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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15:1-6
헛된 지식의 폐단
'아는 것이 힘이다'
이 말은 현대인들에게 있어선 거의 통념이 되어 있습니다. 아는 것으로 말미암아 힘을 얻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사람이면 누구나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는 것이 타고난 본능이기도 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요긴한 지식은 가져야 할 필요가 있고 자기가 취향하는 전문적인 지식도 가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정작 영혼에 필요한 지식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 생활에 관한 것이더라도 경험해 놓고 보면 헛된 지식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엘리바스가 헛된 지식에 관하여 언급한 것은 욥을 무모하게 공박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헛된 지식이 끼치는 폐단을 설명한 것에은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지식의 폐단은 무엇일까?
##### 1.유익이 없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을 향하여 < 헛된 지식만 가지고 있으면서 어찌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고 공박하였습니다.(3절)
--천재와 바보 이야기입니다. 천재가 하루는 너무도 심심하여 곁에 있던 바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바보야, 네가 문제를 하나 내놓아라. 그럼 내가 알아맞춰볼테니, 만약 내가 알아맞추지 못한다면 네게 천원을 주마." 그러자 바보도 응수했습니다. "그럼, 너도 나에게 문제를 내라. 이번엔 내가 알아맞추지 못할 경우 난 오백원을 줄께."
천재와 바보는 서로의 제안에 동의를 했습니다. 먼저 바보가 문제를 냈습니다.
"아침에도 뿔이 세 개이고 저녁에도 뿔이 세 개인 것이 무엇이냐?" 천재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원을 바보에게 주며 "난 모르겠다. 그럼, 그 답은 무엇이냐?" 그랬더니 바보는, "그건 나도 몰라"하면서 오백을 되돌려 주는 것이 아닌가! 과연 누가 바보입니까?
지혜자라 해도 거기서 거기라는 말입니다.
##### 2.정신을 황폐시킵니다
헛된 지식은 무익하다는 정도에만 그치지 않고 그 부작용이 다른 사람에게 커다란 피해를 끼친다.
엘리바스가 < 어찌 동풍으로 그 품에 채우겠느냐.>(2절)고 한 것이 바로 그 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이 동풍을 '熱風'이라고 옮겼는데 이 바람은 시리아와 북아라비아 사막 지대에서 팔레스틴 땅으로 불어와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러니까 엘리바스가 헛된 지식을 그런 열풍에다 견준 것은 그것이 다른 사람의 정신에 끼치는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참된 지식은 영혼에 있어 정금보다 낫습니다. 잠언 8:10...<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그러나 그릇된 지식은 그것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시험의 원인이 되며 게다가 커다란 근심까지 끼칩니다.
--설교자가 자기 지식만을 전달하는 유혹에 빠지기 쉬움.
마찬가지로 우리가 조금 안다고 교만에 빠지기 쉽다.
##### 3.신앙을 망칩니다
엘리바스는 이어 <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폐하여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4절)하고 규탄하였습니다.
톨스토이는 대학 2학년 때까지 러시아 정교 안에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했지만 그 후 신앙을 중단해 버렸다고 <참회록> 머리말에 고백하였습니다. 한 친구로부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신은 단지 인간의 조작에 지나지 않다는 것 등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황당 무계한 지식이 그의 신앙을 중단시킨 것이었습니다.
러셀, 니체, 볼테르, 하이데커, 소펜하우어, 사르트르등으로 이어지는 무신론 철학은 자기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신앙을 망쳤습니다. 그들은 자기 머리의 지식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런 폐단이 오늘의 극단적인 신학자들에게서도 자행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차려 그런 사악한 지식은 막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식은 선한 것이지만 모든 지식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욥 15:7-16
사람이 무엇이관대
우리는 나의 자신을 너무나도 과신한 나머지 큰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너무 내세워서는 안된다.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 사람이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무엇이관대 의롭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부족한 존재입니다. 자신을 너무 과신해서는 안되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자기 주장이 뚜렷한 시대인 것을 느끼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자신을 깨닫는 시간이 되자.
##### 1.우리는 무지한 존재입니다
본문 7-10절...< 네가 제일 처음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 하나님의 모의를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 너의 아는 것이 무엇이기로 우리가 알지 못하겠느냐. 너의 깨달은 것이 무엇이기로 우리에게는 없겠느냐. 우리 중에는 머리가 세기도 하고 연로하기도하여 네 부친보다 나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욥의 세 친구가 욥에게 하는 책망은 너의 지식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그대로 해당되는 말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실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미국의 흑인 노예 해방자, 아브라함 링컨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링컨은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고학을 했다. 링컨의 아버지는 링컨이 일하는 것은 좋아 했지만 책을 읽는 것은 못마땅하게 여겼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상적인 기술이 훨씬 유용한 것이고, 학문은 배워서 무엇하겠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있는 링컨에게 아버지는 늘 퉁명스럽게 말했다. <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이나 자렴, 책을 읽어 무엇이 나온단 말이냐? >
그래도 링컨은 조금도 아버지를 원망치 않고 언젠가는 이해해 주리리라 믿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매매 계약서 한 장을 링컨 앞에 내밀면서 말했다. < 잘 아는 사람이 땅을 조금만 팔라고 사정하기에 견디다 못해 20에이커를 팔았단다. 이것이 그 계약서란다. >
그런데 링컨은 계약서를 보곤 깜짝 놀랐다. < 아버지, 큰일났어요. 아버지가 판 땅은 20 에이커 뿐인데 이 계약서에는 20에이커만이 아니라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땅 전부를 팔았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
< 뭐라구! 그런 날벼락 맞을 짓이 어디 있단 말이냐! >
아버지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면서 그대로 벌떡 일어나 뛰쳐나갔다. 글을 전혀 몰랐던 아버지는 계약서가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를 몰랐던 것이다. 아버지는 단숨에 토지를 사겠다는 사람에게 달려가 매매 계약을 취소시켜 버렸다. 그리하여 어물어물 넘어갔더라면 큰 일날 뻔했던 일을 아슬아슬하게 모면했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아버지는 링컨에게 책을 읽는다고 꾸짖는 일이 없었다.
자신이 아는 것, 경험한 것만으로 모든 것을 한정시켜 버린다면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아버지라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기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나보다는 상대방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은 나는 무지하다는 데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나의 부족함을 깨닫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2.우리는 교만해서는 안된다
본문 11-13절...< 하나님의 위로와 네게 온유하게 하시는 말씀을 네가 어찌 작다 하느냐. 어찌하여 네가 마음에 끌리며 네 눈을 번쩍여 네 영으로 하나님을 반대하고 네 입으로 말들을 내느냐.>
--이것은 성경의 핵심적인 요구이다. 겸손하자.
##### 3.사람은 악한 존재들이다
본문 14-16절...< 사람이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무엇이관대 의롭겠느냐. 하나님은 그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의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하물며 악을 짓기를 물 마심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이겠느냐.>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를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이 무엇이관데 잘난 체 하려느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자.
욥 15:20-35
악인의 길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우리 시대에 와서는 흉악범들이 도처에서 날뛰고 있어 모두가 마음을 졸이고 있습니다. 살인, 강도, 절도, 폭력, 음해, 모략등의 끔찍한 일들을 저질르는 자들을 보면서 악인의 횡포에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성경이 규정하고 있는 악인에 대한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성경은 비록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악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그는 벌써 악인이라고 마태복음 5:28절에서 말씀하고 있고,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하나님을 떠나 있는 자들을 통털어 악인이라고 이사야 57:3-4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악인의 길은 어떻습니까?
##### 1.멸망의 날이 작정되어 있습니다
악인은 멸망의 날이 이미 작정되어 있습니다.
20절...< 강포자의 햇수는 작정되었으므로...>
21절...< 멸망시키는 자가 그에게 임하리니...>
22절...< 칼날의 기다림이 되는니라.>
악인들이 세상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떨 때는 솔직히 우리의 신앙심에까지 회의가 일어나는 때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어찌하여 저런 자들을 당장 처벌하지 않고 두고만 보시는지 이해가 안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더욱 혼란을 끼쳐 주는 것은 악인들이 망하기는 커녕 그들이 도리어 더욱 형통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런 경우를 가리켜서 <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오히려) 그 힘이 건강하다.>고 시편 73:4절에서 꼬집어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을 목격하면 누구라도 신앙에 심각한 갈등을 느기게 될 수라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이 아무리 안하무인 격으로 날뛴다 하더라도 그의 멸망의 날은 벌써 하나님께서 설정해 두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그 날이 더딘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도록 그 배려를 베푸신 것이라 말하기도 베드로후서 3:9절에서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악인에게 당장 멸망이 이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유예기간을 주신 셈입니다. 그러나 악인에게는 멸망의 날이 분명히 정하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지만 영원히 참는 분은 아니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역시 악행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 2.악인들은 끝까지 유리 방황합니다
본문 23절에 보면 < 그는 유리하며...>라고 했고, 28절에는 < 그는 황무한 성읍,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집, 돌 무더기가 될 곳에 거하였음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23절에도 보면 < 악인은 유리 방황하며 음식을 구걸하게 되고, 빈곤함과 환란과 고통의 두려움에 빠져서 멸망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악인은 끝까지 유리 방황하게 되는데,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고, 생각지 말아야 할 것을 마음에 두며, 마치 더러운 먹이를 찾아 온 골목길을 헤매고 다니는 개와 같은 모습이 되어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한 탐욕심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인류 가운데서 최초로 방황하게 된 자는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이었습이다. <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4:12). 이렇게 하여 가인은 가련한 방랑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악인은 잘되는 것 같아도 방황하며 유리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결국에는 슬픈 절망에 사로 잡히게 될 것입니다.
##### 3.악인에게 결과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허망함입니다
본문 31절에 보면 악인의 수확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 허망한 것을 믿지 말 것은 허망한 것이 그의 보응이 될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이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악인들이 잔학한 짓을 자행하는 그 밑바닥에는 강한 소유욕이 깔려 있습니다. 소유욕이 너무 강하면 강도가 남의 물건을 강탈하는 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악인의 소득은 물거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악인의 소득이 엄청난 것 처럼 보이고, 그것으로 평안을 누리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복은 순간적이요(20:5), 불확실한 것이며(눅12:20), 헛된 것이요(전2:1,2) 이 세상에서만 국한된 것입니다.(눅16:24,25), 그리고 끝내는 하나님의 심판의 자료 밖에 되지 않습니다.(시73:18-20).
악인의 소득은 허망 밖에 없습니다. 악행 자체부터가 허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덫에 걸린 짐승은 자기의 귀중한 목숨만 빼앗길 뿐,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악인은 성공하기 전에 실패할 것이며(31-33) 아무 결실없이 죄만 지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악인의 종말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멸망의 날은 이미 작정되고, 끝까지 유리 방황하며, 그 보응은 허망함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잔악하여 악을 자행하는 자들을 더욱 선망하면서 추켜 세우고(롬1:32), 심지어 그런 자를 영웅처럼 찬탄하기도 합니다. 악의 기만성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악행은 궁극적으로 죽음의 함정에 떨어지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차려 그런 기만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싫어하시는 악한 것을 부러워 하지말고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을 듣고 우리도 실천하는 하루가 됩시다.
#####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1)수고하시는 우체부 아저씨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미는 아주머니의 손길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2)일흔이 넘으신 할아버지께서 자전거를 타고 새벽에 신문을 각 가정에 배달하시 는 모습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3)'금연'이라 쓰여진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금연이라고 쓰여진 것 이 안보이세요'라고 용기있게 말하는 모습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4)비오는 날 학교 앞에서 우산을 들고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5)장바구니늘 들고 웃으며 정겹게 지나가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부부의 뒷모습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6)어느 날 친구와의 우정이 '이것이었구나' 하며 서로 간의 믿음이 더욱 강해졌음 을 느낄 때 우리를 기쁘게 한다.
7)한 어린이가 무심코 버린 과자 봉지를 청소하는 아저씨가 줍자 미안한 듯 다시 돌아가 휴지를 줍는 어린이의 손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8)제과점에서 삼촌과 유치원생이 정겹게 빵을 나눠먹는 모습은 우리를 기쁘게 한 다.
9)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피곤하시죠'라고 웃으며 맞아주는 아내의 얼굴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