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가 나오는 여행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멋내지 않고, 느낀 대로 말하고, 불편하면 그 불편함도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
그래서 그가 가는 여행은 늘 결과보다 과정이 먼저 다가온다.
어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샹그릴라 편을 봤다.
화면에 낯익은 풍경이 나왔다.
송찬림사.
나도 몇 번이나 다녀왔던 곳이다.
갈 때마다 느끼는 건 늘 같다.
그 절의 색이다.
금빛으로 번쩍이는 지붕, 벽면을 감싼 붉은색,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더욱 선명하게 보이게 만드는 푸른 하늘.
강한 색들인데도 조화롭고 단정하다.
멀리서 보면 화려하고 가까이 다가서면 묵직하다.
프로그램 속 출연자들도 내가 걸은 그 길을 걸었다.
108개의 계단을 오르고,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며 해설사에게서 티베트 불교의 장례 방식,
천장(天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죽음을 하늘에 맡긴다는 그 개념.
내가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당황한 모습이 그들의 얼굴에서 나타났다.
그 다음 날 새벽,
그들은 송찬림사 담을 끼고 오체투지를 시작했다.
말 없이 무릎을 꿇고, 팔을 뻗고, 이마를 땅에 붙였다.
조용히, 반복해서, 천천히 올라갔다.
정상에는 수많은 타르초(티베트 불교의 기도용 깃발)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과 땅 사이에 수많은 마음들이 이어진 듯한 풍경이었다.
나는 한 번도 그 절에서 오체투지를 해본 적이 없고 하고싶지도 않았다.
그저 바라보고, 걷고, 머물렀을 뿐이었다.
나는 그들이 마음과 몸이 함께 기도하는 장면을 집중해서 보았다.
생각해보면 젊은 시절엔 도전적인 여행을 많이 했다.
고산을 오르고, 짚라인을 타고, 번지점프도 거뜬하게 했다.
그런데 지금은 굳이 그런 경험을 원하지 않게 됐다.
어쩌면 살아온 시간 자체가 내겐 오체투지보다 더 힘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젠 여행을 해도
억지로 뭔가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조금 천천히 걷고, 오래 바라보고, 조용히 머물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들의 오체투지는 아름다웠다.
나는 따라 하지 않았지만,
그 장면은 내 안에 오래 남았다.
같은 자리에 다시 서도,
그때그때 마음은 다르다.
그래서 내가 같은 장소를 계속 여행하게 되는 이유다.
https://www.youtube.com/watch?v=jbK68mHsLfg&list=RDjbK68mHsLfg&start_radio=1
첫댓글 담담하고 간결한 필체와 너무 아름다운 사진이 어울려 술술 잘읽혀내려 가면서도 큰 울림을 주셨어요
잘읽고 보았숩니다 .
감사합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