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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궁극이
21편 1절: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주의 구원을 인하여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기도: 예수님께서 도성인신 하셔서 이 땅에서 성육신으로 계실 때 하늘나라를 말씀하셨고 천국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 옛날 2천 년 전에 성육신으로 오신 그 주님이 오늘날 저희들에게 눈으로 보이지는 않더라도 현재적으로 보혜사 성령님께서 말씀을 들고 진리와 영감으로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역사를 하고 계시니 그 말씀을 바로 알아들을 줄 아는 당신의 귀한 자녀로 만들어 주옵소서.
우리가 성경을 보아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면 귀머거리와 같고, 귀머거리는 소리를 듣지를 못하니 하나님의 뜻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없는 줄 압니다. 이 시간에 저희들에게 영의 귀를 열어주시고,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할 때 우리 주님처럼,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늘나라 천국의 복된 소식을 전할 줄 아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옵소서.
이 시간에 말씀 깨닫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세상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세상 끝 날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는 그곳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그곳에서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늘나라 천국복음을 전했다. 누구에게 전했느냐? 사람들에게냐, 당신의 백성들에게냐? ‘사람들에게’ 라고 해도 맞을 수 있지만 예수님 당신이 뭐라고 했느냐? 예수님이 자기의 백성에게 왔다고 했다. 그런데 당신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제자 중 하나가 예수를 팔아먹었고, 또 당신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죽였다. 그러니까 첫째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온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의 표현으로 말한다면 교회를 위해 오셨다. 천국백성이 있는 곳이 교회라.
교회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해서 모든 후손들이 그 영이 죽은 채로 계속 유전으로 내려오는데 예수님의 피공로의 구속으로 당신의 백성들의 죽은 영을 구속으로 살렸으니 이 살림을 받은 자가 교회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의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오실 메시야를 믿고 구원을 받는 거고,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오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거다. 이게 교회다.
그래서 성경으로 볼 때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다 구원을 얻는 것인데, 이 구원은 세상을 만들기 전에, 영원 전에 신령세계에서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속에 구원 얻을 우리가 다 들어있었던 것이다. 우리 인간의 표현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성경 역사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성육신으로 오시기 전을 한 4천 년으로 잡고, 예수님께서 오신 후로부터 지금까지를 2천 년 정도로 잡는다. 이게 확실한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분명한 것은 세상은 언젠가는 불에 탄다. 이 불탈 세상에 사는 교회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 여러 가지 사건 환경을 거치며 천국을 다스리고 누릴 수 있는 영능의 실력을 닦은 후에 천국이라고 하는 세계에 들어가서 이 실력으로 하나님과 같이 천국을 누리게 된다. 계:에 보면 이게 나온다.
그러니까 계:에 보면 천국이라는 천국이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신령천국의 누림성이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영원 전서부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이미 계획을 다 해 놓으신 거다. 그래서 그 세계를 누리게 해주려고 세상을 만들고 인간을 만들고 해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환난과 가난과 부요와 어려운 사건, 눈물 콧물을 다 흘리게 해서, 시련 연단을 시켜서 하나님의 온전한 속 성품을 닮게 하는 거다. 말하자면 주님처럼 만들어지게 한다. 왜냐? 주님처럼 닮아야 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그 하늘나라를 주님과 함께 주님처럼 다스리며 누리며 살 수 있는 질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으면서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을 해서 자기 속의 성격 성질이 고쳐지고, 지혜가 생기고, 영적인 면에서 성장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사람이 이렇게 만들어지면 신령천국에 들어가서 그 천국을 다스리며 누릴 수 있는 질로 되는 거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은 마음도 품고 죄도 짓고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예수를 믿고 나서는 세상에 살고 있는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려고 하고, 말씀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도 치고,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생각도 하고, 판단 평가도 바로 내리려고 애를 쓰게 된다.
세상이라는 세상은 성령도 계시고 악령류인 사단 마귀도 있는 세상이라서 이 사단 마귀가 사람을 통해서 성도를 꾀인다.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믿는 너는 이렇게 살아라. 세상은 잠깐이다. 세상에 등 기댈게 못 된다. 세상은 바람에 나부낀다. 갈대와 같다. 네가 거기에 마음을 두면 평생 고통스럽고 눈물 흘리고 걱정이다’ 라고 하는데 사단 마귀는 거짓 종들을 통해서 세상을 소원 목적하며 살라고 유혹을 한다.
그러니까 이 세상은 성도를 위해서 훈련하는 장소다. 이방 불신자, 선악과 따먹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부자 되는 것을 목적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르치시기를 ‘너희들은 그런 목적으로 살지 말아라. 너희들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을 구하지 말아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라고 하신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어떤 교인은 천국에 마음을 두고 이 천국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면서 사는 사람이 있고, 또한 어떤 교인은 교인이면서도 세상에 마음을 두고 세상을 목적하며 사는 교인도 있다. 이렇게 되니까 천국을 목적하며 사는 교인과 세상을 목적하며 사는 교인과는 같은 예수를 믿지만 항상 마찰과 충돌과 대립이 생긴다. 세상을 목적하며 믿는 교인이 천국을 목적하며 믿는 교인을 향해서 ‘그렇게 믿으면 안 된다. 온 세상교회가 나처럼 믿는데 너는 왜 그렇게 믿느냐?’ 하게 되니 서로가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며 싸운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봐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닮은 사람, 당신처럼 닮은 사람이 되라고 하지 세상을 목적하며 살라고 하지는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따라오너라’ 하는 것은 ‘나처럼 닮아라’ 그 말이다. ‘내 말대로 순종을 하면 나처럼 닮아진다. 하늘의 지혜지식성, 하늘의 도덕성, 하늘의 사랑을 가진 사람이 된다’ 하는 말이다. 우리로 이런 사람이 되라고 성경도 주고 성령도 보내서 감화 감동을 시키는 거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교회 안에 불신자와 같은 마음을 가진 교인이 있는데, 이 사람은 성경을 가지고 천국을 목적하는 뜻으로 해석을 하겠는지, 아니면 세상을 목적하는 뜻으로 해석을 하겠는지? 세상을 목적으로 성경을 해석을 하면 이 사람은 소경이라.
성경은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잘 먹고 복 받게 해 줄 테니 예수를 믿어라’가 아니다. 왜 그러냐? 예수를 안 믿는 사람도 이 세상에서 믿는 우리보다 부자로 사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보면 이 사람들이 다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금방 죽는 사람도 있고, 병들어 죽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떠냐? 가난하게 살다가 죽는 사람도 있고, 부자로 살다가 죽는 사람도 있다. 가난한 사람은 ‘돈 주십시오. 집 주십시오. 차 주십시오’ 하다가 받지도 못하고 죽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이게 뭐냐? 이건 예수 믿는 정답이 아니라는 거다.
세상을 목적하며 예수를 믿으면 이 사람은 항상 목이 마르게 된다. 정신이 세상에 붙어서 성경을 끌어다 자기의 세상욕심에 이용을 해먹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네가 세상을 목적으로 사는구나. 너 불에 살라야 되겠다. 너 심판을 받아야 되겠다. 너 매 좀 맞아라’ 하게 된다. 회초리로 맞을래, 몽둥이로 맞을래, 쇠몽둥이로 맞을래? 그런데 매를 맞을 때 회초리로 맞으면 굉장히 아프다. 그리고 맞은 자리에 핏발이 선다. 그런데 몽둥이로 맞으면 핏발은 안 서지만 속의 뼈가 부러지고 골병이 든다.
세상은 여러 가지 사건 환경이나 시대적인 사건 환경, 물가바람, 전쟁바람, 정치바람, 종교적 유행바람, 연예인바람이 늘 분다. 그리고 교회 안에도 각종 유행바람이 얼마나 많이 부느냐? 세상을 목적하며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런 바람을 금방 따라가기 마련이다.
‘구원’이라고 할 때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것도 구원이다. 세상에 마음과 정신이 빠진 사람을 거기에서 건져주는 것도 구원이다. ‘이 구원은 너희에게서 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다’ 하는 구원도 있고, ‘너는 병에서 나았다’ 하는 구원도 있고, 가난에서 부자로 되는 구원도 있고, 죄에 빠진 당신의 백성을 구원해서 천국에서 당신과 함께 영원히 누리며 살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은 신령천국에서도 변하지 않고, 이 땅에서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세상 어느 시대에 살든지 내가 이 뜻을 붙잡고 살면 하나님의 성품의 사람이 된다. 성경에서는 이것도 구원이라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두들겨 패고 강도짓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죄라고 하는데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정신에 빠지면 이것은 천국의 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죄에 빠졌다고 한다. 천국에 해당되는 정신과 마음과 소원과 목적이 없이 사는 것은 전부가 죄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닮지 않고 있다면 이것은 필연적으로 세상 불에 타질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이니 죄라고 하신다.
다시 말하면 학생이 학교에 들어가면 공부를 잘하는 실력이 돼야 하는데 공부를 안 하고 가만히 있다면 이 학생이 학교에 안 간 거냐? 교실에 앉아있기는 하는데 공부는 하지 않고 딴 짓을 하는 거다. 이러면 이 학생이 공부시간에 교실에 가만히 앉아있으니까 선생이 착하다고 하느냐, 매를 가지고 때리느냐? 학교에 왔으면 아는 실력을 쌓아야 한다. 예수학교에 들어왔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람이 만들어지고 영능의 실력을 쌓아야 한다.
성경에 보면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한다. 마귀는 몸만 예배당에 앉아있는 교인을 아주 잘 안다. 안 믿는 사람은 영이 죽어있기 때문에 마귀가 건드리고 이용해 먹을 가치가 없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인데도 세상의 마음을 가지고 믿는 사는 사람은 마귀가 이용해 먹기 딱 알맞다. 그러나 천국을 목적하며 예수를 믿는 사람은 성령의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귀가 넘보지를 못한다. 세상 사기꾼이 넘보지를 못한다. 왜냐? 사람의 속을 알기 때문이다. 사기꾼이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속지를 않는다.
사기꾼은 세상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세상부자를 원하는구나’ 하며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주는 척 하면서 이용해 먹는다. 그런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이 불에 타질 세상에 대한 소원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마귀를 불러서, 깡패를 불러서 ‘저 아무개에게 가서 두들겨 패라’ 라고 하신다. 마귀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다.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허락이 되어있다. 사단 마귀 악령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옳은 성도를 절대로 터지를 못한다.
천국의 백성이 천국의 정신 사상 소원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그 목적이 천국에 붙어있지를 않고 종교적 세상에 빠져 있으면 하나님께서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깡패를 불러서 두들겨 패라고 하신다. ‘내가 예배당을 몇 개를 지었다느니’ 하며 이런 종교적인 업적이나 이력을 자랑하며 그게 믿음이 좋은 거라고 위안을 하는 것은 종교적 세상에 빠진 거다. 이건 안 믿는 사람들이 세상을 소원 목적하는 것과 그 질이 똑같은 거다. 그 예배당은 불에 안 타지느냐?
예수님 당시에 헤롯왕이 46년간을 성전을 고쳤는데, 성전은 지구상에 예루살렘 하나밖에 없다. ‘제 1성전, 제2 성전’ 이런 건 없는 거다. 이 성전도 헤롯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려는 목적으로 지은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돌 하나도 첩 놓이지 않게 부숴버린다고 했고, 솔로몬 시대의 성전은 벽을 온통 금은보석으로 입혔지만 제사장들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성전 안에서 못된 일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바벨론 군대를 불러서 쳐부숴 버렸다.
구약 때 눈에 보이는 성전위주와 목적으로 종교적 건설을 하던 그 때의 교인들 전부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죽었다. 그런데 계:에 보면 앞으로도 또 그럴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걸 보면서 역사적으로 이미 심판받은 것을 빤히 알고 있으니까 그와 같이 심판받을 짓을 또 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을 목적하며 예수를 믿는 것은 성경의 깊은 뜻을 모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은 천국의 복이다. 믿는 우리에게 있어서 현재적으로 성령님께서 내 몸을 성전으로 삼고 거하시면서 당신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으로 닮아가라고 계속 역사를 하신다. 그럼에도 ‘세상 복 복’ 하며 예수를 믿게 되면 이건 매를 맞을 수밖에 없는 거다.
‘복’이라고 할 때 세상에서 최고의 부자로 살면서 돈도 마음대로 쓰는 게 복인지,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을 닮는 게 복인지? 돈 많은 게 복이냐, 사람이 참 사람으로 바로 만들어지는 게 복이냐? 성경은 누누이 세상의 먹고 마시는 자연적인 복은 복된 사람으로 만들어지면 주기도 하고 뺏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면 뺏을 때는 왜 뺏는 거냐? 천국의 복의 사람으로 더 올려주려고. 욥에게서 이걸 볼 수 있다. 그런데 세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교인들은 이게 안 믿어진다. 생각이 미치지를 못한다.
이 세상은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붙잡고 쓰는 거다. 계:에도 보면 세상이라는 지구 땅덩어리의 바람을 하나님이 부리시는 천사가 붙잡고 있다. 이 바람이 전쟁바람인지 무슨 바람인지 모르겠으나 이 바람을 놓으면 세상이 어떻게 되는 거냐? 끝나는 거다. 그럼에도 왜 이 이치를 모를까? 성경 구구절절이 구약의 말씀을 나에게 가지고 오셔서 이걸 깨닫게 하고, 신약시대에도 앞으로 미래적으로 될 일을 성경말씀에 기록을 해서 나를 깨닫게 한다. ‘네가 앞으로 이렇게 살면 옛날에 너처럼 살았던 사람이 심판을 받았던 것처럼 너도 심판을 받는다. 그럼에도 네가 그걸 안 믿을래?’ 이렇게 들어가는 거다.
어느 게 참 교회냐? 천국을 목적하며 나가는 것이 참 교회다. 교회라도 종교적 세상을 건설하려는 것은 돈을 가지고 건물위주로 나가고 일 잘하는 위주로 나가는 거지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나가는 게 아니다. 건물을 크게 짓고 많이 짓고 하는 것은 돈만 있으면 된다. 이거는 성경을 못 깨달아도 되고, 천국의 사람으로 안 만들어져도 돈만 있으면 오케이다.
세상을 목적하며 예수를 믿는 사람이 전도를 하게 되면 ‘예수 믿으면 세상에서 부자 된다’ 이런 식으로 전도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소리는 한 번도 안 하셨다. 그럼에도 세상을 목적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을 보고 ‘예수 믿으면 부자 된다’ 하며 교회로 끌어들인다. 가르치는 게 그 모양이요 기도가 그 모양이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을 가난뱅이로 만들어 놓은 것은 누가 한 거냐?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놓은 것은 누가 한 거냐?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 마귀가 한 거냐? 그런가 하면 교인이 두 손을 비벼대며 금식기도를 하는데도 왜 안 들어주는 거냐? 하나님이 귀가 먹은 거냐? 성경을 들고 이치에 안 맞게 가르치는 것은 전부가 마귀소리요 세상이다. 세상을 가르치는 것은 거짓 복음이요, 거짓복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다.
1절: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주의 구원을 인하여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여호와여.’ 여호와의 증인들이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뭔지 아느냐?’ 라고 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호와’이고 성이 ‘여’씨냐?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 당신이 우리에게 언약하고 계약하신 것은 그대로 이루신다’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 당신의 역사가 그렇다. 언약과 계약대로 이뤄놓는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가난하던 부자던 나에게 반드시 이뤄놓는다.
이뤄놓는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말하면 ‘너를 하나님의 속 성품, 마음, 정신을 닮게 한다’는 게 들어있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너를 그렇게 닮게 하기 위해서 네가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개 패듯이 족치겠다’ 하는 게 들어있다. 이런 분이 여호와다. 쉽게 예를 들면 잘하면 상을 주고, 부가 많고, 못하면 얻어맞고 그런 거다. 그런다고 해서 얻어맞는 사람이 지옥에 가는 거냐? 아니다. 지옥엔 못 간다. 천국에 들어가지만 상급이 적다.
어린아이가 비 오는 날 진탕에서 놀면 옷이 다 젖는다. 집으로 들어오라고 해도 들어오지 않고 개구쟁이 친구들과 실컷 놀다가 저녁이 되면 배가 고프니까 집으로 돌아와서 방에 들어가려고 하면 엄마가 ‘들어오지 말아라’ 하며 더러워진 옷을 벗기고 몸을 씻긴 후에 깨끗한 옷을 입혀서 방에 들여보낸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그러는 거다.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이게 누구의 시냐? 다윗이다. 다윗은 왕이다. 이 다윗 왕이 누구의 힘을 인하여? 주의 힘, 하나님의 힘을 인하여.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주의 구원을 인하여 크게 즐거워 하리이다.’ 누가? 다윗 왕이.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주의 구원을 인하여 크게 즐거워 하겠다는 거다.
‘구원’이라고 할 때 ‘지옥에서 천국’ 하는 구원도 있고, 이 구원은 예수님이 책임지고 있으니 우리가 신경 쓸 것은 아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예수님의 피공로로 성령님의 증인으로서 영이 중생이 되어있다. 성령님이 내주해 계신다. 중생이 된 이 영의 성질은 하나님과 질이 똑같은 거룩이다. 그래서 영이 중생한 사람은 이제 죽어도 천국에 들어가는 거다. 성도는 이 구원을 다 받은 거다. 그러나 실력 면에서는 문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6학년을 마치면 졸업장은 준다. 그런데 과목마다 잘한 것이 있으면 우등상이니 효자상이니 하는 과목별로 받는 상은 없다. 그런 것처럼 예수학교에 들어와서 어떤 사람은 여러 종류의 상을 타는데 자기는 계속 빵점만 맞고 있다면 무슨 실력이 있겠느냐? 성경을 깨달은 게 있나, 자기 마음이 바뀐 게 있나, 성격 성질이 바뀐 게 있나? 수 년 수십 년 예수를 믿었어도 하나님의 성품으로 바꿔진 게 하나도 없다면 이게 뭐냐? 그러니 이런 사람은 안 믿는 사람들이 소원 목적하고 있는 ‘돈 달라. 밥 달라. 집 달라’ 하지 않겠느냐? 예수님은 그런 걸 구하지 말라고 했는데.
다윗은 지금 어떤 면에서의 구원을 말하는 거냐?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영능의 실력으로, 신앙 믿음의 실력으로 키우고 커진 구원을 말하고 있다. 이 구원을 크게 기뻐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 배우는 대로 하나님의 생각이 들어가는 법이고, 하나님의 이치 판단 결과 목적이 나오게 된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다 그 말이다. 술 먹는 사람을 따라다니면 무엇을 닮느냐? 술 먹는 걸 닮는다. 담배 피는 사람을 따라다니면 담배 피는 게 닮는다. 감염이 된다. 옮아진다. 사람은 옮아지는 성질이 있다.
목사님들이 기도할 때 뱀 기어가는 소리를 하는 분이 있는데 왜 그러느냐? ‘주-시-옵소서.’ 어디서 배워온 거냐? 평소의 자기 목소리가 있지 않느냐? 그럼에도 그런 식으로 해서 사람의 마음을 건드려서 두렵게 하고, 그런 것으로 신앙이 좋은 것처럼 느끼게 하려는 발상은 하지 말아라.
다윗이 구원을 크게 기뻐했는데, 우리가 일반적인 사고방식에서 지혜지식 면이나 도덕성 면이 예수님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올라가면 이게 구원이다. 이룰구원이다. 이 구원을 받으면 계속 성장이 들어가니 이렇게 되면 성경이 깨달아지고, 사람이 바로 서고, 바람에 날려가지 않는 사람으로 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각종 바람에 마음이 얼마나 왔다 갔다 하느냐?
아까도 말했지만 ‘구원’이라고 할 때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병에서 나음을 받는 구원이 있고, 가난에서 부자로 되는 구원이 있고, 사업실패에서 성공으로 되는 구원도 있고, 예수 믿어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가는 구원도 있다. 이런 정도는 다 아는 거고, 그 다음에 전쟁에서 원수들을 다 죽여 버리고 성도를 살려내는 구원도 있다. 다윗이 전쟁에서 적들을 죽이고 자기 백성들을 살려낸 구원이 이 예이다. 그런가 하면 아브라함이 318명의 가군들을 이끌고 사대 연합군에게 붙잡혀 간 롯을 구해온 구원도 있다. 구원의 여러 가지 의미를 폭넓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성경은 여러 가지 면에서의 구원을 말하고 있는데 한 가지만 생각을 하면 이 사람은 구원에 대해 어둡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을 시켜서 광야로 이끌어 내고, 이 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 탈출시키는 것이 원수들에게서 성도를 탈출시키는 구원의 예이다. 다시 말하면 애굽은 세상을 의미하는데 세상정신 사상에 꽉 붙들려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기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구원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바르게 살려다 보면 여러 가지 사건 환경을 겪게 되는데, 이런 여러 가지 사건 환경을 겪어 나오면서 하나님의 성품이 입어지는 구원도 있다. 이런 게 성경에 다 있다.
육신구원, 몸 구원은 이방 불신자들도 좋아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마음이 입혀지는 구원은 모른다. 정신과 마음이, 속사람이 바꿔지는 이 구원은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모른다. 왜 그러냐?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영이 죽어있는 자들은 알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육신에 관한 것만 알지 영적인 면에서 정신이 올라가고, 마음이 올라가고, 지혜지식이 하나님처럼 높아지는 이런 구원은 성경에서 말을 하고 있는데도 전혀 알 수 없는 거다.
‘구원’이라고 할 때 1. 역사적으로 원수들을 다 죽여 없애고 성도를 살리는 구원이 있고, 이건 몸이 구원이 된다. 2. 원수를 그대로 두고 원수들에게 붙잡혀 있는 성도를 빼내는 구원이 있고, 3.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입히는, 하나님을 닮게 하는 구원이 있는데, 이 세 가지의 구원 중에 어느 것이 더 큰 구원이냐? 작은 구원이 있고 큰 구원이 있는데 어느 것이 큰 구원이냐? 다윗 왕은 어느 구원을 더 크게 여기고 기뻐했느냐? 하나님의 성품을 입히는 구원이 더 크다. 바꿔서 말을 하면 세 번째의 구원을 더 크게 기뻐하는 자가 왕이다. 왕은 세 번째의 구원을 더 크게 기뻐한다.
타락된 세상에서는 제각각 왕이다. 이 세상은 제각각 왕이다. 어린애들도 왕이다. 자기를 건드리면 막 난리를 친다. 세상의 왕들은 자기를 건드리면 눈을 부라린다. 이건 ‘내가 왕이니 건들지 말아라’ 하는 거다. 자기 잘난 멋에 산다 그 말이다.
그러면 이 세상의 제각각 왕은 무엇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느냐? 남녀 쌍쌍이 먹고 마시고 춤추고 호화롭게 사는 거, 세계 각지로 유람 다니는 이것을 못하면 화를 내고, 투정을 부리고, 이것을 못한다고 이혼하고, 이것을 잘 하자고 짝을 짓고, 이것을 하기 위해서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또 이것 때문에 살고, 이것 때문에 통치하고, 이것 때문에 권세를 잡고 군림을 한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이 재권 세권 이런 권을 잡으려고 하는 거다.
그러면 이런 것을 아무리 잡아도 이게 천국에 속한 거냐, 세상에 속한 거냐? 세상에 속한 거다. 세상에 속한 것은 사망권 안에 속한 거다. 그러나 천국을 목적으로 사는 사람은 그 신앙의 정신이 생명권 안에 사는 거다. 불타질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이 불에 타지기 전까지, 자기가 죽기 전까지 천국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거다. 이 세상은 어느 때인가는 불에 타진다. 불에 타는 것은 전부가 세상 것이요 사망권 안의 것이다. 심판권 안이다. 따라서 믿는 우리는 사망권 안에 살면 안 된다.
안 믿는 사람들은 죄 아래 살고 있다. 우리는 말씀 안에 살고 있는 거다. 말씀은 생명이다. 일반 세상 사람들은 이걸 전혀 모른다. 우리는 성경을 깨닫고 성경으로 쳐다보니 이걸 아는 거다. 안 믿는 사람들은 사망권 안에서 세상소원 목적으로 살게 되면 자기가 마음과 정신으로 하는 것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사는 것임을 모른다. 그러나 참 왕은 이걸 안다. 우리도 이걸 안다면 참 왕이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입는 것이 구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이치를 듣고 배우고 깨달으면 그 사람에게 말씀의 성품이 입혀지고, 말씀이 입어지는 이것이 자기의 정신과 마음이 말씀을 닮아가는 거다. 자기가 하나님의 옳은 것을 알면 하나님의 옳은 것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산 모든 효력성은 신령천국에서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 뿌린 대로 난다’ 라고 했듯이 네가 한 일은 네 뒤를 따라가고 있다. 그러니 예수를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깨닫고 믿고 갈 것이냐? 웬만하면 이치적으로 다 알아들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성경을 들고 세상을 목적하도록 가르치는 자는 거짓 종이고, 왜냐? 불에 타질 것을 가지도록 자꾸 가르치니 이건 불에 타는 거고 심판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이 지옥에 간다는 말은 아니다.
성경은 천국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 주님의 뜻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온전을 닮으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은 이를 위해 기록을 했다고 한다. 따라서 예수 믿는 사람이 누구를 닮아야 하는 거냐? 예수를 닮아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게 뭐냐? 예수님의 정신과 마음과 예수님의 소원과 목적과 취미를 닮는 거다.
하나님 아버지의 귀맛도 있고 눈맛도 있고 입맛도 있는 건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입맛이 뭔지, 예수님이 정신 맛이 뭔지, 코맛이 뭔지, 귀맛이 뭔지? 하늘나라에 무슨 과일이 있느냐? 생명과가 있다. 하나님은 생명과를 좋아하신다. 성경은 생명과요, 주님 당신이 생명과요, 이 생명과는 영원한 과일이라. 진리의 말씀이 생명과라. 영생과라.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옳은 진리이치의 말씀은 귀에 안 들어오고 ‘예수 예수’ 부르면서 고함치고 손뼉치고 하는 건 재미가 있다고 하면 언제 철이 들까?
앞으로 별 희한한 짓을 하는 교회가 생길 것이다. 얼마 전에는 부흥강사가 ‘성령 받아라’ 하면 아주머니들이 치마를 벌려서 그 성령을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말하기를 요즘에 어느 부흥강사는 입을 크게 벌리면 하늘의 복을 준다고 한단다. 그래서 그 분이 하는 집회에 모인 목사님들이 다 하늘을 쳐다보며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고 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화장실에 가서 똥을 한 바가지 퍼다가 그 사람들의 입에 쳐 넣지’ 그랬다. 얼마나 우스꽝스런 교회가 돼버렸는지. 망하려면 할 수 없다. 예수님 당시 때도 바리새 종교인들에게 예수님이 메시아로 보였느냐? 죽일 놈으로만 보였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