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캔디스 버겐(Candice Bergen)의 별명은 ‘할리우드 지성파 넘버 원’이었다. 사진작가와 에세이스트로 유명잡지에 기고까지 한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비록 졸업은 못했지만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미술사와 회화를 전공한 재원이었다. 라이프지와 보거, 피플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시시한 영화에 출연하면서 별다른 작품을 남기지 못해 명배우의 반열에 들지 못한 아까운 배우이다. 아무튼 그녀는 젊은 시절에 역사적 배경을 지닌 문제작들에 출연하여 할리우드에 모처럼 ‘성격배우’ 한 사람이 탄생하나 보다 기대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만 B급 코미디물로 물러선다.
그녀는 1946년 5월 9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베버리힐즈에서 태어났다. 유명한 복화술사 코미디언 에드가 버겐의 딸로 열한 살에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연예계가 싫어 열네 살 때 자청하여 스위스로 홀로 유학을 떠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왔으니 어렸을 때부터 배짱이 두둑했다고 볼 수 있다. 대학 재학 중 아르바이트로 모델을 하고 있었는데 시드니 루멧 감독의 눈에 띄어 본의 아니게 1966년에 <그룹>이란 영화로 데뷔하였다.
그녀 생애 최고의 영화는 실질적인 데뷔작인 <전함 산파블로>일 것이다. 이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감독한 로버트 와이즈의 작품인데 아카데미상 후보에 무려 10개를 올렸지만 1개도 수상하지 못해서 이 방면의 기록을 세웠다(애석상?). 인터넷 자료에 나와 있는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26년 중국 상해의 조계에 사는 미국인들이 위협을 받게 되자 미국 해병대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양자강을 통해 내륙 깊숙이 전함을 파견한다. 1927년은 중국 역사에서 장개석이 상해에서 반공 쿠데타를 일으키고 남경에 국민정부를 수립한 해이다. 장개석이 공산당 배격을 선언하자 공산당은 남창 등지에서 봉기를 일으키고 모택동이 정강산에 혁명근거지를 건설한다. 미군들은 점차 커져가는 중국 민중의 민족주의와 반외세 기운 때문에 행진 도중 오물 세례를 받는 등 수모를 당한다. 그 와중에 수병 스티브 맥퀸과 교사 캔디스 버겐은 서로 만나 사랑을 한다. 하지만 캔디스 버겐이 선교를 위해 더 오지로 들어가는 바람에 못 만나게 된다. 그러다가 그 지역이 중국인들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산파블로 호는 그곳으로 급히 파견된다. 마을 도처에서 약탈과 살육이 진행되고 있었고 외국인을 도와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캔디스 버겐을 돕던 하인이 처형된다. 스티브 맥퀸은 중국인의 일에는 개입하지 말라는 상관의 명령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데 도움을 요청하는 하인은 군중의 테러에 온몸에 칼자국이 나고, 결국 스티브 맥퀸이 총으로 고통을 거두어준다. 캔디스 버겐을 구하기 위해 마을로 진격한 미군은 수모를 참으며 나아간다. 그러다 혁명군의 거사로 전투를 벌이게 된다. 스티브 맥퀸은 캔디스 버겐을 구한 후 장렬하게 전사한다.
영화는 대단히 감동적이며 충격적이기도 했다. 1류 감독의 솜씨가 멋지게 발휘되었는데 아카데미상을 하나도 못 탔으니 많은 미국인의 아쉬움을 샀을 것이다. 인터넷 영화 소개의 평점 선택을 보니 4명이 모두 10.00점 만점을 주었다.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영화평론가 모씨가 한 말인데, 미국의 제국주의적 시각에 대한 지적이다. “우리가 아는 중국 대륙과 인민은 이런 영화들 때문에 피에 굶주린 도적과 공산당원만 사는 아프리카만도 못한 오지로 소개되었다. 침략은 서양제국이 했는데 영화에서는 오히려 자기 나라를 지키려는 중국 사람들을 무지막지한 도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열강의 침략에 저항한 중국 민중을 폭도로 그리고, 미군을 정의의 사도로 그린 미국의 시각은 이 영화가 제작된 1966년이나 <허트 로크(The Hurt Locker)>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타는 2009년이나 조금도 달라진 바가 없다. 이 영화의 원제는 미해군 수병으로 나오는 맥퀸이 타고 있는 전함의 이름이다. 영어로 ‘샌드 페블스 호’인데, 이탈리아 개봉명인 ‘San Pablo’가 그대로 우리말 제목 ‘산파블로’로 이어졌다.
아무튼 캔디스 버겐은 딱 1편의 영화에 출연한 이후 명감독 로버트 와이즈에 발탁되어 대작 <전함 산파블로>의 주인공 역을 맡는다. 4년 뒤인 1970년에 <솔저 블루(Soldier Blue)>에 출연하는데, 이 영화 또한 그녀의 대표작으로 삼을 만한 영화다. 인디언 학살의 참상을 그린 이 영화에서도 그녀는 ‘역사극’의 주인공이 된다.
1972년에 찰리 채플린이 아카데미 특별상을 타러 미국에 오자 라이프지는 그녀에게 사진 촬영과 인터뷰를 부탁하여 그녀는 글 솜씨와 사진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1979년 <Starting over>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면서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Getting Straight> <Carnal Knowledge>로 관객과 평단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TV 코미디물 시리즈 <머피 브라운>에서 타이틀 롤로 열연, 5번의 에미상과 2번의 골든 글로브상을 받았다.
이외의 <바람과 라이언>(1975), <간디>(1982)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하지만 TV 시리즈 아서왕(Arthur the King, 1985) 이후 하향세를 보이며 이렇다 할 영화에 나오지 않고 있다. 결혼과 이혼에 대해서는 알려진 정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