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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 예화
[보이지 않는 기도자]
20여년 전 이태리 어느 시골에 마리오와 안세르모라는 두 친구가 있었다. 마리오는 대설교가가 될 꿈을 안고 수도원에 들어가 사교가 될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안세르모는 수도원에 들어가 겨우 종이 되었다.
드디어 마리오는 공부를 그치고 사교가 되었다. 마리오가 첫 설교를 하게 된 전날 밤, 설레이는 가슴으로 복도를 거닐고 있을 때 안세르모가 와서 격려해 주었다.
"마리오, 너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다음 날 마리오가 설교단에 올라갔을 때 안세르모는 한 구석에 앉아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설교는 대성공이었다.
차차 마리오는 유명해졌다. 그럴수록 마리오와 안세르모의 거리는 멀어지게 되었다. 마리오는 드디어 로마의 성 베드로 사원에서 설교하게 되었다. 평생에 한 번일지도 모르는 귀한 기회였다. 그런데 그날은 힘이 안났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있던 수도원에서 설교단에 올라갈 때마다 구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안세르모가 떠올랐다.
마리오는 빨리 집에 돌아가서 안세르모의 소식을 알아 보았다. 안세르모는 바로 그날 새벽 마리오를 위하여 기도하며 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이미 사라진 친구의 방을 방문하고 그의 가난한 살림을 엿보았을 때 마리오의 가슴은 뜨거웠다.
마리오는 안세르모의 무덤 앞에서 열심히 기도하였다. 이것을 본 수도원 원장이 물었다.
"다시 유명한 설교가가 되려고 기도하였소?"
"아닙니다. 나도 안세르모같은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미카엘 P. 그린
[겸손의 시작]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이 말씀은 기독교 윤리의 근본입니다. 아마도 기독교인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리고 이를 한 마디로 대답한다면 '자기를 낮추며 사는 것'이 될 것입니다.
어거스틴에게 레이나라고 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거스틴이 볼일이 있어서 이 제자를 불렀습니다.
"이보게, 레이나."
스승이 부르는데도 레이나는 대답이 없습니다. 옆방에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해 불러보았지만 여전히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슬며시 부아가 났습니다.
"이 녀석이…."
그는 옆방 문을 신경질적으로 열어제쳤습니다. 순간, 그는 아차하고 뉘우쳤습니다. 레이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도 간절히 기도에 몰두하고 있다보니 스승의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그는 제자에게 간청했습니다.
"너의 발로 내 목을 밟고 서서 '교만한 어거스틴아, 교만한 어거스틴아, 교만한 어거스틴아' 이렇게 세 번 소리쳐다오."
그는 이렇게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겸손한 사람 어거스틴이었지만 그의 내부에 이렇듯 무심결에 고개를 쳐드는 교만이 있었음을 깨닫고 그는 가슴을 쳤습니다.
사람이란 '나는 교만하다'라고 자기 평가를 내릴 때에 겸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곽선희
[받은 은혜가 커서]
어느 날 성 프란시스의 제자가 환상중에 하늘 나라를 갔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높은 보좌가 있었는데, 그 의자는 빈 의자였습니다. 그는 그 의자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이 의자는 누가 앉을 것입니까?"
"이 의자는 세상에서 제일 겸손한 성 프란시스가 앉을 자리이다."
그는 이 환상에서 깨어난 뒤 자기 선생님이 정말 그렇게도 겸손한지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당신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선생님,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을 성자라고 부릅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천지인데, 당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악하다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그 때 프란시스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그건 자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라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만일 다른 사람이 받았다면 그는 훨씬 더 좋은 사람이 됐을 것이네."
-엘론 포스터
[솔직한 답변]
중국 위나라에 영공이란 사람이 공자를 만나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공자님께서는 모르는 것이 없는 줄 압니다."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나도 사람인데 어찌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있겠소. 어디 무슨 일인지 듣기나 합시다."
영공은 공자에게 병법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공자님, 병법에서 군사들이 적군을 대적하기 위한 진영을 구축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 질문에 공자는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제사상에서 접시 놓는 법은 일찌기 배운 바 있지만 병법을 배운바는 없습니다."
자신의 무지를 솔직히 인정하는 공자의 대답. 중국의 위대한 스승다운 말 아닌가?
-중국 고사
[명색이 신학생인데]
한국에서 유명한 신학자로 알려져 있는 전경연 박사가 일본 청산학원 신학부 학생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이웃 교회에서 봉사하고자, 그 곳 목사님을 찾아가 주일 학교 교사를 하겠다고 여쭈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자네, 먼저 신발 정돈부터 하게나."
떨떠름한 표정으로 '예'하고 대답을 하긴 했으나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명색이 그래도 신학생인데, 어린 아이들의 신발 정돈이나 시키다니!'
전 군은 속으로 부아가 끓어 올랐지만, 두 말 없이 신발 정돈을 시작했는데, 장장 2년간이나 그 일을 했단다.
그는 나중에 신학 박사가 되어 고국에 돌아와 목사 후보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대학 강단에서 자신의 유학 시절을 회상하며 학생들에게 자주 말하곤 했다.
"난 그때 무엇보다 귀중한 것을 배웠지. 하나님 안에서 섬기는 각 지체들은 어떠한 일을 하든지 하나 하나가 모두 귀한 것이라는 걸…."
그렇다! 누가 잘나고 못나고가 없다. 교회에서의 직분이든, 사회에서의 직업이든 각기 나름대로의 소중한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나보다 각각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의 사도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월터 B. 나이트
[더 많이 배운 후에는]
평생을 흑인들을 위해 수고한 슈바이처 박사가 밀림에서 처음으로 병원을 지을 때 한 번은 옆에 서서 구경만 하는 흑인 청년에게 서 있지만 말고 같이 일하자고 권했습니다. 그러자 이 흑인 청년은 말했습니다.
"나는 그런 일 안 합니다. 나는 배운 사람입니다. 그런 일은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하는 것입니다."
"나도 학생 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지. 그러나 공부를 더한 다음에는 아무 일이나 다 하게 되었다네."
계속해서 슈바이처는 그에게 나이 많은 신학자의 얘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한 신학자가 있었는데, 그가 어렸을 때에는 성경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며 읽었다네. 그러다가 대학에 가서 신학과 철학을 배우고, 비교 종교학을 배우며 성서 비평학을 배우게 되자 성경을 그대로 믿기가 어렵게 되었지. 그러나 지금 와서는 자신의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어서 이제는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고 신실하게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다네."
많이 익은 벼일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 흑인 청년의 모습이 바로 나의 젊은 날의 모습이 아니었던가요? 그리고 지금 나의 모습은 아닙니까?
슈바이처의 말에서 참 지식이 무엇이며, 그 열매를 알게 된 듯한 느낌입니다. 참된 지식은 겸손과 통한다는 것을.
-알리스터 브라운
[멍 수녀님!]
멍 수녀님이란 분이 계셨다. 성은 멍씨가 아닌데 다만 그분의 재주가 신통치 못하여 이에 답답함을 느끼신 본당 신부님께서 "멍청이"라 부르신 데서 나온 이름이었다.
원래 그 수녀님은 드러내 놓을 만한 것이 없었다. 성가도 잘하지 못했으며 교리지도도 더듬거렸고 나중에는 제의방으로 밀려났는데 그것마저도 본당 신부님의 신경을 자주 건드리곤 했다. 그저 재주가 있다면 "멍 수녀!"하고 불러도 늘 생글생글 웃는 그 미소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멍 수녀님을 굉장히 좋아했다. 신자들이야 으레 약자편이긴 하지만, 늘 겸손하시고 신자들의 어떤 말도 다 받아 줄 뿐만 아니라 남몰래 많은 기도와 희생을 하고 있는 줄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곳 원장 수녀님은 나이는 멍 수녀님보다는 훨씬 적으나 대단히 똑똑하고 재주가 반짝반짝하는 분이었다. 그러나 너무 독선적이고 직설적인 언행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신자들이 상처를 받게 되었고 그래서 신자들은 '똑 수녀님'을 싫어하고 경계하게 되었다.
한 번은 그 수녀원을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원장 수녀님이 신부님들의 사생활에 대해 얼마나 '따따부따'하시든지 듣기가 아주 민망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보기에는 그 원장 수녀님의 생활도 대단히 고급화되어 있는데도 아마 자기 자신의 모습은 잘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때에도 멍 수녀님은 그 특유의 재주인 미소만을 가지고 우리의 어리석음과 교만을 다 받아 주고 계셨다.
결국 멍 수녀님은 본당 신부님과 원장 수녀님의 합동작전으로 먼 곳으로 쫓겨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가실 때는 눈치를 보느라 많은 이들이 전송을 해주진 못했지만 가시고 난 뒤에는 수녀님을 잃은 아쉬움과 불만으로 많은 이들이 분개를 했다는 것이다.
세상은 재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재주는 자신의 눈을 감기게 할 뿐 아니라 스스로 위선의 탈을 뒤집어 쓰게 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신앙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내려가는 겸손을 닮을 때 축복이 되는 것이며 잘 사는 은혜가 되는 것이다.
나는 왜 멍 신부가 되지 못할까?
세상을 바보처럼 사시지만 그 속에 사랑이 있고 평화가 있으며 그리고 그리스도의 최고의 덕인 겸손을 사시는 멍 수녀님을 생각하면서 닮지 못하고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도 해본다.
멍 수녀님, 사랑해요!
-강길웅
[과분한 화환]
신세계교향곡을 작곡한 드보르작은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음악가이다. 그는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다. 자기가 태어난 조국 보헤미아의 일반 서민들과 마음을 터놓고 지내면서 평생을 정직하게 살았다. 사람들은 그의 음악도 아끼고 사랑했지만 이러한 인간적인 자세로 인해 더욱더 그를 사랑했다.
어느 날 그를 존경해 마지않던 프라하의 시민들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에게'라는 찬사의 말을 덧붙여 그에게 아름다운 화환을 증정했다. 그 찬사가 너무나 과분한 것이었지만,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드보르작은 그 화환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며칠 후 사람들이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드보르작은 화환을 받은 뒤에 어쩔 줄을 몰랐다. 사람들의 정성이 고마워 그 화환을 받긴 받았지만 자기가 받기에는 너무 과분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돌려 줄 수도 없었던 드보르작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 화환이 놓여져야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장소에 그것을 가져다 놓았다. 드보르작의 작곡실 한켠에는 베토벤의 흉상이 놓여져 있었는데, 그는 바로 그 흉상 밑에다 자기가 받은 그 화환을 가져다 놓은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에게'라는 찬사와 함께.
-브리안 캐버나우
[내려가는 것이 곧 올라가는 길임을]
유럽의 종교 개혁자인 쯔빙글리는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료 때문에 무척 괴로워했다. 어느 이른 아침 그는 스위스의 산 위를 걷다가 매우 인상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마리의 염소가 좁은 산길을 가고 있는데, 한 마리는 위로 오르려 하고 다른 한 마리는 내려오려고 하였다. 그러나 길은 겨우 한 마리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았다. 결국 두 마리는 도중에서 만나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두 마리는 서로 바라보다가 꼿꼿이 서서 마치 한판 싸움이라도 벌일 듯 보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래쪽에서 올라가는 염소가 길 위에 눕자, 다른 한 마리가 그 등을 딛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누워 있던 염소도 일어나서 제 길로 올라갔다.
쯔빙글리는 내려가는 것이 곧 올라가는 길이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1).
-월터 B. 나이트
[당신은 강철계의 대통령]
미국의 유명한 실업가 카네기는 처세술로도 유명하지만, 번득이는 기발한 아이디어로도 유명하다. 그는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기발한 아이디어 창출에 온 정신을 쏟았다. 그룹의 회장이면서도 푹신한 의자에 편히 앉아본 적이 없으며 기능공과 똑같은 근무복을 입고 그룹 내의 이 회사 저 회사를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그는 기발한 착상을 하고 엉뚱한 결정을 잘하여 주위 사람들을 자주 놀라게 하였다.
어느 날 자신의 강철공장을 돌아보다가, 공장에서 일하는 기능공들이 옆도 돌아보지 않고 일에 매달려 열중하는 모습에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그는 당장 그 기능공 중 가장 일에 몰두하고 있는 최고 기술자 한 사람을 불렀다.
"당신은 우리 회사의 최고 기술자입니다. 오늘부터 이 회사의 사장이 되어주십시오."
그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이 말을 들은 기능공은 너무 놀라서 말했다.
"회장님, 저는 회장님의 말씀을 거절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제강기술자로서는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도 저는 부럽지 않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제가 대통령이지요. 남들이 뭐라 해도 저는 이러한 생각으로 제 일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의 경영은 잘 모릅니다. 그러니 그냥 기술자로서 일하게 해주십시오."
카네기는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좋습니다. 다음 달부터 당신의 월급을 대통령의 월급과 똑같이 올려주겠소. 당신은 강철계의 대통령이니까요."
기능공은 너무 황송하여 몸둘 바를 몰랐고, 다음 달부터 그 기능공에게 대통령과 같은 액수의 월급이 지급되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
-박명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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