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역설〔讀易說〕
《역(易)》이라는 책은 광대함을 다 갖추어 천하의 상(常)과 변(變)을 다하고 천하의 의(義)와 이(理)를 두루 포괄하여, 본래 하나의 단서로 구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책을 복서(卜筮)의 글이라고 여기는 것은, 상(象)이 변하는 점사(占辭)가 종종 눈앞에 맞닥뜨린 때와 처한 처지와 부합하여 길흉(吉凶)과 회린(悔吝)이 그에 따라 구비되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세에 이 책을 읽는 사람이 그 근원을 다 연구하고 그 심오함을 찾을 겨를도 없이, 다만 그 문구(文句)의 내용만 좋아하여 마침내 흉(凶)을 피하고 길(吉)로 나아가며 해(害)를 제거하고 이(利)를 취하는 자료로 삼았다. 그래서 위로 공경(公卿)의 귀인(貴人)으로부터 아래로 포의(布衣)의 처사에 이르기까지 《역》 읽는 것을 자랑으로 삼지 않은 자가 드물었고, 친구나 사제(師弟) 간에 권면하고 인도하며 지도하고 전수하는 자들이 항상 사서(四書)와 《시경》, 《예기》보다 우선시하였으니, 아, 이 역시 쇠퇴한 세상의 뜻일 것이다.
그렇지만 《역》의 대의(大義)는 양(陽)을 부지하고 음(陰)을 억제하는 데 있어서 그 소중함이 강건(剛健) 중정(中正)함에 있으니, 여러 괘(卦)를 가지고 말해 보면, 〈둔괘(屯卦)〉의 경륜(經綸), 〈감괘(坎卦)〉의 행유상(行有尙), 〈둔괘(遯卦)〉의 여시행(與時行), 〈규괘(睽卦)〉의 동이이(同而異), 〈곤괘(困卦)〉의 이강중(以剛中)이 대개 또한 어려움에 대처하고 우환에 행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상에 《역》을 논하는 사람이 그 일부만 잡고 그 전체를 버린다. 〈대과괘(大過卦) 상전(象傳)〉에서는 독립불구(獨立不懼)를 버리고 오직 돈세무민(遯世无悶)만을 취하였고, 〈곤괘(坤卦)〉의 효(爻)에서는 직방대(直方大)를 생략하고 꼭 괄낭무구(括囊无咎)를 말하여 그 주안점을 매번 ‘머리를 숙이고 물러서서 자기 한 몸이나 보존하고 아끼려는 뜻’에 두었으니, 개물성무(開物成務)의 큰 쓰임에 비춰, 어찌 편벽되다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말류의 폐단이 양(陽)은 혹 억누를 수 있고 음(陰)은 혹 부지할 수 있다 하여, 강건(剛健)과 중정(中正)을 귀(貴)하게 여기지 않고 유약〔柔懦〕과 편벽〔偏邪〕을 잘못이라 여기지 않으니,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이런 까닭으로 《역》을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건괘(乾卦)〉의 ‘스스로 힘써 쉬지 않는다’, 〈몽괘(蒙卦)〉의 ‘과단성 있게 행하여 덕을 기른다’, 〈대장괘(大壯卦)〉의 ‘예가 아니면 실천하지 마라’, 〈진괘(晉卦)〉의 ‘스스로 밝은 덕을 밝힌다’, 〈손괘(損卦)〉, 〈익괘(益卦)〉의 징질(徵窒)과 천개(遷改) 등을 취하여 수용할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비괘(否卦)〉의 ‘덕을 검약하고 난을 피한다’, 〈기제괘(旣濟卦)〉의 ‘근심거리를 잘 생각해서 미리 예방해야 한다’는 등과 같은 것을 수시로 이룰 한 의리로 삼아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 요점은 또 이정(利貞) 두 글자에 있다. 대개 정(貞)은 바름〔正〕이고 굳음〔固〕이다. 정(貞)하면 이롭지 않음이 없고, 정(貞)하지 않으면 이로운 바가 없으며, 정(貞)하면 지나치게 건너 이마까지 빠져도 또한 허물이 되지 않고, 정(貞)하지 않으면 집을 나가지 않아도 흉(凶)함을 면하지 못한다. 이런 까닭으로 64괘의 뜻이 모두 이(利)와 정(貞)을 주로 삼았다. 또 “영원히 바른 도를 지키는 것이 이롭다.”라고 한 것도 있으니, 영정(永貞)은 또한 이로움의 큰 것이다. 《역》을 읽는 사람이 또한 어찌 이런 뜻으로 읽지 않는가?
나는 곧 ‘남자가 궁하다’는 사람이니, 내가 이 말을 하면 반드시 이상하게 여기고 비웃을 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성인께서 상전(象傳)과 계사(繫辭)를 전한 뜻이 재앙을 면하고 몸을 보전하는 한 길만을 위함이 아닌 듯하다. 그러므로 이렇게 사사로운 식견을 적어 허수(虛受)의 군자에게 나아가 바로잡으려 한다.
[주1] 쇠퇴한 …… 것이다 : 《주역》〈계사전 하(繫辭傳下)〉의 “그 이름을 일컫는 것이 섞였으면서도 넘지 않으나 그 종류를 상고해 보면 아마도 쇠퇴한 세상의 뜻일 것이다.〔其稱名也 雜而不越 於稽其類 其衰世之意耶〕”라는 구절에서 인용하였다.
[주2] 경륜(經綸) : 《주역》〈둔괘(屯卦) 상(象)〉에 “구름과 우레로 이루어진 괘가 둔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경륜하여야 한다.〔雲雷 屯 君子 以 經綸〕”라고 하였다.
[주3] 행유상(行有尙) : 〈감괘(坎卦)〉 괘사(卦辭)에 “습감은 성실함이 있어 마음으로 형통하니 나가면 가상(嘉尙)함이 있을 것이다.〔習坎 有孚 維心亨 行 有尙〕” 하였다.
[주4] 여시행(與時行) : 〈돈괘(遯卦) 단전(彖傳)〉에 “강은 존위(尊位)에서 응하니 때에 따라 행한다.〔剛當位而應 與時行也〕”라고 하였다.
[주5] 동이이(同而異) : 〈규괘(睽卦) 상전(象傳)〉에 “위는 불이고 아래는 못인 것이 규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같으면서도 다르게 한다.〔上火下澤 睽 君子 以 同而異〕”라고 하였다.[주-D006] 이강중(以剛中) : 〈곤괘(困卦) 단전(彖傳)〉에 “바른 대인이라야 길하다는 것은 강이 중에 있기 때문이다.〔貞大人吉 以剛中也〕”라고 하였다.
[주7] 대과괘(大過卦) 상전(象傳) : 〈상전(象傳)〉에 “연못이 나무를 빠뜨리는 것이 대과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홀로 서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상을 피해 있어도 근심하지 않는다.〔澤滅木 大過 君子 以 獨立不懼 遯世无悶〕”라고 하였다.[주-D008] 직방대(直方大) : 〈곤괘(坤卦) 육이(六二)〉에 “곧고 반듯하고 크니, 익히지 아니하여도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直方大 不習 无不利〕”라고 하였다.
[주9] 괄낭무구(括囊无咎) : 〈곤괘 육사(六四)〉에 “주머니를 묶으면 허물도 없고 명예도 없다.〔括囊 无咎 无譽〕”라고 하였다.
[주10] 개물성무(開物成務) : 사물의 진상(眞象)을 드러내어 인사(人事)로 하여금 각기 그 온당함을 얻게 하는 것이다.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역은 개물성무하고 천하의 일체 도리를 포괄하니 이와 같은 것일 뿐이다.〔夫易開物成務 冒天下之道 如斯而已者也〕”라고 하였다.
[주11] 징질(徵窒) : 〈손괘 대상(大象)〉에 “군자는 이를 본받아 분노를 징계하고 욕망을 억제한다.〔君子 以 懲忿窒欲〕”라고 하였다.
[주12] 천개(遷改) : 〈익괘(益卦) 상사(象辭)〉에 “풍뢰가 익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선을 보면 그쪽으로 옮겨 가고 허물이 있으면 고치느니라.〔風雷益 君子 以 見善則遷 有過則改〕”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주13] 지나치게 …… 빠져도 : 〈대과괘(大過卦) 상육(上六) 효사(爻辭)〉에 “지나치게 물을 건너 이마까지 빠져 흉하니 탓할 데가 없다.〔過涉滅頂 凶 无咎〕” 하였다.
[주14] 집을 …… 흉(凶)함 : 〈절괘(節卦) 구이(九二) 효사(爻辭)〉에 “대문 안의 정원을 벗어나지 않으니 흉하다.〔不出門庭 凶〕” 하였다.
[주15] 영원히 …… 이롭다 : 〈곤괘 상전(象傳)〉에 “육을 사용한 것은 영원히 바른 도를 지키는 것이 이롭다.〔用六 利永貞〕”라고 하였다.
[주16] 남자가 궁하다 : 〈잡괘(雜卦)〉에 “미제는 남자가 궁한 것이다.〔未濟 男之窮〕”라고 하였다.
[주17] 허수(虛受)의 군자 : 〈함괘(咸卦) 대상(大象)〉에 “군자는 마음을 비우고서 남의 말을 받아들인다.〔君子 以虛受人〕”라고 한 말에서 인용하였다. < 출전: 구사당집 제8권 / 잡저(雜著)>
讀易說
易之爲書。廣大悉備。盡天下之常變。該天下之義理。本不可以一端求之。然以其爲卜筮之書也。象變占辭。往往與目前所遇之時所處之地合。而吉凶悔吝。隨而具著。故後世讀之者。不暇窮其源探其賾。而獨悅於其文句之間。遂以爲避凶趨吉去害就利之資。上自公卿貴人。下至韋布處士。鮮不以讀易爲名。朋友師弟之勉導而指授之者。常在四子詩禮之先。嗟乎。亦衰世之意也。雖然。易中大義。在於扶陽抑陰。其所重在於剛健中正。而以諸卦言之。屯之經綸。坎之行有尙。遯之與時行。睽之同而異。困之以剛中。蓋亦處難行患之一道也。竊怪夫世之論易者。執其一而遺其全。於大過之象。則捨獨立不懼而獨取遯世无悶。於坤之爻。則略直方大而必曰括囊无咎。其所主每在於低頭退步。保惜一己之意。其於開物成務之大用。豈不爲偏。而末流之弊。陽或可抑而陰或可扶也。剛健中正。不爲貴。而柔懦偏邪。不爲非也。如之何其可也。是故學易者。必先取夫乾之自強不息。蒙之果行育德。大壯之非禮弗履。晉之自昭明德。損益之懲窒遷改等處。以爲受用之地。而若否之儉德辟難。旣濟之思患豫防。不害爲隨時相濟之一義。然其要歸又在利貞二字。蓋貞。正也固也。貞則无不利。不貞則无攸利。貞則過涉滅頂。亦不爲咎。不貞則不出門庭。未免於凶矣。是故六十四卦之義。皆以利貞爲主。而又有曰利永貞。永貞。又利之大者也。讀易者。盍亦以此意讀之哉。余乃男之窮者也。余之爲此言。人必有怪笑之者。然竊恐聖人垂象繫辭之意。不但爲免禍保身之一塗而已。故私識之如此。將以就正于虛受之君子云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