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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이사야-12 예루살렘의 운명(이사야 29장 1-3절)
봉독해 드릴 하나님 말씀은 이사야서 제 29장 1절에서 4절까지 봉독합니다.
[이사야 29장]
1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의 진 친 성읍이여 년부년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2 내가 필경 너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네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3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군대로 너를 에우며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
4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히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이사야서 29장, 30장까지는 몇 장 남지 않았는데, 바벨론 포로가기 전에 그들이 앗수르라는 나라의 지배를 받는 어려운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 시대를 가리켜 말씀합니다만, 어떻든 지난번에 우리가 이사야 예언자가 소명받을 때 소명받는 내용이 그 시대 사람들이 마음이 둔하게 되고, 눈이 감기게 되고, 귀가 멀어서 아무 은혜도 받지 못하게 된다 하는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 그런 운명의 날이 점점 다가오는 겁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한번 말씀드린 것 같은데,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두고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결국 패망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은혜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그런 예루살렘을 두고,
[이사야 29장]
1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하는데, 이 ‘아리엘’하는 말은 예루살렘의 별칭, 별명입니다.
이 말은 바벨론을 우리가 ‘갈대아’라고 하고 또 애굽을 ‘세삭’이라 한다든지 별명을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도 예루살렘도 아리엘이라고 있는데 뜻은 ‘강한 자’라는 뜻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사자’ 이런 의미가 있는데, 어찌해서 이런 별명이 나왔는지 잘 모릅니다.
여러 자료를 찾아봐도 이 아리엘이라고 예루살렘을 부른 다른 예가 많지 않고, 혹 예루살렘을 ‘다윗성’이라는 말도 하고, ‘시온’이라고도 하고 여러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만 슬프게 애가처럼 이렇게 부르는 겁니다.
왜냐하면,
.. 다윗의 진 친 성읍이여 년부년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2 내가 필경 너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네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그래서,
3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군대로 너를 에우며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
4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히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그러니까 예루살렘이 교만하거나 큰소리치거나 까불다가 하나님께서 그 앗수르 군대, 산헤립이겠죠? 앗수르 군대를 보내가지고 야금야금 성을 다, 주변의 작은 성 42개 성읍을 다 잡아삼키고 예루살렘만 달랑 남았을 때, 산헤립이 랍사게를 보내어서 에워싸는 장면을 볼겁니다.
36장에서 39장까지 그 사건이 나오는데, 결국은 뭘 하실려고 이렇게 하느냐 하면, 두세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이 하나님만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하는 것을 심어주려고 부단히 애를 씁니다.
절대로 애굽이 너희 보장이 되지 못하고 앗수르가 너희에게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너희를 위하는 척 하지만 결코 너희를 구원하지 못할 거야.
그들은 양다리 외교를 한다고 했죠?
어떤 파는 친앗수르파가 있고, 어떤 파는 친애굽파가 있어가지고 애굽이 칠 때는 앗수르에게 가서 도움을 청하고, 앗수르가 칠 때는 애굽에 가서 도움을 청하려고 그렇게 자기들이 머리가 좋은 걸로 그렇게 생각 했지만, 그러나 그 두 나라가 하나도 도움이 안된다는 거예요.
우리나라도 세계 열강의 틈바구니에 있어가지고 미국을 괄시할 수 없고, 중국도 괄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본이나 소련하고도 관계가 멀어질 수가 없고 그런 애매한 위치에 있는 거죠. 우리나라가..
그래서 그런 틈에 있기 때문에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홀로 설 수 없는 나라로 일부러 약하게 만들어 놨어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놓여지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거할 수밖에 없도록..
그래서 우리가 뭐든지 다 강하면 좋은 것 같지만, 우리가 너무 강하거나 너무 잘나거나 해서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가 없다 할 정도로 강하거나 잘나면 그것은 불행이 되는 수가 있어요.
차라리 우리가 부족하거나 약하거나 해가지고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해가지고 복을 받는 수가 있지만, 너무 잘나가고 이렇게 하면 위험한 수가 있는 거죠.
그런 것은 우리 인생에도 그런게 있죠?
여러분 우리 사람을 볼 때 여자들은 조금은 약하게 만들었어요.
여러 가지로 볼 때 부피도 좀 작고, 키도 좀 작고, 힘도 좀 약하고..
작은 것 때문에 남편의 사랑을 받기도 하고 또 동정도 받기도 하고 귀여움을 얻기도 합니다.
만약에 여자가 남자와 똑같다든지 힘이 남자와 여자가 똑같다면 대단하겠죠? 싸움이 나가지고..
그래서 조금은 약한게 사랑받는 비결이예요.
똑같아서 균형을 이루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남자 여자가 평등하여 뭐든지 똑같으면 여자가 좋을 것이라고 착각을 하는데, 그것은 아주 무식한 소리예요.
여자는 조금 작고.. 생긴것도 그렇잖아요.
조금 예쁘고, 많이 예쁜것이 아니고. 조금 예쁘고 조금 작고 조금 약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불균형 안에서 사랑을 받게 해 놓은 것이지..
똑 같아 가지고 맞서가지고 이겨서 사랑받게 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실 때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었답니다. 원래..
지금은 많이 못하지만.. 지금 형편없이 못하게 되어버렸죠.
처음에 아담을 지으실 때는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었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약한 것이, 자기 신이 시원찮아서 약하다 이런 착각을 하니까 나중에 이런 것을 깨달았던 사람이 바울이죠?
사도 바울이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한다..
아멘 안하는 구만..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하다’는데 왜 그러냐 하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고자 한다는 겁니다.
내가 잘나고 똑똑하고 부족한게 없고 하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 필요가 없는 거죠.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홀로 두지 않고 항상 자기곁에서 그래서 병이 있는 것도 나중에 자랑스럽죠.
내가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머문다는 겁니다.
그 정도 차원까지 올라갈려면 한참 멀었죠.
하여튼 바울이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한다 그런 얘기예요.
그래서 제가 전에는 그런 바울이 한 말이 참 처음에는 납득이 잘 안됐는데 우리가 건강하고 부족한게 조금도 없고 그리고 다 잘나고 다 만져보고 다 구비하고 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마 나이가 들어가면 조금 약해지면서 연세가 들어가면 더 느낄 겁니다. 여러분도..
사람 중에는 그다지 믿을 사람이 별로 없다...
믿을 분은 하나님 밖에 없는 거야 하고 세상 보는 눈은 좀 침침해지고 그리고 가까운 데는 보지 말고 먼데 보이죠.
그래서 더 먼데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거죠.
이 땅에서 너무 의존하지 말고 정말 끝내 하나님을 의지하게끔 우리가 약할 때..
나이가 들어가면 약해지잖아요.
아마 늙지도 안하고 병도 안들고 아프지도 않으면 천국 안갈려고 애를 쓸거야..
워낙 아프고 힘들고 귀찮고 거울봐도 아무 재미도 없고.. 그러니까 아이구 천국가자..
그렇게 될 것 같애요.
그래서 사람이 어떻든간에 약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못나고 약하고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그런 민족으로 택했는데 전혀 깨닫지 못하는 거예요.
항상 자기들이 잘 나야 되는 걸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교만하다가 하나님께서 한번 때리면 그 목소리가 낮아져서 티끌에서 나는 것처럼..
겸손하게 할려고 그래요.
겸손하게 할려고 하는 것은 계속 짓밟아 누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게 은혜를 받게 하려고..
겸손하게 만들어서 사랑을 받게 하고 은혜를 받게 한다는 거예요.
우리 집사람이 키가, 머리를 조금 올리고 신발을 조금 높이면 나와 키가 똑같잖아요.
전혀 귀여운 맛이 안 났어요.
그런데 한번은 정말 귀여운 소리를 하는데 내가 목수일을 하는데 와 가지고 돈을 50원 달라고 하는 거예요. 50원.
50원 뭐하게? 라면땅 사먹는다는 거야.
그 때 아마 우리 혜영이를 가졌었던가 봐요.
그것도 입덧인지 이상하게 라면땅이 먹고 싶다는 거예요.
목수일을 하고 있는 목공소에 와서 50원을 달라는 거예요. 저렇게 작은 소원이 저렇게 귀여울 수 있다는 생각. 제가 평생 잊지 못해요. 라면땅..
우리는 너무 거창하게 하는 이런 것은 그렇게 귀엽게 보이지 않는 거예요.
작은 그런 소원들 이런 것이 내가 충분히 들어줄 수 있잖아요. 나에게 다이아몬드 해내라고 하는 골치 아프잖아요. 내가..
그런 작은 소박한 그런 생각들.. 겸손한 생각들. 이런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귀엽게 보이는 거죠.
그래서 대사를 경영하기 보다도 젖을 실컷 먹은 아이가 엄마 품에서 만족함같은.. 그렇게 스스로 분수를 헤아리고 겸손한 그런 자세가 은혜받을 수 있는 자세예요.
광야로 끌고 나온것도 마찬가지죠.
해변길로 가서 블레셋 백성 때려죽이고 이렇게 가면 갈 수 있지만, 그렇게 안가고 광야로 가서 험한 길 걷게 한 것은 마침내 너를 맞추시고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를 안 후에 마침내 네게 복을 줄려고 하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그래서 우리 모두가 혹시 신앙생활 하다가 누구에게 멸시를 당하거나 혹은 좀 기분 나쁜 일을 당할 때 기뻐하라는 겁니다.
낮은 사람은 그의 높아질 것을 기대하고 우리가 낮아졌을 때 사랑을 받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도 그렇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세상에서 뭐 누구없이 하나님 아니라도 다 제가 잘났다고 이렇게 나서고 이러면 사랑을 못받죠.
차라리 상처받고 우리가 때로는..
그래서 바울이 영광도 엄청나게 받았지만 욕도 되게 먹었어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 천하에 퍼진 염병 그의 기념비적인 이름이죠.
그런 말을 들어가면서도 그의 얼굴이 때로는 천사이고 때로는 사람이더라 한거죠.
그래서 낮은 자는 자기의 높아짐을 자랑하라 그런 번역이 참 어렵습니다만 우리가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많이 낮추실 때가 있어요.
정말 땅바닥이 바짝 엎드리게 하는 그런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일어나겠나 싶은데 거기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을 체험하게 돼요.
4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히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5절을 잘 보세요.
5 ○그럴지라도 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 같겠고,
이스라엘을 일단 낮추신 다음에, 그 이스라엘을 대적한 이스라엘을 에워쌌던 이를 테면 앗수르의 산헤립은,
.. 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 같겠고 강포한 자의 무리는 불려가는 겨 같으리니 그 일이 경각간에 갑자기 이룰 것이라
그러니까 이런 것은 조금 더 읽어봐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는데, 히스기야가 조금 젊은 날에 잘 했어요. 실제로..
잘하니까 잘 되거든, 잘되니까 교만하게 된거야.
여기에서는 교만이 잘 안보이는데, 히스기야가 상당히 교만했어요.
사람들마다 잘 안되고 해야 겸손해지죠.
잘 되면 별 수 없이 교만하게 됩니다.
뭐든지 다 잘 되어봐요. 자기가 하나님께 복을 다 받은 것처럼 은혜받은 것처럼 해가지고..
간증이 때로는 어렵다는 거예요.
그렇게 히스기야가 너무 교만을 떨다가 혼쭐나고 그리고 히스기야의 신앙은 꼭 파도타기하는 것처럼 계속 그렇게 했는데,
세군데에서 볼 수 있어요. 히스기야를..
열왕기하서 18장 13절 이하에 볼 수 있고, 그 다음에 이사야서 36장부터 39장에서 볼 수 있겠고, 그 다음에 역대하서 32장에서 또 한번 히스기야를 볼 수 있는데..
이 세군데를 다 봐야 히스기야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 보이지, 한군데만 보고 이러니까 맨날 히스기야가 어려울 때 기도해서 응답받았다고 하면서 청와대에 가서 조찬기도하는 사람들은 맨날 그저 제목도 똑같고 본문도 똑같고 내용도 똑같아요
다행히 대통령이 성경을 모르니까 그렇게 설교해도 괜찮은데 알면 어이없는..
내가 그 ‘조찬기도’는 별로 ‘좋지 않은 기도’라고..
목회자들이 성경을 제대로 안 보는 것 같아. 내가볼 때..
조금 있다가 봅시다.
그래서 이 앗수르의 멸망이 경각간에 갑자기 이루어질 것이다.
6 만군의 여호와께서 벽력과 지진과 큰 소리와 회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
7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 곧 아리엘과 그 보장을 쳐서 곤고케 하는 모든 자는 꿈같이, 밤의 환상같이 되리니
8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같이 시온 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그와 같으리라
그러니까 다른 나라를 쳐서는 무슨 손에 남는게 있고 품에 안긴게 있지만, 예루살렘을 친 자들은 칠만큼 칠 때는 예루살렘을 겸손하게 할 목적밖에 없지..
그 다음에 쳤던 놈들은 더 공허하게 마치 꿈에 먹은 것처럼 깨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걸로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조금 있다가 그것을 볼 텐데, 산헤립이 올라와서 히스기야에게 금이나 은을 요구했는데 금을 줘서 받아먹고 안 가고 했잖아요.
금이 엄청나게 더 많이 있는 줄 알고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하나님을 훼방하고 모독하고 하다가 하룻밤 자고 나니까 18만 5천명이 송장이 된 거예요.
그 이야기를 미리 예언을 하고 있는데, 조금 있다가 그것이 이루어져요.
여기 29장부터 31장까지 말씀하신 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36장부터 39장까지 나중에 역사로 가져와서 증거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한부분 한절로 보면 아무 의미가 없고 29장부터 39장까지를 연이어서 보면, ‘아 이렇게 말씀하시더니 이렇게 되었구나’ 하고 확인하시게 될 겁니다.
그러면서 또,
9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선지자 선견자 거의 같은 말이지만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도무지 풀지 못하고 이해를 못하게 된다는 겁니다. 왜 그러냐? 눈이 감겼으니까..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보내가지고 성경을 봐도 알지 못하게 만들어버렸어요. 악한 사람들을..
11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12 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
13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것 조심해야 됩니다.
참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안 배우고 사람의 교훈을 따르는 것. 그것이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율법학자들 끊임없이 성경을 해석에 해석을 지나치게 해가지고 미쉬나 게메라 탈무드 토셉타 바라이다 할라카 계속 해석해가지고 나중에는 하나님 말씀은 온데간데 없고, 온갖 과잉 해석된 해석들만 난무하게 되었을 때 그것은 정말 하나님을..
그러니까 종교행사 하느라고 인격적 하나님을 만나는 만남이 아예 이루어지지 않는 그 시대를 놓고 말하는 겁니다.
나중에 사도바울이 로마에 처음 도착했을 때도 이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사야가 참 예언 한번 잘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 정말 그렇다 하면서..
어떤 사람에게는 성경 말씀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제대로 해도 진짜 못 듣는 사람이 있어요.
전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가끔 저는 그럴 때마다 이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이 생각나는 거예요.
14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그래서 구원의 문이 열렸을 때, 은혜 베풀 때, 은혜받고 구원을 베풀 때 구원을 향하여 손을 펴야지 하나님께서 그 은혜의 문을 닫은 후에는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이 시대는 그야말로 우리 이방인에게 은혜 베푸시는 때가 거의 마지막때가 아닌가 할 정도로 역사가 그렇게 장구하게 앞으로 천년 만년 갈것 같지 않거든요.
그래서 은혜받을 수 있을 때에 받아야 되고, 구원 베푸실 때에 구원 받아야 됩니다.
그 얘기는 끊임없이 나오는 얘기죠.
그 다음에 15절에,
15 ○화 있을진저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여 그 일을 어두운 데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16 너희의 패리함이 심하도다,
‘패리하다’는 말이 어려운 말이죠? 히브리어로 ‘호패크’라는 말인데, ‘뭐든지 뒤집어져 있다.’ ‘만사가 다 거꾸로 되어있다.’ 그런 뜻인데,
.. 패리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이게 패리하다는 거예요. 세상이 뒤집어 졌다는 거죠.
17 ○미구에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지 않겠으며 기름진 밭이 삼림으로 여김이 되지 않겠느냐
18 그 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서 소경의 눈이 볼 것이며
19 겸손한 자가 여호와를 인하여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빈핍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20 이는 강포한 자가 소멸되었으며 경만한 자가 그쳤으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졌음이라
21 그들은 송사에 사람에게 죄를 입히며 성문에서 판단하는 자를 올무로 잡듯 하며 헛된 일로 의인을 억울케 하느니라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한번 예수님의 일생에 한번 기뻐하셨다는 말이 있어요.
‘성령으로 기뻐하사 이것을 지혜롭다는 사람들에게 감추시고 어린 아이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이렇게 된 것이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이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똑똑한 사람들 교만한 사람들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학자 이런 사람들은 전혀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데, 세리와 창녀 가난한 자 소경 바디메오, 바디메오도 보는데 삭개오도 보고 세리 마태도 보는데, 창녀같은 마리아도 보는데 학자들은 보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22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야곱 족속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야곱이 이제부터는 부끄러워 아니하겠고 그 얼굴이 이제부터는 실색하지 아니할 것이며
23 그 자손은 나의 손으로 그 가운데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자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24 마음이 혼미하던 자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언제나 그렇듯이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꼭 교만한자를 때려 죽일것도 없고 교만한 자 스스로 진리를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항상 교만한 자를 헷갈리게 하시는 거예요.
교만한 사람의 눈에는 진리가 잘 안보여요.
우리가 마음이 낮아졌을 때만 보이는데, 우리가 낮아져서 겸손해져서 은혜받은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는 정말 부끄러워하지 않게끔 하실 것이다. 그런 얘기죠.
반면에 30장에는,
[이사야 30장]
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으니 죄에 죄를 더하도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애굽에 의지할려고 하는 사람들을 질책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3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4 그 방백들이 소안에 있고,
‘소안’은 한 때 힉소스 왕조가 수도로 삼았던 곳인데, 델타 삼각주 지역 동북부에 있는 힉소스 왕조의 수도였습니다. 기껏해봐야 그것은 땅에 있는 것들이고,
.. 그 사신들이 하네스에 이르렀으나
5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못하는 민족을 인하여 수치를 당하리니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
그리고 ‘남방 짐승’이라고 하면서 애굽을 남방 짐승에 비유하면서 전혀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6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이스라엘 사신들이) 그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 보물을 약대 제물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거기에 그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예물을 싣고, 사자도 나오고 수사자 독사 불뱀이 나오는 그런 땅을 지나서 애굽땅에 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보고 있는 거죠.
7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
‘라합’이라고 하는 말은 거만한 어떤 바다 짐승 중에 괴물을 일컫는 말인데, 마치 악어처럼 그저 납작 엎드려 있다가 지나가면 입에 잡아 삼키는..
애굽이 그런 나라이지 하나도 너희에게 도움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이사야가 할 때,
30장 8절,
8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영히 있게 하라
9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10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11 너희는 정로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
그러니까 시시때대로 하나님이 그 종들을 예언자를 보내거나 하면 그들이 ‘이것이 정로다. 이리로 오너라’ 이렇게 있는데, 그런 말 못하게 한다는 거예요 이 패역한 사람들이..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한국 교회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그런 얘기를 가끔 제가 하는데, 그것을 일반사람들은 ‘그럼 그럼’ 하는데 기독교인은 못마땅하다는 겁니다.
너무 많이 잘못되었는데 잘못된 것을 깨닫지 못하고 바른말 하면 일차적으로 CTS를 가위로 자르고 그렇게 하지만, 바른 말을 못하게 하는 거예요.
부담되는 말 하지 말고 부드러운 말을 하라.
목사님 설교를 강의를 부드럽게 해 주십시오.
내가 최대한 부드럽게 하는데도 그래요. 강하게 하는 것은 잘 안 봐서 그렇죠.
여러분 예수님이 평소에 가난한 자 병든 자에게는 부드럽게 했지만, 바리새인들 서기관에게는 책상을 끌어 엎어버렸잖아요.
세례요한 보세요. 세례요한에게 부드럽게 하라고 해봐. ‘빌라도 보고서’ 라는 조그만한 문서가 있는데 거기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불러놓고 설교를 시키는데 선동적으로 격하게 하지 말고 부드럽게 하라고 하는 부분이 나와요.
예수님 대답이 ‘땅의 군주여, 격류를 계곡에 머무르라 할 수 있느뇨?’ 그렇게 물어요.
큰 계곡물이 흘러 내려가는데, 그것을 머무르라 하면 산이 다 파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한 장면이 나와요.
그래서 언제든지 잘 나가는 사람들은 이런 예언자들의 음성을 싫어했다는 겁니다.
12절입니다.
12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예언자가 하는 말을 업신여기고,
..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에 의뢰하니
13 이 죄악이 너희로 마치 무너지게 된 높은 담이 불쑥 나와 경각간에 홀연히 무너짐 같게 하리라 하셨은즉
14 그가 이 나라를 훼파하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훼파함같이 아낌이 없이 파쇄하시리니,
얼마가 심하게 파쇄하셨던지,
..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취하거나 물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
그러니까 이런 것은 우리가 어릴 때 많이 해본건데, 부엌에 있는 숯불을 뜰 때 사기그릇 깨어진 것으로 불을 떠오고 합니다. 이 부엌으로 저 부엌으로 옮겨갈 때..
이쪽 사람들은 잘 모르는 말인데, 지 지리산 방언 그 쪽 사투리로 ‘비단가리’라고 해요. 비단가리. 사기조각 깨어진 것. 옹기조각 깨어진 것.
얼마나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 나라를 박살을 내는지, 불 뜰 조각도 하나 없이 그렇게 철저하게 파쇄될 것을 이야기합니다.
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애굽으로도 가지 말고 앗수르로도 가지 말고,
..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
16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한 고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한 고로 너희를 쫓는 자가 빠르리니
17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영 위의 기호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그렇게 하면서도 항상 하나님께서는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거예요.
때리면서도 그저 ‘다 나가죽으라 꺼져라’ 이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때리면서도 또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이 하나님의 감정이란 게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되었는데, 번역이 어렵게 되었고 우리가 하나님의 그런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품에 안는다고 했다가 때린다고 했다가 계속 이렇게 나오죠?
망한다고 박살낸다고 했다가 기다린다고 했다가..
그런 말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거예요.
지난번에 한번 얘기했죠?
호세아서 이야기할 때 하나님의 공의로 하면 다 박살이 나야 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면 버릴 수도 없고..
정말 하나님도 우리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인격을..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렇기 때문에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는 것이고, 또 그래도,
..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19 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그가 너의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그러니까 아무리 때릴 때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삐어지거나 멀어지거나 하면 안 되고, 맞으면서도 우리가 맞을수록 하나님 발목에 매달려서 매를 맞고 거기에서 엎드려야지 좀 힘든다고 삐어지고 그런 사람은 영원히 은혜 받지 못합니다.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그러니까 고난을 받게 한다 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른길로 인도할 스승 예언자 선지자 이런 사람을 영원히 폐하지 않고 간단없이 보내신다는 거예요.
그것 역시 사랑 때문이죠.
..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21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
너희 뒤에서 때릴 때라도 하나님 음성이 들릴 것이다.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22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23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 소산의 곡식으로 살찌고 풍성케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너의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24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육지창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25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각 고산, 각 준령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26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그래서 하나님이 때릴 때에 망할 사람은 망하지만, 남은 자가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그 남은 자 소수에게 은혜 베풀기를 마지 않는다는 얘기를 합니다.
다시 친 앗수르파에 대해서, 아까는 친 애굽파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친 앗수르파를 보고 말씀하시는데,
27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그의 진노가 불붙듯하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 하며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그 혀는 맹렬한 불 같으며
28 그 호흡은 마치 창일하여 목에까지 미치는 하수 같은즉 그가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부르며 미혹되게 하는 자갈을 여러 민족의 입에 먹이시리니
29 너희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와 같이 노래할 것이며 저를 불며,
‘저’는 퉁소나 피리같은 관악기죠.
..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반석에게로 나아가는 자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
30 여호와께서 그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
31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인데
그 막대기는 32절에,
32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를,
‘예정하신 몽둥이’는 바벨론이죠. 신바빌로니아를 가지고 이 앗수르를 때리는데 그 때 앗수르가 낙담하고, 구체적인 것은 BC612년에 이루어집니다.
32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마다 소고를 치며 수금을 탈 것이며 그는 전쟁 때에 팔을 들어 그들을 치시리라
여러분 지난번에 우리가 요나를 봤잖습니까?
요나가 앗수르가 항상 와서 자기를 괴롭히기 때문에 그것을 망하기를 바라고 전도는 했지만 그래도 망하기를 바라고 언덕에 앉아서 텔유누스라는 언덕에서 망하기를 바라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또 그 후에 나훔 선지자가, 나훔이라는 말이 ‘위로하다’라는 말인데, 예언하는 내용이 위로하는 내용이 아니거든요. 니느웨가 망한다는 혹독한 묵시이지 위로하는 말씀이 아닌데, 그 니느웨가 망한다는 말이,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망한다는 말이 유대인들에게는 위로가 되는 거예요.
여기는 보니까 하나님께서 예정한 몽둥이 바벨론을 가져와서 앗수르를 두들겨 팰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둥둥둥둥 박수치고 이렇게 한다는 거죠.
감정과 분위기를 잘 이해하셔야 됩니다. 다시 보세요.
32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마다 소고를 치며,
한방 때리면 이스라엘을 백성이 둥둥둥둥 북치고 박수치고..
.. 소고를 치며 수금을 탈 것이며 그는 전쟁 때에 팔을 들어 그들을 치시리라
33 대저 도벳은 이미 설립되었고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
‘도벳’은 ‘불사르는 곳’이란 뜻인데, 음부든지 유황불못이든지 간에 이런 악한 나라를 불사르기 위해서 얼마나 하나님께서..
.. 불과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하나님의 진노하신 콧김이 유황개천 같이 터져나와서 앗수르를 다 살아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 얘기죠.
그러니까 다시 31장에 보면,
[이사야 31장]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끊임없이 애굽으로 가는 자 화 있다. 앗수르를 의지하는 일은 미련한 일이다.
없어질 나라이고 사라질 나라이다.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항상 눈에 보이는 앗수르 아니면 눈에 보이는 애굽, 이런 것만 의지하지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까 그래서,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이렇게까지 주변 강대국에 의지할려는 이스라엘 백성을 질책하시는 거죠.
4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그 식물을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가 불려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인하여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을 인하여 굴복지 아니할 것이라 이와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 산과 그 영 위에서 싸울 것이며
5 새가 날개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넘어와서 구원하리라 하셨나니
6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그러니까 사자가 와서 양들을 삼킨다든지 했을 때, 목자가 와서 막아볼려고 하지만 그것은 사자도 그것을 겁을 안 내는데, 하나님께서 와서 이렇게 하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정말 피할 수 있는 자 구원자는, ‘예사야후’ ‘이사야’ 여호와만 우리의 구원이시다.
절대로 애굽이 우리의 구원이 되지 못하고 앗수르가 우리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사야라는 말 자체가 야웨만 우리의 구원이시다. 절대로 애굽도 아니고 앗수르도 아니다.
6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항상 거역하고 심히 거역하고 그랬죠?
그래서 구약성경 전체 늘 들리는 말씀은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겁니다.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7 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은 우상 금 우상을 그 날에는 각 사람이 던져 버릴 것이며
8 앗수르는 칼에 엎더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키울 것이나 여러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 그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
9 ○그의 반석은 두려움을 인하여 물러가겠고 그의 방백들은 기호를 인하여 놀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아직도 여호와의 풀무가 예루살렘에 있기 때문에, 결코 앗수르가 너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런 것들은 다 멸망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36장부터 39장 읽을 때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구체적으로 역사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렇게 했을 때 그 하룻밤 사이에 18만 5천명의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다가 경각간에 다 죽고 나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히스기야에게 뇌물을 가져왔어요.
‘히스기야가 굉장히 세구나’ 하면서..
히스기야가 세기는 뭐가 세? 겁이 나서 하나님 성전의 문짝의 금을 갖다가 앗수르왕에게 갖다 바치고 했는데, 순전히 히스기야가 강해서 된게 아니고 하나님이 강해서 이긴것 아녜요?
그런데 히스기야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게 아니고 교만을 떨었어.
시간이 갔지만 찾아보고 갑시다.
역대하서 32장을 보시면 히스기야가 어떻게 되었는가 잠깐 보실 수 있습니다.
32장 20절,
20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로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21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장관들을 멸하신지라 앗수르 왕이 얼굴이 뜨뜻하여 그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
산헤립이 자기 고국에 돌아가서 18만 5천명이 죽고 나서 얼굴이 뜨뜻해서 부끄러워서 돌아갔는데, 그 신 니스록의 묘실에 가서 제사하는데 그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란 놈이 와서 쳐죽였어.
자기 아들에게 죽은 거예요. 앗수르가 까불다가..
‘여호와가 누구관대 대왕 앗수르왕에게서 예루살렘을 지켜내겠느냐’ 하고 망발을 했던 산헤립이 죽었다는 거야.
22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거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23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로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소문듣고 히스기야가 잘 나서 그런 줄 알았는지..
.. 이후부터 히스기야가 열국의 눈에 존대하게 되었더라
24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된 고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으로 보이셨으나
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26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거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저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니라
27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국고를 세우며
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떼의 우리를 갖추며
29 양떼와 많은 소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30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 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 좇아 다윗 성 서편으로 곧게 인도하였으니,
이게 히스기야의 터널이고 히스기야의 우물 실로암 못으로 들어오는 물이죠.
.. 저의 모든 일이 형통하였더라
31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그러니까 계속 히스기야가 그릇이 작아서 조금 잘 되면 교만하고, 얻어맞으면 겸손하고 또 조금 잘되면 교만하고 계속 이렇게 한다는 거예요.
그릇이 너무 작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잘 되어도 너무 그렇게 길길이 뛸게 아니고, 어려워도 너무 낙담할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테니까 너무 그렇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여러 군데 그런 말 하죠.
지난번에 아하스 왕에게 말할 때에도 종용하고 삼가하라는 거죠.
외적이 와서 넘실거리고 르신과 베가가 와서 그렇게 위협하고 해도 종용하고 삼가하라는 거예요.
오늘 본문 30장 15절에도,
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인데,
조금만 급하면 앗수르에 사람 보내고 또 애굽에도 사람 보내고..
불안에 떨고 이렇게 하면 전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꼴이야. 그게 다..
하나님 믿는 사람은 그렇게 하는게 아니죠.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이런 저런 일이 터질 때 너무 그렇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조용히 그저 하나님의 손을 기다리는 그런 침착함이 있어야 돼요.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우리나라가 어려움에 처해있는데 그럴 때도 너무 조급하게 서둘면 일을 다 그르치는 수가 많으니까 아프카니스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렇게 빨리 일이 해결될게 아닙니다.
그 나라가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차분히 기도하고 해야 될 텐데 너무 조급하게 서둘다가 일을 그르칠 수가 있으니까..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평소에는 들어서 아시겠지만, 이벤트성 행사같은 그런 단기선교는 별로 효과 없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현지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현역 선교사들에게 물어보면 99.9%가 제발 단기선교 오지 말았으면 해요.
와서 저지르고 가면 뒷처리를 감당을 못한다는 거예요.
특히 이슬람권에는 더합니다.
근본주의 그런데에서 만약에 여자들이 소매없는 것 입고갔다. 그러면 창녀 취급을 당합니다. 봉사가 되겠어요? 그런 곳에..
머리카락만 내어놔도 창녀취급을 하는데, 민소매나 반바지나 썬글라스 끼고 나타나면 그게 봉사는 무슨 봉사, 그들에게 온갖 기독교의 야만성을 다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니까..
특히 삼가해야 돼요.
그리고 그 외에도 우리가 평소에도 우리나라 안에서 봉사하면 봉사한 것을 깨끗이 끝을 내야 돼요.
봉사 잠깐 해놓고 전도할려고 그렇게 하면 속이 들여다보이게 하면 전도가 전혀 안됩니다.
진심으로 전도할 마음이라도 오히려 봉사는 정말 순수한 봉사로 끝을 내야지, 조금해놓고 그냥 속 들여다보이게 전도하는 그런 모습으로 보이면 바로 반발심이 나는 거예요.
우리 국민들이 어린애가 아니잖습니까?
극히 삼가하고 그 외에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이런 저런 일이 났을 때 침착해야 돼요.
조용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고 그렇게 길을 찾아야 돼요.
여기 히스기야라는 사람이 너무 그릇이 작아서 기복이 심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2장은 저녁에 보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대로 하나님만 우리의 구원이 되시는 것을 오늘도 배우게 됩니다.
앗수르도 아니고 애굽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고, 정말 우리나라를 도와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사오니,
하나님께서 손을 펴서 저 악한 사람들의 손에서 철모르고 선교하다가 어려움 당한 사람들, 또 우리가 실수했거나 악하거나 간에 우리가 다 헤아리지 못한 일이 있사온즉 하나님께서 선한 손으로 도우사 이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이런 저런 어려운 일 닥치지만, 너무 낙담하거나 너무 좌절하거나 너무 놀라거나 하지 아니하고 크신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침착한 믿음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이사야서 안에서 들리는 주의 음성을 잘 분별할 수 있도록 지혜와 명철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