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에 처음 가 보았던 하노이는 강력한 오토바이 매연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동안 얼마나 변했을까?
#2019년 12월 12일
노이바이 공항에서 86번 버스를 타고 들어간 (3만5천 동, 차장이 매우 친절했다.) 하노이 구시가는 여전히 오토바이와 보행자들로 시끌벅적했다.
호안끼엠 동북쪽에서 내려 근처에 있는 깔끔한 호텔을 기웃거려 보았으나 120만동을 부르기에 얼른 돌아 나와 미리 검색해 두었던 저렴한 호텔을 찾아 나섰다.
1순위 후보는 까멜리아호텔6였지만 2순위 후보였던 지아틴 호텔이 더 가깝길래 먼저 찾아갔는데 하나밖에 안 남았다는 방이 30달러란다. 생각보다 방값이 비싸다.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방을 보러 올라가 보니 방은 그럭저럭 잘 만은 하다.
프런트로 내려와서 흥정을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방이 다 찼다고 한다. 금방 하나 있다더니? 우리가 방을 보러 올라간 사이에 방이 나갔다는 건가? 당황해 하는 우리에게 인심쓰듯 하루 묵을 방을 소개해 줄테니 거기서 하룻밤만 자고 오란다.
얼떨결에 (첫날이니 피곤해서 얼른 짐을 풀고 싶은 마음에?) 근처에 있는 허름한 호텔로 따라가서 낡아빠진 방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그것도 30달러 씩이나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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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밖 Memos란 식당에서 먹은 첫 베트남 음식. 이 식당에서 한국인 패키지팀을 네 팀이나 보았다. 다낭만 많이 가는 줄 알았더니 하노이에도 많이들 오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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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하노이.)
#12월 13일
아침 국수집으로 유명하다는 퍼승에 가서 쌀국수를 먹고 (현지인 외지인 다 몰리는 맛집. 5만동짜리 소고기 쌀국수가 꽤 맛있다.) 옆에 있는 까멜리아호텔6에 들어가 물어보니 25달러짜리 방이 있다고 한다. 올라가 보니 크고 깨끗한 방이다. 어제 이리로 직접 올 걸 그랬잖아.
짐을 옮겨다 놓고서 호안끼엠 호수로 나가 보니 illy cafe가 있던 자리에 coffee club이란 간판이 보인다. 올라가 보니 분위기는 그대로인데? 이름만 바뀌었나?
커피를 주문하면서 보니,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에그커피'가 언제부턴가 하노이 구시가지의 시그니처 커피가 되었단다. 그리고 8년 전에는 1메가를 넘기가 어려웠던 와이파이 속도가 수십메가씩이나 나오는 걸 보고 놀라워서 모 카페에 글을 적기도 했다. 세월이 흘렀으니 변화도 있고 발전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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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은 비교적 한산한데 저쪽 하이랜드 커피는 테이블이 가득차 있네? 역시 저기가 명당인가?)
아직도 시간이 많은데 마냥 앉아있을 수는 없으니 슬슬 일어나서 돌아다니기로 한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설치하는 중인 성요셉 성당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구글지도에서 평점이 높은 Mr Bay라는 식당을 찍고 찾아 나섰는데, 근처까지 걸어가서도 간판이 안 보인다. 어디지? 잠시 헤매는데 마침 손님이 바글바글한 식당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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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한국인들에게도 인기있는 유명 맛집이다. 간판에는 영어로 분보남보 레스토랑이라고 적혀있는데 정식
명칭은 '분보남보 67 항제우'? 혹은 '분보남보박픙'? 잘 모르겠다. 주소는 항제우 67번지. 6만5천동밖에 안 하는 분보남보(비빔국수?)가 먹을 만하다.
호텔로 돌아오니 막 청소가 끝나가는 상태, 청소도 맘에 들게 잘 해 놨지만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밝고 친절해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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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보남보)
하노이는 사파를 다녀오기 위한 전진기지 정도로 생각하고 왔지만, 그렇다고 바로 사파로 떠나기엔 아쉬워서 며칠 더 어슬렁거리기로 했다. (싸고 좋은 숙소를 찾은 것도 하노이 체류를 늘리는 데 한 몫을 함).
호안끼엠 동편에 있는 사파익스프레스 사무실을 찾아가서 월요일 아침 7시 2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예약하고 (편도 16달러.) 근처에 있는 리타이또 공원에 가보니 뭔가 어수선하다. 축젠가 공연인가 뭔 행사를 준비중인건 알겠는데 감이 안 잡힌다.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그리고 안내판을 구글 번역으로 돌려보니) 전통 문화와 현대 생활 어쩌구 나오기는 하는데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겠는 건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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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제목인가 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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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스크린에는 베트남 홍보 동영상같은 것이 상영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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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에 시작한다니까 우선 밥부터 먹자. 근처에는 식당이 안 보여서 구글지도의 추천을 받아 호수 건너편까지 걸어가서 An's restaurant이란 곳을 찾아가서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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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이보(소고기 찰밥)와 쏘이가(닭고기 찰밥) 79000동짜리 단품 식사가 제법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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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길에 크리스마스 조명이 일부 켜진 성요셉 성당을 구경하고, 다시 리타이또 공원을 찾아갔는데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궁금하긴 했지만, 안 보여주겠다는데 뭐 할 수 없지.
걸어오다 보니 탕롱수상인형극장 앞에 사람들이 많다. 구경꺼리가 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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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둘과 남자 둘이 공연하는 백조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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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엔 몰랐는데 (없었을 듯)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호안끼엠 일대에 차 없는 거리가 생겼고 호안끼엠 북쪽 항다오 거리에서는 야시장이 열린다. 호수 주변에도 야시장에도 사람이 많은데 외국인보다도 베트남 국내 관광객이 많이 늘어났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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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토요일
아침은 또 퍼승에서 소고기 국수. 호숫가 차 없는 거리를 따라 이리저리 거닐다가 응옥선 사당에 들어가서 커다란 거북이 박제를 구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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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벤치에 앉아 호수를 구경하다가, 그러다가 심심하면 좀 걷고, 그렇게 우체국을 지나 남쪽으로 걸어가니 짱띠엔플라자라는 커다란 쇼핑몰이 나온다. 들어가 보니 온갖 명품 브랜드가 다 모여 있는데 우린 쇼핑 생각이 없으니 (돈이
없으니?) 대충 둘러보고 금방 나왔다. 구글지도를 보니 조금 더 가면 여성박물관이 있단다. 옛날 여성들의 고단한 생활사부터 혁명기의 여성 전사들까지 여러 가지 전시물들이 있는 소박한 박물관이다. 입장료는 3만동, 가념품 매장에서 2만동짜리 책갈피를 두 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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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쇼핑몰 근처에서 발견한 깔끔한 식당, Pepper Lunch에서 먹었다. 들어가서 검색해 보니 한국과 대만에도 점포가 있는 (한국에서는 철수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일본계 다국적 체인점이다. 주 메뉴인 철판볶음밥을 두 가지로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음료 포함 300만동,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시티투어 홍보물을 나눠 주는 아줌마를 만났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것과 대동소이한 내용, 괜찮은 상품이란 생각은 들었지만 우린 역시 걸어다니는 게 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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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와서 쉬다가 저녁에는 야시장으로 나가서 국수를 먹었다. 퍼싸오라고 하는 소고기 볶음국수를 옆지기는 매우 맛있어 함.
그리고 호텔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서 줄을 서서 뭔가를 사먹는 사람들을 보고 덩달아 줄을 서서 사먹은 것은 신또? 아니면 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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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5일 일요일
오늘 아침에는 다른 국수를 먹어볼까? 대충 걸어다니다가 손님들이 웅성거리는 식당이 있어 들여다 보니 홍콩식 완탕면을 파는 미반탄(미완탕)이란 식당이다. 빈 자리가 없어서 1-2분 기다려서 들어갔는데 45000동짜리 완탕라면이 제법 먹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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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이랜드 커피에 올라가 볼까하며 1층 출입구로 들어가 두리번거리는데, 한국 젊은이가 계단을 내려오며 알려준다. '자리가 없어요'. 8년 전에도 자리가 없어서 시티뷰 카페로 갔었는데 이번에도 자리가 없다네. 위치가 명당인 건 알겠는데 커피 맛이 어떤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에궁, 우리 단골집인 커피클럽으로 올라가서 카페쓰어다와 에그커피를 시켜놓고 마냥 앉아 있다가......
시간 많은데 어디든 구경을 가볼까, 구글지도를 뒤져서 2킬로미터 거리에 있다는 탕롱 황궁터를 찍고 출발했다. 물론 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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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를 지나는 기찻길. 기차가 지나가는 장면도 봤는데, 사진이 어디 갔을까?)
20분 정도 걸어가니 길 건너에 레닌 동상이 보이고 (모스크바에서는 쫓겨났다던데 여긴 멀쩡히 서 있네?) 이쪽에는 하노이 깃발탑이 보인다. 깃발탑 앞에는 군사박물관, 그런데 박물관으로 들어가려니 군인들이 못 들어가게 막는다. 왜 막는 거야? 군사기밀이라 외국인은 못 들어간다는 거야? 짧은 베트남어 실력으로 소통을 시도해 보니 11시 반부터 1시까지 점심 시간이니 1시에 오란다. 그렇지, 베트남에는 점심때 낮잠 자는 시간이 있었지.
그렇다면 황궁 먼저 갔다 와야지. 탕롱 황궁터는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역사적 의미가 충만한 장소인 듯한데 외부인 입장에서는 그다지 화려한 볼거리는 아니다.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남문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학생들이 많이 보였고, 안쪽에도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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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특징이 없는 건물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몇몇 건물 지하에는 미국과의 전쟁 중에 최고위급 회의가 열렸다는 지하 벙커가 있다. 당시 사용했던 지도와 전화기, 사진들.
공주가 살았던 건물이라고 했던가 끄트머리쪽 건물을 구경하고 나오는데 눈에 익은 과일이 바닥에 굴러다닌다. 이거 지단궈(계란 과일) 아냐? 중국 사람들이 지단궈라고
부르던 맛있는 과일을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 반가웠지만 차마 땅에 떨어져 발에 채이는 걸 주워먹을 수는 없고, 입맛을 다시며 검색해 보니 멕시코 원산의 카니스텔이라는 과일이란다. 사포딜라가 아니고? 태국어로 라뭇이라 부르는 사포딜라가 지단궈와 같은 것인 줄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서로 다른 과일이다. 카니스텔 즉 지단궈를 처음 만난 것은 중국 운남 여행 중이었고 라오스 루앙남타 박물관에서 얻어먹은 게 두번째, 그리고 계림에서는 과일 가게에서 사 먹은 적이 있다. 자주 만나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상업적으로 재배를 하는 곳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맛있는 과일인데 왜? (이번 여행 후반부에 태국의 모모 야시장에서 한번 더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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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박물관으로 돌아와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무기들을 구경하며 베트남 역사를 훑어 보았고, (여기도 단체 관람하는 학생들이 많다.)
하노이 깃발탑에 올라가 미군 비행기들의 잔해를 보며 베트남인들의 (미국을 이겼다는) 자긍심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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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그저께 갔던 그 분보남보 집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고,
하노이 일정을 마무리. (사파 갔다가 다시 하노이 들러서 방콕으로 가야 하니 마무리는 아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