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긴자에서 뷔페를
아사구사절의 야경을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보고 시장 끼가 동하는 배를 움켜주고 긴자의 한 음식점을 찾는다. 우리는 음식점에 들어서면 자기가 적당한 자리를 골라서 앉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입구종업원의 안내를 받는다. 몇 명이며, 음식물의 종류를 말하고 안내하는 자리에 가서 앉는다. 찾은 곳은 서 긴자 거리의 한 식당 뷔페식이다. 가격은 일인당 3000엔 우리 돈으로 약27000원정도 한 끼 식사 값이 너무 비싸다는 느낌이다. 가이드의 말이 일본사람들은 평소에는 저렇게 조금 먹고 어떻게 견디나 할 정도인데, 이러한 뷔페식에서 먹는 것을 보면 그동안 배고픔을 만회할양인가 엄청나게 먹는다고 한다. 우리와 뷔페의 종류가 별 다른 것은 없었고 술은 별도로 지불을 하고 먹어야 했다.
주방에서 빈 그릇 음식을 보충하려고 살펴보는 사람들은 저 멀리 인도 쪽 에서 오거나 뱅그라데쉬 인들 같은 인상이었다. 별미의 먹 거리 들은 대나무를 이용한 요리가 있고 우리들의 찹쌀떡인 “모찌” 가 맛있었다. 내가 애용하는 초밥 “스시”는 우리 것보다 비린내가 더 나는 것 같았다. 스시의 종류도 다양하나 나의 입맛에는 별로라 한 두 개로 끝냈다. 뷔페인데 고기 뷔페란다. 그래서 식탁에는 불판이 가스로 달구어 지고 있었다. 고기의 종류는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이었고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일본식 만두며, 모찌, 초밥, 김밥 등으로 허기를 달랬다. 정통 일식은 떠나는 날 점심을 하기로 미루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이동한다. 한 시간여 동안 이동이다. 긴자에서 도시고속도로로 이동 중 야경의 동경시내를 구경한다. 생각보다 도심의 거리는 어두웠다. 가로등의 불빛도 수은등 그대로 이었고, 도심의 거리는 한산한 감을 주었다. 번화가의 휘황찬란한 네온싸인의 거리는 별로 볼 수 없다. 거리의 상점이나, 회사를 알리는 간판의 불빛도 그리 밝지 않았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거리의 간판이 매우 단조롭고 간소화 되어 있어 에너지 절약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의 깔끔함과 절약정신이 간판에도 느꼈다. 도시고속도로를 달린 버스는 우리가 묵을 호텔을 가는데 상야(上野) 일본식 “우애로” 라는 곳을 지나고 있었다. 우리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고 하는 곳이다. 이곳은 공원도 있다고 하던데, 풀이를 하면 윗동네이다. 우리말로 과장되게 표현하며 “달동네”라는 듯인가 라고 혼자만의 생각을 한다. 일본은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의 통치를 받을 적에 동경은 잿더미밖에 없었다. 동경은 우리의 서울과 같이 주변에 산이 둘려 쳐 저 있는 곳이 아니다. 평평한 들판이다. 나리타는 80년대 초에 갯벌의 습지를 매립하여 공항을 건설한 곳이다. 이전에 우리가 이용한 김포가 있듯이 일본도 이전에는 “하네다” 공항을 이용하였다. 우리의 발전과정이 어찌 그리 일본을 닮아 가는지 나도 모르게 숙연해 진다. 선진국의 모델을 찾으니 어찌하겠는가? 법에서부터 생활문화 돈버는 방법까지 일본은 부동산의 거품이 꺼졌는데 우리는 언제나 부동산의 거품이 꺼지나 망상에 사로잡힌다. 상야(上野)“우애로”를 조금 지나 일모리(日慕里)“닛보리”란 곳의 조그만 호텔 앞에 차가 머문다. 2인1실 여장을 풀고 주위를 산책한다. 일모리 역앞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요란하여 가보니 빠징고를 하는 곳이다. 담배연기가 자욱하여 역겹다. 이네 돌아 나온다. 경비의 절약이라 시내의 호텔엘 묵지 못하고 변두리로 나오니 시가지도 없다. 거리의 상점들은 거의 문을 닿고 밤늦게 귀가하는 사람들만이 전철역에서부터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급하다. 닛보리역 앞 조그만 광장에는 옛일본의 말 탄 무사가 출정을 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출발 전에 준비한 소주로 한방에 모여 각자 소개를 하고 동경의 첫날을 소화한다.
첫댓글 잘 읽고 있습니다. 친구, 대단합니다.건승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