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마와 미역국 >
옥로 위성유
침침한 주방 실빛 어둠속으로 따따딱 말발굽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한 여인이 내리치던 칼이 도마에 닿을 때마다 들리는 짠한 울음소리를 세월은 기억하고 있었다.
단 하루, 오늘 여인은 칼과의 전쟁을 멈췄다.
가족이란 미명하에 반납했던 지극히 외롭고 쓸쓸한 여자의 허물어진 날들을 보상받는 날,
오늘은 아내의 생일이다. 사내는 고향 바닷가에서 갓 건너 온 잘 익은 미역으로 국을 끓일 채비를 하였다. 쭈글쭈글한 미역 한 묶음 잘게 토막내어 물에 넣었다. 세월이 불태워 낡아 진 냄비 속을, 십년 부부살이가 남긴 참기름 몇방울이 미역 속에 파묻혀 가며 어울려 간다. 잠시 후 사랑 싸움이라도 하듯 티격태격 낡은 냄비 안은 토톡토톡 술렁거렸고 구수한 사랑 냄새가 번져와 사내의 코에 닿았다. 마침내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아내가 토해 낸 짜디 짠 천일염 한 숟가락으로 간을 보면, 어느새 사내표 미역국 탄생은 종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문득, 도마 위의 깊게 패인 상처를 사내는 보았다. 사내는 혼잣말로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를 중얼거려가며 도마에 난 상처를 손글씨를 써가며 빠르게 메워갔다.
마른 나무 도마 위엔 이렇게 써 있었다.
다시 태어나도, 오직 나는 당신 뿐이오, 라고,,,
사내 어머니가 모진 시집살이 혈서 대신
죄없는 도마를 두드리며 펜글씨를 썼던 것 처럼, 사내의 여자도 말 못할 사연을 도마 위에 목판화처럼 남겼던 것이었을까? 오늘은 기쁘고도 미안한 하루
아직 철없는 냄비는 뜸을 들이는 듯 달달달 노래를 하고 있다.
멋지고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감탄합니다.
행복합니다.
부부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