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고려의 500년 역사 중 찬란히 빛났던 순간들 중 하나인 처인성 전투.
오늘 국가유산지킴이 활동은 그 처인성 현장에서 있었다. 국가유산 해설사님의 고려 대몽항쟁의 배경과 국내외 정세를 들으면서 처인성 전투의 의미와 가치를 더 깊게 느낄 수 있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나왔던 향.소.부곡을 다시 들으니, 익숙하지만 제대로 몰랐던 부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역시 성인이 되어 이해되는 부분은 달랐다. 이 부분이 바로 국가유산 지킴이 활동에서 얻을 수 있는 귀한 경험이다.
신분은 양민이지만, 천민과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 살아가던 처인성 부곡민들. 임금조차 백성을 버리고 강화도로 도망을 갔던 시대. 부곡민들에게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들 뿐이었다.
처인성의 토성은 과연 이게 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낮았고(깎여나갔다지만), 역사관 안의 구현된 그 당시 모습은 기가막힐 정도로 비루했다. 하지만 수장이었던 김윤후 장군과 그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며 몽고 대장군과 몽고군에 항쟁했던 부곡민들의 의지와 믿음이 처인성 전투의 승리를 이끌었으리라. 아마 그들의 정신이 나라를 지키기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처인성의 대몽 정신은 강화의 삼별초와 궤를 같이 한다 볼 수 있다. 몽고의 6차 침입, 비록 충렬왕 외 6명의 '충' 왕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백성들은 끝까지 고려를 지켜냈다. 고려의 역사는 고난을 딛고 새롭게 태어난 진정한 백성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그 승리가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이겨낸 우리 한민족의 역사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처인성에서 보낸 국가유산 지킴이 활동은 책 속의 글과 그림이 아닌, 현장에서 여러 역사적 장면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처인성 역사박물관이 2022년 개관을 했다고 한다. 고려 역사상 가장 중요했던 전투와 그 터인 토성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발굴이나 국가유산 관리는 생각보다 늦은 감이 아닌가 싶다. 그 크기와 중요도의 고저와 상관없이 묻혀지는 국가유산이 없도록 앞으로도 국가유산 지킴이 활동은 지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