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시점/ 올 5월 이후 추정… 부패 빨리 진행된 듯
경찰이 추정하는 사건 발생 시점은 지난 5월 이후다. 사건이 발생한 화성시 송산면 고정3리 우음도(牛音島)에 실제 거주하는 54가구의 주민들을 일일이 탐문한 결과 한 주민이 “지난 5월쯤 논두렁 인근 갈대밭에 불을 질렀을 때는 사체 같은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현장에는 포크레인, 불도저 같은 대형 장비들이 들어와 어른 키 높이의 갈대를 정리하고 흙을 다지고 있다.
경찰은 지난 5월 사건이 발생해 6개월이나 지났으니 사체가 부패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사본부가 꾸려진 마도치안센터의 관계자는 “암매장이 아닌 상태에서 시체가 완전한 백골로 부패되기까지는 1~2개월이면 충분하다”며 “비가 많이 오고 무더운 여름 날씨 때문에 부패가 빨리 진행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7월 무렵에 죽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화성시 송산면사무소에서 만난 노재권 이장단 협의회장은 “수사본부에 있는 사진을 보면 어른 키만한 갈대가 유골 아래에 깔린 것이 보인다”며 “저 정도 크기로 갈대가 자라려면 적어도 7~8월은 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자살? 타살? / 외상 흔적은 없어… 주민들은 타살에 무게
이 시신을 놓고 자살이냐 타살이냐는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경찰은 일단 자살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이런 추정의 이유는 피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운동화다. 현장에서 가지런히 놓인 하얀색 여성 운동화가 발견됐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아직 확실한 것은 모른다”는 전제하에 “보통 자살을 하면 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발을 가지런히 모아 둔다”며 “무의식 중에 남들이 자기 죽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옷에 혈흔이 없고 (둔기 따위로 맞은) 골절과 같은 외상 흔적도 없이 뼈가 다 온전하다”고 덧붙였다.
타살일 것이라는 주장도 강하다. 무엇보다도 사건 발생 장소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곳은 주민들이 흔히 ‘음도(音島)·음섬’이라고 부르는 화성시 송산면 고정3리의 우음도다. 1994년 시화호 방조제 물막이 공사를 하면서 개펄이던 이 일대 5600만여㎡(1720만평)는 육지와 연결됐다. 면사무소로부터는 10리(4㎞)가량 떨어졌고 차량 1대가 겨우 통과할 수 있는 흙먼지가 날리는 비포장도로만 한 가닥 있을 뿐인 외진 곳이다. 고정3리 윤영만 이장은 “동네 사람이나 친척 가운데 자살한 사람은 없다”며 “공영버스도 아침 점심 저녁, 하루 3번밖에 안 오는 지역인데 누가 일부러 와서 자살했겠느냐”고 했다.
외부에서 살해돼 이곳에 버려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인근 마을의 이장도 “어른 키만한 갈대밭이 천만 평도 넘게 펼쳐진 곳이니 시체 처리하기에 딱 좋은 곳 아니냐”며 타살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미궁에 빠진 신원/ 지문도 혈흔도 없어 뼈에서 DNA 추출
죽은 여성은 누구일까. 경찰은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은 것이라곤 옷가지와 앙상한 뼈들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옷에서 지문과 혈흔 같은 흔적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 엉덩이 뼈에서 DNA 추출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결과가 나오려면 3주가량 걸린다고 한다. 경찰은 치아, 특히 어금니로 나이를 추정한 결과 20~30대 젊은 여성일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양쪽 대퇴골(43.6㎝)을 근거로 키는 163~170㎝의 비교적 늘씬한 여성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성서부경찰서는 관내 가출 여성을 대상으로도 수사하고 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화성시에서 가출한 35명을 샅샅이 조사했는데 모두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하지만 경기도 전체를 놓고 보면 소재가 확인되지 않는 여성이 10명 정도 있는데 이 가운데 혹시 피해자가 있는 것은 아닌지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11월 18일부터 전단을 살포하고 관내 유선방송을 통해 알리는 등 사실상 공개수사 체제로 전환했다. 미궁 속으로 빠져들 조짐을 보이는 사건의 해결에는 시민 제보가 결정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개수사 전환 일주일이 지났지만 결정적 제보는 들어오지 않고 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수사 진척 상황을 묻자 “아직 별로 나온 게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유일 단서, 안면축소술 / 의사마다 시술법 달라 한 가닥 기대
하지만 포기하긴 이르다. 또 하나의 단서가 있기 때문이다. 흙에 찌들어 황토색으로 변한 두개골의 양쪽 광대뼈가 절개돼 있었다. 안면윤곽술이라고 불리는 광대뼈 축소수술을 받은 흔적이다. 경찰은 성형외과개업의협회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성형외과개업의 홈페이지에 절개된 자국이 나타난 두개골 사진을 올려 모든 성형의들이 볼 수 있도록 했고 인근 대도시인 수원과 안산의 성형외과도 일일이 탐문수사하고 있다. 또 620개에 이른다는 서울의 성형외과들에도 형사 10명을 급파해 탐문 수색 중이다. 특히 고난이도의 안면윤곽술 시술을 주로 하는 강남일대 450개 성형외과를 집중 조사 중이다. 이렇게 성형의들을 탐문해 광대뼈 수술을 해준 곳을 추적하면 죽은 여성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성형의들은 어떤 반응이었을까. 형사가 찾아왔었다는 강남 성형외과의 한 의사는 “같은 안면윤곽술이라도 의사들마다 스타일에 따라 시술법에 차이가 있다”며 “신원 파악에 어느 정도 도움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안면윤곽술은 수술 시간만 3시간가량 걸리고 비용은 300만~500만원 정도 든다”라며 “환자는 99%가 여성이고 이 가운데 경제적 여유가 있는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10~20%는 되는 것 같다”고 했다.
- ▲ 수사본부가 차려진 마도치안센터에 설치된 사건상황판
| 화성 연쇄살인 |
1986년부터 6년간 부녀자 10명 피살
한 건 제외하곤 모두 미제 사건으로
경기도 화성시는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로도 유명해진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시 일대에서 부녀자 10명이 살해당했다. 8번째 사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2006년에는 공소시효도 모두 만료됐다. 2008년 안양 초등학생 살해범으로 검거된 정모씨가 범인일 것이라는 설도 한때 나돌았으나 아직 범인은 검거하지 못했다.
근래에도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다. 2006년 12월과 2007년 1월 사이 부녀자 3명이 화성시 비봉면에서 실종된 것.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던 박모(36)·배모(45)씨와 회사원 박모(52)씨다. 이들은 각각 수원·화성·군포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모두 화성시 비봉면 일대에서 휴대폰이 꺼졌다. 이 중 노래방 도우미 박씨는 화성시에서 가까운 안산시 사사동의 한 야산에서 암매장 당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이번 ‘해골 사건’이 종전의 연쇄살인사건과는 별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화성서부경찰서 관계자는 “연쇄살인 피해자들은 키가 153~158㎝에 모두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이번에 유골로 발견된 피해자는 키 163~170㎝ 정도에 검정색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었다”며 연관성을 강력 부인했다.
첫댓글 엽기적인 살인사건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