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수 문학평론가의 시조평론집 『논증의 가면과 정신의 허구』(푸른사상 평론선 40).
논증적인 비평이 작품의 생명력을 수반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이 평론집은, 현대시조 문학사의 흐름을 짚어봄으로써 장르의 저변을 확대하고 시조를 감상하는 기쁨을 일깨워준다.
2023년 7월 28일 간행.
■ 저자 소개
전남 함평에서 출생하여 조선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현대시학』 시 추천(1973),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1979), 전국논문 발표대회 최우수상(1981), 대학신문 문학논문공모 당선(1989), 『시조문학』 천료(1991), 『한글문학』 평론 당선(1991)으로 등단했다. 논저 및 평론집으로 『한국 현대시의 화자 연구』 『반란과 규칙의 시 읽기』 『사물을 보는 시조의 눈』 『감성 매력과 은유 기틀』 『토박이의 풍자 시학』, 시집으로 『거울 기억제』 『배설의 하이테크 보리개떡』 『원효사 가는 길』 『붉은 서재에서』, 시조집으로 『슬픈 시를 읽는 밤』 『조반권법』 등이 있다. 한글문학상, 한국시비평문학상, 한국아동문학작가상, 아산문학상을 평론 부문으로, 광주문학상, 무등시조문학상, 한국문협작가상을 시조 부문으로, 현대시문학상, 박용철문학상, 한국예총문화대상, 한탄강문학상을 시 부문으로 수상했다. 전남대·강남대·조선대·광주교대 등에서 강의했다. 현재 대학 및 지자체 평생교육원에서 강의하며,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책머리에 중에서
나는 이러한 여러 나사들로 제작·조립된 기계를 설비하고 지상(誌上)에서 수확한 낱알들을 씹기 좋도록 까끌한 부분들을 도정(搗精)해나가기를 번복해왔다. 내 평설에 의해 정미(精米)된 작품이 독자의 밥솥에 안쳐져 찰진 밥으로 상에 올려질 것인가, 그 긴장의 순간이 좋다. 그게 제3의 글로 드러나고 사람들이 호응해올 때 비평의 보람을 느낀다. 내 곡괭이 끝에 채굴되고 인용된 시조가 눈부신 광택으로 수렴되는 때는 미친 듯 힘이 솟아나 한 사나흘 굶어도 배고프지 않다.
해서, 오늘도 노트북 마당 앞에 부려진 그 암반 같은 작품들을 펜의 망치로 잘게 부수어 살피기를 반복한다. 이 고질은 잠을 반납하는 것은 물론, 패혈증 같은 병을 각오하게도 한다. 밤새 깊이 읽기에 신이 나 온갖 시집을 다 꺼내 읽거나 막장도 무서워 않는 광부처럼 기억의 단층을 뚫어 나간다. 그게 고통이라지만 내가 좋아서 하냥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쩜 이덕무가 말한 ‘간서치(看書痴)’로 유폐되어 스스로가 블랙홀로 흘러 들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 책 속으로
비유하여 설정컨대 ‘황금물고기’는 억압받고 가난한 시인이다. 시인으로 그런 의미를 되새긴다면, 농경 시대를 억세게 산 우리들의 어머니, 그들의 울음과 한의 노래가 그랬고, 일제 식민지 시대를 모질게 살아온 조상들의 삼킨 분노가 그랬다. 항쟁에 앞장선 극복자들이 겪은 암울한 민주주의의 피, 그리고 나라의 생태를 파괴한 대통령들 앞에서 촛불을 들던 시민이 그랬다. 이제, 우리의 상처투성이 ‘황금물고기’는 강과 바다에 이르러 평화의 공존 시대를 운위한다. 그와 더불어 우리는 나라[國家]다운, 문단(文壇)다운 시(詩)다운, 시조(時調)다운 치유의 물을 마시게 될 것인가. 천년을 구릿빛으로 견뎌 노래하는 황금물고기, 그래, 누가 뭐래도 희망은 힘차다! 라고 말한다. (166쪽)
요즘 문학작품의 주류는, 시조를 비롯한 다수 장르에서 이른바 생태적 특성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그게 한 흐름으로 인식된 건 2000년대 초반부터이다. 이번 신진시인들에게도 빈도가 전체의 70%를 넘는 소재가 바로 이 생태주의이다. 이 추세로 보아 생태성 추구는 아마도 21세기 말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예컨대, 김태경의 「소금쟁이」는 원래 생태 유지를 위한 기원의 대목들로 가득하다. 즉 “머뭇대고 멈칫거리다 앞다리가 짧아졌어요/바다에 닿고 싶다고 중얼거려 봤었지만 심장은 차갑게 식어 물 위를 떠다녔죠”라든가 “수면에 비친 모습은 벗지 못할 형벌이었죠” 등과 같은 표현이 그렇다는 생각이다. 이는 단순히 소금쟁이의 겉모습만을 그리고 있지 않다. 소금쟁이가 원 태생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그 회귀성에 중점을 두고 있는 이유에서다. 더불어 애착의 대상으로서의 생태를 넘어 원생회귀(原生回歸)로에의 귀환함을 점묘한 이 생태시학은 존재가 지닌 또다른 본질의 모습일 수도 있다. (3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