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하나님 나라의 사고훈련
10/11화(火) 엡 4:17-24 /고후 5:16-17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엡 4:23-24).
사고훈련이란 생각하고 고찰하는 훈련입니다. 사고훈련은 성령을 의존할 때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힘든 것은 환경 때문이 아니라 사고가 잘못되어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생각에는 창조의 힘이 있습니다. 지금 환경은 내 생각이 만든 환경입니다. 생각은 믿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시각에 그 종이 나았다”(마 8:13). ‘믿은 대로 될지어다’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라, 다스려서 환경을 바꾸라, 충만하라, 생육하라, 번성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창조의 목적은 환경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신(사단)은 보이는 대로 생각하게 하니 타락한 인간은 환경에 붙들리게 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된 것이 아닙니다”(히 11:3). 변하는 삶은 즐겁고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죄는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속은 것입니다. 내 감정, 느낌은 내가 아닙니다. 사단이 가르치는 거짓말은 ‘마음이 나’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내가 아닙니다. 내 마음은 내가 아니라고 거부해야 합니다. ‘나’는 내가 아니라 ‘내 상태를 나타내는 거울’ 같은 것입니다. ‘너 자신을 부인하라’라는 것은 내 마음(거짓에 붙들린)을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네 십자가를 지고’는 그 상황에서 환경에 붙들리지 않고 주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 혼의 지배를 받는 마음이 영의 지배를 받는 것이 참 자아, 성화입니다.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주님 안에서 간곡히 권고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이방사람들이 허망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이 살아가지 마십시오”(엡 4:17). 내 마음을 부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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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사고훈련입니다.
접촉사고로 인한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차도 부서지고 기분이 상합니다. 연이어 오는 생각은 ‘돈 깨지겠네, 견적이 많이 나오면 어쩌지?’ 불편함으로 인해 큰일이 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정상적인 사단의 사고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고는 아! 하나님께서 이제 새 차를 주시겠구나! 이런 긍정의 사고를 해야 합니다.
긍정의 사고는 영에서 오는 사고입니다.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생각)입니다. 성령의 사고로만 생각해야 합니다. 성령의 사고는 분열이 아니라 하나 되게 합니다. 성령이 마음을 지배할 때만 가능합니다. 말은 창조의 씨앗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노예로 팔려 짐승 취급을 받았습니다. 아주 최악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하나님의 뜻이 있어 이곳에 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밝은 얼굴로 날마다 기쁨으로 그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보디발이 그에게 가정 총무의 자리를 맡기십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합니다.
요셉은 무 반응하고 하나님을 인식합니다. 그러니 죄를 짓는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통한 영적 존재입니다. 그는 감옥에 가서도 하나님을 인식하며 최선을 다하니 간수장의 눈에 띕니다. 요셉의 반응이 환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요셉은 늘 하나님 사고에 대해 반응합니다. 하나님이 하셨다고 믿은 것입니다. 지금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행에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상한다는 것 자체가 부정의 생각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부정적인 생각을 묶고 의와 희락과 화평을 주십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사고가 바뀌게 됩니다.
‘내가 알아서 한다.’ 이런 생각을 무너트려야 합니다. 이것은 사단이 주인 된 자아입니다. 내 자아가 죽은 무덤, 죽은 날짜가 있어야 합니다. 한 번 죽으면 날마다 죽기 쉽습니다. 무덤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항복했다는 것입니다. 거짓 자아의 정체성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옵니다. 좋든 나쁘든 경험은 끊어내야 합니다.
거짓 자아는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 꿈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엇을 이루는 것이 목적입니다. 자기 성과가 목적입니다. 행위적인 삶이 목표로 율법입니다. 그러나 행위로는 사람이 바뀌지 않습니다.
육체의 동일시는 거짓 자아의 삶입니다. ‘사장’인 나, ‘목사’인 나, ‘교수’인 나, 내가 ‘나’라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위치는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으로 주신 것입니다. 좋은 위치든 나쁜 위치, 과거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내가 ‘참 자아’입니다. 과거를 오늘로 미래를 오늘로 끌어당기는 것은 거짓 자아입니다. 과거는 이미 다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오지 않을 시간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구하지 말고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현재 일이 염려된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염려, 근심, 걱정되는 최악의 상황은 마음이 만든 감옥입니다. 하나님 나라만 구하면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은 내가 아닙니다. 내 마음이 나라고 믿는 것은 거짓 자아에 속은 것입니다. 진정한 나는 내 영혼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과정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이면 그 끝은 하나님이 맺으십니다. 우리는 결과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주님이 허락하신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과정에 장애물도 감사하게 됩니다. 장애물 사이에 숨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매를 맞고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깊은 기도에 들어갑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였습니다. 비록 억울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 그곳에 구원받을 영혼이 준비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비밀을 깨달은 순간 바울은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굽이굽이 도는 그 길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목표점을 보면 불평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정에서 숨은 그림을 찾다 보면 그곳에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불평 대신 감사로 찬양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그 일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고가 성경적 사고로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사고로 훈련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선
https://youtu.be/qD7Hm0_E6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