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고장 강릉(江陵)
7. 강동면(江東面)<2>
정동진 해수욕장 / 리조트 내 조각공원 / 해안단구(海岸段丘)
해안선을 따라 북쪽에서부터 내려오면서 안인 해수욕장, 등명해수욕장, 고성목 해수욕장, 정동진 해수욕장이 잇달아 있고 어선들이 들어오는 안인항(安仁港), 정동진항(正東津港) 그리고 바다부채길 남쪽 종점에는 심곡항(深谷港)도 있다.
이곳 바다부채길은 동해안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기막힌 산책길이다.
정동진(正東津)이라는 지명은 조선 시대에 한양 경복궁(景福宮)의 정(正) 동쪽에 있는 바닷가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는데 이곳 해변은 해안단구가 발달해 있는 곳으로 유명하여 이곳을 ‘강릉정동진해안단구(江陵正東津海岸段丘)’라고 하며 천연기념물 제437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구(段丘, terrace)는 지질학적으로 지층이 계단 모양으로 겹쳐있는 지형을 말한다.
정동진(正東津)은 또 하나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정동진역 / 통일공원의 북한잠수함
1996년 9월, 북한은 잠수함에 특수훈련을 받은 무장공비 25명을 태우고 정동진 부근으로 침투하다 암초(暗礁)에 잠수함이 좌초(坐礁)되자 잠수함은 버리고 산속으로 도주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특수부대원들을 동원하여 즉각 소탕 작전에 나서지만 1명 생포, 11명 사살, 그리고 11명은 자살(대장이 스스로 사살했다고 함)하고 나머지 2명은 도주한다.
우리 국군은 강원도 인제까지 추격하여 마침내 모두 사살(射殺)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우리 국군도 손실이 커서 국군 11명, 민간이 4명이 사망했고 부상(負傷)을 당한 군인도 많았다고 한다.
무장공비가 정동진 해안에 침투한 후 사건이 종료되기까지 총 49일이 소모되었다.
이곳 해변에는 통일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1996년 이곳 해안으로 침투하다 암초에 좌초되어 나포된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이 전시되어 있다. 정동진역(正東津驛)은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북(Guinness Book)에 올라 있어 재미있는데 철길 바로 앞이 바다이다.
정동진 해안에는 산머리에 거대한 관광 크루즈가 올려져 있고 해변에도 바위 위에 조금 작은 배가 올려져 있는 멋진 풍경이 장관인데 이것은 관광리조트 시설로 리조트 안에는 조각공원도 있다.
괘방산 등명 락가사 일주문 / 대웅전과 등명사지오층석탑(燈明寺址五層石塔)
정동진리 괘방산(掛膀山) 중턱에 있는 등명락가사(燈明洛迦寺)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慈裝律師)가 처음 세워서 수다사(水多寺)라고 했는데 고려 시대에 중창하여 등명사(燈明寺)로 바뀌지만, 조선조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폐사되었다가 1957년 암자를 지어 낙가사(洛迦寺)로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1980년 중창불사(重創佛事)를 시작하여 현 등명락가사로 다시 태어난, 우여곡절이 많은 사찰이다.
사찰 경내에는 강원도 시도유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된 등명사지오층석탑(燈明寺址五層石塔)이 있고 뒤편 언덕 밑에는 감로수(甘露水)라는 샘이 있는데 온갖 질병에 효험이 있다고 소문이 났다.
하시동 고분군 / 고분 근접 관찰 / 언별리 군선천의 난초석(蘭草石)
산성우리(山城隅里)는 삼한 시대 성곽의 흔적이 보이는 곳으로, 산성(山城)의 한쪽 모퉁이(隅)의 동네라는 의미인데 이곳은 삼한 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삼한성지(三韓城址)의 흔적이 남아있다. 또 바닷가로 나가면 하시동고분군(下詩洞古墳群)이 있는데 삼한 시대의 무덤으로 확인되어 강원도 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었다. 군선천(群仙川)은 우리나라에서 난초석(蘭草石)이 발견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 밖에, 괘방산(掛膀山)은 과거에 급제하면 두루마기에 이름을 써서 방을 붙여 고을 사람들에게 알렸다(掛榜)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강릉시와 접경에 있는 오리똘, 혹은 월호평(月呼坪)이라 부르는 곳은 강릉비행장 옆의 제법 넓은 벌판인데 마을 가운데 오리를 올려놓은 솟대(蘇塗)가 있어 오리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또 마을 부잣집 여종 이름이 월(月)이였는데 뜰에 나가 일을 할 때 주인이 담장 밖으로 목을 내밀고,
‘월아~, 월아~’하고 맨날 불러대서 월호평(月呼坪)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