 아내 가 되는 고우 는 역사상으로도 그렇고 극 중에서 3번 결혼한 것으로 나오니
우리나라 같으면 총각인 왕세자가 2번 결혼해 아이까지 있는 여인을 세자빈 으로 맞은 것인데, 이는
이에야스가 고우의 외삼촌으로 일본 통일의 문을 열었던 오다 노부나가의 후광 을 업기 위함으로 봅니다?
고우의 첫 번째 남편은 사촌오빠 사지 카즈나리 이고 2번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카(누나의 차남) 인
도요토미 히데카츠 인데 임진왜란때 거제도에서 병사했으며, 3번째는 도쿠가와 막부 2대 쇼군 도쿠
가와 히데타다 로, 사지 카즈나리는 어린시절 친구와도 같은 동경의 첫사랑이었고, 히데카츠 와의
사이는 잊을수 없는 첫사랑과 같은 느낌이라면 마지막 남편인 히데타다와는 부부 처럼 사는 느낌 입니다.
극 초반부터 후반까지, 오다 노부나가의 조카 라는 신분을 3자매 중 가장 잘 활용하는데, 역사적인 중요한
장면에 다 나오니, 오다 노부나가의 조카(!) 라는 이유로 내쫓기지도 않고 할 말 다 하는데.... 그도
그럴것이, 센코쿠 시대를 통일 한 인물이었고,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가장 영웅 으로 칭송받는
데다가, 오다 가문이 번성할 때는 일본 전체의 재산이 다 오다 가문 것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고우를 포함한 3자매는 프라이드 가 높은데, 나쁘게 말하면 집안 믿고 까부는 재벌 3세 의 느낌이니 특히,
극 초반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 한 단계, 한 단계 신분이 올라갈 때마다 "천한 백정놈 원숭이가~" 라며
비웃는 것에 실소를 금할 수 없으니... 히데요시는 무소불위의 독재자이지만 저 장면만큼은 불쌍해 보입니다.
실제 오에요노카타의 실록 속 기록에도 나오지만 오에요(고우) 는 오다 노부나가의 조카
라는 것에 자존심 이 엄청 강했고, 일본을 최종적으로 통일해 도쿠가와 막부를 세워
사실상 왕이 된 (媤家)인 도쿠가와 가문 을 우습게 보고 남편을 꽉 잡고 살았다고 합니다?
하츠(죠코인) 는 고우의 언니로, 아자이 나가마사와 오이치 사이의 차녀 인데, 좋게 말하면
천진난만하고 귀여우며 3자매 중 가장 계략을 쓸 줄 모르는 순진함이 매력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여동생은 심한 오지라퍼여서 눈꼴 사납고, 둘째 하츠는 너무 자기밖에
모르는 에고이스트 같은 느낌인데, 그래도 부모님 생각 하면서 입바른 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하츠의 진가는 언니는 도요토미 가 에, 여동생은 도쿠가와 가 에 시집가서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악화 될 때, 언니와 여동생
사이를 오가면서 관계 중재를 위해 노력 하고 조카들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하데요시가 죽은후 1600년 교토 동쪽 세키가하라 전투 때 남편인 교고쿠 다카츠구가 도쿠가와
편에 서자.... 서군의 공격 으로 자신의 성이 위험해 처하니, 일반적인 가정적인 여인네
와는 달리 남장을 하고 검을 들고 남편이 없는 성을 지켰다는 것이 참으로 여장부 답기도 합니다.
3자매 중 가장 행복한 결혼생활 및 평범한 행복 을 누리는데 다만 남편과의 금슬은 좋았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어, 고우와 히데타다 사이 4녀 하츠를 양녀 로 들였으며, 그 양녀는 이후 교고쿠 다카츠구와 그의 측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과 결혼했지만, 도쿠가문 출신인 딸 은 남편의 외도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합게 됩니다.
차차(요도도노) 는 고우와 하츠의 언니이자 아자이가의 장녀로 어머니의 뒤를 이은 절세미녀
인데, 어머니 오이치 역을 했던 스즈키 호나미는 1966년생이고, 딸 역할인 미야자와
리에 는 1973년생으로..... 모녀 지간을 맡은 두 배우의 나이 차이는 불과 9년 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배우 미야자와 리에의 연기 는 일품이며, 거기에다가 미야자와의 미모가 한 미모 하는지라....
차차가 아자이가 장녀에서 부모를 잃고 원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 로 들어가 후계자 를 낳고,
자신의 원수 가문인 도요토미 일가를 지키기 위한 야망의 화신 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여담입니다만 히데요시는 하급 무사의 자식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문에 들어가 짚신 담당에서
출발했으니 겨울 아침에 주인이 나올 무렵 짚신을 가슴에 품고 데워서 신도록 했으며,
다른 신하들은 10만원을 주면 8만원짜리 물건을 사다가 납품 했지만 히데요시는
자기 돈을 더 보태어 13만원 짜리를 사다가 바치니..... 오다 노부나가에게 신임(!) 을 얻습니다.
이후 점차 출세하면서 노부나가가 적의 견고한 성을 공격하면서 함락이 쉽지 않으니 그 앞에 우리편 성을 쌓게
되자 신하들은 4개월이 걸린다고 하자 그는 한달 안에 쌓겠다고 호언장담을 해서 임무를 맡은후 상인에게
큰 빚을 내어 돈 을 쌓아놓고는 바위와 철에 목재등 자재를 가져오면 설사 적군이라도 바로 돈을 지불 했습니다.
인부들에게 구간을 정해 일 을 시키면서 매일 일당을 바로 현금 으로 지불했으며 정한 시간 이내에 완성하면
검사해 합격 판정을 내리고 보너스를 지불 하니 순식간에 성을 쌓은지라, 오다 노부나가에게서 성 신축
경비에 하사금 까지 받아 빚도 갚고 백성과 군사들의 인망 도 얻으며 더욱 주군 노부자가의 신망을 얻습니다.
그러고는 선임 가신들의 시기를 피하기 위해 머리를 굽혀 이름자 하나씩을 빌려달라고 부탁하니 니와
나가히데 丹羽長秀 에게서 “하(羽)” 를, 사바타 가쓰이에 柴田勝家 에게서 “시바(柴)” 를 빌려서
하시바 히데요시 (羽柴秀吉) 로 개명하는데.... 원래 이름은 '기노시타 도키치로' (木下藤吉郞)
였으며, 세 번째는 후지와라 히데요시 藤原秀吉, 마지막 이름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입니다.
이때 주군의 딸 오이치를 흠모 하지만 당시 모든 결혼은 다 정략결혼 이니 오다 노부나가는 여동생을 비와호수
북쪽 영주 아사이 나가마사에게 출가 시키니 저 3명의 딸을 낳앗는데, 오다는 에치젠(후쿠이현) 의 영주
아사쿠라씨를 치려 출진했으니 아사이씨는 선대 부터 동맹인 아사쿠라씨의 원조 요청을 거절하지는 못합니다.
매제 아사이씨의 배반 으로 위기에 빠진 오다 노부나가는 구사일생으로 탈출하는데 이때 히데요시는 아군
후미에서 적군의 매서운 추격 을 저지하는 신가리 임무를 자원해 큰 전공을 세우고 비로소
나가하마성 성주 로 승진했으며 그후 노부나가는 동맹인 도쿠가와씨와 함께 아사이씨의 성을 포위합니다.
성이 함락되는 순간에 히데요시 는 자기 목숨 다위는 개의치 않고 단신으로 적군의 성에 들어 가서는
아사이씨를 설득하니 아사이는 부인과 세 딸 은 내어주고 자신은 불을 지른후 할복 하는데.... 그후
히데요시는 오이치와 결혼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제1가신인 시바타 가쓰이에에게 양보 를 합니다.
훗날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에게 암살된후 그 자리를 두고 시바타 가쓰이에와 싸우면서 후쿠이
성을 공격하게 되자 이번에는 부하인 마에다 도시이에 를 적의 성에 들여보내 시바타
를 설득하니...... 부인 오이치는 딸 셋만 내어주고 성에 불을 지른후 남편과 함께 자결 하니
히데요시는 오이치 대신에 첫째 딸을 후실로 들이니.... 요도기미로 후계자 히데요리 를 낳습니다.
제1화부터 제15화까지는 키노시타 토키치로 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거듭나는 과정을 아자이
세자매의 시선 에서 표현하였고, 제16화부터 제31화까지는 히데요시가 간파쿠 자리에
올라서 죽기까지의 정치 진행 과정을 아자이 세자매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었으며
제46화 까지는 히데요시 사후 혼란 상황에서 아자이 세자매가 헤쳐 나가는 이야기 입니다.
일본에서의 이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니 일본 사극의 고질적 문제점 중 하나인
주인공이 모든 역사적 사건들에 간섭 한다는 것에 요네자와번의 이야기 인
<드라마 천지인> 에 이은 최악의 경우 라고 꼽히는데.... 악역 보다도 문제가 더 많은 주인공?
무엇보다 드라마 중 ~ 후반기에 해당하는 키요스 회의 편만 봐도 그런 것이... 본래 키요스 회의 는
오다 노부나가 사후 그 후계 자리를 놓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바타 카츠이에 등이
참석한 역사적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고우가 참석하여 간섭 하는 등 사실과 다른 부분입니다.
연기에 관한 면은 주인공 고우를 맡은 우에노 쥬리 가 초반부에는 9~10살쯤의 고우를 연기하느라 어린애
같은 말투나 행동 을 하는데 이 부분이 어색하다는 평이며, 오이치의 대사 중 여자들의 전쟁
이라는 말이 나오듯, 센고쿠 시대 무가(武家)의 여자들과 인생 에 대한 내용이 매우 잘 드러나는 편입니다.
일본 역사에서는 특이하게도 임진왜란은 거의 기술하지 않으며 설사 약간 언급해도 부정적 인데 유독
이 드라마는 임진왜란이 제대로 묘사된다는 점이니... 아마도 고우의 남편 하시바 히데카츠가
나오기 때문 인 듯 한데, 히데카츠는 임진왜란때 사령관 중 하나로 참전했다가 거제도에서
병사(病死) 한 점을 보면.... 전쟁의 끔찍한 참화와 임진왜란의 허무함 그 자체를 제대로 보여 줍니다.
조선 수군에 대한 공포, 무엇보다 거북선의 등장에 '이런 건 본 적이 없다' 라는 등 충격과 공포 에 빠진 왜군을
잘 묘사했으며, 막바지에 조·명 연합군의 울산성 전투 또한 이시다 미츠나리의 언급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려지는데, "지원군 덕분에 간신히 막았지만 아군(왜군)의 피해도 엄청 컸다" 고 언급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드라마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츠구 숙청 사건, 센 리큐 할복 명령 건과 더불어 도요토미 히데요시
의 광기와 어리석음 을 잘 표현함과 동시에 고우의 남편인 히데카츠의 독백 을 통하여,
전쟁이 얼마나 허무하고 암담한 것인지 잘 묘사한 작품이니 반전(反戰) 영화 를 보는 듯 합니다.
다만 히데카츠에 대한 미화 가 심하니, 식량을 빼앗긴 조선 백성들이 왜군에게 항의(!)하고, 왜병이 칼
을 꺼내 협박하자 히데카츠가 '그만하라. 이곳 백성들에게 난폭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 라며
말리다가 부하의 실수로 칼에 베여서 부상 을 입고 이것이 악화되어서 병사한 것 으로 묘사
하며 병상에서도 조선인 아이들과 바람개비를 돌리며 놀면서 인생 무상 을 느끼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래도 만화 일본사에서 전쟁 초반에 조선백성들이 왜군을 해방군으로 여겼다는 엄청난 역사 왜곡을
저지른 것에 비하면 조선백성들이 왜군을 해방군으로 여기는 묘사는 전혀없고 오히려 멋대로
농작물 을 가져간 왜군들을 도둑놈이라고 비난하며 반항 하는 장면도 있는등 제대로 묘사 하였습니다.
왜군 중에서 조선에 항복한 자는 항왜(降倭) 라 하고 일본군에 협력한 자는 순왜(順倭) 라 하는데 순왜에는
첫번째 일본군의 '길잡이 역할' 즉, 일본군이 한양으로 진격할 때 도성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 경우를 말히며 두번째로 일본군에게 조선의 상황 등 정보 제공을 한 경우이고 3번째로 일본군에
소속되어 참전한 경우니, 대표적인 예로 임해군과 순화군을 함경도 회령부에서 포박하여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긴 국경인 이 있으며 울산 서생포 해안에도 저들이 집단 을 이루어 거주했다고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오다 노부나가, 이시다 미츠나리등 남겨진 초상화와 연기한 배우들의 외모 가 정말
많이 닮았으니 배우 캐스팅에 노력한 것이 보이는데..... 문득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로
동아일보 객원 논설위원인 박상준씨가 쓴 글 “다양한 의견의 공존- 히데요시” 라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일본 센고쿠(戰國 전국) 시대의 장수 나오에 카네츠구 (直江兼続) 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히데요시의 어린 아들을 받든 이시다 미쓰나리가 서로
싸우던 아려운 시기에.... 가문의 반대의견까지 수렴 하면서 주군이었던 우에스기
카게카츠를 보좌해 결국 요네자와에 우에스기 가문을 영주(번주)로 존속 시키는데 성공했다.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의 사후 시바타 가쓰이에와 일본 열도의 패권
을 다투었다. 임진왜란 9년 전의 전투에서 도요토미에게 패한 시바타는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오다의 누이 이기도 한 시바타의 아내는 이전 결혼에서 얻은 세 딸을 남기고 남편을 따라 자결 했다.
전국시대 미녀로 유명했던 어머니를 닮아 세 딸 모두 외모가 아름다웠다고 한다. 첫째인 자차는 도요토미의
측실이 되어 아들, 후계자가 되는 히데요리 를 낳고 오사카성의 실권을 장악 했다. 둘째인 하쓰는 지방
영주의 정실이 되었고, 셋째인 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과 결혼해 에도성(도쿄) 의 안주인 이 되었다.
천하의 패권을 두고 도요토미와 도쿠가와 사이에 전쟁 이 일어났다. 전쟁의 승패에 따라 언니
와 동생 중 하나를 잃어야 하는 둘째 하쓰는 두 가문의 공존을 위한 협상 에 진력을
다했지만 전쟁을 멈출 수 없었다. 둘째의 애타는 노력도 헛되이, 오사카성이 함락
되었을때 둘째가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언니의 며느리이자 동생의 딸이었던 센히메 뿐이었다.
둘째가 오사카성과 에도성 사이에서 중립 을 지키면서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힘없는
여성 이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사별한 후 자녀가 없던 그에게는 움직일 수 있는 군대가 없었다.
무사들의 존경을 받는 오다 노부나가의 조카이면서 도쿠가와 안주인의 언니였지만 그가 만일
첫째 처럼 어느 성의 실권 을 쥐고 있었거나 남자 였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천하를 다투는 싸움에서 중립이나 중도란 있을 수 없었다. 주군의 뜻에 거슬리는 의견을
개진한 자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 처참한 종말을 맞이해야 했던 야만의 시대 였다. 지금 한국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새에 기차는 북쪽으로 한시간 가까이 달려서는 야마가타현의 현청
소재지 인 야마가타시 에 도착하는데.... 이제 호텔에 배낭 을 맡기고는 다시
센다이행 기차를 타고 야마데라(山寺) 역에 내려 릿샤쿠지 (立石寺) 절에 오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