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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2일(현지시각)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서 기자회견하는 거장 프로듀서 퀸시 존스. 올해 이 축제에서는 그에 대한 헌정공연이 열렸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제공
제네바 역을 떠난 기차는 줄곧 레만 호수를 오른쪽에 끼고 달렸다. 한 시간쯤 지나자 몽트뢰(Montreux) 역에 닿았다. 몽트뢰. 익숙한 타지(他地)다. 딥 퍼플 명곡 '스모크 온 더 워터(Smoke On The Water)'가 여기서 탄생했고(1971년 몽트뢰 카지노 화재를 보며 쓴 곡이다), 프레디 머큐리의 유작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이 이곳에서 녹음됐다. 빌 에반스를 비롯한 몽트뢰 라이브 명반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 모든 것이 올해 42회째를 맞은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덕분이다. 페스티벌에 왔던 뮤지션들이 인구 2만3000명의 이 작은
스위스 호반도시를 잊지 못해 이곳에서 곡을 쓰고 녹음을 했으며 집을 사서 살았다.
호숫가를 따라난 길은 스윙 리듬에 맞춰 들썩였다. 무대를 얻지 못한 무명 음악가들이 길거리에서 악기를 퉁겼고, 사람들은 그 박자에 맞춰 걸었다. 지난 4일부터 19일까지 2주간 열리는 이 페스티벌에는 전 세계 음악 팬 23만명이 찾아온다. 올해 초청받은 뮤지션만 350팀. 메인 무대인 스트라빈스키 오디토리움과 그보다 작은 마일스 데이비스 홀에서는 유료 공연이, 그 밖의 야외무대와 클럽들에선 무료 공연이 열린다.
도착 첫날인 9일부터 고민이다. 폴 사이먼의 공연과 버디 가이 공연 시간이 거의 겹쳤다. 사람들은 한쪽 공연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쪽으로 달려갔다.
그래미상을 5번이나 받은 71세의 기타리스트 버디 가이는 여전히 정력적이었다. 폭발물 다루듯 기타 현을 조심스레 퉁기다가 어느새 폭풍우처럼 몰아치곤 했다. 지지탑(ZZ Top)의 기타리스트 빌리 기븐스가 중간에 깜짝 합류해 "해 뜰 때까지 공연할 테니 가지 말라"고 외치자, 관객들은 첫 외박을 허락받은 아이처럼 소리치며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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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9일 밤(현지시각)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선 기타의 거장 버디 가이(오른쪽)와 블루스 밴드 ZZ탑의 리더 빌리 기븐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제공
올해 몽트뢰는 '20세기 최고의 음악 프로듀서'라 불리는 퀸시 존스(75) 헌정무대를 마련했다.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부터 마이클 잭슨까지 수많은 스타들의 음반을 만든 뮤지션이다. 14일 밤 열린 이 공연에는 투츠 틸레망스(하모니카), 허비 행콕(피아노), 알 자로(보컬), 나나 무스쿠리(보컬), 리 리트너(기타), 조 샘플(피아노) 등 퀸시 존스가 그간 음반작업을 함께했던 뮤지션들이 총출동했다.
'러브 허츠(Love Hurts)' '드림 온(Dream On)' 같은 히트곡으로 이름난 영국 밴드 나자레스(Nazareth)가 몽트뢰에서 데뷔 40주년 기념 무대를 열었다. 피트 애그뉴(베이스)와 함께 남은 원년 멤버 댄 매카퍼티(보컬)는 몸이 많이 둔해진 듯했지만 음색은 예전처럼 카랑카랑했다.
매년 7월 초 열리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은 일찌감치 재즈뿐 아니라 모든 장르에 무대를 열었다. 올해는 브라질 음악이 많이 소개됐다. 브라질 관객들은 음악축제에 노란색 축구 유니폼을 입고 와서, 삼바 리듬만 나오면 엉덩이와 가슴을 흔들어댔다. 11일 밤 '브라질리언 나이트'에 이어 12일 밤엔 남미 음악의 거장이자 현 브라질 문화부 장관인 질베르투 질(66)이 무대에 올랐다. 수천 관객이 한 덩어리가 돼 넋 나간 듯 삼바 춤을 추는 모습은 자체로 장관이었다. 이 밖에도 퓨전 색소포니스트 데이비드 샌본(63)과 관악 펑크(funk) 밴드 타워 오브 파워(Tower of Power)가 협연한 11일 공연이 관객들을 펑키한 리듬 속에 빠뜨렸다.
이달 말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참가할 밴드 트래비스(Travis)와 더 가십(The Gossip)도 미리 볼 수 있었다. 트래비스의 라이브는 생각했던 것보다 탄탄하지 못했다. 그러나 펑크밴드 더 가십의 무대가 이를 상쇄하고도 남았다. 150㎏은 족히 넘을 거구의 여성 보컬 베스 디토(27)가 전신을 격렬하게 흔드는 춤은 '체지방 댄스'라고 할 만큼 과감했다. 록 음악으로 초혼(招魂)하듯 노래하는 그녀 뒤를 따라 2000여 관객들은 작두라도 탈 것처럼 열광했다.
퀸시 존스는 13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몽트뢰는 지구의 모든 음악이 만나 뒤섞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 곳입니다. 나는 영원히 은퇴하지 않고 이곳에 찾아와 새로운 음악을 들을 것입니다."
/ 조선일보
몽트뢰(스위스)=한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