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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명절을 마치고 오랜만에 만나는 옆에 있는 동역자들에게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명절을 지나고 오니까 얼굴들이 더들 좋아 보이시는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이 시간 우리 이번 주부터 4주간 우리 임직식 전까지 우리 임직자들이 이렇게 양육을 받으면서 간증을 간단하게 한 내용들이 있고 또 자기 나름대로의 임직에 대한 어떤 다짐 또 기도 제목을 여러분들에게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이 시간 우리 우희경 집사님 앞으로 나오셔서 잠시 나눔 가져주시겠습니다.
오니까 되게 많이 떨립니다. 지금 네 안녕하세요. 저는 우희경 집사입니다. 또 이렇게 하늘소망교회 성도님과 주님 앞에 간증을 하게 되니 정말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약간 두렵기도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앞으로 모든 제가 말하는 것에 입술을 주님께서 지켜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모태 신앙으로 주님께 감사하게도 어린 시절부터 주님과 가까이했습니다. 주일은 어김없이 주일학교를 갔었고 또 중고등부 시절에는 또 사춘기 시절과 청년부까지 모두 교회와 함께 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생각하다 보면 여름 성경학교 때 저희 때는 새벽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4번을 출석하게 됐어요. 그것도 2박 3일로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제가 동생과 함께 데리고 항상 교회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또 중고등부 시절에는 정말 교회에 살았었어요. 교회에서 살면서 많은 또 이제 오빠들과 또 동생들과 함께 중고등부 시절을 보냈었고 지금은 많이 이제 많이 없어졌어 그때만 해도 올라이트라고 해서 같이 또 성탄절 크리스마 이분들 같이 이제 올라이트를 하고 새벽 기동도 하고 그런 추억도 있고요.
또 수련회도 정말 많이 다녔습니다. 수련회도 교회 내에서도 하는 것도 있었고 또 외부에서 저희 무주 리조트라고 해서 엄청나게 전국에 있는 청소년들과 같이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모든 것들이 저의 지금의 신앙 기초가 되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결혼할 때에도 저는 결혼하고 나서도 같이 또 배 항상 교회를 같이 했었습니다. 또 2시 달란트가 있기 때문에 그 달란트로 교회를 봉사를 많이 했었었고 또 꾸준히 성실하게 교회를 다 다 그런데 저한테는 그 와중에도 주님과 만난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소위 말해서 선데이 크리스찬이 있습니다. 수요 예배 또 주일 예배 또 결혼하고 나서는 21일 새벽 작전 기도회 반주까지 했었어요.
근데 이제 우리 큰아이가 시윤이가 되게 이제 어렸을 때인데 돌쯤 됐었는데 그 아이를 데리고 또 이제 가서 새벽 기도회를 반주를 하고 그렇게 했었는데 제가 주님을 만나게 됐고 결혼 이후에 어떤 좀 힘듦이 있었는데 그 일을 겪고 나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말씀 중에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씀이 있어요. 그런데 그 말씀을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어요. 어떻게 고난이 축복이 되지 이렇게 힘든데 이게 어떻게 나한테 복이 될까 그랬는데 주님께서 그때 저한테 그 말씀을 주시면서 엄청 저를 사랑한다고 너를 너무 사랑해서 내가 이런다고 너를 내가 니가 나를 안 보니 내가 이 고난을 준다는 그 말씀을 저는 그때 기도하면서 너무 많이 느꼈고요. 그때부터 제 삶이 좀 바뀌었어요. 새벽 기도회를 제가 자진해서 나갔었고 모든 예배를 그냥 감사함으로 갔었고 교회에 간다는 그 자체가 너무너무 감사했어요. 그냥 예배를 드리는 그 자체 기도하는 그중에 말씀을 읽는 그것이 정말 저한테는 되게 큰 복이었고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제 말씀과 기도 특히 큐티를 열심히 하면서 교회를 지금까지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큰 기쁨과 이 되었었고요. 또 오늘 이렇게 목사님께서 어떤 임직에 대한 이제 준비 과정과 임직자로서의 어떤 들 이런 것을 가지고 어떤 소감문을 발표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냥 지금까지 어떤 임직자라는 걸 따로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집사라고 감사라고 일반 성도라고 해서 제가 어떤 그 하나의 내 힘이 붙는 거지 제 신앙생활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라는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제 삶이 온전히 주님께 드려지는 시간들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들고요.
또 인증을 준비하는 이 과정에서 정말 근데 조금 어려움과 힘듦이 있었는데 그 선배들의 조언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가려고 하고 더 내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하면 엄청난 시험이 내적 외적으로 다 이렇게 이제 말씀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근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정말 사단은 가만히 두지를 않더라고요. 이렇게 해서 못하게 저렇게 해서 못하게 하고 그런 와중에 저는 안 되겠다 더 말씀을 묵상하고 더 기도를 많이 해야겠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가지고 분별하는 개념을 더욱더 하나님께 구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에 하나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낯선 어떤 것보다도 예를 하고 꿈과 영감이 관절과 고수를 찔러 쫓기기까지 하여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를 이 말씀이 정말 정말 되게 와닿거든요.
왜냐하면 마음과 생각과 뜻이 주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저희를 바르게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마음의 생각의 분별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첫 마음과 주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면서 저는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근데 저희가 세상에서 유혹도 많고 시험도 많고 이런 것들이 항상 있을 때 더 주님을 찾아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의 구원과 믿음은 오직 주님의 은혜에서 받을 수 고 또 항상 긍휼히 믿음의 은혜를 주님께 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도 믿 인도 봉사도 모든 것은 제가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항상 깨어 있기를 주님께 구하며 항상 기도하는 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귀한 간증 감사드립니다. 또 그 고백처럼 정말 항상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8월 말에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이 이런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한국인의 울분과 사회 심리적인 웰빙 관리 방안을 위한 조사 말이 좀 길어서 복잡하긴 한데 한국인들이 지금 어떤 울분 그리고 사회 심리적인 상태를 어떻게 관리해야 되느냐라고 하는 부분들을 이제 조사를 했는데 응답자의 49.2%가 장기적인 울분 상태에 있었다.
그러니까 거의 이 조사 결과의 50%가 장기적인 울분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심각한 수준의 울분을 겪는 응답자가 9.3%, 그리고 심각한 울분을 겪는 이들의 60%는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이게 지금 퍼센테이지로 따지면 엄청난 겁니다.
앞에 데이터를 제가 좀 몇 가지 이렇게 보았는데요. 지금 아까 말한 49.2%의 사람들이 울분에 지금 있고 그중에서 9.3%가 높은 심각이다. 그리고 연령대별로 가장 높은 게 30대가 지금 제일 높은데 거의 지금 10대부터 50대까지 거의 비슷하게 10% 이상이 장기적인 심각한 울분 상태에 빠져 있는 그러니까 지금 우리 교회 성도들이 한 40명가량 지금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 이 중에 4명은 심각한 울분 상태에 빠져 있는 지금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울분이라는 말은 부당하고 모욕적이고 그리고 신념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겨지는 스트레스를 경험할 때 나타나는 감정의 반응입니다. 한마디로 억울함이 누적되는 그 상황의 결과가 울분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울분이 이게 뭔가 이렇게 톤을 터놓을 데가 없고 계속 누적이 되면 우울로 그리고 결국 아까 전에 말한 심각한 상태로 가서 자살까지도 생각하는 그런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한동안 우리나라의 최고의 직업군이라고 여겨졌던 공무원 군이 있었죠. 요즘 최근 공무원들이 줄줄이 퇴사하는 그런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있는데 그 배경에 이 울분 사회 속에 살아가는 시민들이 공무원들에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울분을 토해내는 그것들이 감당할 수 없는 것 때문일 것이다라고 하는 분석도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 이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의 모습에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아까 우리 대표 기도하시는 우리 안 집사님이 명절 기간 누군가를 분내게 했던 것에 대한 회개도 했고, 또 그 부분에게 용서를 하는 기도를 했는데 혹시 여러분들 명절 지내면서도 여러분들 가족 관계 때문에 울분이 올라오는 분들이 계신가요?
아니면 삶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 여러분들이 억울하게 뭔가 당하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 속에서 울분이 일어나고 있는 것들이 있지 않나요?
그게 부부관계가 될 수도 있고 또 교우 간의 관계가 될 수도 있고 이웃과의 관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상태를 먼저 좀 점검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도 지금 이 울분 상태에 처해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장장 40일 동안 블레셋 장수인 골리앗으로부터 온갖 모욕을 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골리앗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다윗에게 이 저주를 포함해서 모욕하고 있는 장면이 사무엘상 17장 43절에서 44절 말씀에 나오는데 막 이 다윗을 향해서 저주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저주하면서 협박하죠. 내 살을 공중에 세워 들짐승에게 주겠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끔찍한 저주의 말들입니다.
다윗은 원래 군인이 아니기 때문에 형들을 지금 만나기 위해서 이 전쟁터에 지금 방문한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 처음 이 말을 듣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곳에 지금 전쟁 중에 대치하고 있는 군인들은 40일 동안 이 골리앗이 하는 말을 계속 듣고 있는 겁니다. 모욕적이고 억울하고 뭔가 대처할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스라엘 군대 전체가 이 말을 계속 듣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너무나도 억울하고 모욕적인데 앞에 서 있는 저 골리앗이라고 하는 거인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상대이기 때문에 더 깊은 좌절과 무력감 속에 그들은 빠져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근데 우리도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 이런 말을 듣습니다.
너는 할 수 없어. 넌 이길 수 없어. 너는 루저야. 너는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어
여러분들을 짓누르는 어떤 삶의 문제들 또는 어떤 말들이 있지 않습니까?
근데 우리는 신앙적으로 이걸 잘 분별해야 되는데요. 그건 거짓 속삭임입니다. 도무지 우리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 같아 보이고 우리의 힘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것 같아 보이는 현실 그 상황 속에서 우리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앞에 골리앗과 같은 그러한 존재 그런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그 군대를 모욕하고 있는 이 골리앗의 그 말을 들은 이 다윗은 거룩한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가서 자신이 이 사람과 싸우겠다고 자원합니다. 오늘 본문 앞쪽에 이미 형 엘리압이 다윗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듣고 확 화가 나가지고 니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또 사울 앞에 갔더니 사울도 이 다윗을 향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너는 소년이오.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이니라 한마디로 야 그만둬 니 같은 게 뭘 할 수 있겠니?
사울 입에서 나오는 저 말은 정말 낙심되는 그 말투겠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당연한 말입니다. 지금 40일 동안 아무도 대접하지 못했던 그 골리앗한테 이 어린 소년이 예뻐 보이는 소년이 지금 싸우겠다고 나간다고 하는데, 골리앗은 평생 군대에서 뼈가 굵은 전사입니다. 겉으로만 보아도 지금 쩌렁쩌렁하게 이스라엘 군대 전체를 주눅 들게 만들 정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그리고 아주 거대한 그 몸 그리고 들고 있는 그 강력한 무기.
그런데 다윗은 아주 앳돼 보이는 어린 소년에 불과합니다. 스펙 외형적인 모습 다윗과 골리앗은 비교되지가 않습니다. 세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지금 이 사울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렇죠 당연히 도무지 이 골리앗은 다윗이라는 사람이 넘어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저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보면서 세상적인 시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볼 때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를 할까 또 우리 하늘의 소망 공동체를 볼 때 작고 연약한 그러한 교회 공동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이런 상황에서 리셋이라고 외치고 또 새롭게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이러한 시도를 하는 과정 속에 그들이 볼 때 마치 다윗이 하고 있는 말처럼 하찮아 보이고 닉 같은 게 뭘 할 수 있겠어라고 도전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근데 이 상황에서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의 생각으로 제시한 첫 번째 대안이 뭐냐면 바로 사울의 투구와 갑옷입니다. 다윗이 사울이 저렇게 말릴 때 담대하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아닙니다. 저는요. 어리지만 작지만 저는 들에서 양을 칠 때 들판에서 사자와 곰도 무찌르고 양들을 지킨 경험이 있습니다.
그 눈빛, 그 결단을 가진 그 말투 사울이 볼 때도 이 아이가 일반적인 아이로 보이지 않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결국 사울은 이 다윗에게 말하죠.
주님께서 너와 함께하시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는 걸 허락해요.
그런데 그 허락과 동시에 이 사울이 한 행동이 무엇이냐 38절에 보면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그에게 갑옷을 입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금 이스라엘 군대에 있어서는 최고의 갑옷 그가 가지고 있는 무기를 다윗에게 주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잘 알지만 다윗은 지금 소년이라고 했고 사울이 왕이 될 때 여러분들 그 현장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사울은 다른 사람들보다 키가 훨씬 큰 사람이었거든요. 그러니까 큰 키의 사울의 갑옷 사이즈가 이 어린 조그마한 소년의 맞을 턱이 있습니까? 그리고 평생 목동으로서 양들과 뛰어놀았던 이 다윗에게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그 갑옷 그것은 너무 거추장일 뿐입니다. 그래서 39절에 보면 다윗이 입혀주니까 입었고 몇 발짝 걸어보다가 이게 도무지 맞지 않으니 갑옷을 벗어버립니다.
골리앗과 같은 존재가 우리 앞에 있을 때 우리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첫 번째 그 방법이 여기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바로 사울의 갑옷을 벗고 싸워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울의 갑옷은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볼 때는 최고의 갑옷입니다. 이스라엘 군대에 있어서는 최고 아닐까요? 왕이 입는 갑옷인데요. 최고의 방어 도구일 겁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것은 다윗이 지금까지 살아온 다윗의 방식이 아니에요. 이것은 사울의 방식이고 세상의 방식입니다. 한마디로 지금 사울이 입혀주고 있는 그 갑옷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의 기준으로 대항하는 어떤 방법의 상징물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지금 보이지 않고
하나님만으로는 뭔가 부족해 보이니 니가 지금 말하는 그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했는데 그 하나님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보이니 내가 입고 있는 이 갑옷이라도 입어볼래 이 투구라도 좀 쓰고 나가볼래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적인 방법을 갖다 붙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기준, 돈, 스펙, 능력 이것들을 갖춰야지 이 세상 속에서 너가 살아갈 수 있다고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유혹하고 강요합니다. 골리앗이라고 하는 그 거대한 인물,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칼과 갑옷에 기준하여 상응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사울의 갑옷입니다.
근데 여러분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솔직히 사울의 갑옷이 이스라엘 군대에서는 최고일지 모르지만 골리앗의 갑옷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사울의 갑옷을 다윗이 입는다고 다윗의 전투력이 갑자기 높아지는 건가요? 게임의 캐릭터처럼 뭐 아이템을 획득했습니다 하고 전투력이 갑자기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요. 세상이 말하는 기준에 맞추는 삶을 사라고 계속 이야기합니다. 특히 여기 지금 우리 청소년 청년들 이 말씀에 주의해서 들으십시오. 여러분들에게 더 스펙을 쌓으라고 더 성적을 올리라고 더 돈 많은 뭔가를 하라고 여러분들에게 세상에 지금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거기에 아마 어떻게든지 맞춰 가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근데 여러분 그런 상황 가운데 우리는 단호하게 분별하고 거절할 줄 아는 그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울의 갑옷을 벗어버리라고 하는 이 말을 지지해 주는 대표적인 성경 구절을 찾아보면 로마서 12장 2절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라. 너희는 이 세상 이 세례를 본받지 말아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요. 계속적으로 뭘 이야기합니다. 고속 승진하는 법, 창업해서 성공하는 법, 부자 되는 법, 투자에 성공하는 법, 수없이 많은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로 우리를 현혹합니다.
그리고 너도 거기에 맞춰 살아야 그와 비슷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우리를 유혹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조차도 골리앗과 같은 큰 거인 앞에서 그 칼과 창과 묵이 그것에 순응하는 방법으로 대항하는 방법으로 사울의 갑옷이라도 입으려고 애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사울의 갑옷은요.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일꾼 된 우리의 정체성과는 맞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도구일 뿐입니다. 다윗은 그 좋은 사울의 갑옷을 던져버리면서 골리앗이 원하는 전투의 방식 패턴을 그는 거부했습니다.
골리앗이 지금 창과 칼과 방패를 들고 나온다고 다윗도 칼과 창과 방패를 꼭 들고 나가야만 합니까?
아니라는 것이죠. 그 기준은 누가 정한 겁니까? 세상 사람들이 저렇게 나오면 너도 저렇게 해야 돼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로마서 2장 12장 2절에서 이어지는 말씀을 우리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아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세상의 기준과 틀이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규칙, 세상의 틀 안에 벗어난 삶을 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골리앗은 전형적으로 자기의 힘 내 힘을 과시하며 살아가는 인물의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또 사울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틀에 맞춰서 살아가려고 하는 그런 인물을 대표하고요. 다윗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는 그러한 사람의 대표로 등장하고 있는 겁니다.
근데 여러분 다윗은 어떻게 그 어린아이가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다윗은 하나님이 이 모든 것들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이길 힘과 능력을 주시는 것도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 앞에서 골리앗이라고 하는 인물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를 높이고 모욕하는 그 위협하는 그 상황이 실제가 아님을 그는 분별했습니다. 성령과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 지금 눈앞에 보이는 그 골리앗이 대단해 보이지만 그 뒤에 계시는 하나님이 더 크시다는 사실을 다윗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윗과 같은 신앙인이 되길 원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골리앗과의 싸우는 싸움에서 나도 어쩌면 저 골리앗처럼 커질 수 있을까 나도 어쩌면 골리앗처럼 힘이 세질 수 있을까 나도 어쩌면 골리앗처럼 저런 무기를 가질 수 있을까 그 틀을 맞추려고 할수록 나는 골리앗이 될 수도 없고, 나는 골리앗을 도무지 이길 수도 없다고 하는 패배감에 그 현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는 울분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근데 우리가 이 말씀을 이렇게 묵상하면서도요 아이러니한 게 뭔지 아십니까?
우리는 골리앗을 굉장히 비판하잖아요. 막 이스라엘의 대적이고 사단 같은 존재고, 그런데 중요한 건 그 골리앗을 미워하면서도 골리앗처럼 되지 못해서 조바심을 내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모순입니다. 세상에서 막 정치적으로 어떤 권력을 가진 사람들, 돈 많이 가진 경제인들을 막 비판하는데요. 그런 사람들 처럼 되지 못해서 안달하고 또 살아가는 그런 모순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다윗과 같은 상황을 맞이하면 그 사울의 갑옷, 내게 맞지 않는 갑옷이라도 막 억지로라도 입고 나가려고 하는 그런 모습들이 우리에게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다윗은요. 단호하게 사울의 갑옷을 벗어 던졌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혹시 지금 나도 모르게 사울의 갑옷처럼 조금이라도 더 내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입으려고 하는 그런 사울의 갑옷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의 무기는 사울의 갑옷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인 줄 믿습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능력인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윗처럼 사울에게 갑옷을 줄 때 그것을 단호하게 거절할 줄 아는 그러한 신앙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두 번째로 사울은 다윗은 이 사울의 갑옷을 거절하고 난 이후에 대신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에게 주신 강점 그 강점을 취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요. 이미 수차례 양을 돌보는 과정에서 사자와 곰을 이겼습니다.
근데 그 이기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도와주셨음을 그는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34절과 35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게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다.
여기서 건져내었다고 우리 개혁 계장에는 번역되어 있는 이 말씀이 새 번역 성경을 보면 살려내곤 하였습니다고 하는 말로 번역이 돼 있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한 번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양을 치는 과정에서 수차례 그 양을 치는 목자로서 수없이 경험했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마디로 다윗은 그의 일상 가운데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고 나는 비록 어리고 작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사자나 곰 그까짓 거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면 난 이길 수 있다라고 하는 담대한 믿음을 그 일상의 과정 속에서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37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 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아멘 바로 이게 마음을 새롭게 변화받은 사람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 안에 여러분 주어는요.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한마디로 주님이 하셨고 주님이 하실 것입니다고 하는 고백이에요.그래서 다윗은 목동의 지팡이와 자기가 쓰던 물매를 들고 싸우러 나갑니다.
근데 여기서 이 들고 나가는 이 주머니와 이 물맷돌, 이것도 역시 자기가 사용하던 주머니와 물맷돌입니다. 물매입니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에서 자기에게 주신 자기가 할 수 있는 고유의 특징, 그 무기를 들고 나아갔다는 것이죠.
두 번째 골리앗과 싸울 수 있는 방법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고 강점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고대 병사들은요. 보병 또 기마병 그리고 궁수나 또 투석병 이런 식으로 구분이 돼 있습니다. 우리는 공군, 해군 육군 이렇게 구분이 돼 있듯이 약간 이제 그런 안에서도 그렇게 구분이 돼 있어요. 그러니까 이 골리앗이라고 하는 인물은 보병 중에 제일 센 장군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다윗은 어떤 존재일까요? 그러면 투석병이죠. 투석병 돌을 던져서 이제 싸우는 사람 여러분 보병과 투석병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요?
네 근접전을 하면 당연히 보병이 이깁니다. 근데 원거리 싸움을 하면 사정이 좀 다르죠. 여러분 투석병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사사기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는 말씀이 있는데요. 사사기 20장 16절입니다. 이 전쟁에서 사용된 사람들인데
이 백성 중에서 택한 700명이 다 왼손잡이인데 이 사람들은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투석병들이 700명이 돌을 던지기만 하면 10발 100종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이 투석병이라는 사람도 무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죠.
다윗에게는 지금 장수의 갑옷이나 칼이나 어떤 무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속도와 기동력 그리고 먼 거리에서도 정확히 맞출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골리앗은 반면에 키도 크고 지금 가지고 있는 그 무기도 갑옷도 60kg에 가깝고 그러니까 이 다윗과 비교하면 좀 느릴 수밖에 없겠죠.
사자나 곰이 얼마나 재빠른 줄 아십니까? 동물의 왕국을 보면 진짜 걔네들이 쫓아오면 도망가지도 못하겠더라고요. 근데 그 정도로 빠른 애들도 멀리서 돌을 던져서 맞춰서 이겼던 다윗이라면 상대적으로 더 느리고 큰 골리앗은 어쩌면 다윗에게 있어서 맞추기 쉬운 상대일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지금 1대 1의 전쟁 속에서 골리앗이 가지고 오는 칼과 창과 방패를 가지고 나가지 않습니다. 골리앗의 방식으로 싸우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다윗은 투석병으로서 자기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자기의 강점을 가지고 이 전쟁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에 비교하면서 그것 때문에 참 힘들어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너무 많아요.
근데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한 사람 한 사람 고유하게 만드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는요. 사울도 아니고요. 골리앗도 아니고 또 심지어 다윗도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 하나님이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고유하게 만드신 존재라고 하는 사실이에요.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왜 이렇게 우울에 빠지고 울분에 빠집니까?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다른 누군가와 계속적으로 비교하고 그 사람처럼 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너무 억울한 거예요.
특히 SNS를 보면 아니 다들 그렇게 잘 먹고 잘 놀러 다니고 뭔가를 하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이 모양으로 살아가는가 왜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살아가는가 늘 비교합니다. 외형적인 모습을 보고 비교하다 보니 더 마음속에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죠.
여러분 에베소서 2장 10절 말씀을 우리가 읽으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기억합니다.
새 번역 성경으로 에베소서 2장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아멘 옆에 분을 보시면서 당신은 하나님의 작품이십니다.
네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작품이십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얼굴이 넙적하니 얼굴이 뭐 어떠니? 이런 거 가지고 여러분 비교하고 거기에서 기죽지 마세요. 좀 이제 나이가 들어서 주름이 한 개 더 생겼다고 그것 때문에 막 너무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흰머리가 좀 난다고 그것 때문에 여러분 너무 막 머리에 지어 뜯지 마세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만드신 여러분들을 작품이라고 하는 거예요.
다윗은요 골리앗 앞에 섰을 때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는 얼마나 비교당할 게 많습니까?
근데 다윗은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울의 갑옷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고유한 강점을 가지고 그 골리앗 앞에 섰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주신 물매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강점을 발견하고 그 강점을 가지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 번째, 주님을 온전히 의지함으로 싸워야 합니다. 우리 한번 따라해볼까요? 주님을 온전히 의지함으로 싸워야 합니다. 네 세 번째로 제가 말씀을 드리지만 이거는 가장 중요한 겁니다. 첫 번째 두 번째가 이것이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예요. 왜요? 전쟁에 이기고 지는 건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47절 말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다윗은 지금 자기가 물맷도를 잘 던지는 실력이 있어서 자신만만한 게 아닙니다. 자기도 백발 백중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것 때문에 지금 다윗이 자신 있게 나가는 게 아니라고요. 내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행하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하지 않는다면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다윗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면 나는 이길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겁니다.
본문에 보면 다윗이 골리앗에게 나갈 때 들고 나간 게 물매만 들고 나간 게 아니라 목자의 지팡이를 들고 나가는 걸 보게 됩니다.
여러분 목자의 지팡이, 이 목자의 지팡이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시편 23편 4절의 말씀을 보면 다윗의 고백이지요.
사망의 움침한 골짜기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아니하십니다.
한마디로 이 지팡이가 주님이 나와 함께한다고 하는 그러한 증거로 들고 다니는 겁니다. 다윗은 지금 홀로 나가고 있지만 이 지팡이를 들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습니다고 지금 골리앗을 향해 나가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다윗이 지금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투석병으로서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근거리의 전쟁은 무조건 지지만 원거리는 그래도 해볼 만하다 이랬잖아요.
근데 문제가 있습니다. 말씀을 보면 골리앗이요. 지금 자기만 있는 게 아니라 골리안 옆에는 방패를 든 군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전쟁을 한두 번 치러본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골리앗 같은 사람은 당연히 먼 데서 화살을 쏘든 돌을 던지든 이 골리앗을 맞추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성경을 보면 방패 든 사람들이 앞에 서 있다 이렇게 말했어요. 그러니까 아무리 기동력을 가지고 다윗이 백발 백중으로 명중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가져도 딱 던지는 순간 방패가 탁 앞에 가려버리면 끝나는 겁니다. 골리앗이 만일 지금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았다면 골리앗은 절대 방심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그가 돌을 던질 때 방패 뒤에 숨었을 수도 있습니다.
근데 어린 소년 작고 연약해 보이는 다윗이 자기 앞으로 나오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 골리앗의 마음에 교만과 방심이 들어온 거죠. 방패도 필요 없어 버리는 겁니다.
꼬마 같은 게 나한테 오는데 내가?
하면서 그 교만함으로 앞에 나아가는 순간 그는 거꾸러진 것입니다.
골리앗이 왜 교만해졌습니까?
그의 두 눈으로 다윗의 겉모습만 본 겁니다. 교만했기 때문에 다윗과 함께하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 겁니다.
여러분 이 교만은 하나님의 도우심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셨기 때문에 이 골리앗이 방심하고 그 교만한 마음으로 나올 수 있게 다윗이 던져서 맞출 수 있는 그 환경을 만들어주신 줄 믿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본 거예요.
사무엘상 17장 45절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아멘, 네, 다윗은요 지금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세상은요 다윗과 같은 사람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들 앞에 지금 어떤 골리앗과 같은 사람 환경이 있습니까? 도무지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나를 포기하게 만드는 내게 울분만 가득하게 하는 그런 상황들이 혹시 있습니까?
그럴 때 여러분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다윗과 같이 주님을 의지함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요한일서 5장 4절을 읽고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요한일서 5장 4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아멘, 예 우리 믿음으로 우리가 나아갈 때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승리를 허락하신 줄 믿습니다. 골리앗과 같은 존재와 싸울 때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첫 번째, 사울의 갑옷을 벗어버리고 싸우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고유한 강점을 붙들고 그 강점으로 싸우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 없이는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하는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함으로 싸우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그럴 때 오늘 이 말씀처럼 이미 우리에게 승리를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그 승리를 우리 것으로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