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비오는 날이면(거지탕과 빈대떡)
"7시에 망구집에서 보자." 친구의 전화였다.
요즘처럼 장맛비 내리는 날이면 나는 10여년 전쯤으로 그리운 시간여행을 떠난다. 자칭타칭 삼총사, 우리들은 직장내의 또래 친구로 맺어져 함께 주말농장도 했고, 가족여행을 떠났다.
처음엔 술친구, 다음엔 노동조합 활동, 그리고 텃밭 주말농장 밭농사로 인연이 깊어진 사이다.
망구집이란 시내 중심가 허름한 건물에 있는 평양빈대떡집을 말한다. 주인댁인 할머니는 우리보다 대여섯살 더했을까? 전화했던 친구는 주인앞에서도 대놓고 '망구'라 불렀다. 불쾌한 어감이 아니라, 세월이란 인연을 걸고 부르는 애칭이다.
이집의 메뉴는 빈대떡과 거지탕, 추가해서 소주와 막걸리다. 비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그런 명사들...
나는 빈대떡은 그렇다치고, 그넘의 거지탕은 왜그리 구미를 당기게 하는지? 거지탕의 재료는 제사때 먹다 남아 말라 비틀어진 전과 생선을 넣고, 들깨가루 (약간?)정도를 섞여 끓여낸 것이다.
채소와 밀가루가 어우러진 전의 숙성된 얼큰함이 생선 살코기에 스며든 맛이란... 옛날 거지들은 잔치 초상집에서 얻어온 음식을 꼬불쳐두었다 배고플때 몰래 끓여 제대로의 맛을 즐겼음직 했다.
거지탕과 빈대떡, 창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우리들의 밤은 깊어만 갔다. 주문없이 가져다 먹는 소주와 막걸리병이 탁자에 쌓여간다.
우정이란 소재가 고갈될쯤이면 정치 이야기가 나오고, 노조시절이 회고되었다. 셋은 직장의 초기 노조활동을 했다. 나는 타의에 의하여 수백명 노동조합의 창립대회장을 맡았고, 이후 노조의 정치적 성향과 보직문제를 이유로 활동을 접었다.
친구 한명은 노조 조합원의 대표인 지부장을 지냈고, 나머지 한명도 대의원을 역임했다. 친구가 지부장을 지낼때 나는 인사담당 책임자였다.
파업을 하는날, 나는 지부장을 불러내어 우산을 함께 쓰고, 회사밖 뒷골목을 걸으며 우정(?)을 나누었다. 그러한 활동도 서로의 생존보다 보여주기식 제스추어란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조합원들이 보았으면 탄핵을...ㅎㅎ
우리는 빈대떡과 거지탕에 소주를 마시며, 되돌리 수 없는 지난날의 못다한 아쉬움을 이야기 했다. 그때 더 열심히 살았더라면...
셋, 둘, 하나... 빈테이블이 사라져 갔다. 비오는 날이면 술꾼들은 뒷골목을 찾는다. 어둠의 자식들인가?
비오는 날...저녁비 맞고 옹기종기 부모형제 기다리는 좁은 집안으로 모여들어 밀가루 음식으로 허기 달래던 열악했던 환경이 어쩌면 그리운 것일게다.
남은 세월 무던히 소리없이 산다면, 일찍 일어나 나무를 기어오르는 굼벵이와 다를게 뭐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일찍 일어난 새에게 잡혀먹는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예술작품도 제목을 잘붙여야 진가가 살아남는 법이다. 남이 뭐래든(밥먹여 주지 않으면) 자신의 하루하루 인생항로에 나름의 제목을 붙이고, 의미를 찾아야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글창고에 올라온 거지탕에 관한 어느 분의 글을 가져왔다. 내용 중 부평초는 한때 나의 닉네임이다.
(리치님의 글)
시내 평양빈대떡으로 친구 다섯명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반갑게 모여든다.
주로 고딩 친구들을 막걸리 파티에 불러 모으는 것은 내 담당인데, 오십을 넘기면서 친구들이 그리운건지 막걸리 한잔에 두부김치가 그리운건지
술친구 대여섯 모으기는 유도 아니다.
주로 카드사용을 고집하는 월급쟁이들이라 얼큰한 거지탕이 맛있긴 하지만, 현찰만 고집하는 평양빈대떡 주인할매를 자주 찿지는 않는데,
친구중에 칫과하는 애가 그런대로 현금동원력이 있는고로 그집에 가면 십중팔구 그친구 계산에 후식으로 국수까지 배를 채운다는...
(ㅋㅋ 이 카페 글 쓰는게 나름 의미가 있다면...수필강좌 동우인 부평초님외는 일면식도 없는 분들을 향해 그냥 내가 쓰고픈 바를, 진실이든 과장됐든 쭉쭉빵빵 눈치 안받고 쓰내려 가니...스트레스 해소에 제격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