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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오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 미역널바위. 아래는 50미터의 깎아지른 절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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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 남면 금오도는 '거무섬'이라고 부르던 섬으로 삼림이 울창하여 검게 보였기 때문에 불리게 된 것을 음이 비슷한 한자로 표기하면서 금오도가 되었다. 금오도는 우리나라에서 21번째로 큰 섬이며, 여수시에서 남동쪽으로 떨어진 돌산도·화태도·월호도·대두라도·소두라도·나발도·횡간도 등과 함께 금오열도를 이루는 중심에 있다.
금오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고추·마늘·고구마 등이며 자급자족이 가능한 섬이다. 연안에서는 멸치·삼치·장어 등이 잡히며 미역·김·등의 양식업이 활발하다. 마을은 낮은 평지와 해안 일대에 산재해 있으며, 해안과 능선을 따라 도로가 나있고, 동서 방향으로 포장되어 있다.
1981년 돌산도·안도와 함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금오도 지구에 속하게 되었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 화산암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최고봉은 서쪽에 솟아 있는 매봉산(382m)이다. 기후는 대체로 따뜻하며, 비가 많은 해양성 기후를 나타내고 동백나무가 무성하여 남국적 풍경을 이룬다. 토양은 신생대 제4기의 고온 다습한 기후 환경에서 만들어진 적색토가 널리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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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지역사회연구소의 남면 금오도 비렁길 답사안내단. 여수지역사회연구소의 노력으로 환경과 주민친화적인 생태탐방길이 탄생했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탐방단 단장인 김옥균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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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역널 바위 중앙에 있는 한 고인의 묘. 명당자리라서 옮기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한 관광객은 "요즘 명당은 황당입니다"고 일침을 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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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인데,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남면 유송리 여천 마을 동쪽 바닷가에 있는 금오도 조개더미 유적이다. 금오도는 조선시대부터 기록에 나타나고 있는데, 주로 바닷길과 왜국의 침입, 소나무를 기르던 봉산(封山), 금오도에 닿은 난민, 금오도 개발 등에 관한 내용이다.
조선시대 금오도는 궁궐을 짓거나 보수할 때, 임금의 관을 짜거나 판옥선 등의 전선(戰船)을 만들 재료인 소나무(황장목)를 기르고 가꾸던 황장봉산(黃腸封山)이었다. 때문에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다가 1885(고종 22)부터 본격적으로 금오도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카프리섬을 닮은 아름다운 비렁길
최근(2010.05~10) 금오도에 비렁길이 열렸다. 여수시가 6억 원(국비 3억 원, 시비 3억 원)의 예산을 들여 함구미에서 해안선을 따라 직포까지 설치한 약9㎞의 비렁길은 여유 있는 걸음으로 약 4시간 정도 소요된다. 남해안에서 찾아보기 힘든 해안단구의 벼랑을 따라 조성되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벼랑길>의 여수 탯말인 <비렁길>로 부른다.
울릉도의 절경인 '내수전'길을 꼭 닮았다고나 할까. 멀리 태평양까지 이어지는 파란 바닷물이 끝없이 펼쳐져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바닷물이 눈부셔 눈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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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들. 억새풀 사이로 난 비렁길의 한 구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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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등마을의 한 집 모습. 지붕위에 둘러친 동아줄들이 바람이 얼마나 센가를 가늠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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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머리는 50m내외의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그 벼랑에 길이 만들어졌으니 아름다움은 상상을 불허한다. 마을 어르신들은 그 절벽위에서 배를 깔고 엎어져 상어를 낚았다고 회상한다. 순천에서 왔다는 한 아주머니가 비렁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미역널바위' 의자에 걸터 앉아 하는 말이다.
야! 너무 좋다. 안가고 싶다! 또 오고 싶다! 꼭 이태리 카프리섬 같네.
절벽을 돌아가면 절터가 나오는데 이 절터는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세운 송광사라는 절이다. 절터에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신선대, 굴등, 일종고지, 연도까지 이어지는 절벽들이 금오도가 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인가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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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어공주' 등 몇 편의 영화 배경이 되었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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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죽으면 바로 매장하지 않고 2~3년간 두었다가 육탈되었을 때 땅속에 매장하는 초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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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경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인어공주', '하늘과 바다' '혈의 누',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등의 영화 촬영지가 됐다. 촬영장소가 됐던 길 옆에 밭이 있는 두 부부(배세연 84세, 윤봉엽 81)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 사진을 찍겠다고 할머니한테 얘기하자 할머니가 옷매무새를 고친다. 할머니도 영락없는 여자라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할머니 뭐하세요?"
"응, 지금 채소로 쓰이는 '방풍'을 키우고 있어요. 요걸 여수시내 시장에 갔다 폴먼 돈이 생겨. 나는 여그서 나서 여그서 죽어야 헌디. 여그가 뭐 볼 것 있다고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는 줄 모르겄어. 토요일허고 일요일이먼 사람들이 많이와요"
"할머니 사진 좀 찍을게요."
"아이고, 늙은 할매를 뭣헐라고 찍어요."
절터에서 초포까지의 오솔길은 조선시대 임금만 허락한 '황장봉산''이었던 금오도의 원시림 속에서 다양한 식생을 공부할 수 있는 자연 학습장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비렁길을 따라 걷다 막걸리 한 잔 했다는 할아버지를 만나 할아버지의 얘기를 들었다 "나 금강산도 가봤는데 금강산 못지않게 아름다운 길이요. 하!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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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에 쓰일 재목으로 쓰였던 봉산의 소나무가 말라 죽었다. 아니! 누군가가 도끼로 밑둥을 찍어 2백년 이상된 소나무를 죽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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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 2월 인데 민들레가 고개를 내밀었다. 금오도의 날씨를 말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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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포마을은 금오도에 사람이 처음 들어와 살아서 첫개(初浦)라고 불리며 마을 입구에 불무골이 보인다. 불무골은 경복궁을 만들 때 금오도에서 나무를 베면서 필요한 연장을 만들던 풀무간(대장간)이 있었던 곳이다. 풀무간은 마을길을 넓히면서 길 아래로 들어가 버리고 풀무간에서 쓰던 조그만 옹달샘만 남아 있다.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면서 굴등으로 오른다. 굴등은 절벽위에 형성된 독특한 마을로 낮에 보는 경치도 절경이지만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별이 쏟아지는 모습에 절경이라고 한다. 금오도가 고향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김병호 이사장은 "엔디 윌리엄즈나 루이 암스트롱의 문리버(Moon Liver)를 연상하면 된다"고 한다. 굴등 마을은 현재 사람이 살지 않고 폐허가 된 몇 채의 가옥만이 옛 모습을 상상케 한다.
면소재지에서 3㎞ 정도 떨어져 있는 직포마을은 동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남쪽 끝에는 매봉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바닷가에는 아름다운 해식애가 발달해 있다. 바닷가를 따라 흐르는 등천에 노송 30여 그루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직포라는 명칭은 마을 동쪽 옥녀봉의 선녀인 옥녀가 주변 모하, 두포 마을에서 목화와 누에고치를 가져와 이곳에서 베를 짰다고 하여 베틀의 바디(보대)의 이름을 따 '보대'라고 부르다가 한자 이름인 '직포'로 바꿨다.
섬 어느 곳에서나 낚시대를 드리우면 다양한 어종을 잡을 수 있어 낚시꾼들의 천국이자 아름다운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을 한눈에 바라보며 영화 촬영지를 볼 수 있는 곳. 금오도가 여러분을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