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5:32-35 분노의 불을 끈 소방수 아비가일
[질문]
여러분의 가족 중 하나가 누군가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여 격분하게 만들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격분한 상대방이 여러분의 가족을 모두 죽이러 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분노한 상대방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가? 그 분노를 꺾어 기쁜 마음으로 바꿀 수 있는가?
그 분노를 기쁨으로 바꿀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방법을 사용하겠는가?
마온 지역에 부자 나발이 살았다. 그의 생업[목장/사업장]은 인근 갈멜에 있었는데, 그의 재산은 양 3,000마리, 염소 1,000마리였다. 나발이 갈멜에서 양 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다윗이 들었다(4). 잔치가 열렸다. 다윗은 소년 10명을 보내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지만 해치지 않았고 우리가 울타리가 되어 주어서 당신의 목자들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목자들에게 물어보세요. 그들이 증인이 되어 말해 줄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날에 왔으니 네 손에 있는 대로 먹을 것을 주길 원합니다.”(7,8)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잔칫날이니 기분 좋게 챙겨 주면 된다. 도와줘서 고맙고 챙겨줘서 기쁘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기쁜 날 서로 좋잖아!
그런데 나발은 다윗의 요구를 거절했다.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안면몰수] 요즘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다윗]이 많도다. 내가 어찌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다윗부하들]에게 내 소중한 떡과 물과 고기를 주겠느냐!”(10,11) - 나발은 다윗을 진짜 몰랐을까? 아니다.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하면서 기분 나쁘게, 다윗을 나쁜 놈으로 취급하면서 모욕적으로 거절했다.
여러분이 만약 다윗이라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참을 수도 있고, “더러워서 안 먹는다. 우리가 거지냐?”며 화를 낼 수도 있고, 모욕을 참을 수가 없어서 싸울 수도 있다. 다윗은 어떻게 했을까? 지금까지 다윗을 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참았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다윗은 말씀에 의지하여 참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러나 다윗은 예상과 달리 매우 심하게 분노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죽이기로 결심했다.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하나도 손실이 없게 했는데 이 모든 것이 허사로다! 나의 선을 악으로 갚아? 내일 아침까지 나발의 집에 남자 한 명이라도 남아 있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한다”(21,22) 다윗은 400명에게 칼을 차라고 명령했고, 다윗도 칼을 차고 갈멜에 있는 나발의 잔칫집으로 갔다(13).
다윗이 이렇게 불같이 화를 내 본 적이 있는가? 없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발의 집은 다윗으로 인해 쑥대밭이 되고 말 것이다. 잔칫날이 제삿날이 될 것이다. 그런데 불같이 화가 난 다윗이 갑자기 변했다. 화가 누그러졌다. 칼을 칼집에 꽂았다.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면서(32) 기쁜 마음으로 처소로 돌아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무엇이 다윗의 불같은 분노를 잠재웠을까? 맹렬한 분노가 꺾이지 않을 것 같았는데.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다윗의 분노를 끄는 소방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4가지로 요약.
첫째, 아비가일은 하인의 말을 듣고 다윗의 요구사항[욕구]을 즉시 해결했다.
아비가일은 남편 몰래 급히 떡 200덩이, 포도주 2가죽부대, 양 5마리 분량의 양고기 요리, 볶음 곡식 5스아, 건포도 100송이, 무화가 뭉치 200개를 준비하여 나귀에 실었다. 다윗의 욕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했다. 더 나아가 예상했던 음식보다 더 많이 준비해야만 다윗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음을 알았다. 현실 파악 능력이 뛰어났다(총명). 그리고 소년들을 앞세워 나귀를 타고 산 호젓한[인적이 없는] 곳을 따라 내려가서 다윗 일행을 만났다(18,19). 유혈사태를 미리 막기 위해 지름길을 선택하여 매우 민첩하고 총명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음식을 바로 건네지 않고 자신과 남편을 최대한 격하시켜 다윗의 분노를 조금이나마 가라앉힌 후, 다윗의 보복을 하나님이 막으셨고 다윗을 해하려는 자는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면서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가운데 그 음식을 내밀었다(26,27). 잠 21:14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 -
둘째, 아비가일과 남편 나발을 극도로 격하[비하]시켰고, 다윗은 극도로 격상[존대]했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보자마자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려 그의 얼굴을 땅에 댔다(23). 그리고 다윗의 분노가 해결될 때까지 다윗의 발에 엎드려 이야기를 했다(24). 자신을 최대한 낮췄다. 분노의 불을 끄려면 무조건 나를 낮춰야 한다. 그녀는 먼저 집안의 책임자로 자청하면서 용서를 빌었다. “이 죄악을 내게로 돌리소서”(24) 그리고 다시 자기와 이야기를 하자고 부탁하면서 남편 나발을 비하했다. “여종에게 말할 기회를 주소서. 나발을 개의치 마소서. 이름대로 불량하고 완고하고, 행실이 악합니다”(3,24,25) 아비가일은 이야기하는 내내 말끝마다 다윗을 주라고 극존칭을 썼다. 무려 26번. 그리고 자신을 언급할 때마다 여종이라고 비하했다. 총 6번. 한마디로 다윗을 최상의 자리로 끌어 올리고 자신과 남편을 가장 아래로 끌어내렸다. 자존감이 낮았기 때문일까? 아니다. 오히려 자아 존중감이 높았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서 사용한 것이다. 영혼이 건강한 자만이 이렇게 할 수 있다. 벧전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
셋째, 하나님의 관점으로 다윗의 현재를 정확하게 이해해 줬고, 미래 또한 성경적 관점에서 정확하게 예언했다.
하나님이 다윗을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뜬금없는 아부성 발언이 아니라 그 이유가 명확했다. 다윗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고 있고, 다윗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28). 그리고 사울이 다윗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찾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이유 또한 명확했다. 다윗의 생명이 하나님과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기 때문이라고(29). 그리고 다윗의 원수들은 물매로 던지듯이 하나님께서 던져버리실 거라고 예언했다(29). 누군가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성경[신앙]적 관점에서 정확한 이유를 제시하면서 말해준다면 큰 위로와 감동이 밀려올 수밖에 없다. 아비가일은 말을 너무 예쁘게 했다. 나발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윗이 주인 사울에게 억지로 떠난 나쁜 자로 평가절하하고, 사울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다윗을 배신하고 있을 때, 아비가일은 다윗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말해 줬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속이 시원해진다. 힘이 생긴다. 이런 아비가일의 말은 다윗의 분노를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
넷째, 다윗의 이력에 오점을 남길까 봐 걱정해[도움을] 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만약 다윗이 나발과 그 집 남자들을 모두 죽이게 되면, 무시한 것에 대한 분노는 풀릴지 몰라도 지도자가 되면 오늘 사건은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라고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말했다. 지도자로 세워질 때 무죄한 피를 흘리거나 보복은 오점이 되어 슬퍼하거나 마음에 걸리게 되니 그런 오점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 줬다(30,31). 누군가가 나의 경력에 오점이 될 수 있는 것까지 생각하여 말해주고 그 오점을 남기지 말라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기쁠까! 다윗은 분노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벧전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이 4가지를 볼 때, 아비가일은 한마디로 총명한 여인이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지,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메타 인지가 뛰어나고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었다. 아비가일 뜻이 무엇인가? 기쁨의 근원이다. 이름대로 아비가일은 다윗의 불같은 분노를 기쁨으로 바꿔 주었다. 아비가일의 총명은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시 111:10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생긴다. 경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이다. 하나님을 경외한[말씀을 지킨] 아비가일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니 다윗의 현재가 보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아비가일은 그 말씀대로 다윗의 미래를 말할 수 있었다. 그러자 분노하던 다윗은 하나님을 찬송했고, 아비가일의 지혜를 칭찬하고 축복한 후 복수를 멈추고 처소로 돌아갔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분노를 잠재운 소방수였다.
우리도 이 방법을 익히자. 상대방의 욕구 파악과 충족, 상대를 높이고 나를 최대한 낮추는 겸손, 성경적 관점으로 현실과 미래를 보는 눈, 이력에 도움을 주는 욕구 충족.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계명 실천에서 비롯된 총명[메타 인지, 자기객관화]임을 알자. 아비가일처럼 주위 사람들의 분노의 불을 끄는 소방수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