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이 내리네
오후 내내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면 전봇대 위에 조금씩 눈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한 줄의 문장도 완성시키지 못했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얹고 막연하게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근근이 한 줄을 끌어 올리고나면 얼마 되지 않아 그것은 다시 썩은 동아줄처럼 끊겨져 나갔다. 무력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끊임없이 반짝거리는 새파란 커서가 부담스러우면서도 나는 차마 컴퓨터를 꺼버리지 못한다. 대신 눈길이 창 너머에 가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건너편 아파트의 모서리에 기대듯 서 있는 전신주에는 참새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그 뒤에 막막한 얼굴처럼 부옇게 떠 있던 하늘은 점점 검은 빛으로 가라앉아왔다. 집에서 부업을 하는 다른 여자들처럼 구슬이라도 꿰었더라면, 시간이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 환치되어 굳어지는 것을 확인이라도 할 수 있었으련만. 나는 속절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캄캄한 네모상자 안에 불빛만 들어오면, 그래서 방정맞도록 쉬임없이 작은 몸을 굴리고 있는 커서만 바라보면 머릿속이 먹먹해져 왔다. 그렇다고 해서 쓰고 싶은 것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새벽에 문득 잠이 깨어 거무레한 천장을 바라보면 거기에는 슬프고도 적막한 말들이 서로의 작은 몸을 껴안고 웅크리고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길을 가다가도 미처 풀지 못한 덩어리 하나가 뜨겁게 가슴을 달구어오곤 했다. 그러나 귀신들린 여자처럼 그 허허롭고도 뜨거운 감정이 비좁은 속에서만 와글거릴 뿐, 그것이 어떻게 바깥으로 나와야 할지, 한 줄의 빛나는 견사처럼 올올이 풀려나와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채로 남아 있는 것이다. 대책없이 늘어져 있는 시간 속을 빠져나와 저녁이나마 제대로 차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나 나는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안방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순간 나는 박부장의 얼굴을 떠올리고 다시 난감해졌다. 서울 장애인 협회 복지관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에 나와 달라는 그의 주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여전히 아니오, 였다. 그러나 한 프로그램을 맡았다 하면 누구보다 강력하게 밀어붙이기로 소문난 박부장의 주문도 쉽게 철회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받기 위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지관의 청탁에 대해서는 남편에게도 아직 말하지 않은 상태였다. “여보세요.”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종일 잠을 자는 것으로 피곤을 녹이고 있던 남편이 일어나 먼저 전화를 받았다. 등 뒤에 진득하게 붙어 있는 잠을 떨구기 위해서였을까, 그는 수화기를 들고도 한참을 어릿대다가 천천히 응답을 했다. “여보세요.” 여전히 졸린 음성이었다. “네?” 남편은 문가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보며 한 손으로 눈을 비볐다. 박부장의 전화라면 남편은 그의 제의에 대해서, 또 그것을 거절하고 있는 나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나는 막연하게 생각을 궁글리는 중이었다. “전화를 잘못 거셨는데요.” 남편이 수화기를 내려놓는 것을 보면서 나는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부딪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함께 꼭 해야 할 일을 처리하지 못한 미진함이 아울러 남았기 때문이었다. 박부장은 은근히 사람을 옭아매고 있었다.
남편이 윗도리를 걸치더니 차에 나가봐야겠다고 부스럭거리며 신발을 신었다. 나도 그제야 작은 방으로 돌아와 완전하게 컴퓨터 전원을 뽑아버렸다. 그리고 그의 뒤를 주춤주춤 따라 나갔다.
눈은 어느새 소리도 없이 멈추어 있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전에 그쳤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눈은 무심코 사물을 향해 있으면서도 실상은 아무것도 보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그 뿐 아니라 사람들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한복판에 있을 때도 나는 멍하니 그것들에서 차단되어 있기가 일쑤였다. 바로 옆에서 하는 말도 나한테 정식으로 하는 말이 아닐 때면 그냥 스르르 흘려보냈다. 으레 같은 자리에서 들었으려니 하고 상대방이 다음 말을 물어오거나 진행해나갈 경우에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일 때가 태반이었다. 그렇게 듣지 않는 버릇은 보지 않는 그것보다 더 오래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분히 퇴행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 버릇은 나의 작은 얼굴을 점점 더 좁게 오그려뜨리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삭막하게 벽을 만들어 간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눈과 귀를 닫아간다. 하늘에서 내린 눈은 앙상한 가지들을 얌전하게 덮고 있었고, 어둠은 매일의 일상처럼 차분하게 제 자리를 찾아 스며들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냉랭한 공기는 차갑게 콧등을 흘러내린다. 이따금 라이트를 켠 승용차들이 미끄러지듯 옆으로 지나갈 뿐, 콘크리트 건물을 두르고 있는 일요일 밤의 정적은 완강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고요함과는 상관없이 어디에선가 아이들의 함성이 차가운 기류를 관통하며 흘러들어 왔다. 나는 그 소리를 쫓아 멀리 이마를 들었다. 아파트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터에서 희끄무레한 그림자들이 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건물에 가려 한 두 명 같기도 하다가 갑자기 여러 명의 아이들로 겹쳐져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짐승 같이 지면이나 벽에 바싹 붙어 있기도 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뛰고 구르고 쉬임없이 팔을 종횡으로 휘둘렀다. 그때마다 눈 떨어지는 소리가 후드득 들린다. 차갑고 냉정한 겨울의 자연 앞에서 결코 굴복되지 않은, 작지만 끈질긴 생명들이 일으키는 유쾌한 반란처럼 보인다. 나는 미끄러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눈이 다져지지 않은 갓길을 택해 발을 옮겼다. 거기에는 불규칙적이고 파행적인 선들이 이리저리 그어져 있다. 선이 처음 시작하는 곳에서는 그나마 약간의 무게가 실린 듯 조금 옴폭하게 패여 있다가 끝으로 갈수록 그것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러나 조금 앞에서 눈은 다시 패이고 떨리듯이 희미하게 그어진 선은 계속하여 지속된다. 남편은 온몸을 앞꿈치에만 의지하여 발을 끌듯이 걸었다. 나는 희미한 그 선 위에 다시 나의 발자국을 만들며 그에게로 간다. 작은 발 두 개와 그 양쪽에 동그란 도장을 찍으며. 우리 뒤에 오는 사람이 있어서 이 발자국을 본다면 이건 도대체 무엇이 만든 흔적이란 말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차안에 앉아 있었다. 차는 완벽하게 하얀 눈을 뒤집어쓴 채 뒤꽁무니 양쪽에만 진홍색 불빛이 들어와 있다. 시동을 걸기 전에 눈을 쓸어내려야 깨끗하게 된다고 전에도 여러 차례 말했는데 남편은 그냥 앞질러 나오더니 엔진을 켜놓은 것이다. 나는 괜히 마음이 바빠졌다. 순서대로 한다면 차 옆구리를 대강 털어낸 다음 차체에 몸을 바짝 붙여 고정시키고 나서 지붕부터 깨끗하게 빗자루로 쓸어내야 한다. 그리고 뒷유리창을 쓸어내고 다음에 앞유리창과 범퍼를 닦는다. 마지막으로 차체 옆구리를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쓸어내고 바퀴의 알루미늄 휠까지 털어내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을 정확히 해 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시동이 걸리고 나면 후드의 눈이 열에 녹아서 엉겨붙기 때문에 산뜻하게 쓸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것부터 빨리 해치워야 된다는 강박감과, 더구나 오늘처럼 남편이 차 안에 있는 날이면 유리창도 빨리 쓸어내려 그의 시야를 터주어야 한다는 조급증 때문에 괜한 헛손질까지 하게 된다. 매사에 침착한 남편에 비해서 그것은 나만의 초조감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나는 번번이 그런 감정에 휘둘리고 마는 것이었다. 손가락에 보소소하니 낱알이 느껴질 정도의 싸락눈은 부드러운 빗자루 아래에서 잘 쓸려 내려갔다. 그러나 뒷유리를 먼저 털었다가 지붕을 쓰는 바람에 흘러내린 눈이 다시 유리를 덮었다.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와이퍼로 먼저 밀어내긴 했지만 미처 닿지 않은 윗부분에는 소복이 쌓인 눈이 조그만 삼각주를 이루고 있었다. 빗자루 끝으로 그걸 털어내다가 창 전체는 다시 뿌예지고 말았다. 깨끗하게 쓸어낸 난 다음에도 빗자루가 다시 지붕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앞뒤의 창은 다시 눈으로 얼룩이 졌다. 이쪽저쪽 들쑤셔가며 하는 비질로 똑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다시 반복해야 했지만 나는 정성을 다해 비질을 거듭했다. 며칠 전부터 노상주차를 하게 되어 두텁게 앉은 먼지까지 한꺼번에 털어낼 요량인 것이다. 이년 전 회사 바로 앞에 대형 지하주차장이 생겨 남편은 무척 좋아라 했었다. 어떻게든지 살아가도록 돌보시는구나, 감격에 찬 목소리로 오랜만에 하나님까지 들먹여가며 진심으로 감사했었다. 그런데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철로가 끊어지고 육교가 내려앉으면서 정부는 사고방지를 위한 부실공사의 근원적인 퇴치라는 슬로건을 대대적으로 내걸었고, 그 바람에 지은 지 이년밖에 되지 않은 최첨단 컴퓨터 시스템이라던 지하주차장도 덩달아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그런 일련의 사건 끝에 남편의 차는 다시 사무실 앞의 비좁은 골목으로 밀려 나고 말았다. 지하 오층까지 빽빽하게 들어찼던 몇 백대의 차들이 일시에 다 길가로 쫓겨나고 말았으니 앞으론 어디에다 차를 세워야 할지, 남편은 짧은 밤잠까지 놓쳐가며 고민을 했었다. 거기에서 좀 떨어진 곳이라면 경쟁이 심하긴 해도 다른 주차장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남편에게 거리가 먼 곳은 공짜로 준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가 해낼 수 있는 보행의 범위는 기껏 일이백 미터를 넘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출근 시간을 더욱 앞당기는 것밖에 없었다. 이러다간 남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출근을 해야겠구만. 그는 허허롭게 웃었다. 지금도 구태여 밖으로 나와 시동을 건 것은 내일 새벽에 차를 쉽게 뺄 수 있는 곳으로 옮겨놓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이 아직 깊은 잠에 잠겨 있는 깜깜한 새벽에 밖으로 나와 보면 차들은 밤에 수많은 새끼들을 쳐놓은 것 같았다. 주차선 안은 물론이고 뒤에도 이중 삼중으로 얽혀 있어서 발 하나 들여놓기도 쉽지 않았다. 어쩌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지 않은 차가 뒤에 버텨 있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망하는 날이었다. 그런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남편은 비좁은 길가에다 세로로 미리 세워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얀 알갱이가 드문드문 드러난 지붕의 눈을 마지막으로 털고 있을 때 맞은편 현관에서 나오던 사람이 이쪽을 쳐다보았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보면 약간 오른쪽으로 비켜나서 마주보이는 삼층집 남자였다. 나는 그 집의 외형에 관한 것이라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편이다. 구십 킬로는 족히 넘을 만큼 덩치가 좋은 그 남자는 숱이 많은 구레나룻을 하고 있었고 차는 검은 캐피탈로, 비교적 자유로운 출퇴근을 하고 있는 걸 보아 자영업을 하는 것 같았다. 종일 차가 움직이지 않는 날도 자주 있는 편이었다. 그의 부인은 얼굴이 희고 키가 훤칠한 미인형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머리형을 자주 바꾸고는 했다. 리본을 꽂은 파머머리였는데 어느새 단발머리로 바뀌었는가 하면, 어떤 날은 아침에 동글동글 구워져 있던 머리가 저녁에 빨래를 걷으면서 내다보면 그새 직모로 펴져 있기도 했다. 그쪽 아파트 입구에는 다른 곳과는 달리 몇개의 의자가 유리문에 기대어져 있었는데 여자는 항상 바깥쪽 의자에 나와 앉아 있곤 했다. 그 때마다 기다란 다리를 앞으로 쭉 뻗거나 모로 꼬고 앉아, 손톱소제를 하느라고 손을 좌우로 열심히 움직이기도 하고 뾰족한 입을 앞으로 내밀어 손톱 사이의 먼지를 훅훅 불기도 했다. 짧은 반바지를 입은 날은 아예 의자 위에 올라앉아 무릎을 세우거나 양반다리로 반듯하게 앉아 있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하얀 허벅지가 눈부시게 드러났다. 부인치고는 군살이 없는 그 여자의 미끈한 실루엣에 눈이 가면서도, 그런데도 어딘지 모르게 밉살스러웠다. 아마 몸매에 너무 자신있어 하는 그녀의 돌출된 행동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턱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녀의 다리에 대한 나의 시샘 때문이었다. 인간의 몸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어디 한 군데 놀랍지 않은 곳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나에게는 다리라는 물건이 훨씬 더 압도적인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다리에 대하여 어찌할 수 없는 나의 천부적인 컴플렉스 때문이 아닐까라고 누가 말해 준다면 나는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시 다리에 관한 한, 비틀린 왜곡이라기보다는 순전한 아름다움에 대한 절실한 인식을 가지게 된 것뿐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어쨌든 살아 있는 다리란 어떤 의미에서든 가장 역동성을 갖춘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언제라도 씩씩하게 앞을 향해 나아가고, 때로는 멈추고, 때로는 돌아가면서, 두터운 삶의 무게를 기꺼이 두 발 위에 올려놓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마음먹은 대로 아니, 마음 이전에 먼저 뻗어나고 휘어지는 전자동全自動이면서도 기름 한 방울 따로 들어가는 법 없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또는 아래에서 위에까지 가없는 에너지가 쭉쭉 실려가는 것을 보면 놀라움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발끝을 함부로 벌리고서 터벅터벅 걷는 팔자걸음이나 엉덩이를 뒤로 쑥 빼고 되는대로 발자국을 만들어버리는 소위 발걸음의 자유주의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다. 인간의 몸을 직선으로 관통하여 흘러내리는 경쾌한 힘과 유연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다리처럼 적나라한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삼층 남자는 두 발짝쯤 옮겨놓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미처 깨닫지 못하던 일이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불빛이 희미한데도 나는 그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대체적으로 큰 편에 속하는 머리통을 이쪽으로 기울여 집어삼키듯이 나의 아래 위 모습을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차안에 있는 남편한테로 호기심어린 눈길을 밀어넣었다. 그 순간은 극히 짧았다. 아무리 길어봤자 이, 삼초를 넘기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강열한 빛의 도장에 온몸이 콱 눌린 것처럼 숨이 막혀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 남자의 길다란 부인과 별 특징 없는 여자 아이 둘이 서로 엉겨서, 앞서 그가 나온 현관의 불빛을 뒤로 한 채 걸어나왔다. 이제 그 남자도 그들의 조금 앞에서 가던 길을 느릿하게 걸어갔다. 나는 갑자기 허공에서 떨어진 듯한 멍한 느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에게 일어난 강열한 파동이 그 남자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소심증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의기소침해졌다. 그 기분을 지워버리기 위해 나는 남자가 우리의 얼굴을 식별하고 나서 어떤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본래의 자세로 고개를 돌려 갔던가를 객관적으로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커다랗게 확대된 동공과 돌아서서 묵묵히 걸어가던 뒷모습만 있을 뿐이었다. 그의 키 큰 아내는 우리가 거기 있음을 일별하고는 휘파람을 불듯이 뾰족한 입을 앞으로 조금 더 내밀고 지나갔다. 아이들의 어깨에 걸쳐져 있는 그녀의 손에 힘이 조금 더 실린 것도 같았다. “아니, 바깥양반은 뭣하는 사람이길레 이렇게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일을 시킨대요?” 기름걸레를 들고 차에 매달려 있는 나를 볼 때마다 거의 외마디 소리를 지르다시피 하던 이웃 할머니도 뒤에 우리를 알고부터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거나 먼 산을 바라보며 지나가곤 했다. 언제나 한 아이는 등에 업고 한 아이는 옆에 걸리면서 허리가 아파 아유유, 아유유 앓고 다니던 할머니였다. “추울 텐데 이제 그만 들어가” 남편은 다 탄 담뱃불을 손가락으로 비벼 까만 재를 털어버리고 조그맣게 남은 꽁초를 재떨이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차 안에서는 쇼팽의 녹턴이 흘러나왔다. 적어도 남편은 이 곡을 삼백예순다섯 번 이상은 들었을 것이다. 애잔하게 울리는 이 선율을 들을 때마다 누군가가 자기의 영혼을 쓰다듬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좋은 밤이죠?” 나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남편을 차창을 통해 들여다보며 팔짱을 끼고 말했다. 팔 두 개가 서로 교차하여 왼쪽 겨드랑이 아래로 나온 오른손에서는 눈 묻은 빗자루 끝이 대롱거렸다. 이만하면 쾌적한 저녁이다. 남편은 음악을 들으며 평화롭게 차안에 앉아 있고 아내는 사랑하는 그의 곁에 서 있다. 세상은 축복이라도 받은 양 온통 은가루를 뒤집어쓰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나무 끝에는 순전한 고요함이 그대로 드리워져 있다. 나는 그걸 과시라도 하는 냥 겨드랑이 아래의 두 손가락을 자꾸 흔들었다. 그때마다 손끝에 달려있는 빗자루가 흔들렸다. 남편은 뒤꽁무니에 후진하는 하얀 불빛을 넣었다. 그 때 안쪽에서 검은 차한 대가 빠져 나왔으므로 나는 차체에 손바닥을 두드려 막았다. 검은 세단은 아주 천천히, 아교풀이 붙은 땅바닥을 통과하듯이 그렇게 서서히 지나갔다. 다시 차가 움직일 때에 갑자기 오른편 차들 사이에서 꼬마 두 명이 튀어나왔다. 끝이 오므라진 장방형의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 손에는 작은 눈뭉치가 들려 있었다. 밤놀이를 즐기기에는 지나치게 어린 아이들이었다. 미처 차를 세우기도 전에 꼬마들은 다시 차 뒤로 사라져버렸다. “나 혼자 세우고 들어 갈테니 먼저 들어가.” 남편은 다시 한 번 말했지만 나는 언제 다시 팽이처럼 튀어나올지 모르는 꼬마들을 지키느라 차 뒤에 가서 섰다. 그러고 보니 갓길뿐 아니라 주차선 안까지도 많이 비어 있었다. 새하얀 세상에 비교되어 더욱 까맣게 보이는 그 자리는 어떤 거인이 흘려놓은 눈물자국 같다. 그 많은 차들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슥한 저녁까지도 눈이 내리고 있었으므로 까만 흔적을 남긴 차들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시간이라면 교회 저녁예배를 참석하든지 저녁외식을 하기에 맞춤한 때일 것이다. 나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우리가 함께 외출을 한 것은 언제쯤이었는가. 하늘에는 캄캄한 장막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남편이 갓길에 차를 세우는 동안 나는 먼저 왔던 길을 도로 짚어왔다. 아이들은 다시 어둠의 갈피 속으로 숨어버리고 주변은 조용했다. 사람들은 즐겁게 외식을 하거나 팔짱을 끼고 교회로 가는 일 이외에도 출타해야 할 많은 일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갑자기 응급실로 헐레벌떡 달려간다든지, 장례식에 가 밤을 새우는 일 말이다. 그뿐 아니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거나, 가고 싶지 않은 장소에 가야 할 일도 많을 것이다. 우리는 거의 대부분, 어쩌면 완벽하게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질구레하거나 때로는 중대한 그런 의무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홀가분하게. 나는 입술을 벌려 홀가분이라는 말을 즐거운 느낌이 나도록 발음해보고 싶었다. 홀, 가, 그때 두툼한 옷을 입은 사람이 갑자기 길을 가로막았다. “아니, 밤에 웬 빗자루예요?” 밝게 튀어오르는 그 음성이 너무나 윤이 나서 순간 나는 미끄러질뻔 했다. 아파트 상가의 야채가게 여자였다. 그 옆에는 돕바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그녀의 남편이 약간 쑥스러워하는 웃음을 달고 서 있었다. 그녀의 한 손은 남편의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채로였다. “밤중에 무슨 빗자루예요?” 그녀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아니, 오늘 가게 안하셔요?” 나는 빗자루에 대한 대답 대신 되레 그녀의 가게에 대해서 물었다. “모처럼 눈 아니에요? 가게문은 일찌감치 닫았죠.” 그녀는 쾌활하게 말했다. “우린 지금 밤산책 가는 중이에요. 포장마차에서 술도 한 잔 할 거구요.” 그녀는 지금 으시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과장되게 고개를 까닥거렸다. 부식꺼리를 사고팔면서 잠깐 만나는 사이이지만 평소 나는 그녀를 좋아하는 편이다. 너무 자기표현을 하는 편이라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 내용이 늘 소박하고 솔직해서 언제나 웃음을 짓게 하는 여자였다. 지금 같은 경우도 머뭇거리지 않고, 마치 반짝이는 종이별이라도 뿌리듯이 사이좋은 부부애를 과시해주는 바람에 나는 오히려 부담이 되지 않았다. 많은 경우는 나 같은 사람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약간 주저하는 편이고 그러면 나는 눈칫밥 먹고 자란 아이처럼 그들의 심정을 재빨리 알아채고는 우울해지곤 했다. 현관문을 열고 막 들어서는데 방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드디어, 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아예 의자에 앉아버렸다. 그리고 윗몸을 구부리고 젖은 신발을 손으로 벗겨냈다. 어차피 신발을 신고 들어가지 않는 한, 제 시간 안에 전화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나는 힘없이 헐렁거리는 한쪽 다리를 대신하여 버팀목이 되어주는 보조기도 천천히 벗겨냈다. 다리 길이만큼 길다란 스테인레스 보조기는 바깥공기에 전도되어 얼음처럼 차가왔다. 몸의 한 부분이면서도 언제까지나 익숙해지지 않는 물건이다. 이 일을 다 마칠 때까지도 전화벨은 그치지 않았다. 그제야 몸을 돌려 방안으로 들어갔다. 이토록 인내심 있게 반복되는 전화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고 소리치는 도덕적인 강박감과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가 함께 어울려드는 순간이었다. “집에 전화기가 몇 대요? 적어도 세 개 이상은 있어야 되지 않수? 움직이지 않아도 이쪽저쪽 아무데서나 손에 닿을 수 있도록 말이오. 그건 엄연히 장씨 문중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기본 예의에 속하실텐데.” 사전 인사 같은 건 깨끗이 생략하고 다짜고짜 튀어 나온 사람은 역시 박부장이었다. 오랫동안 그의 귓속에서 울렸을 신호음에도 불구하고 지치거나 짜증스러운 기색이라고는 없이 여전히 생동하는 목소리였다. 예전에 한동안 같은 직장에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장애인들을 누구나 ‘장씨 문중’이라고 불렀다. 그럼 남자건 여자건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애인’이겠네, 그러면 그는 더 좋아라고 목젖까지 열어제치고 껄껄껄 웃음을 쏟아냈다. “어때요? 생각해 보셨어요? 아니, 생각해보고 자시고 할 것이 어디 있어? 적임자인 오 선생이 마땅히 해 주셔야지. 당신 집에만 있더니 너무 소심해지는 것 아니오?” 박부장은 친근하다는 것을 미끼로 말 끄나풀을 마구 흔들어댔다. 그는 며칠 전부터 나한테 성인 장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나와서 장애인들끼리의 결혼에 관한 강의를 해달라고 조르는 중이었다. 그때 거절을 했는데도 다시한번 생각해 보라고 일방적으로 시간을 주더니 이렇게 다그치는 것이다. “박부장은 일요일도 일해요?” 나는 대답 대신 또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으로 본질에서 비켜났다. 아까는 빗자루의 용도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은 강의를 할 수 없는 그 이유에 대해서. 더 나아가서는 당신의 바깥양반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할머니에게까지. 도대체 나는 단순해지지가 않는 것이다. 심플, 단순성, 오래전부터 이런 말에 강렬하게 끌렸지만 나에게서 구현되는 말은 아니었다. 아잇적에는 싫어, 라는 짧은 한 마디로 여러 명이 하던 놀이를 단숨에 파기해버리고 돌아서는 아이를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어린 여자아이들은 참으로 쉽게 삐치고 쉽게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사학년 때였던가, 우리가 살던 소읍의 교육감 딸이 우리 반 반장일 때가 있었다. 머리에 꽃리본을 달아 길게 땋아내리고 주름이 잘 잡힌 치마와 눈이 부실 정도의 하얀 양말을 신고 다니던 아이였다. 어느 날 아침, 한 아이가 반장의 아버지 이름을 알고 있다고 말한 사건이 생겨났다. 교육감이라는 공직 때문에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던 이름이었다. 옆에 있던 다른 아이도 별 뜻 없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그 물음은 또 다른 아이에게로 이어졌다. 그런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반장아이는 가방을 싸들고 집으로 뛰어 가버린 것이다. 그 때에 남은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혼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축과 그것이 뭐가 잘못되었냐고 뻣대는 두 부류의 아이들로 나누어졌는데, 나는 이편도 저편도 아닌, 그 아이를 눈부시게 바라보고 있던 유일한 아이였다. 어쩌면 그토록 쉽고 간결하게 싫어, 라고 외칠 수 있는가? 그 아이는 이 사회와 세계에 대해서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언제나 아니오, 라고 당당하게 거부할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내 조건이 아무리 싫어도 싫어, 라고 외칠 수 없었다. 이미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으로 깊숙이 빠져 버렸음을 어린 나이에도 본능적으로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행사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지요. 오선생은 대답을 안해 주지요. 일요일이 아니라 내가 죽을 날이라도 일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박부장은 여전히 느물느물했다. “오 선생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싫으면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 주시면 돼요. 물론 실제적인 체험이 회원들에게 더 도움이 되겠지만.” 박부장은 오십보 백보 양보한다는 듯 그렇게 말했지만 그건 타의에 의해서 양보받을 문제가 아니었다. 그 자리라는 것이 저절로 나를 발가벗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두꺼운 코트 하나만 벗어도 족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누구의 강권도 아닌, 스스로의 사무침으로 마지막 속옷까지 다 벗고 말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장씨네 문중’ 사람들 앞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강박관념이 내 속에 깊이 숨어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어린 날 부모를 잃고 뿔뿔이 흩어졌던 형제들이 길거리에서 다시 만났을 때의 심정이 이러할 것인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시꺼매진 손으로 훔쳐낸 뺨의 눈물자국를 보고난 것 같은, 그러면서도 내 주머니는 홀홀 비어 있고, 데리고 가서 따뜻한 잠 한 번 재워 줄 방구들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박부장이 말한 것처럼 정말로 일반적인 이론이 필요한 것이라면 나보다는 강단에 선 교수나 현역에 있는 사회사업가가 훨씬 더 적합할 것이다. 그는 다시 덧붙여왔다. “회원들은 좋은 사례만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현실적인 실상을 알고 싶은 것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가볍지 않아요?” 그는 거절할 수밖에 없는 나의 속사정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이,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건 다름아닌 바로 그 문제라는 듯 낮아진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어느덧 그는 한껏 진지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빤히 알 수 있는 사실을 구태여 말로 할 필요가 어디 있어요?” 장애인끼리 살면, 더구나 우리 부부 같은 경우는 아이를 안아서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고, 남의 손이 아니면 형광등 하나 갈아끼울 수 없고, 다반사로 부딪치는 의식주의 자잘한 일들조차 한결같이 용기를 필요로 하고....... 그 따위의 뻔한 말들을 나는 차마 늘어놓을 수 없었다. “뻔한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보자는 거지요. 뻔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그건 죽은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살아 있는 동안은 뭔가를 위해 움직여야 하고 뭔가를 찾아내야 한다 이겁니다. 결실로 드러난 것이 미미해도 좋아요. 그렇지만 미미하다고 해서 없어도 좋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더구나 오선생은 실천하고 계시잖아요.” 박부장의 신념어린 어조 앞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은 옳은 말이었다. 문제가 따로 있는 건 아니었다. 끝이 들여다보이는 생활 속에서의 의미찾기, 그는는 나더러 실천하고 있지 않느냐고 했지만 이것이 과연 나에게 있는지, 더 나아가 우리 부부에게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해 나는 자신이 없었다. 박부장은 내가 이 강의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나는 더 이상 내 입장을 설명할 수 없어서 전화는 다시 내일을 기약하며 끊어졌다. 지이익, 지이익, 밖에서 들려오는 남편의 발소리에 아직도 전화기 옆에 붙어 있던 나는 화들짝 놀라서 방문 밖으로 뛰어 나갔다. 아래에 있는 바깥 출입문이 끼익하면서 열리고 계단 다섯 개를 올라오기 위해 붙잡은 그의 손아귀 밑에서 쇠창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재빨리 현관문을 열고 그가 들어오자마자 앉기 쉽도록 의자를 똑바로 놓았다. 오늘은 성공한 날이다. 이 말은 남편이 들어오기 전에 먼저 문을 열고 기다릴 수 있었다는 뜻이다. 남편이 차에서 내려 집에 들어오기까지는 야구 주자가 홈인을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와 슬라이딩을 하는 순간과 같다. 힘들고 거친 슬라이딩으로 무릎에서 피가 나는 것처럼 그의 이마에는 늘 땀이 솟아나왔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늘 귀를 곤두세우고 있다. 남편이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저녁내내 기다리고 있는 시간에 비해 막상 그가 도착하여 문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란 너무 짧은 것이어서 나는 늘 이 일을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밤이 되면 텔레비전 소리는 점점 낮추어지고 내 몸은 어김없이 현관문 앞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현관 의자에 앉으면서 남편이 말했다. 빨갛게 언 얼굴에서 하얀 김이 쉭쉭 뿜어져 나왔다. “저녁 빨리 먹도록 합시다. 그리고 빨리 자야지. 내일 아침에 빨리 출근하려면.” 그의 짧은 말 속에서 ‘빨리’라는 말이 세 번 반복되었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쉬며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가스렌지 위에 있는 압력밥솥을 들여다보았다. 검정콩과 잡곡이 들어간 현미밥은 끈끈한 고무처럼 엉겨있다. 나는 흰 쌀만으로 다시 밥을 안쳤다. 오늘따라, 잡곡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의 찡그린 얼굴을 보는 것도 싫으려니와, 그런데도 구태여 잡곡밥만을 내밀고 있는 나의 고집도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밥은 반드시 현미여야 하고 야채를 고집하고 건강식을 찾는다는 건,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감의 다른 표시에 지나지 않았다. “장애인들끼리 산다는 일은, 뭐라고 표현해 내어야 할까, 그야말로 너어무 너어무 권태로운 일이래.”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알렸을 때, 내가 다니고 있던 직장의 회장이 맨 처음 한 말이었다. 그것도 나를 보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듯이 그들을 향해 설핏 던진 말이었다.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너어무 너어무’ 라는 부사만 이상하리만큼 귀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가볍게 툭 던지던 말과는 달리 그 후에 우리의 결혼을 훼방놓던 그녀의 반대는 집요한 것이었다. 나이 지긋한 회원들을 동원하여 나를 설득하려들었고, 주례를 해주기로 했던 이사의 결정도 번복시켜 버렸다. 뒤에는 사표를 쓰도록 종용하기까지 했다. 장애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입장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예컨데, 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같은 장애인에게로만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패배의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항상 최선을 택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몸부림쳐도 최선을 선택할 수 없는 인간도 있기 마련이다. 어쨌든 그런 고비를 겪으면서 나는 잘 살아보리라 다짐했다. 인간마다 가지고 있는 소망 중에 불행하게도 모든 것을 다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중에 한 개나 두 가지쯤으로 축소하여 가질 수밖에 없다면, 나는 기꺼이 형식이 아닌 내용을, 외모가 아닌 정신을, 택하고자 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나는 박부장이 말한 뻔한 생활 속에서의 의미찾기를 계속하고 있기나 한 것인가, 나는 적이 자신이 없었다. 아니다. 이토록 애매한 말로 본질을 흐리게 해서는 안된다. 나는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너무 명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즈음 들어서 나는 오로지 글이라는 것에만 매달려 있었다. 사람에 실망하였노라고 사람을 떠나고, 생활의 구차함에 지쳤다고 생활을 버리고 오로지 문학이라는 것에만 목을 매달고 있는 것이다.
다음날 저녁에 나는 텔레비전을 켜놓고 있었다. 박간사가 독촉해올 전화 때문에 어디론가 나가버리고 싶으면서도 종일 그냥 집안에 꿍치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또다시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지만 박간사의 성실성은 결코 오늘을 허술하게 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더욱 막다른 골목에 밀려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이상한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두부찌개를 만드느라 멸치 국물에 고추장을 개면서 건성으로 텔레비전을 켜놓고 있었다. 그래서 화면이라기보다는 어떤 음악이 갑자기 머릿속을 뚫고 들어왔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되리라. 따안, 따안, 따안, 한 음 한 음이 짚어질 때마다 갈비뼈의 저 깊은 속에서 묵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은, 장중한 무게가 힘겹게 주변 공기를 들어올리는 그것은 장송곡이었다. 과연 그런 음악에 어울리게 화면까지도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전쟁터였다. 마치 흑백영화처럼 조금 덜 검고 더 검은 차이만 존재하는 화면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이 있다면 유정에 불이 붙어 미친듯이 타오르는 불기둥뿐이었다. 독일의 베르네 헤이초크 감독이 걸프전 결과를 중심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는 화면에는 다음의 자막이 흘러 나왔다. ‘전쟁은 몇 시간 안에 끝났다. 그 후 모든 것은 변해 버렸다.’ 폐허의 도시에는 날짐승이 날고 검게 탄 흙바닥에는 해골이 널려 있었다. 앙상하게 타버린 차와 탱크들의 잔해가 대지를 가득 메웠다. 하지만 이 모든 장면보다도 더 눈길을 잡아당긴 것은 평범하게 생긴 어느 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슬픔이 그득한 눈으로 화면의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어쩌면 멍하게 비어버린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세상의 끝을 보아버린 것 같은, 지치고 허망한 모습이었다. 내레이터가 전쟁 중에 두 아들을 잃고 실어증에 걸린 어머니의 모습이라고 해설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예리한 망치와 드릴과 피 묻은 전기의자가 널려 있는 고문실에서,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장성한 두 아들이 차례로 죽어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한많은 모성이라고 했다. 검은 차드로를 걸친, 얼굴이 둥근 그 여자는 힘없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했다. 끊임없이 두 손바닥을 맞비비거나 손가락을 들어 무엇인가 표현하기를 애쓰면서. 그러나 입술은 맥없이 열렸다 닫혔다 할 뿐, 한 줄의 말은커녕 단어 하나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 단지 아, 아, 어, 어, 라는 힘없이 이어지는 단발마적인 소리들 중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한숨과 비탄뿐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 헛된 동작을 반복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에 전원을 넣었다. 새파란 커서가 재빠르게 자기 몸을 드러낸다. 창문 밖은 역시 다른 창문에서 흘러나온 불빛으로 부옇게 밝아 있다. 앞 건물에 기대듯이 서 있는 전신주는 오늘도 묵묵히 자기의 밤을 지새울 것이다. 앞 뒤, 앞 뒤, 자기 몸을 끊임없이 굴리며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명랑한 커서를 나는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리고 실지로 입술을 벌려 어떤 소리를 만들어 본다. 아, 아, 어, 어, 손바닥을 비볐다가 손가락을 엇갈리게 붙이기도 하고 중지로 활자판을 탕탕 두드리기도 하면서 나는 컴퓨터 앞에서 헛된 동작을 거듭 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시간은 느릿느릿, 혹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