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만난 9명의 여류시인들과의 각별함이라니. 멀미약을 먹은 오순이시인과 함께 우리일행은 쾌속정 KOBEE에 승선했다. KOBEE는 바다표면에서 한 뼘 쯤 뜬 채로 경쾌하고 흔들림없이 달리고 있었다. 멀미란 배를 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우려였음을 새삼 깨달으며 3시간 만에 하카다항에 도착했다.
햇살은 닦아놓은 유리알처럼 경쾌하고 소도시의 거리는 정갈했다. 가마토지옥에서 담배쇼를 관람하고 유황재배지인 유노하나를 돌아본 후 따뜻한 물에 족욕을 하고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먹어본다. 노른자의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고급스러웠다. 햇살과 벚꽃 속에 소녀가 된 여류시인들의 웃음소리가 나비처럼 가볍다. 오뎅과 우동과 초밥으로 차려진 풍성한 석식을 마치고 숙소에 짐을 풀었다.
어두워지기 전의 푸른 바다와 아담한 풀장을 내려다보며 우리는 치렁한 유카다를 날렵하게 차려입고 로비에서 한바탕 촬영을 끝낸 후 온천욕을 즐겼다. 마유(麻油)로 온몸을 씻고 노천탕을 향했다. 여류시인들은 인어처럼 장미꽃이 떠있는 바위틈새를 유영하며 오래도록 별을 바라보았다.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한 방에 모여 부산여류시협의 발전 된 미래를 구상하며 자정이 넘도록 즐거웠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서도 새벽까지 잠들을 이루지 못했다고.....
기상 후 호텔라운지에서의 조식은 외국인들로 넘쳐났다. 여행 경험이 많은 선배님들이 일찍부터 서둘러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낫도와 각종 해물과 스프로 한껏 충전 한 후 길을 나선다.
유후인으로 이동해 온갖 민예품들이 즐비한 나지막하고 평화로운 마을을 둘러보고 세계 최대의 칼데라를 자랑하는 활화산 아소에 도착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여러 갈래의 검은 구덩이에서 괴물이 포효하는 듯한 음울한 작은 떨림이 새어나온다. 일년에 삼천 번의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는 일본은 흔들리는 현상을 생활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천재지변 속에서도 일본인들은 고향을 지키고 가업을 이어가며 여전히 강대국의 위용을 가지고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심어 미래를 설계해가는 것을 보며 내 조국의 교육과 인생관에 스며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생각하게 한다.
아소산을 내려와 중식을 먹는데 박순미시인이 친정집에서 공수해 온 맛깔스런 전어젓갈을 내 놓는다. 어제부터 식사때마다 김치를 찾던 송소현시인의 눈이 반짝 빛난다. 다소 무거워진 마음을 싹 걷어가는 감탄스런 맛이었다. 짜지않게 절여진 고추지에 전어젓갈을 버무린 것인데 상큼함이 기가 막혔다.
중식을 끝내고 가이드가 말하던 영국황실 제조법으로 만들어진 기막힌 요구르트를 맛보기위해 이순선사무국장이 매점에 들어가 JERSEY 요구르트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 물건을 주더라며 얼굴이 홍당무가 돼서 뛰어왔다. 모두가 30분이 넘도록 웃었나보다. 발음하기 즐거운 이름이었다.
후쿠오카 시내로 들어와 최대 복합물인 케녈시티에서 마술공연도 보고 아이쇼핑을 하다가 30층 건물인 힐튼호텔에 짐을 풀었다.
일본어가 능숙한 최귀례사무국장을 앞세워 우리는 거리 산책에 나셨다. 주홍빛의 밝은 식당을 찾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빵을 곁들여 흥겨운 식사를 마치고 여흥을 위해 몇 캔의 맥주도 사 들었다. 빌딩의 현란한 불빛사이로 새침한 초승달을 바라보다 체력이 바닥 난 듯한 송소현시인을 위해 서둘러 숙소를 향한다. 우리는 패션쇼를 하고 맛사지를 하고 맥주 한잔씩을 곁들였다. 우리에게 「지금」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만끽하는 시간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상과 함께 해변으로 달려나간다. 아침바다를 욕심껏 품고 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의 안녕을 빌고 있는 사이 힐튼호텔 옆구리에서부터 이글거리며 불덩이가 올라온다. 마주할 수 없는 장엄함에 우리는 숙연하다.
조식 후 시사이드 모모치 인공해변에 웃음소리를 가득 뿌려두고 세계 최대의 청동와불이 있는 남장원에 간다. 노부부의 어깨위로 하르르 꽃비가 내리는 산사에는 부모보다 먼저 간 동자석상이 있었다.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다. 학문의 신을 모시는 테제부 천만궁을 둘러보고 후쿠오카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하카다 포토 타워에 올라 삼일간의 여정에 안녕을 고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풍부한 여행 경험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백영희시인님과 선배님답게 말이 적고 든든한 탁영완시인님과 물심양면 여류시인협회를 걱정해주는 김미순시인님과 처음 볼 때 그 모습 그대로 변함이 없는 오순이시인님, 날씬한 체구에도 털털하고 활동적인 이순선재무국장님, 일본어가 능숙해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준 최귀례사무국장님, 맛깔스런 밑반찬을 제공해주신 박순미시인님. 무엇보다 건강이 염려되는 끼많은 송소현시인님이 기력을 되찾아 돌아가는 것에 박수를 보내며 나이가 들수록 나 자신에게 투자해서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길 바란다는 가이드의 말에 백배 공감하며 각자의 현실로 씩씩하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