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일 성령강림절 후 다섯째, 맥추 감사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301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입니다.
성경 시100:1-5절(구875)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새 언약의 감사예배
성도 여러분,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다섯째 주일이며, 맥추감사절입니다. 원래 맥추절은 이스라엘이 유월절 후 칠 주가 지난 다음 날에 보리나 밀의 추수를 시작하는 것을 감사하는 절기(칠칠절, 오순절)였습니다. 맥추절은 농업의 축제만이 아니라,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 즉 구원의 열매를 감사하는 축제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부활 후 50일이 지나 성령강림을 통하여 복음의 열매를 시작하는 성령강림절(오순절)에 맥추감사절을 지키지 않고, 거의 한 달이 지난 시점인 7월 첫째 주일에 맥추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강림의 목적대로 부활의 주님과의 연합을 위한 성령세례를 통한 구원 열매의 시작을 기념하는 것도 좋지만, 계속 풍성하여져 가는 구원의 열매(성화 구원)를 기대하며 감사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께 영과 진리(요4:23-24)로 감사예배를 드리면서, 맥추감사절을 지키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시100편)의 표제는 ‘감사의 시(감사를 위한 시)’입니다. 여기서 ‘감사’란 단어인 히브리어 ‘토다’는 ‘찬양한다, 또는 고백한다’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는 전적으로 찬양과 고백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시100편은 이스라엘의 절기 축제에 감사 제물(예배)을 드리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에 들어가는 행진 과정에서 낭송된 ‘찬양과 고백의 시’입니다.
따라서 시100편은 회중 또는 온 땅을 하나님의 감사와 찬양에 초대하는 부분(1-2, 4)과 감사와 찬양의 초대 이유(근거)를 설명하는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으로 서술(고백)하는 부분(3, 5), 즉 두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감사에의 초대: 명령적 찬양(1-2)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라).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세상에 대한 첫 명령인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1)에 해당하는 ‘하리우’는 여호와께 큰소리를 지르며(할렐루야!) 환호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에 걸친 명령 ‘섬기라’ ‘나아갈지어다’(2)을 통하여 강력하게 우리 하나님에 대한 섬김과 순종을 요구합니다.
그것도 ‘기쁨으로’ 그리고 ‘노래하면서’입니다. 이처럼 강제적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온 땅(세상)에 그 이유를 제시하고, 그들이 그 이유에 설득되어야 할 것입니다(3).
성도 여러분, 세상에 대한 이러한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3). 우리도 우리의 신앙고백을 분명하게 하여서, 예배를 드리러 교회당에 올 때나 예배를 드릴 때 세상에 대하여 이러한 명령(권유)할 정도로 담대함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2.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 서술적 찬양(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너희는 알지어다’라는 명령이 서두에 나와 두 가지 사실을 알기를 강조합니다. 첫째는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에 해당하는 ‘여호와 그분이 하나님이시다(여호와 후 엘로힘)’라는 신앙고백입니다(3a). 여기서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언약의 하나님 이름이며, ‘엘로힘’은 창조의 하나님 이름입니다.
이것이 ‘여호와가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이스라엘 신앙고백의 공식 어투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의 봉헌 기도에서 솔로몬이 외쳤던 고백입니다. 왕상8:60절입니다.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여호와 후 하엘로힘)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것은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한 결과(왕상18:38)를 보고서 모든 백성이 외쳤던 선언입니다. 왕상18:39절입니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여호와 후 하엘로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둘째는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라는 신앙고백입니다(3b). 이것은 왜 여호와가 유일하신 하나님이신지를 서술합니다.
여기서 ‘지으신(아사누)’을 창조의 의미(창1:7)로 이해하여, 여호와가 우리(세상과 이스라엘)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므로, 온 땅은 여호와를 환호하여 섬기며 순종하라(1-2)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재창조(구속)의 의미(사43:7, 엡2:10)로 이해하여, 우리(이스라엘)를 구속하신 은혜 언약(아브라함 언약, 다윗 언약)의 하나님이시므로, 구속받은 우리는 그분께 나와서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한다(4)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창조 언약의 하나님(창조주)에 대한 신앙고백과 구속 언약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매우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창조의 주제와 구원의 주제가 상호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죄의 문제를 해결한 구원의 복음이 창조 언약의 의의 상태로 회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복음은 창조 언약의 완성을 위한 수단(재창조)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신앙고백(3a-3b)은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우리)의 정체성(누구)에 대한 고백이 나오게 합니다. 그가 우리를 지으신(창조, 구속) 분이시라면, 우리는 철저하게 그분의 것(피조물, 새로운 피조물)이요(3c),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요(3d), 우리는 그분이 기르시는 양이라(3e)는 고백입니다.
우리의 복음도 이 사실을 분명하게 계시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회개하라’라고 명령하면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 것입니다. 마4:17절입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여기서 무엇을 회개하여야 할까요? 무슨 죄를요? 세상은 다 자신이 자기 인생(왕국)의 주인(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마귀의 거짓입니다. 실제는 예수님이 우리의 주(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자기 인생의 주(하나님)로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우리의 주(왕)이신 예수님을 인정하라, 그때 우리에게 천국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고후4:5절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이처럼 복음은 우리 자신을 부인하게 하고, 우리가 주님의 것(종), 즉 그의 피조물 또는 새로운 피조물(고후5:17)인 것을 분명하게 알게 합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이 예수님 십자가의 대속의 복음을 잘 알지만, 부활을 통하여 주가 되신 복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세상과 같이 자기중심의 삶을 계속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열매인 복음에 기초한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아 세상의 조롱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의 복음을 알고 믿은 사람은 자신을 부인하고 주를 위하여 기쁨으로 섬기며 즐거움으로 감사하며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하는 사람, 하려고 하는 사람이 복음을 진정으로 믿은 사람이요, 진정으로 회심한 성도입니다. 롬14:7-9절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복음),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성도 여러분, 창조 언약의 의의 상태로 우리를 회복하는 주 예수의 복음을 바로 알고 고백(토다)하는 것이 우리의 섬김과 감사와 찬양의 본질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3. 명령적 찬양(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들어오라),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라).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하라).”
이것은 온 땅에 대한 명령(1-2)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3)의 자연스럽게 귀결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선교의 목적은 바로 예배입니다.
여기서 성전에 들어가는 모습을 마치 왕궁에 들어가는 모습에 비유하여 하나님을 왕으로서 모신 이스라엘의 감사와 찬양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감사의 응답이 찬양으로 연결되는 것은 감사가 단순한 의미의 감사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경험을 통하여 알았기 때문입니다(3).
그래서 감사와 찬양의 이유를 언약적 용어를 사용하여 다시 서술합니다(5).
4. 서술적 찬양(5)
“(왜냐하면)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여기서 ‘왜냐하면(키)’으로 시작하여 감사와 찬양하는 이유를 나타내며, 동사 없이 명사와 형용사만을 사용하여 그 이유를 더욱 강조합니다.
성도 여러분, ‘선하시니(토브)’는 악의가 없는 선함과 추함이 없는 아름다운 상태를 의미합니다(진선미에서 선미). 이것(토브)은 타락 이전의 창조 언약의 의로운 상태에서 피조물에 대하여 ‘보시기에 좋았더라(토브)’라고 하신 하나님의 표현입니다(창1:4, 10, 12, 18, 21, 25). 그러므로 언약의 하나님(여호와)이 우리에게 선하시기 때문에 그분에게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우리에게 선하신 이유는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로 이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의 인자하심(헤세드)’은 그의 변함없은 언약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징계를 내리시지만, 우리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창조(율법) 언약을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죽음에 기초한 은혜 언약(새 언약)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성실하심(에무나)’은 그의 언약에 진실하고 신실하시다는 의미입니다(진선미에서 진). 범죄한 우리를 징계하실지라도 그의 언약을 우리에게 성실하게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창조(율법) 언약을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죽음에 기초한 은혜 언약(새 언약)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인자하심(헤세드)이 영원하고 성실하심(에무나)도 대대로 이르기에 여호와는 우리에게 선하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복음)에 기초한 우리에 대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따라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천지가 흔들려도 새 언약대로 이루시는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할렐루야! 아멘’입니까?
성도 여러분, 맥추감사절을 맞이해서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토다)의 예배로 나아오는 것은 우리 하나님과의 새 언약(복음) 관계 속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새 언약을 재확인하고 갱신하면서, 그 언약의 계시에 따라 우리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 즉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 우리의 창조와 구속의 주님이심을 바로 알고 우리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찬송(토다)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의 결과로 우리는 그를 위한 소유(피조물, 새로운 피조물)이요,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고 겸손함으로 감사와 찬양(토다)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세상에 대하여 담대하게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권유하며, 그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하면서 감사와 찬송(토다)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성도 여러분, 새 언약(복음)에 근거하여 앞으로 성령님을 통하여 나타날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영광(복음의 열매)을 소망하면서 감사와 찬송(토다)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천지가 흔들려도 우리에게 새 언약대로 반드시 되기 때문입니다.
찬송 570장 후 성찬에 참여하시고,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