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도 삼복에는 덥습니다. 무덥지 않을 뿐 햇살은 따갑습니다. 열정의 계절입니다. 열정을 가진 사람은 더운 줄 모르고 일에 열중합니다. 세상의 눈총이나 극복해야할 어려움이 오히려 자국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아드리아노 올리베티는 정규교육대신 어머니가 가르쳤습니다. 사춘기에 방황했고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아버지 회사에서 막노동을 했습니다. 그는 문학과 예술을 사랑했고 그들과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나눔이라는 주제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나눔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한 세대 후에 등장하는 스티브 잡스 역시 대학교육 보다는 만들기에 열중했습니다. 중학생 시절 인텔의 CEO에게 편지를 보내 컴퓨터 부품을 얻어간 소년은 인도여행을 다녀와서 꿈을 꾸며 사과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컴퓨터 기술에 열정을 불태운 것은 비슷했습니다. 그가 창업했던 회사에서 쫓겨날 만큼 만들기에 열중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오늘은 우리 주변의 그런 젊은이를 만나러 갑니다.
카나베세 평원을 흐르는 물줄기들이 모여 강을 만들어 포(Po)강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물 흐름에 사람이 간섭하기 전에는 빙하가, 때로는 강이 꾸준히 토사를 실어 날랐습니다. 이 강이 가져온 토사 침전물은 아드리아 바다에 가라앉아 해안선이 동으로 점차 이동했습니다. 베니스 남쪽의 포(Po)강 삼각주는 1950년까지만 해도 계속 바다 쪽으로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긴 땅은 물렁합니다. 그러다 강에 인위적인 댐이 만들어지면서 토사는 더 이상 바다로 흘러 들지 않게 되고 포강 삼각주는 점차 내려앉으며 삼각주 크기가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포(Po)강 하류는 늪지였습니다. 중세시대부터 이곳을 농지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계속되었습니다. 봉건 영주들과 수도원이 개간에 나서서 토지 소유권을 다투었습니다. 이탈리아를 통일로 이끌었던 카부르 재상 (Camillo Benso Conte di Cavour: 1810 ~ 1861)이 관개시설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면서 이제 이곳은 이탈리아 농업과 공업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밀보다 수확량이 월등하게 많은 벼를 심기 시작하면서 벼농사 중심지 베르첼리(Verceli)의 쌀 공급업자들이 유럽에서 소비하는 쌀을 대부분 공급했습니다. 최근에 값 싼 수입 쌀이 유럽으로 들어오면서 벼농사 기계화와 대체 작물 경작 움직임이 있습니다.
카나베세 지역은 중세시대에는 이브레아와 베르첼리 간의 전쟁무대이기도 했습니다. 마을마다 어느 편인지에 따라 흥망이 결정되었습니다. 중세시대에 중립지역에 해당하는 볼렝고(Bollengo) 마을을 지나갔습니다. 인구 2100명, 해발 255m. 이브레아에서 이곳까지 8km. 가게들과 식당이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좁고 허름한 골목 모습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기야 변해야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로마시대 갈리아 길이 지나는 곳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했겠습니다. 옛 성당 유적이 있었습니다. 종탑이나 건물 자체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제는 유물로서 역할만하고 있었습니다. 13세기에 마을이 없어지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건물만 남았습니다. 성당 안에는 15세기 것으로 보이는 프레스코화가 남아있습니다. 종탑에 창이 셋 있었습니다.
다음 마을 팔라쪼 카나베세(Palazzo Canavese)는 베르첼리 세력권이었습니다. 이 마을까지 살짝 내리막 3 km. 물 빠짐이 좋은 빙퇴석 언덕은 포도와 과수재배에 최적 토양조건을 갖추었습니다. 분지형으로 찬 바람을 효과적으로 막아주는 산이 둘러 있어서 과수나무가 잘 자라는 곳이었습니다. 과수원, 포도밭, 목장이 번갈아 나오는 길. 농가가 드문드문 있었습니다. 지대가 높아 오른쪽이 확 터져서 아래 드넓은 벌판이 시원했습니다. 좁은 골목길, 빨래가 줄줄이 걸려 있는 집, 베란다를 화분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집, … 인구 840명, 해발 248m.
마을 안 쪽에 커뮤니티 센터가 있는데 아드리아노 올리베티(Adriano Olivetti)의 “커뮤니티 무브먼트”를 상징하는 마크가 붙어 있었습니다. 타자기 회사를 키운 아들 올리베티입니다.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을 직원들 급여인상, 복리 우생, 재투자에 사용하면서 생산성을 극대화시킨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회사 경영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최근에 발표된 그의 일대기에 나와 있습니다.[i]
그는 자신의 회사 경영 아이디어를 사회에 확산하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기업 이익의 나눔이 핵심이었습니다. 커뮤니티 무브먼트는 아드리아노 올리베티가 창설한 정치 집단이었습니다. 보수와 공산주의에 맞서서 자유 진보영역을 아우르는 정치이념으로 한때 이탈리아 정계에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대중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대중들이게는 새로운 이념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가 돌연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커뮤니티 무브먼트는 시들어 잊혀지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을 둘러 싸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드리아노 올리베티의 이야기를 쓴 전기작가 세크레스트(M. Secrest)는 아드리아노 올리베티가 1960년에 개인용 컴퓨터를 제작했다고 썼습니다. 아드리아노 올리베티와 미국 IBM, CIA, 휴렛 패커드 같은 조직과의 관계를 자세하게 기술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재자 무솔리니를 제거하려는 그의 계획을 두고 기득권 조직들은 아드리아노 올리베티를 몽상가로 규정했는지도 모릅니다. 같이 살아보자는 그의 시각은 사회주의적인 모습으로 비쳤을 것입니다. 기업의 이익은 모두 사회에 재 투자해야 한다는 아드리아노 올리베티의 정치이념이 다시 살아날 때가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아드리아노 올리베티의 인문학적 소양과 활동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마을 피베로네(Piverone)까지는 살짝 오르막입니다. 50m 정도 고도차가 납니다. 빙퇴석 언덕 중턱을 따라가는 길은 포도밭 지대를 지납니다. 오전 시간 해를 바라보고 걷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선 글라스가 없으면 곤란할 것입니다. 서쪽으로는 지평선이 가물가물한 초록 평원이었습니다. 그런 길을 3km정도 걸어서 피베로네(Piverone)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인구 1350명, 해발 295m. 선사시대 유물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마을 이름은 인근 비베로네(Viverone)와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11-12세기에 수도원이 들어왔고 그 후 봉건 귀족들이 지은 건물들 일부가 남아있습니다. 마을 이름이 페퍼에서 유래했을 거라는 설이 있습니다. 이 마을 입구에 순례자 숙소가 있습니다. 침대 30개, 부엌을 쓸 수 있습니다. 좁은 골목을 지나자 성문처럼 버티고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시계탑이 길 가운데 있었습니다. 길은 이 시계탑 성문 아래 아치를 통과했습니다. 노새 한 마리가 지날 정도로 좁습니다. 13세기에 지은 실제 성문입니다.
마을에서 계단식 포도밭 길을 2 km쯤 걸어 올라가면 해발 330m 지점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옛 성당 유적이 있습니다. 제시운 디 피베로네(Gesiùn di Piverone)라고 하는 곳입니다. 10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 베드로에게 헌정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이곳에 사람들이 살아서 세웠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기는 하지만 12세기 문헌에 등장하는 정도입니다. 구조가 특이해서 제단과 신자석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성당은 허물어져 내리고 종탑과 벽체 일부가 남아있었습니다. 남아 있는 벽에 프레스코화는 성경을 들고 있는 손 부분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성 베드로의 손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잡초 속에 버려진 것을 최근에 손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순례자 누군가 그 가치를 발견해서 알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시운 디 피베로네 (Gesiùn di Piverone)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비베로네 호수 주변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울창한 숲속의 비베로네 호수 (Lago di Viverone)는 길이 3.5km, 폭 2.6km입니다. 신석기 시대부터 수상가옥이 있던 호수였습니다. 선사시대의 통나무 속을 파서 만든 배, 장신구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어 고고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곳입니다. 이 호수는 이브레아의 정치권력과 베르첼리의 종교권력 사이에 끼어 있어 한때는 이 호수를 산 마르틴 호수(Lago di San Martino) 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즉, 종교권력이 상당기간 우세했다는 얘기였습니다. 이 호수에는 물고기 종류가 다양합니다. 특히 관심을 받는 것은 붉은 민물 가재입니다. 길다란 집게 발을 쳐들고 호수주변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녀석들입니다.
모터보트와 하얀 돛을 단 요트 한 척이 호수에 있었고 주변의 포도밭 또한 한 여름의 열기 속에 열매를 익히고 있었습니다. 눈에 들오는 것은 기껏 집 두 채, 예전에 이 성당을 드나들었던 사람들, 마을은 흔적도 없었습니다. 내리막 길은 과수원, 포도밭을 지나갔습니다. 트랙터가 다니는 길이어서 비 포장 길 상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나무들이 줄 서 있는 내리막에서 바라보면 멀리 펼쳐진 포(Po)강 분지가 평평한 지평선이었습니다. 마을들이 보이고 숲의 푸르름으로 가득 있었습니다.
비베로네는 지금 서 있는 빙퇴석 언덕의 끝자락이면서 큰 호수를 끼고 있고 평원이 이어지는 접점이었습니다. 비베로네로 가는 3 km는 포도밭과 키위 농장, 목초지의 연속이었습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호수와 주변 풍광은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사는 사람들을 가만 놔 두었으면 음악 미술 문학으로 번성했을 동네였을 텐데 그렇지 못한 속사정이 깊은 곳이었습니다. 역사 깊은 다툼이 개발을 지연시켜 저 아름다움이 유지되었다는 아이러니였습니다. 어느 농가 담장으로 올라 앉은 가시 많은 붉은 넝쿨 장미가 그럴 것입니다.
문득 호수가에 반듯하게 가꾸어 놓은 포도밭 너머 오래된 성당 종탑이 보이고 붉은 기와지붕이 여럿 있었습니다. 이 종탑은 12세기의 산 미켈레 성당 것이었습니다. 이 성당은 15세기에 산 마르코(San Marco) 수도원이었다가 다시 산 미켈레(San Michele)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18세기에 포도주 양조장이 되었습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와인농장입니다.
비베로네(Viverone) 마을 인구 1430명, 해발 310m. 이 마을에는 이렇다 할 순례자 숙소가 없었습니다. 호텔과 B&B만 몇 군데 있었습니다. 마을 이름의 유래는 분명치 않지만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라틴어 “Vitis viva,” 즉 비옥한 포도 밭, 아니면 치어 양식장 “vivaium,” 즉 호수를 의미하는 단어들입니다. 카레마에서 시작된 50km의 카나베세 구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로마시대에 이곳은 갈리아 원정군들이 지나다닌 길목이었습니다. 로마제국 멸망 후에 롬바르드의 침략에 이어 프랑크족의 지배를 10세기까지 받았습니다. 이 기간 베르첼리의 종교권력과 접경을 이룬 곳입니다. 비베로니를 무대로 벌어진 권력자들 간의 땅 따먹기 싸움은 15세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력 대결은 그쳤지만 귀족들 간의 분쟁은 19세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지금도 그 후예들과 이해 당사들 간에 불편한 관계는 지속되는 지역입니다. 이들은 비베로네 호수 물을 퍼다 쓸 거냐 말거냐 하는 이해관계에 얽혀 있기도 합니다. “관광이냐 아니면 공장이냐” 하는 문제로 다투기도 합니다. 싸우면 공장도 못 짓고 호텔도 못 짓습니다. 나눔이 부족한 마을에는 잠자리도 나누기 힘들어보였습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나그네는 그저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호수를 바라보며 식당에서 해산물 파스타를 시켰습니다. 점심 후 1.5km를 더 걸어서 로폴로(Roppolo) 마을에 있는 순례자 숙소에 들어갔습니다. 3인실에 배정. 숙박비 16유로. 이 지역을 트래킹하는 사람이 들어와 둘이 같은 방에 자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샤티온에서 사라졌던 영국인 호주인 부부가 나타났습니다. 그날 밤 “방이 너무 더워서” 호텔로 옮겨 갔다는 설명.
저녁에 밀라노에서 친구 아들이 두 시간 운전해서 로폴로 순례자 숙소로 찾아왔습니다. 그의 이탈리아인 부인은 이탈리아 남부로 휴가 여행을 떠나느라 준비 때문에 같이 오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멀리서 찾아와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한국에서 공대를 나와 밀라노로 와서 패션 디자인을 배워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밀라노 패션 업계에 자리잡는 과정을 들었습니다. 다른 나라에 와서 전문분야에 터전을 마련한 적극적인 자세가 믿음직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 과감한 방향전환이었습니다. 유창한 이탈리아어 능력으로 현지인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밀라노 산업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꿈을 열심히 들어주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헤어졌습니다. 두 시간 걸려 밀라노로 돌아가는 중일 것입니다.
그는 열정적인 젊은이였습니다. 올리베티, 잡스, 친구 아들, 모두 꿈 꾸며 현실을 삽니다. 그래서 늙은 엔지니어는 행복했습니다.
[i] M. Secrest, The Mysterious Affair at Olivetti: IBM, the CIA, and the Cold War Conspiracy to Shut Down Production of the World's First Desktop Computer, Knopf,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