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의 제주 이전? 쇼크!
수요일 밤, 한국 대표팀이 덴마크에 패하고 청소년 팀은 일본에 패한 뒤에 잠자리에 들었던 부천의 열혈팬들 가운데, 하루 뒤면 자신들이 서포트하는 팀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리라 예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부천 축구단의 제주 이전 발표는 한마디로 쇼크였다. 그리고 잘못될 결정이기도 하다. 어떻게 새로운 시즌 일정이 모두 발표된 뒤에 이런 연고 이전 문제가 확정될 수 있는 것인가? 부천이 힘들 때나 좋을 때나 (물론 대개 힘든 시간을 겪었지만) 부천에 한결 같은 지지를 보냈던 부천 팬들은 분노할 권리를 갖고 있다. - 사실, 한국의 축구팬들은 축구계 ‘높으신 분들’에 의해 자신들의 바람이 끊임없이 무시당하는 현실에 함께 분노해야 한다.
이번 연고 이전은 K리그가 필요로 하는 것들에 정면 배치되는 사건이다. 리그는 클럽과 지역간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통해 힘을 얻기 마련이다. 이것이야 말로 축구가 이 땅에서 밝은 미래를 가지게 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비가오나 눈이 오나 팀을 지지해줄 충성스런 팬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K리그에는 몇 차례 연고 이전이 있긴 했다. 하지만 어느덧 23년차에 접어든 K리그는 이제 성년기라 할 수 있다. 그런 ‘습관’은 이제 끝을 맺어야 한다. 팬들로서는 자신들이 응원하는 구단이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여기는 미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J리그가 날이 갈수록 제 꼴을 갖춰가는 일본의 경우를 보자. 우라와나 니가타의 경기를 보기 위해 두 도시를 찾게 되면 구단들이 어떻게 도시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부천보다 적은 인구를 가진 두 도시에서는 지난 2005년 매경기 각각 4만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 두 구단의 노력에 보답했다.
뒷통수 맞은 팬들
부천은 최근 몇 년간 어둠의 나날을 보냈다. 위 두 도시의 관중은 감히 넘볼 수도 없을만큼 적은 관중을 앞에 두고 경기를 해왔다. 2003년, 부천은 성남보다 승점 70점이 낮은 상태로 시즌을 마쳤다. 정해성 감독의 부임과 함께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한 부천은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 코앞까지 가는 성과를 냈다. 챔피언까지 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팬들은 몇 년만에 처음으로 낙관적인 기대를 안은 채 새로운 시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불과 이틀 전의 얘기다.
제주도에 K리그팀이 생기는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바라건대, 바람과 바위, 여자가 많기로 유명한 이 삼다도가 축구로 유명한 고장이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그것이 부천의 희생을 기반으로 해서는 곤란하다. 프로축구연맹은 기존의 구단들이 더 좋은 고장을 찾아 연고이전하는 행위를 막아야 한다. 리그에 필요한 것은 안정과 연속성이다.
SK 축구단의 변명
SK 축구단의 정순기 단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연고 이전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제주도민들의 프로축구팀 유치 열망이 매우 컸습니다” 그렇다면, 제주도 사람들이 그들만의 팀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탄생한 팀이야말로 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섬에 더 강한 뿌리를 뻗을 수 있을 것이다.
정 단장은 또 이런 말을 덧붙였다. “14개 구단 중 4개 팀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K리그의 전국적 고른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다” SK 축구단이 K리그의 발전에 더 큰 관심이 있어서 연고 이전을 자행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이번 사태는 누가 봐도 팬들을 위한 게 아니다. 전 구단의 1/3 정도만이 서울과 경기도에 연고를 두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이 지역 인구의 한국내 비중은 1/3을 훨씬 넘는다. 그렇게 보면 한국 남부 지역에는 이미 충분한 수의 팀이 있다. 심지어 새로운 팀(경남FC)까지 가세하지 않았는가. 만일 SK축구단이 지역 균형에 이바지하고 싶었다면 강원도로 이전하는 게 이치에 맞았다. 하지만 (제주도보다) 덜 매혹적인 동해안 지역은 돈이 덜 되는 동네였던 모양이다.
경기 지역 팬들은 정신을 번쩍 차려야 한다. 불과 2년 전에 안양이 떠났고 이제는 부천이 뒤를 잇고 있다. 안양의 서울 이전 역시 잘못된 것이지만 이때는 적어도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K리그는 인구 1천만 도시에 팀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 스스로 팀을 만들었어야 더 옳았겠지만). 하지만 인구 30만의 섬에 인구 90만의 도시(부천)보다 축구팀이 더 필요했느냐고 묻는다면 과연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영국 사례? 전혀 다르다!
잉글랜드의 MK돈스 이전 사례(런던 연고 윔블던 팀이 런던 인근 밀튼 케인스[MK]로 이전한 사례)와 비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일부 유사점은 있지만 이건 같은 사례가 아니다. 윔블던이 밀튼 케인스로 연고를 옮긴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홈 구장을 갖지 못해서였다. 매우 훌륭한 경기장을 갖고 있던 부천의 입장과는 사뭇 다르다. 윔블던은 크리스탈 팰리스의 홈구장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 어쨌든 이건 매우 독특하고 보기에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밀튼 케인스의 한 사업가는 윔블던이 경기장을 필요로 하고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이 팀이 밀튼 케인스로 이전하도록 설득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2002년에 이를 승인했다. 윔블던은 런던에 1년 더 머물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팬들(홈팬은 물론이고 원정팬들까지) 항의 차원에서 이들의 경기를 보러가지 않았다.
MK돈스의 경기를 보기 위해 밀튼 케인즈를 찾는 사람의 수도 별로 많지 않다. MK돈스는 아마도 잉글랜드 사상 가장 미움받는 팀일 것이다. 하위리그로의 강등도 피하기 어렵다.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전에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 적이 한번에 없었고 그래서 일 처리를 미숙하게 했다. 이 사례에서 교훈을 얻은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다시는 이런 연고 이전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것이야말로 K리그가 받아들여야 하는 자세다. 부천 팬들에게는 너무 늦은 일이 될지라도.
* 축구논장① : 부천 관중 변천사 * 축구논장② : 부천의 제주 이전, 당신의 생각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