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중오우쟁론기
박경선
요즘은 반려동물을 내 아이라고 부르며 사는 세상이다. 유튜브 같은데 출연시켜 구독자 수도 늘려가며 공유한다. 반려동물뿐 아니다. 사람 곁에서 가까이하며 지내는 식물이나 사물들과도 ‘내 아이’라고 칭하며 정 나누며 산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서로 외로움을 다독이며 살기 때문일까?
내게도 다섯 아이가 있다.은행 업무뿐 아니라 주민증, 운전면허증, 신용카드 등 온라인에 원 사인 인증서 하나로 ‘데이터 은행(database)’의 편리를 보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지만, 시골집 규중(閨中)에서 사는 날이 많아지면서 다섯 아이를 데리고 산다. 그런데 어느 날, 휴대폰이 안 보였다. ‘휴대폰을 못 찾는다면?’ 휴대폰보다 휴대폰 케이스에 든 다섯 아이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내 아이들을 못 찾는다면? 문득 그 옛날 영·정조시대 가전체 작품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 속 척부인-자, 교두 각시-가위, 청홍 각시-실, 감투 할미-골무, 인화 낭자-인두, 울 낭자-다리미들이 바느질하는 부인의 뒷담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뒷담화가 다섯 아이 목소리로 바뀌더니 ‘규중오우쟁론기(閨中五友爭論記)’ 이야기로 펼쳐졌다. 나는 별수 없이 아이들 얼굴이 안 보여 불안해하며, 숨어서 저희끼리 하는 뒷담화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일 먼저 <은행이>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매달 월급을 갈무리해주고 밥값 낼 일이 있을 때는 앞장서 나와 밥값을 내어주고 물건을 살 때면 척척 값을 치러주어 미덥고 자랑스럽던 아이였다. 나에 대한 뒷담화는 이랬다.
“어리바리한 주인이 나를 잃어버리면 난들 별수 있나? 누구든지 내 얼굴 팔아 여기저기 쓰려고 꿰어 내면 그저 맥없이 끌려다니며 범죄에 이용당한다고 해도 할 일, 안 할 일 충성 할 수밖에….”
‘그렇지, 범죄에 이용당하면 큰일인데…….’
나는 내심 걱정하며 듣고 있는데 두 번째 아이, <행복이> 목소리도 들렸다. 대구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임무를 부여받고 발급된 특별한 아이라고 자부심을 내세우던 아이였다.
“나도 그래. 내 얼굴을 내어 보이면 상인들이 좋은 일 한다고 10% 할인된 가격으로 물건도 주고 밥도 먹여주잖아. 이제 미련퉁이 주인이 재래시장이나 동네 슈퍼마켓, 서민 식당을 지나가면서 내가 그동안 도와준 일을 생각하게 될 테지.”
세 번째 <주민이>는 평소 조용하고 뚝심 좋은 아이라고 미더워하던 아이였다. 처음 이야기에 끼어들 때는 다소곳하고 겸손한 것 같더니 차차 당당한 목소리로 변해갔다.
“나야, 너희들처럼 주인이 사고 싶은 것을 사주는 능력은 없어. 하지만 자잘한 일은 도와주며 산 것 같아. 주인이 지하철을 탈 때 65세 이상 노인임을 증명해주고, 은행 업무 볼 때 내 얼굴을 내어 보여 신상 확인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정도였어. 또 생각나네. 이것도 별것 아니지만, 홀짝제 날이 정해진 파크 골프를 치는 날, 내가 짝수번호 아이라는 것을 확인해줘야 주인이 골프를 칠 수 있거든.”
‘주민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자잘하게 나를 도와준 일이 새삼 고마웠다. 그보다 재발급받을 수도 있지만, 이 아이도 ‘은행이’처럼 신분 위조의 범죄에 이용될 수 있겠다 싶어 걱정이었다. 어느 마음씨 좋은 사람에게 발견되어 우체통을 통해 내게 돌아오기만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네 번째 <책 이음>이는 처음부터 온기 하나 없는 냉랭한 목소리였다. 왜일까? 평소 자기한테 일을 별로 시키지 않아서 섭섭했을까? 속마음 이야기가 나왔다.
“너희들은 주인과 눈 마주치며 지냈으니 외롭지는 않았겠다. 난 갑갑한 집 속에 갇혀 외로웠어. 내 얼굴은 ‘한국 공공 도서관’ 어디서나 책을 빌릴 수 있는 미모야. 하지만 책벌레 주인이 내게 기회를 주지 않으니 눈 마주칠 일도, 정 들일 일도 별로 없었어. 책벌레 주인은 평생 도서관 책을 자유롭게 보고, 바코드만 대면 한꺼번에 10권씩 빌릴 수 있는 직장에 다녔거든. 게다가 보고 싶은 신간은 인터넷으로 주문해 사고, 지인들끼리 주고받는 책과 월간지 구독도 쌓이는 데다 전자책까지 보더라니까. 참, 제주도 여행 중 ‘소라의 성’ 북카페에 들렀을 때 말이야. 난 제대로 내 활약상을 보여주고 싶었거든. 그런데 그날 주인은 대출증 제시 없이, 독일 ‘볼프 에를브루희’의 <내가 함께 있을게> 그림 동화책을 읽으며 엄청 좋아하더라. ‘나 없이도 행복할 수 있네요?’ 하니 ‘그럼, 좋다. 다 좋다. 공짜 차도 얻어 마시고 바다 풍경 보며 책을 읽으니 이런 호사가 어디 있겠니?’ 하더라고. 그때부터 나는 없어져도 재발급 받을 필요도 없는 아이, 사랑받는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에 집 나가고 싶었어.”
그 말에 내 정신이 화들짝 깨어났다. 내 무의식 바탕에, 그들이 생명체가 아니라고, 잃어버리면 재발급 여부도 가늠해보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해왔으니 내가 무슨 부모람? 내 아이들이라는 말을 함부로 할 일이 아니었다. 내 필요만 생각해온, 나 중심 사고의 나를 자책하고 있는데 막내, <운전이> 목소리가 들렸다. 차가 없으니 교통 법규를 위반해서 경찰 앞에 굳이 아이 얼굴을 민망하게 드러낼 일이 없어도 데리고 다니는 아이다. 나라에서는 늙은이들이 차를 몰고 다니며 일을 저지를까 봐 이 아이를 반환하면 보상금을 준다지만, 나는 이 아이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운전이도 ‘규중칠우쟁론기’ 의 감투 할미 골무처럼 내 편을 들고 나섰다.
“책 이음이는 많이 섭섭했겠다. 나도 이음이처럼 놀고 지내. 그래도 주인이 나를 믿고 내 이름 밑에 빨간 사과 하나를 품고 있으라는 소명을 주어서 즐거워. 빨간 사과는 ‘생명운동본부’에 장기 기증을 기탁해놓은 표시야. 혹시 교통사고가 나면 빨간 사과를 보고 사람들이 주인을 발 빠르게 데려갈 수 있게 하기 위한 임무의 표시거든. 그러니 주인이 살면서 누린 오복에 대한 보은을 하고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뿐이야.”
운전이가 내 마음을 알아주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마당으로 나와 흔들 그네에 앉았다. 청 푸른 하늘엔 새털구름이 흘렀다.
‘아, 감사해라. 오늘도 건강하게 살아 있으면서 저런 아름다운 하늘을 볼 수 있으니….’
그때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그네 옆 탁자에 올려둔 책들 밑에 깔려 울어대었다. 광고로 부르는 전화벨을 끄고 케이스 안에 얌전히 앉아 있는 아이들 얼굴을 보며 오복을 누린 노인의 삶을 돌아보았다. 70살이 되도록 심장이 건강하게 뛰며 살고 있으니 장수(長壽)와 강령(康寧)을 누렸고, 시골집에 사람들을 초대하여 조금씩 베풀고 나누며 즐기니 삶에 불편함이 없는 부(富)와 유호덕(攸好德)도 누렸다.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내 집에서 죽는 고종명(考終命)의 복만 누리면 오복의 은사를 입는다. 그런데 늙어갈수록 걱정이 된다. 일전에 정진석 추기경이 노환으로 돌아가시면서 장기기증과 각막 기증을 했다. 하지만 노화된 장기라서 새 생명에게는 이식시킬 수 없어 의대생들에게 실험용으로 쓰이게 했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내 심장과 안구도 그렇게 실험용으로 쓰이게 된다면? 그래도 나는 ‘운전이’를 응원해 등 떠밀어 보내고 싶다. 내가 세상에 와서 누린 혜택에 빛살 한 조각만큼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바람인데 이 또한 늙은이의 과욕일까? 그렇더라도 ‘운전이’는 품속의 빨간 사과를 나에게만 살짝 보이며 속삭였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야지요!”
2022.9.16. 1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