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쓰여진 글들을 모은 것이 이 책이다.
핵심은 이렇다.
팬데믹이 우리의 일상을 흐트러 놓았다. 이 바이러스를 빨리 제거하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 일상이 여전히 '구조적 차별과 착취의' 삶이라면?
지젝은 말한다. 팬데믹 이전에도 또한 이후에도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생존을 이어가는 존재들이 있다고. 그들의 삶이 변화하지 않는 한 팬데믹이 이야기하는 일상은 허구라고. 하여 마스크를 벗는 자유를 원하노라 하고 주장하는 자유주의와 이에 동조하여 펼치는 트럼프식 포퓰리즘을 비판한다. 또한 중국식 전체주의적 통제도 반대한다. 그 곳에는 인종차별주의와 지구적 양극화를 용인하는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인민의 자발성이 전무하다는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백신 국가주의도 비판한다. 팬데믹이 전 세계적 차원에서 발생되고 번지는 상황에서 자국민만 우선 옹호하겠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제 3세계 국가에서 코로나 변이가 발생하여 그 것이 결국 선진국 국가로 유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백신정책의 세계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팬데믹은 우연의 사건인가? 인류가 자초한 대재앙의 시작인가? 그건 모른다. 다만 이 시기에도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고, 인종차별과 젠더 착취는 여전하다는 거고, 세상은 끊임없이 테러가 일어나고 전쟁을 일삼는다는 거다. 하여 팬데믹은 일종의 신호고 경보고 전조증상이다. 인류가 이 사태를 맞이하여 새로운 연대기를 써야 한다고 지젝은 주장한다.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러나 보다 일찍 써 내려가야 할 연대기를 팬데믹으로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는 의미에서 '잃어버린 시간'이란 용어를 부여한 것이 아닐까.
사우디 아라비아 왕세자 빈살만이 한국에 왔다. 소공동 롯데 호텔 객싷 200개를 동시에 예약했단다. 그의 재산이 2800조이고. 그가 추진하는 네옴시티 건설 비용이 600조란다. 한국 재벌들은 두 손 모으고 공손하게 줄을 서 그를 만났다. 정부는 제 2의 중동 특수라 기대하고, 언론은 이를 크게 홍보했다. 사우디는 미국보다 더한 경제 불평등 국가다. 미스터 에브리씽이라는 사람이 인정받고 존경받고 대우받는 세상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기사를 접하며 씁슬한 맘 금할 길이 없었다.
중국은 대만을 무력으로 접수하려 하고, 러시아는 자국이 공격당하면 핵으로 응하겠다고 하고, 미국은 인종주의와 자국우선주의로 선회하고 있다. 한반도는 종속변수가 되어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휩쓰릴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 사회의 핵심과 저력은 시민사회이다. 경제가 어렵고 사회가 어수선할 때일 수록 소외된 계층을 돌보고, 목숨을 내걸고 일하는 현장이 적도록 하고, 사회적 억압과 차별을 반대하는 데 힘을 써야 한다고 본다. 우리라도 애써야 된다. 그러한 노력이 수반될 때 각자 도생의 이 세상에서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잃어버린 연대기를 읽으며 머릿 속에 떠오른 문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그 문장에 전봉준과 윤상원과 이름없이 세상의 아름다운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시민활동가들이 오버랩된다. 이 세상의 숨은 활동가들의 건투를 빈다. 건강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