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서민적 그리움의 작가, 박석호
정문규미술관장 정문규
해방직후 한국의 미술학교는 홍익대 미대와 서울대 미대의 두 대학이 양대 경쟁구조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서울대학교는 당시 장발 학장을 선두로 하였고, 홍익대학교는 윤효중, 김환기, 이봉상 등이 중심이 되어 한국의 당시 미술교육을 이끌고 있었다. 해방이 되었어도 일제시대 선전(일제 총독부가 주관한 조선미술전람회)에 길들여져 있던 보수주의 화단에 홍익대학교 미대의 탄생은 한국미술의 새로운 여명을 알리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기점이 되었다.
충북 옥천의 시골청년 박석호는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작정 상경하여 1949년에 창설된 홍익대학 미술학부 제1회 신입생으로 입학하였고, 한국전쟁을 겪은 후 1953년에 졸업하게 된다. 졸업과 동시에 학부시절부터 남달리 관심을 가져주시던 김환기, 윤효중선생님의 권유로 홍익대 조교로 근무하게 되었고, 스스로 ‘인간적 감화를 받았다’ 는 김환기선생과 막역한 관계를 시작하며 김환기선생이 한원(寒園)이라는 호를 직접 지어주기도 하였다. 윤효중, 김환기, 이봉상, 박석호 이분들이야 말로 진정 오늘날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있게 한 공로자들이라 하겠다.
1954년 홍익대학교에 입학한 나는 그당시 조교로 근무하던 박석호선생을 처음 만났고, 그 시절 내가 기억하는 그는 너무나 인간적인 따스함이 있었고 순수하고 해맑은 인간이었고 열정적인 예술가였다. 그의 나이는 나보다 15살이 많았지만 나뿐 아니라 모든 후배들에게 선배나 연장자로서가 아니라 격이 없는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하여 정확한 나이를 모르는 후배들은 모두 그저 몇 해 정도의 선배려니 생각하고 허물없게 지내기도 하였다.
그는 조교로 있을 때나 후에 교수로 있을 때나 한 결 같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똑같은 학구적인 자세로 돌아가서 수련하고 탐구하는 자세로 창작활동을 위한 기초연마에 힘썼고 이로 인하여 그의 작품에선 언제나 정직하고 신선한 기운이 지배하였고, 가식 없이 진정한 마음으로 온갖 사람들을 대하는 그의 솔직한 언어와 생활 태도들이 일생동안의 그의 작품세계에도 온통 담기게 된다.
1966년 홍익대 미술대의 일련의 내분(사건)으로 교수를 그만둔 뒤, 창작활동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면서 자연스럽게 구체적인 서민의 삶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작가가 체험한 서민의 생활모습과 치열한 삶의 체취를 생동감 있는 붓놀림과 어두운 색조로 형상화 하였다.
포구 72.7×100cm, 캔버스에 유채
부두 116.6×90.9cm, 종이에 유채
부두 90.9×65.4cm, 캔버스에 유채
북한산 32.5×45.5cm, 종이에 파스텔
出漁 준비 65.1×50cm, 캔버스에 유채
古船 53×41cm, 캔버스에 유채
灣 45.4×53cm, 캔버스에 유채
船艙 89.4×130.2cm, 캔버스에 유채
부두 54×74cm, 종이에 과슈
그는 서민의 생활을 보다 진솔하게 담아내기 위해 동해안과 남해안 일대를 순회여행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1970년대부터 끊임없이 그려진 소재는 항구나 어선 및 어부들의 삶의 현장에서 분투하는 모습들로 `어촌' `포구' `어부들' `해변' `입항' `부두' 등의 작품들을 쏟아내었다. 그의 바다의 모습은 낭만적이거나 풍요롭고 아름다운 풍경보다는 일꾼들의 살기위한 일터로서의 바다, 어항이었고, 그런 환경에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애써 일하는 분위기의 풍경을 연출하여 그림마다 한국의 서민적 분위기가 가득 스며있다.
그가 애용하는 언버(unber) 계통의 색채와 울트라마린, 플루시안(plusian) 블루의 화면은 그의 깊은 철학적 고뇌를 깔아 놓은 것 같아 보는 사람의 마음을 화면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가 선택하는 색채와 형태 그리고 붓의 텃치로 이루어 내는 재질감 모두가 가식 없고 솔직한 표현으로 승화되고 그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의식과 부합되어 독특한 세계를 이룬다. 화면의 분위기는 날씨는 음산하게 흐리고 폭풍이나 태풍이라도 밀려올 듯한 불안한 상황의 현실감이 충만하게 그려졌다.
서민층의 삶의 고난, 출항에 따른 날씨와 바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어시장의 생존을 위한 투쟁 등을 생생한 현장의 모습으로 담아 성실한 삶의 의미와 진실성을 말하고자 한 작가의 표현주의적 작업과 정신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엄정한 리얼리즘으로 평가되고 있다.
바다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 거리가 먼 고향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그의 그림의 소재는 배와 포구 등 바다를 소재로 한 것들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 까닭에 대해 그는 1979년 어느 여성 월간지의 기고를 통해 이렇게 썼다고 한다.
귀환 38.5×56.7cm, 종이에 과슈
포구 57×76cm, 종이에 과슈
포구 53.5×38cm, 종이에 과슈
어항에서 38×53cm, 종이에 과슈, 1990
바위섬 41×32cm, 종이에 과슈
於束草부두 37.5×38.5cm, 종이에 과슈
변산 32×41cm, 종이에 과슈
“내가 두메산골의 농촌 출신이라 어려서부터 바다를 동경한 탓인가!, 아니면 가장 젊음을 구가했어야 할 무렵에 피난지 부산에서 자갈치 시장에 맛을 들인 탓일까! 어떻든 바다와 섬마을과 나와는 끊을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그림이 어려울 때엔 고향처럼 포구와 어촌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러나 바닷가에 화실을 가지라는 권고를 받아들이고 싶은 뜻이 없다. 그렇게 되면 나는 그리움을 빼앗길 것 같다. 그리움을 빼앗긴 인간이란 희망 없이 사는 인간을 연상시킨다. 그리움이 있기에 그것을 만족시키는 씁쓸한 환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시대의 소위 잘 나가는 작가가 아니었던 참으로 고집쟁이 작가! 그는 국전에 출품한 적도 현대 미술의 시류에 따라 발맞추려 한 적도 없다. 그래서 시류에 영합함이 없이 사회적 명예와도 담을 쌓고 오직 자기사고와 자기 방식대로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개척하며 그냥 본인의 성품과 같이 진솔하고 치열하게 시대상을 조형화 하여왔다.
그러던 1992년 갑자기 쓰러져 1년 반 동안의 투병 끝에 1994년 임종을 맞이했다. 같은 해 위암에 걸려 입원해 있는 병원에 찾아오셔서 자기 자신이 암에 걸린 것도 모르고 몹시도 안타까워하며 나를 위로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
그런 그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6년 예술의전당이 개최한 재조명 작가전 첫 순서로 박석호전을 가진 것이 계기가 되었다. 재조명 작가전은 박석호라는 화가가 어느 누구의 화풍이나 계열에도 이름을 내지 않고 있으나 이미 한국 미술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게 되었다.
금년, 네 번째 한국미술의 거장전 시리즈의 작가로 박석호선생을 선정하고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하며 선생의 유작들을 살피러 도예가인 아들의 집과 작업실을 방문하게 되었고 특히 유족이 보관하고 있는 많은 미발표된 작품들을 접하게 되었다.
미발표작임에도 완성도나 작품성에서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보다 현장을 연상케 하는 직관적인 표현으로 그려진 훌륭한 작품들이 남겨져 있어 커다란 반가움과 함께 선생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스러움이 새삼 치밀어 올랐다.
그의 이러한 남김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과 감동을 전하며 더 많은 미술인과 애호가들에게 알리기 위해 선생의 미발표작을 위주로 하는 전시로 기획하게 되었다.
32×41cm, 종이에 과슈
뻘밭 36×51cm, 종이에 과슈
30×39cm, 종이에 과슈
57×76.5cm, 종이에 과슈
57×76cm, 종이에 과슈
49×35cm, 종이에 과슈
9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 안산 대부도의 정문규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미술의 거장전 시리즈 Ⅳ 박석호展’에선 서민들의 고된 삶의 애환이 담긴 한국적 정서가 짙게 배어 있는 그의 대표작품들과 함께 가족들이 고이 간직하고 있던 미발표된 작품들 중 80여점을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한다. 이는 한국미술계와 미술 애호가들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이번전시에는 아들인 박래헌 도자기 명장의 도예작품들이 아버지의 작품들과 함께 전시된다. 아무쪼록 가장 서민적이고 한국적인 박석호선생의 작품들이 다시한번 세상에 주목받고 사랑받기를 바란다.
38×56cm, 종이에 과슈
38×53cm, 종이에 과슈
56.5×76.5cm, 종이에 과슈
31×37cm, 종이에 과슈
29×39cm, 종이에 과슈
32×41cm, 종이에 과슈
32×41cm, 종이에 과슈
31×41.5cm, 종이에 과슈
30×42.5cm, 종이에 과슈
57×76cm, 종이에 과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