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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1187
삼위하나님이 주시는 위로(행 7:54-60)
2025-1-12
고난 가운데 삼위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받읍시다.
고난이 없으면 좋겠지만, 고난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갈 때 반드시 고난이 있습니다. 이 고난을 어떻게 이겨야 할까요? 사도행전 7:54-60에서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며 순교하는 고난가운데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를 충만하게 하셨고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서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에게 삼위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고난 가운데 예수님을 보면서 삼위 하나님을 체험한 것이 스데반에게 가장 큰 위로였습니다.
고난 가운데 삼위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받읍시다.
1. 증인 스데반에게 삼위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 스데반은 삼위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54-56절)
2. 스데반과 같은 증인은 자신을 예수님께 맡겨 드리고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3. 고난 가운데서 말씀으로 삼위 하나님을 믿고 굳게 섭시다.
우리도 고난 가운데서 삼위 하나님을 체험하며 위로받는 복을 누리시기 소원합니다.
1. 증인 스데반에게 삼위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 스데반은 삼위 하나님을 증거했다(54-56절)
1) 이를 가는 핍박자들(54절)
1) 2천년 전 예루살렘 교회는 일곱 집사들을 세웠습니다. 스데반은 그 집사들 중 한 사람입니다. 집사들은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하여 교회에 구제하는 일을 했습니다. 또 그들은 기적을 행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스데반도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성령님과 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6:10). 회당에 있던 유대인들은 그의 말을 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스데반을 유대인의 국회인 산헤드린 공회에 고소했습니다. 스데반은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의인인 예수님을 죽인 살인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도 그의 말에 답할 수 없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마음이 쪼개지는 듯이 괴로웠습니다. 분을 이기지 못해서 살기가 등등하여 이를 갈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들이 회당과 공회에 끌려 가고 채찍으로 맞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할지 염려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리라” (마태복음 10:17, 20).
à 지금도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염려하지 말고 복음을 전합시다.
2) 하늘에 서 계신 예수님을 봄(55-56절)
1) 반대자의 분노 앞에서 성령님께서는 스데반에 더 충만하게 계셨습니다. 그는 성령님의 인도로 하늘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주여 저를 굽어 살펴 주소서”라 기도하는 것 같습니다. 그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오른 편에 서 있는 예수를 보았습니다. 스데반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하나님은 자신이 삼위 되심을 환히 나타나셨습니다.
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고난받을 때 우리를 충만하게 하십니다. 복음 말씀대로 살다가 고난 받을 때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까? 사람을 보지 맙시다. 기도하며 하늘을 향해 눈을 돌립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우리가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보게 하실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있습니다.” 보통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말합니다(눅 22:69, 마 26:64).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고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왜 서 계셨을까요? 첫째로 예수님은 하늘의 법정에서 하나님 앞에 서셔서 스데반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스데반. 땅에서 사람들이 스데반을 너를 악하다고 판결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나 예수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너는 옳다고 변호하고 있다.”
둘째 예수님은 하늘에 서서 스데반을 환영합니다. “스데반, 내가 십자가에 죽었으나 부활하여 하늘의 영광 가운데 있다. 내 뒤를 따라 고난을 받고 있는 너는 내가 있는 하늘의 영광으로 들어오너라.”이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으로서 스데반을 만나고 있습니다.
à 이 땅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고난 받을 때, 우리 보다 먼저 고난 받으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서 우리를 변호하십니다. 이 시간에도 우리 예수님은 하늘에서 우리를 응원하십니다. 우리가 예배자로 살 때 우리를 응원하십니다. 순교와 같은 고난을 받지 않아도 우리가 직분을 다하기 위해 수고할 때마다 우리 예수님은 하늘에서 우리를 변호하고 응원하십니다. 자매님들이 가정에서 직분을 다할 때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며 수고를 다합시다. 우리 직장에서, 학교에서 직분을 다할 때 수고가 있고 고난이 있을 때 기도하며 하늘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죽어간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도 주님이 나를 환영하신다는 이 믿음으로 힘든 길을 걸어갔습니다. 우리도 맡은 직분에 순종하며 힘들 때 마다 하늘에서 우리를 환영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읍시다.
3) 스데반의 증거 (56절)
스데반은 죽음을 바로 앞에 두고서 자기가 본 것을 증거합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예수님을 “인자”라고 증거합니다. “인자”는 다니엘서 7:13,14에서 예언된 분입니다.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인자는 하늘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갑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습니다. 인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신적인 존재입니다.
전에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 심문하며 물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 마태복음 26:64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는 인자”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신적이니 존재인 인자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단순히 메시야=그리스도라고만 했으면 신성모독의 죄를 지었다고 정죄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데반도 예수님이 바로 그 인자라고 증언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스데반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 예수가 인자로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다고 말하다니!”
스데반의 말은 사람들의 분노의 불에 기름을 뿌렸습니다. 그들은 귀를 막았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계속 말합니다.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à 우리 성도님 모두가 그리스도와 삼위 하나님을 전하는 증인입니다. 이 복음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 주위의 친구, 학교 친구, 직장 동료들이 부르짖듯이 싫어할 지 모릅니다. 화를 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것을 믿는 자를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시다.
2. 스데반과 같은 증인은 자신을 예수님께 맡겨 드리고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1) 스데반을 죽임(57-58)
그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일제히 스데반에게 달려 들었습니다. 전에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 내었을 때 귀신들은 돼지 떼에 들어 가서 돼지들이 호수로 달려가게 했습니다(눅 8:33). 죽였습니다. 이제 스데반에게 달려오는 그들은 귀신이 들린 것 처럼 난폭하게 되었습니다
‘일제히’ (한 마음으로)스데반에게 달려 들었습니다. 전에 제자들은 성령님이 오시기를 ‘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1:14). 핍박 가운데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해 달라고 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4:24). 교회가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갈 때, 악한 자들도 한 마음이 되어 악한 일을 합니다. 그들은 스데반을 성 바깥으로 끌어 내 돌로 쳐 죽이고 있었습니다. ‘
à 우리가 말로서,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사단은 자기 부하들을 더 조직적으로 모읍니다. 복음에 순종하는 삶에 대해 반대가 극심하게 일어날 때 우리는 두려워 하지 맙시다. 오히려 기뻐합시다.
2) 성령님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기도(59-60절)
1) 유대인은 스데반을 죽이기 위해 돌을 던집니다. 돌이 소나기 처럼 스데반에게 오고 있고 온 몸이 피범벅으로 되어 갑니다. 그 때 스데반은 부르짖었습다. “주 예수여”(58절). 그냥 소리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신은 하나님입니다” 성령님께서 주신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몸을 가진 하나님이며 사람으로서 자신을 보여 주십니다. 또한 성령님을 통해 계시하셔서 스데반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à 주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고난 받을 때, 주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심을 더 분명히 알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더 큰 믿음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 다스리신다는 이 확신이 어떤 고난도 이기게 합니다.
2) 스데반은 돌에 계속 맞고 있으면서 두 개의 기도를 합니다.
첫번째 기도.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59절). 자기 영혼을 위한 믿음의 기도입니다. 부서져 죽어 가는 자기 생명을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께 맡깁니다. 우리 모두도 고백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져 있습니다”( 골 3:3). 그는 이 순간만 자기 영혼을 주님께 맡긴 것은 아닙니다. 평소에도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 고백했을 것입니다.
à 우리도 평소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기도하며 자신의 삶을 맡깁니다. 위기의 순간에 더 평안하게 맡길 수 있습니다. 작은 일에서 주님께서 보호하실 것을 믿고 의로운 삶을 살아갑시다. 그러면 더 큰 일에서도 주님의 보호를 믿고 의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스데반은 죽어 가면서 자기 영혼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2) 스데반의 두 번째 기도.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60절, 눅 23:34). 이웃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자기 생명을 위해서는 크게 소리치지 않고 조용히 기도하며 주님께 맡겼습니다. 그러나 분노하며 소리치는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스데반은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57절에 군중들이 “큰 소리를 질렀다”와 같은 말입니다. 그들의 분노의 소리를 감싸는 사랑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à 예수님의 성령 안에서 스데반과 같이 기도합시다. 우리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문제 우리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믿음으로 맡깁시다. 가족과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는 간절히 부르짖읍시다.
3)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소서” 이 기도는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스데반을 죽이고 있는 그들은 큰 죄를 짓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면 큰 심판을 당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나올 때 예수님께서 용서하십니다. 은혜와 용서의 하나님을 아는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했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기도를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평소에 그는 자기에게 고통을 준 사람을 위해 사랑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à 우리도 평소에 이렇게 기도합시다. 우리에게 죄를 짓고 피해를 준 사람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예수님께 기도합시다. 그러면 더 큰 피해를 당해도 분노하지 않고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스데반은 돌에 맞아 정신이 혼돈한데도 참으로 바른 기도를 드립니다. “성령님이 충만하여”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주 예수께” 기도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로 아들 하나님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로마서 8:26은 말합니다.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사람의 말이 아닌)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삼위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을 기쁘게 받아들여 주십니다.
3)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하면서 하늘로 들어간 스데반
1) 스데반의 두 개의 기도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기도와 같은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쓴 누가는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올리신 두 개의 기도를 전해 줍니다.
누가복음 23:46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맡겨드립니다.”
눅 23:34, 아버지 그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드린 기도를 스데반은 주 예수님께 드립니다.
2) 스데반은 예수님과 더 비슷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회당에서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할 때 이미 그의 얼굴은 천사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6:15). 그리스도깨서 가신 고난의 죽음의 길을 따라가면서 그는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광 가운데 그의 영혼은 삼위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로 들어 가서 영원한 행복을 누립니다.
à 우리도 복음을 증거하다가 고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말씀을 전하고 순종하며 살다가 우리의 고난이 커 집니다. 고난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은 우리를 주님과 같이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시킵니다. 우리 삶을 주님께 맡기고 산다면, 주님처럼 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고난이 클수록 축복이 됩니다.
4) 사랑의 기도의 열매
하늘에 서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스데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 주동자였던 청년 사울(바울)을(58절) 예수님께서 복음 전도자로 선택하셨습니다. 나중에 바울은 자기가 스데반을 죽인 것을 기억하며 회개했습니다(행 22:22, 26:10). 바울은 자기가 스데반을 죽인 것을 계속 마음에 기억했습니다. 스데반처럼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스데반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증거하고 복음을 위해 살 때, 우리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3. 고난 가운데서 말씀으로 삼위 하나님을 믿고 굳게 섭시다.
스데반이 경험한 삼위 하나님의 복은 우리 모든 성도가 누리는 복입니다.
1) 사도 요한: 하늘이 열리고 성령님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을 봄
(요한계시록 4:1, 2, 5:6)
요한계시록 4장에서 사도 요한도 이 복을 받았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다가 섬에 추방되어 있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삼위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4:1,2,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보좌가 놓여 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보좌 위에 앉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5:5에서 “한 어린 양이 섰는데”예수님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도 요한도 성령님 안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보좌 우편에 서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삼위 일체 하나님을 보는 것이 요한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2) 모든 성도는 이 땅에서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죽은 후에는 더 가까이
스데반이나 요한은 모든 교회를 위해 삼위 하나님을 보았고 말씀으로 기록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는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일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스데반이나 사도 요한 보다 훨씬 더 하나님을 압니다.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을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성령님께서는 예배에서 말씀을 듣게 하시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십니다. 또 우리는 이 땅의 수고를 끝낸 후에는 모두, 스데반이 본 그 영광스런 삼위 하나님께 더 가까이 있을 것입니다.
3)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아 있는 우리
우리는 이 땅의 생명이 끝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천국으로 환영해 주심을 압니다. 그런데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들어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2:4-6은 말합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오직 우리에 대한 사랑의 동기 때문에 우리를 살리셨고 하늘에 앉혀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셨고 하늘의 보좌에 앉아서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하늘에 앉아서 영광 중에 다스리게 하십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이 놀라운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경 말씀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일에 반드시 고난이 있습니다. 그 고난 가운데 하늘을 바라보며 주 예수님의 도움을 의지하며 살아갑시다.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우리의 구원을 위해 협력하시는 분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평소에도 기도합시다. “내 영혼을 맡깁니다. 내 영혼을 받아 주소서” 믿음으로 기도합시다. 나에게 힘든 일, 고통을 주는 사람에게 평소에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그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소서.” 그러면 더 큰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과 사랑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삼위 하나님으로 배우고, 삶에서 삼위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위로 넘치기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