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13 RKB) * 긍휼이 있는 자와 스스로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자에게 구원의 희망이 있다.
* 구원의 증거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24:9 RKB)
마지막때에 일어날 일들을 모두 알려주신것 같이 모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미움을 받고 있으시다면 담대하고 기뻐하십시요. 구원의 증거가 거기에 있습니다.
* 구원의 길을 완주하라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전서 2:1-5)
* 이순신은 구원 받았을까?!!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로 마 서 2:12-16 RKB)
이순신이 구원받았는지 안받았는지 우리는 절대 알 수 없다. 이 순신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이순신이 복음도 못 듣고 그래서 예수님을 알지 못하여 믿지 않았으니 안타깝지만 구원을 못받았다?!!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없다. 공의로운 하나님은 모두에게 복음을 전해주셨다. 그리고 그 판단은 각자 몫이다.
모두에게 알려주셨다고?!! 예수님 태어나기 전의 사람들은 복음을 못 들었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3일동안 음부에서 예수님전의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
히브리서신에서 노아시대 물에 죽은 사람들을 세례 받았다고 표현했다. 그 구절에서 하나님은 누구하나 복음을 전하지 않으실 리 없다는 깨달음을 주셨다.
그럼그렇지 우둔한 우리만 모를 뿐이지 하나님의 경륜은 예수님과 성령님 외에 인간은 헤아릴 수 없다.
. .
요즘 동성애 문제, 평등문제 이슈로 많은 기독교인이 정치문제에 뛰어들었다. 그 분들의 모습이 상대 진영의 사람들과 별반 차이없이 상당히 전투적이다. 열심당원들을 보는 것같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했다면 예수님도 로마와 대적하라고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열심당원들은 예수님과는 다른 노선을 달렸다.
사회가 불의하게 돌아가서 나라와 그 법때문에 구원으로 가는 것이 어려운 것이 절대 아니다.
구원은 각자의 선택이다. 아무리 전염병이 돌고 기후이상이 생기고 나랏법이 기독교에 치명적으로 치닫아도 믿음을 지킬 사람은 지킬 것이고 아무리 태평성대가 오고 종교자유가 있다해도 믿음을 버릴 사람은 버린다.
오히려 위기속에 알곡과 쭉쩡이를 골라내실 수 있으므로 계속 하나님은 채질을 하시는 것이다.
나가서 세상과 대응하는 무리안에 있을때 통째로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구원은 각자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중심에 하나님이 계신자는 필히 그의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
우리는 묵묵히 기도와 말씀으로 채워가며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원수 사랑)을 이루어 가면 된다. 이것을 놓친 그 무엇도 구원에서는 헛일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히브리서 3장 7~8절 말씀)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말라 하였으니 (히브리서 3장 15절 말씀)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히브리서 3장 18~19절 말씀)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브리서 5장 8~9절 말씀)
애굽(세상)에서 종되었던 이스라엘(우리)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문설주에 양의 피(예수님의십자가)를 바른 곳만 놔두고 모든 처음 난 것를 데려가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광야(구원의 좁은 길)에서 이스라엘(우리)은 불순종하며 이럴바에 애굽(세상)에서 종 살이 하던때가 나았다고 원망을 합니다.
원망하던 모든 사람은 가나안(구원)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간혹 구원에 대해 잘못 알고 살아가기 쉽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믿으면 이미 구원받았다고 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길이 열린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이 확정된것은 아닙니다. 구원(가나안)에 이르기까지 좁은 길(광야의 길)을 가야되는데 거기에서 낙오되는 사람이 있다고 성경에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믿는다는 것은 그냥 추상적으로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삶(행동)으로 비쳐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이 믿음으로냐 행동으로냐 하며 변론들을 하는데 그것은 하나입니다.
정말 믿는다면 행동은 더불어 발생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믿음이 우선되어야 겠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성경말씀대로만 살수 있느냐
피치못해 거짓으로 속이기도 하고 사회생활 운운하면서 전혀 하나님뜻과는 다르게 살아갑니다.
어쩔수 없는 일이니 죄가 아니라고 자기뜻을 관철하기까지 합니다.
내가 세상에 살면서 세상과 타협하며 편하게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뜻이 아닙니다.
하나님뜻대로 살면 자연히 세상에서 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예수님은 지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지요. 지금은 힘들지만 그러나 장차 올 영광에 비하면 지금 고난은 작은 것이라고 예수님은 위로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구원에 이르려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로 가라하십니다.
구원에 이르기전 광야를 순종으로 꼭 통과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았다면 자기의 십자가(고난)를 벗기위해 안간힘을 쓰지도 않고 그로인해 미혹 당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도 마음을 완고하게(내 뜻대로) 하여 거역하므로 안식에 이르지 못하며 그것은 믿음이 없으므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정확히 말씀하십니다.
The video is available for your viewing pleasure athttps://vimeo.com/142763124
The video is available for your viewing pleasure athttps://vimeo.com/144255986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린도전서 9:27)
사도바울의 전도얘기를 듣고 위의 말씀이 이해가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같은 사람이 왜 버림을 당할까봐 두려워했을까?!! 나라면 은근히 자부심을 느끼며 구원의 확신을 가졌을텐데요?!! 이상하리만큼 제 주위에 이단이라 불리는 곳에 다니는 지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제게 영적인 문제가 많으니 제 주변에 그런 분들이 많은거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해 주신 목사님 주변에는 이단이 한명도 없다고 하셨거든요.ㅠ.ㅠ 그런데 바로 그 목사님 교회 근처에 이단이 있고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정말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았습니다.;; 이단들의 특징은 사도바울같이 목숨걸고 전도를 했으면서도 구원에 도리어 낙오될까하는 두려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본인들은 확실한 면제부를 받은 듯 구원을 확신했어요. 저 역시 하나님 만난 후 간증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은근히 면제부를 미리 받은 것처럼 느꼈습니다.ㅠ.ㅠ 그러나 실생활의 저의 모습을 보면 스스로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죄인중에 흉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런 체험들이 구원의 확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알았습니다. 말씀에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란 구절.. 예수님 이름으로 병도 고치고 귀신도 내쫓았는데 예수님은 그들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 하시며 도무지 너희를 모른다고 하신 구절에서 의아했어요.@.@ "아버지 그럼 무슨 기준으로 분별해야 되나요?!! 그것이 기준이 안된다고 하신다면..ㅠ 저도 체험이 많은데 그럼 어떻게 분별 햐나요.?!! 요즘처럼 미혹이 많고 분별하기 어려운 세상에 말이죠.ㅠ.ㅠ 일반 교회안에서도 영적체험자들에게 기도나 안수를 받기 위해 그런 사람들을 찾아다니기도 하던데요. '기도 중에 이 마음을 떠오르게 하셨어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중 누구의 기도를 받으신다고 하셨는지...~음..세리요. ~ 왜 세리의 기도를 받으셨을까?!! ~그것은 세리는 겸손했어요...~세상을 둘러봐 이제 분별할 수 있겠는지...~아~ ;;;;' 하나님의 말씀들이 척척 퍼즐이 맞춰졌어요.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듯 살인을 가장 큰죄로 여기시기보다 교만을 가장 큰 죄로 여기신다는 것을 그래서 천사장 루시퍼도 교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까지 추락했던 것이지요.ㅠ.ㅠ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실로 어마어마한 사건이라는 사실..그분은 우리처럼 죄가 있지도 않으시고 또 피조물도 아니시고 전능하신 신이신데 우리 죄를 대속하기위해 친히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 형벌을 당하셨다는 엄청난 사실을 정녕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앞에 고개를 들 수조차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목숨을 내어주는 전도를 한다고 한들 하나님앞에서는 고개를 들 수 조차 없는 일인데 바라새인은 본인들의 경건한 삶에 자부심을 느끼며 진정한 겸손과 감사를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ㅠ.ㅠ 종이 힘들게 밭일을 하고와서 다시 주인의 식사시중을 들어야 됨이 당연하며 토기가 토기장이한테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왈가왈부 할 수 없다는 말씀도 깨달아졌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엄청난 사건을 진실로 믿고있다면 하나님앞에 납작 엎드리어 고개를 들 수 조차 없음을...ㅠ.ㅠ 그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그래서 어린아이(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 같아야 천국에 합당하다고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보여주신 체험들은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한 도구였어요. 그것은 저의 구원의 증거가 아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