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에서 예언자로 떠받들고 있는 마호메트는 15세 연상의 ‘카디자’라는 부유한 과부와 결혼해 1남4녀를 두었었다. 아들의 이름은 카심이었는데 마호메트는 자신이 ‘아부 카심’(카심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카심은 2세 때 병으로 죽었다. 후계자를 잃은 마호메트의 상심은 대단했다. 이어 딸 2명도 병사하고 한 명은 마호메트와 적대관계에 있는 집안으로 시집갔으며 파티마라는 딸만 아버지 뜻에 따라 사촌과 결혼했다. 파티마는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중에서도 차남인 ‘알리’가 외할아버지인 마호메트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마호메트는 사람들 앞에서 ‘알리’가 장차 자신의 신앙을 이어받을 재목이라고 여러 번 언급했다. 부인 카디자가 죽은 후 마호메트가 외로워하자 죽마고우이며 전우인 ‘아부 바크르’가 12세난 그의 딸 ‘아이샤’를 마호메트에게 시집보냈다. 그러나 아들은 낳지 못했다. 마호메트는 부인을 잃은 후 12명의 후처를 맞아들였는데 대부분 전쟁 미망인들이었다. 아들이 없는 상태에서 마호메트가 죽자 무슬림들은 회의를 열어 아이샤의 아버지인 ‘아부 바크르’를 칼리프(무슬림의 지도자)로 뽑았다. 그러나 일부 무슬림 세력은 마호메트의 후손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마호메트의 외손자 알리를 떠받드는 바람에 이슬람세력이 두 개로 쪼개지게 되었다. 즉 마호메트의 후처 아이샤 세력과 마호메트의 딸 파티마 세력이 대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두 세력은 마침내 현 이라크의 카발라에서 한판 승부의 싸움을 벌였으나 외손자 ‘알리’가 부하의 배반으로 암살 당하게 된다. 그러나 ‘알리’를 지지하는 무슬림들은 끝끝내 회의에서 뽑은 칼리프들이 비정통 지도자라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이 ‘알리’를 따르는 무슬림을 ‘시아’라고 부르고 알리 반대편에 동조한 무슬림을 ‘수니’라고 한다. 현재 세계 무슬림 인구의 90%는 ‘수니’며 ‘시아’는 마이너리티다. 그러나 이란 인구의 95%는 ‘시아’이며 이라크 회교신자의 75%도 ‘시아’에 속한다. 사담 후세인은 ‘수니’파로 ‘시아’파 10여만명을 처형하는 등 집권시절 내내 ‘시아’파를 탄압했다. 이라크에서 수니가 몰려 사는 곳이 팔레자와 후세인의 고향 티크리트다. ‘시아’의 특징은 성직자인 이맘과 아야톨라를 존경한다는 것과 성직자가 정치 지도자를 겸한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이란의 아야톨라 호메이니며 그는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회교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를 겸하는 혁명을 성공시킨 장본인이다. 이라크에서는 요즘 아야톨라 시스타니가 떠오르고 있다. ‘수니’는 성직자를 인정하지 않으며 알라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고 믿는다. 사우디,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터키, 아프가니스탄 등이 수니 파다. 이라크는 ‘시아’파의 성지이면서도 후세인 때문에 ‘수니’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다가 이번 선거에서 드디어 정권을 잡은 것이다. 이라크 시아파의 승리는 회교세계의 세력판도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 신정일치를 주장하는 ‘시아’ 정권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눈에 보듯 뻔하다. 회교법인 ‘샤리아’를 중심으로 헌법이 만들어지면 미국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심기는커녕 제2의 호메이니 정권을 창출하는 예상 밖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첫댓글 이쪽동네는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연들이 많아서 .. 참 난감한 동네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