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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상태가 되면 소망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우리가 이 상태가 된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라고 해도 내일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그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는 우리가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의 몫입니다. 우리가 이것만 할 수 있다면 우리 자신이 바로 칼파브릭샤, 즉, 소원을 이루어 주는 나무가 됩니다.
'상상이 현실이 된다' 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상상만 한다고 현실이 될까요? 인도의 영적 지도자이자 현자인 삿구루는 우리의 몸과 마음, 감정, 에너지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이 현실이 될지, 아니면 단순히 공허한 생각으로만 남을 지를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이번 글은 삿구루의 끌어당김의 법칙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소망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 창조한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 즉, 이 행성에서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은 먼저 마음에서 표현된 다음 외부 세계로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이 행성에서 한 멋진 일들과 끔찍한 일들 모두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창조하느냐에 관심이 있다면, 먼저 우리 마음에서 올바른 것을 창조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원하는 대로 다스릴 수 없다면, 우리가 세상에 만들어 내는 것들도 무계획적이고 우연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마음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만드는데 기초가 됩니다. 요가 법칙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산책을 나섰습니다. 긴 산책을 했죠. 그러다 우연히도 지상 낙원에 들어갔습니다. 오래 걷다 보니 조금 피곤해져서, '아, 피곤하다. 어딘가에서 쉬고 싶다'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곤 그는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주위에는 멋진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푹신한 잔듸가 깔려 있었습니다.
그는 그곳에 가서 고개를 숙이고 잠을 잤습니다. 몇 시간 후, 그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일어났고, '아, 나는 충분히 쉬었지만 배가 고프다. 뭐라도 먹고 싶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먹고 싶은 음식들을 떠올려 보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모든 음식들이 바로 눈 앞에 차려져 있었습니다. 배가 고픈 사람이 무엇을 물어보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차려진 음식을 먹었지요.
음식에 대한 어떤 주저함이나 의심 없이 단순히 현재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음식을 먹었습니다. 배를 채우고 나서 그는 '아, 배가 부르다. 뭐 좀 마실 게 없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평소에 마시고 싶었던 모든 술과 음료들을 떠올렸더니, 그 모든 것들이 즉시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냥 마셨습니다. 찰스 다윈은 우리들은 모두 원숭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모두 원숭이였다가 꼬리가 떨어져서 인간이 되었다고 말했지요. 요가에서는 정립되지 않은 마음을 원숭이에 비유합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원숭이라고 부르는 이유, 그리고, 원숭이의 특성은 무엇일까요? 원숭이의 특성 중 하나는 불필요한 움직임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숭이의 또 다른 특성은 흉내내기 입니다.
따라서 원숭이가 가진 이 두가지의 주요 특성은 우리의 '정립되지 않은 마음'과 매우 유사합니다. 불필요한 움직임은 오히려 원숭이들에게 가르쳐줘도 될 만큼 우리 마음이 잘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흉내내기 또한 마음이 쉬지 않고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이 이 두 가지 특성을 나타낼 때, 원숭이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의 마음속에서 원숭이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음식을 원하면 음식을 주고, 술을 달라면 술을 주고' '여기 어딘가에 귀신이 있는 것이 틀림없어!'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귀신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나를 둘러싸고 괴롭히겠지' 라고 생각했고, 그러자 귀신들이 그를 둘러싸고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고통속에서 소리치던 그는 '아, 귀신들이 나를 죽일거야' 라고 말했고 진짜로 죽어버렸습니다.
그는 좀 전에는 자신이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칼파브릭샤, 즉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음식을 요청하면 음식이 나오고, 술을 원하자 술이 나타났고, 귀신을 떠올리자 귀신이 왔지요. 고문을 생각했더니 고문이 왔고, 죽음을 떠올렸더니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잘 정립된 마음, 즉, 샤묵티 상태에 있는 마음을 칼파브릭샤에 비유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정돈된 상태로 만들면 그것은 이어서 인체 시스템 전체를 정렬시켜 줍니다. 우리의 몸, 감정, 에너지 등 모든 것들이 그 방향으로 정렬되지요. 만약 우리의 이 네 가지 영역들, 즉, 몸, 마음, 감정, 그리고 근본적인 생명 에너지가 한 방향으로 정렬되면, 우리가 이러한 상태가 된다면 원하는 것이 무엇이건 간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실제 현실로 일어납니다.
여기에 행동이 추가되면 좀 더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도 이 네 가지 영역들을 한 방향으로 정렬시켜, 일정 기간 동안 그 방향이 흔들리지 않도록 유지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소망을 현실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지금 우리의 마음이 가진 문제는 매 순간 마음이 방향을 바꾼다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어딘가를 향해 길을 나섰는데 두 걸음 걸을 때마다 방향을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할 확률은 극히 낮을 것이며, 설령 도착한다고 해도 그것은 우연에 의한 결과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을 정렬하고 현재 이 순간 우리의 이 네 가지 기본 영역들이 한 방향으로 정렬되면, 우리가 이것만 할 수 있다면, 우리들 자신이 바로 칼파브릭샤, 즉, 소원을 이루어 주는 나무가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무언가를 원하면 기대보다 훨씬 더 큰 걸 얻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일은 믿음이 강한 사람들에게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집을 짓고 싶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나는 '집을 지으려면 몇 억은 있어야 하는데, 내 수중에는 몇 백 만원 뿐이네' '불가능 하겠어' 라고 생각합니다. '불가능하다' 라고 말하는 순간, 사실상 나는 '난 그걸 원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원하는 욕망을 일으키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난 그걸 원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 것이죠.
따라서 이러한 갈등 속에서는 원하는 일이 이루어 지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나 사원, 혹은 다른 어떤 것에 믿음을 가진 사람, 즉 마음이 단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은 이렇게 마음이 단순한 사람들에게만 효과를 발휘합니다.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효과는 전혀 없습니다. 자신이 믿는 신이나 사원, 혹은 무엇이 되었건 아이와 같이 단순하고 순수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사원에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집을 갖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신께서 부디 집을 만들어 주세요" 지금 이 사람의 마음속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루어질까?' '안 될까?' '가능할까?' 불가능할까?' 와 같은 의심은 전혀 없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단순한 '믿음' 하나로 모든 의심을 완전히 없애버린 것입니다. 이제 그는 신이 자신을 위해 집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그저 그 믿음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럼 신이 와서 집을 지어 줄까요? 아니요, 신은 우리를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실 겁니다.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창조의 근원입니다. 그분은 이미 창조의 주체로서 경이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것보다 더 훌륭한 창조물을 생각해 낼 수 있나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걸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그래서 창조주는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삶이 펼쳐지기를 바라는 이유는 바로 그 소망이 우리의 '행복'과 '웰빙'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면 그 이유는 삶이 우리가 원하는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펼쳐지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반대로 삶이 우리가 바라는 방식대로 펼쳐지면 행복해 집니다. 그 정도로 간단합니다. 그러니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펼쳐지게 하려면 먼저 스스로가 생각을 어떻게 하는지, 그 생각에 얼마나 집중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안정적인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생각 과정 속에 얼마나 많은 울림이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이 모든 요소들에 따라 우리의 생각이 현실이 될지, 아니면 단순히 공허한 생각으로만 남을 지를 결정합니다. 혹은 부정적인 생각 과정을 일으켜 생각이 실현되지 못하게 하는 방해 요소를 만들어 내는지에 따라 결과가 결정될 것입니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는 것이 인류를 망치고 있습니다.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는 우리가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의 몫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그저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두 개의 간단한 질문을 자문 자답해 보세요. 지금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 공중으로 날아오를 수 있나요? 아니라고 대답하겠지요. 그럼 지금 앉아있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할 겁니다.
나는 건 안되고, 걷는 건 된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가 여러번 일어나서 걸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 번도 공중으로 날아오른 적은 없었지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 지를 판단할 때, 기본적으로 과거의 '경험'을 잣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혹은 다른 말로 하자면, 지금까지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은 앞으로도 일어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인류와 인간 정신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라고 해도 내일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내일 그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는 우리가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의 몫입니다. 그건 자연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즉, 부정적인 생각이 섞여 사고의 강도가 약해지지 않게 하고 생각을 더 강렬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 첫 번째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명확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르고 그걸 만들어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살펴보면 즐겁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인간 관계에서 사랑과 애정이 충만하길 원하지요.
다시 말해 어느 누구든지 우리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내면의 즐거움과 외적으로 자신의 주위에 즐거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즐거움이 우리 '몸'안에서 일어나면 우리는 이를 '건강'이나 '유쾌함'이라고 부릅니다. 이 즐거움이 '마음'에서 일어나면 그것을 '평화'와 '기쁨'이라 합니다.
즐거움이 '감정'에서 일어나면 이를 '사랑'과 '자비'라고 합니다. 이 즐거움이 '에너지 차원'에서 일어나면 이를 '황홀함'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전부입니다. 직장에 일을 하러 가거나, 돈을 벌고 경력을 쌓거나, 가정을 꾸리거나, 술집에 가거나 사원에 가든 상관없이 누구나 원하는 것은 여전히 같습니다.
바로 '내적인 즐거움'과 '외부의 즐거움' 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소망하는 것이라면 이제 그것을 직시하고 그것을 이루고자 다짐하고, 노력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자, 우리들 자신이 평화적인 존재, 기쁨의 존재, 사랑의 존재, 즉 삶의 모든 면에서 즐거운 인간 존재가 되길 바란다면, 이 세상 또한 평화롭고 사랑이 넘치고 즐거운 곳이길 바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즐거운 세상'이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 세상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전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과 주변 모두를 위해 평화롭고, 즐겁고, 사랑스러운 세상을 만들기로 다짐하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할 때, '오늘 나는 어디를 가든지, 평화롭고 사랑스럽고 즐거운 세상을 만들어 낼 것이다' 라는 단순한 생각을 떠올려 보세요.
하루에 수백 번을 넘어진들 뭐가 그리 대수로운 일인가요? 의지가 굳은 사람에게는 실패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백 번 넘어지면 백 가지 교훈을 얻을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굳은 의지로 노력하면, 마음이 이리저리 다니지 않고 정렬이 이루어집니다. 일단 '마음이 그 방향으로 정리되면 생각하는 방식이 곧 느끼는 방식이 되며, '감정'도 정리됩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 정리되면 '에너지'도 같은 방향으로 정렬될 것입니다. 생각과 감정과 에너지가 정렬되면 우리의 몸 그 자체가 정리가 됩니다. 이렇게 네 가지 모두가 한 방향을 향해 정렬되어 정리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내고 실현시키는 능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일 것입니다. 여러 면에서 우리가 바로 창조주인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창조의 근원 그 자체가 삶의 매 순간마다 우리들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단지 이 뿐입니다. 삶의 네 가지 기본 요소들을 정렬함으로써 그 차원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 차원에 접근해 있을까요? 요가 과학의 전부, 즉, 우리가 '요가'라고 부르는 기술은 바로 '일개 창조물에 지나지 않는 자기 존재를 창조주 그 자체로 변혁시키는 것'입니다.
저의 소망과 바램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 내부의 창조의 원천에 접근할 수 있게 되어,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자'로써 기능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 여기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몸과 생각과 감정, 그리고 생명의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정렬하시고 자신 내부의 창조의 원천에 접근하시어 원하시는 세상을 창조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