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차 문화답사 奬忠壇-東國大-南山골한옥마을(4-4): 남산골한옥마을(2)
(45) 祭基洞 海豊府院君 尹澤榮 齋室 -서울시 민속자료 제24호-
純宗의 장인 海豊府院君 尹澤榮이 자신의 딸 純貞皇后가 1906년 東宮의 繼妃로 책봉된 후
이듬해 皇后가 되어 昌德宮에 들어갈 때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府院君: 조선시대 王妃의 친아버지에게 주던 正一品의 封爵
(46)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본채
이 집은 일반주거용이 아니라 純宗이 제사 지내러 올 때 불편을 덜기 위하여 마련한 齋室로
동대문구 祭基洞에 있던 건물을 1998년에 移建 하였다.
현재의 ‘祭基洞’이라는 洞名은 윤택영 재실에서 緣由되었다고 한다.
집의 배치는 ‘一’자형의 祠堂채를 제일 안쪽 높은 터에 두고, 그 앞 한 단 낮은 터에
‘兀’자형 몸채를 두어 전체적으로 ‘元’자형을 이루고 있다.
(47)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祠堂
원 건물은 4·19혁명 때 燒失되어 남산골 한옥마을로 이전하면서 復元하였다.
(48)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祠堂 내부
(49) 玉仁洞 尹氏 家屋
1910년대 玉仁洞 일대 넓은 땅에 純宗 妃 純貞孝皇后의 伯父尹德榮이 20여 채의 집을 짓고
그의 一家들이 모여 살던 집의 일부이나 部材가 너무 낡아 이전하지 못하고 이곳에
신축하였다.
(50) 옥인동 윤씨 가옥
(51) 옥인동 윤씨 가옥
안채, 사랑채, 대문간채가 연결된 ‘口’자형 평면으로 구성되었다.
*尹德榮(1873~1940?): 本貫은 海平으로 1910년 國權被奪 때 純宗에게 合邦條約에 강제로
玉璽를 찍게 하였으며 일본정부로부터 子爵의 작위를 받았다.
親日派들이 純宗에게 합방조약에 날인할 것을 강요하자 純貞孝皇后가 玉璽를 치마 속에
감추고 내놓지 않았으나 伯父 尹德榮이 강제로 빼앗아 순종에게 주고 날인을 강요했다는
일화가 있다.
(52) 옥인동 윤씨 가옥 부엌
(53) 옥인동 윤씨 가옥 대청마루 井字살문
(54) 옥인동 윤씨 가옥 사랑채 뒤쪽 정자살문
(55) 옥인동 윤씨 가옥. 靑鶴池쪽에서 본 모습
(56) 靑鶴池와 泉雨閣
조선시대에는 물이 흐르는 계곡과 천우각이 있어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이름났던 곳이다.
(57) 靑鶴池의 人工 섬. 天圓地方思想에 따른 것인가 보다.
(58) 천우각과 그 너머로 보이는 남산의 서울 N타워
(59) 한옥마을에서 보이는 남산의 서울 N타워
(60) 靑鶴池와 泉雨閣
(61) 남산골 전통정원 안내도
계곡이 아름다워 靑鶴洞天이라고 부르던 남산골을 원형대로 복원하여 남산의 전통 樹種을
심었으며, 계곡을 만들어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고, 정자와 연못 등을 복원하여
전통양식의 정원으로 꾸몄다.
사진 맨 위가 서울千年 타임캡슐, 그 아래는 <남별영터∙남소영터>(왼쪽)-
서울남산國樂堂(가운데)-觀魚亭과 聽流亭 등(오른쪽)이며, 사진 왼쪽은 한옥마을,
가운데 아래는 泉雨閣과 靑鶴池, 오른쪽 아래가 正門이다.
(62) ‘남산골將帥’ 나셨네!!!
(63) 남산골한옥마을 정문(안쪽)
64) 남산골한옥마을 정문(外三門)
木覓山 忠正寺-옛 首防司 營內寺刹
木覓山 忠正寺는 남산골 한옥마을 정문 앞 오른쪽에 쪽문처럼 작은 문을 들어서면 큼직한
2층 法堂 建物이 바로 나타난다.
이 절은 首都警備(防衛)司令部의 營內寺刹로 創建되어 장병들의 宗敎生活을 지원하다가 부대는 이전하고 寺刹만 남았으며 팔작지붕 二層건물에는 大雄殿, 寶藏殿, 毗(毘)盧殿, 說法殿이 같이
들어서 있는데, 部隊 안에 特定宗敎施設을 넓게 잡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서울都心 營內의
좁은 敷地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方便이었던 것 같다.
일반 사찰과는 달리 塔도 없고 一柱門 등 三門은 없으나 寺額이나 扁額은 名筆인 如初 金膺顯의
글씨가 여러 점 걸려있다.
(65) 木覓山 忠正寺 前景
(66) 목멱산 충정사 출입문
(67) <木覓山 忠正寺> 寺額. 如草 金膺顯 글씨
(68) 목멱산 충정사
이 法堂은 제8대 사령관 盧泰愚 將軍이 1980.07.25에 起工하여 同年 12.29 제9대 사령관
朴世直 장군 때 竣工하였다.
(69) <忠正寺> 寺額. 출입문을 들어서면 아래∙위층에 法堂들이 있다.
출입문에는 ‘미시오’ 대신 ‘밀어 주세요’라고 써 붙였는데 盧泰愚 대통령의 “믿어 주세요”가
聯想되어 웃음을 자아낸다.
(70) 대웅전(법당의 동쪽)
(71) <大雄殿> 편액. 如初居士 / 如初 金膺顯 글씨
(72) 大雄殿 佛壇. -2011.09.21 사진- 이번에 법당 내부는 拜觀하지 않았다.
(73) 寶藏殿(법당의 남쪽)
(74) <寶藏殿> 편액. 戊寅佛誕 如初居士 / 如初 金膺顯 글씨
(75) 毗盧殿(법당의 서쪽) (*毗 = 毘: 도울 비)
(76) <毗盧殿> 편액. 戊寅佛誕 如初居士 / 如初 金膺顯 글씨
(77) 說法殿(법당의 북쪽)
*無說殿 / 說法殿 -한국 사찰의 구조와 불교미술연구-
사찰에서 高僧들이 華嚴經 등 주요 經典을 가르치는 장소이다. ‘무설’이란 說法하는
講堂이지만 逆說的으로 說함이 없이 說한다는 불교적인 표현이다. 요즘 사찰에서는 보통
많은 佛子들이 모여 부처님 법석을 마련하는 자리를 설법전이라고 한다.
(78) <說法殿> 편액. 戊寅佛誕 如初居士 / 如初 金膺顯 글씨
(79) 說法殿 佛壇 -2011.09.21 사진-
(80) 忠正寺 全景. 北西쪽에서 본 모습으로 왼쪽(북쪽)은 說法殿, 오른쪽(서쪽)은 毗盧殿이다.
踏査를 마치고
(81) 음식점 ‘오발탄’. 忠武路 大韓劇場 건너편에 있다.
(82) 오발탄에서
(83) 오발탄에서
(84) 오발탄에서
(85) 오발탄 현관에 있는 造形物
(86) 오발탄에서 본 大韓劇場.
우리가 고등학교 학생시절 극장이 처음 생겼을 때는 극장 앞 도로가 非鋪裝道路였었는데….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