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견이 반려견으로, 개의 위상이 높아졌다. 사람과 늘 가깝게 생활하는 반려견을 한때는 애완견이라 했다. 개도 예전에는 소와 돼지 같은 가축이었다. 벼, 보리 등의 곡식을 도정(搗精)한 후 부산물인 등겨가 소와 돼지의 사료였다. 개는 사람처럼 잡식으로 끼를 챙겨줘야 해서 다른 가축보다 하대(下待)한 것 같다. 지금은 여러 종류의 외래종이 가정에서 사랑받는다.
빈곤했던 시절, 방바닥에 삿자리를 깔고 살았다. 갈대를 가늘게 쪼개 엮어 만든 자리였다. 어린아이의 소변은 걸레로 닦을 수 있으나 배변은 삿자리 틈에 끼어 닦기 힘들었다. 이때 “워리!”하고 부르면 개가 쏜살같이 뛰어와 변을 말끔히 처리하여 뒷손을 덜어주었다. 농가에서 개를 가축으로 사육한 것은 어린애 배변 처리가 목적이었다. 지금처럼 이름이 없었고 이 집 저 집 전부 “워리”로 불렀다. 개는 사람과 달리 시각과 후각이 발달하여 자기를 사육하는 사람의 음성과 모습을 정확히 기억한다. 여러 마리가 어울려 놀다가 내가 “워리”라 부르면 우리 집 개만 뛰어왔다.
강아지는 누구나 다 귀여워했다. 강아지의 재롱은 누가 봐도 사랑스럽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주에게도 이런다. “이이고, 우리 강아지!”
귀여움받지 못하는 개도 있다. 악취 나는 배설물을 먹고 숙명적으로 서럽게 살다가 보신탕으로 생을 마감하는 동물이 똥개의 운명이었다. 우리말에 더럽고 하찮은 것들 앞에는 접두어 ‘똥’과 ‘개’가 붙는다. 자동차가 고장이 잦거나 성능이 떨어지면 똥차, 수치스러울 때는 얼굴에 똥칠, 상품값이 떨어지면 똥값이라 한다. 사람 하는 짓이 밉살스러울 때 개귀신, 개차반, 개 같은 놈, 개보다 못한 놈이라 한다. 어쩌다 크게 망신을 당하면 개망신, 무질서하고 난잡한 상태를 개판이라 한다. 비슷한 모양을 가진 식물에도 변변치 못한 것은, 개쑥갓, 개 감초, 개양귀비, 개옻나무 등 접두어로 ‘개’를 붙인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자식을 낳아도 일찍 죽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면 뒤에 낳는 자식을 ‘똥개’라 불렀다. 똥개처럼 잘 먹고 건강하게 성장하라는 염원을 담아 지은 것이다. 똥개를 한자로 쓸 수 없어 ‘동개’로 호적에 등재했다. 나이 든 사람 중에 이름이 ‘동개’이면 어릴 때 똥개로 불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지인 중에도 김동개 씨가 있었는데 어릴 때 똥개라고 불리며 친구들의 놀림감이었지만 나이 들어 재력과 건강을 누리고 천수를 다했다.
농작물에 거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동양권에서는 가축의 변을 숙성시켜 거름으로 요긴하게 재활용했다. 두엄은 가축의 배설물과 잡초, 낙엽, 짚을 함께 썩힌 것으로 지력을 높여준다. 우리가 어릴 때 어른들은 좀처럼 남의 집 화장실을 쓰지 않았다. 대소변을 모아 보리밭이나 채소의 거름으로 써야 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개는 방범과 사냥을 돕는 일을 하여 대우를 받았다. 우리 토종개 황구나 백구도 방범이나 사냥을 도왔으나, 식용으로 쓰였다. 개는 더위를 극복하는 보신용으로 나무 그늘에 건 커다란 솥에서 개장국으로 끓여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 먹였다. 서양에서는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문화의 차이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국어 교과서에 조선 시대 정학유의 ‘농가월령가’가 실렸다. ‘며느리 말미 받아 본집에 근친 갈재, 개 잡아 삶아 얹고 떡 고리며 술병이라.’ 조선 시대에도 개는 식용 가축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 해도 나는 이런 기호에 거부감이 든다.
자식 셋이 결혼과 취업으로 나가자, 집 안과 너른 마당이 을씨년스러웠다. 부산 근교에 사는 친구가 애완견이 새끼를 여섯 마리나 낳았으니 한 마리 키워보라고 주고 갔다. 다 큰 것이 고양이만 한 외래종이었다. 녀석을 종종 이라 부르고 목줄을 하지 않고 뛰어놀도록 했다. 온 마당을 휘젓고 다니며 적적한 공감을 채워주니 활기가 넘쳤다. 단독주택 관리가 힘겨워 아파트로 옮기게 되었다. 개 짖는 소리가 이웃에 폐가 될 것 같았다. 일 년이 넘도록 매일 출근하듯 들러 홀로 두고 나온 종종 이랑 놀아 주고 대문을 나설 때마다 마음이 아렸다. 주택이 매도되어 잘 기르겠다는 사람에게 데려다주었는데, 그만 인간의 욕심에 희생되었다. 참척(慘慽)처럼 느껴져 망연자실(茫然自失)했다. 종종 이는 하늘나라로 가면서 내 아픈 심정을 「세 번째 이별」이라는 글로 써서 수필가로 등단하게 했다. 아직도 우리 내외는 비슷하게 생긴 반려견만 보면 눈물이 난다. 날렵하고 영리했던 녀석은 반려자를 잘못 만나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애통하게 떠나버렸다.
이웃에 아침마다 목줄을 푼 반려견과 산책하는 중년 내외가 있다.
“엄마 여기 있네! 아빠도 여기 있다. 이리 와.”
갑자기 두 내외가 개로 돌변하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동물과 자식 부모가 되는 호칭이 언뜻 듣기에 귀에 거슬렸다. 동물을 사랑하는 것과 동물의 부모가 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싶으면서도 그만큼 가족으로서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요즘은 다세대주택에서도 반려견이 자주 눈에 띈다. 환경도 좋아지고 개의 위상도 높아졌지만 아쉬움도 있다. 따듯한 계절인데 옷을 입힌 채 산책하는 걸 보면 피부에 기생충이 생겨 얼마나 가려울지 걱정이다. 겨우내 입혔던 옷은 날씨가 풀리면 벗겨주어야 한다. 짖는 소리가 소음이라 하여 성대 결제 수술을 하고 새끼를 낳으면 처리가 귀찮아 난소와 정소 제거 수술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생명체의 본능을 인위적으로 절제하는 것은 지독한 동물 학대이다.
생명의 소주함은 동물과 사람이 다를 바 없다. 생명체를 완구처럼 부른 ‘애완’이라는 말은 짐짓 바뀌어야 할 말이다. ‘반려동물’이라는 말에는 동물도 가족으로 여기고 동등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다. 그 위상은 반려자인 사람이 지켜주어야 한다.
첫댓글 23년이 이리도 빨리 마무리 되리라곤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세월이 유수 같다는 옛 말이 실감 나는 오늘 입니다.
선생님의 '반려동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건강은 어떠신지?
새해에는 건강이 좋아지셔서 좀 더 활기찬 날들을 보내시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