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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속에서 찾아보는 21세기 고뇌와 사유
황외순(시조시인)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에는 정치, 철학, 문학 그리고 계절과는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반지하 혹은 쪽방 혹은 도심의 먼발치에서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이들로서 너이고, 나이며 우리다. 사회에서 소외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핵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주 그들을 잊는다. 문학은 서로를 잇는 매개며 자유로운 대화방이다. 때로 현학은 필요하지만, 소통의 부재를 가져올 우려가 있고 지나친 감정몰이는 오히려 초점을 빗나가기 쉽다. 예나 지금이나 문학의 시선이 생활 속으로 향하는 이유다. 여기에 관계 맺기의 중요성이 있으며 따뜻한 참여는 그 간격을 메운다. 그러므로 문학은 또한 공공적公共的이다. 보수와 진보, 아날로그와 디지털, 생과 사, 그 경계를 허물며 서로 아우른다. 공감의 시작은 거기에서부터다. 여기 한 무녀리가 있다. 먼저 그녀의 가감 없는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상패가 쌓여있네 트로피도 있다네
1월 1일 봉고 버스 기다리는 출근길에 간판이 반짝거리며 핫팩처럼 유혹하네
상 받은 적 한번 없고 명함도 물론 없는 이름조차 녹이 슨 무녀리 여자 몇이
햇덩이 들어 올리는 교회 탑을 돌아보네
제가 저를 광고하며 살아가는 시절에 살얼음 잘 건너온 나는 영광일까요
내게도 상을 주나요? 상패 하나 주나요?
-백점례 「영광사 광고」전문, 나래시조 2018 봄호
상대방을 높이는 일이 나를 높이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각자 스스로 자신을 광고하며 살아간다. 피알이라는 은어가 그 증거다. 피할 건 피하고 알릴 건 알리자는 의미다. 광고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자연스레 광고사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광사 광고도 그중의 하나다. 반짝거리는 간판이 무녀리를 잡고 상패와 트로피를 내민다. 하지만 “상 받은 적 한번 없고 / 명함도 물론 없는 // 이름조차 녹이 슨” 그녀는 선뜻 그것을 받을 만한 명목을 찾지 못한다. 그러다가 문득 새해 첫날에도 예외 없이 봉고 버스를 타고 출근해야 하는 고단한 그녀의 일상을 펼치며 “살얼음을 잘 건너”온 자신에게 “내게도 상을 주나요? // 상패 하나 주나요?”라고 묻는다. 필자가 끼어들어 대신 대답을 해 주고 싶다. “물론이지요.” 상을 받을 만한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며 특별한 신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비록 자신을 스스로 광고하지 않아도 삶 자체만으로도 위엄 있는 하나의 큰 상이 되는 사람이 있다. 저 무녀리처럼.
불경기 타령 속에 산더미 종이상자 기역자 허리 굽혀 끈으로 묶고 있다 쓰레기 수거일마다 마주치는 그 노인
쭈그러진 수레 밀며 끌려가는 내리막길 햇살이 구름 뒤로 잠시 들어가더니 그늘을 드리워준다, 땀방울 훔치라고
산 쓰레기 죽은 쓰레기 치열한 현장인가 잽싸게 훑어가는 용달차, 오토바이 그 노인 뜸한 발길에 속내가 시려온다
-유영애 「깔딱 고개」부분, 열린시학 2018 봄호
“쓰레기 대란, 중국의 또 다른 힘”이란 자막을 내세운 매스컴이 소란스럽다. 전 세계에서 몰려오던 쓰레기의 수입을 금지하기로 한 것은 아마도 중국으로서는 최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벌어지는 폐수는 토양 · 수질 문제를 일으키고 대기오염을 유발해 심각한 환경문제로 떠올랐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수출국들이다. 쓰레기의 수출은 재활용이란 이름 아래 쓰레기처리 문제가 쉽게 해결되었고 수익까지 가져다주었기에 그야말로 남는 장사였던 셈이다. 그러니 중국의 쓰레기 수입금지 조치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업체들은 가격을 50%씩 내리고 급기야 폐지와 폐비닐, 폐플라스틱 등의 수거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폐지를 줍던 “기역자 허리”의 할머니 모습도 이젠 보기가 드물다. 그나마 노인들이 벌 수 있는 몇 푼 돈벌이마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유영애의 「깔딱 고개」는 울컥 가슴이 미어지는 시다. “쭈그러진 수레 밀며 / 끌려”가고선 “뜸한” 노인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3분에 해치우는 게 컵밥의 특명이다 빠르고 싸고 맛있는 레시피를 개발하라 청춘은 맨발이라서 서서 먹는 간편 특식
합격해도 삼천 원 떨어져도 삼천 원 10급에서 11급 된 삼수생도 삼천 원 컵밥에 공짜는 없다 절망은 팔지 않는다
· · · 중략 · · ·
껍데기 발라내고 무릎뼈로 걸어오라 흙수저 탓하지 말고 금수저 욕하지 않는 청춘엔 깨지고 터질 실패의 자유가 있다
-최영효 「컵밥 3000 오디세이아」부분, 시조21 2018 봄호
어쩌다 삶이 기록경기가 되어버린 듯하다. 갈수록 빨리, 빨리, 더 빨리를 요구한다. 이는 밥 먹는 시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인지 즉석식품이 인기다. 그중에서도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맨발”인 청춘은 밥도 “3분에 해치”워야 하므로 “서서 먹는 간편 특식”인 컵밥이 제격인 듯하다. 게다가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여러 장벽 앞에서 컵밥은 “합격해도 삼천 원 / 떨어져도 삼천 원 // 10급에서 11급 된 삼수생도 삼천 원”으로 공평하다. 그러니 청년들이여, “깨지고 터”진다고 “절망”하지 말고 “껍데기 발라내고 / 무릎뼈로” 걸어가라.
겉모양새 말쑥하고 얼굴 또한 반반한데 어디서 뭣을 해도 먹고 살 수 있어 보여 에둘러 내쫓고 나서 뒤에 대고 핀잔했다
친구들과 회식코자 같이 간 음식점 옆 허름한 옷을 입고 젖을 물린 한 여인 아까, 그 문전박대한 바로 그녀 아닌가
목에 걸리는 갈비 몇 점 넘기지도 못하고 문 나설 때 친구가 낸 봉사료도 만 원인데 살며시 헤어져 돌아가 풀잎 한 장 건네는 그
-이상야 「단돈 만 원」부분, 정형시학 2018 봄호
가게를 운영하다 보면 “겉모양새 말쑥하고 / 얼굴 또한 반반한” 걸인이 찾아오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들은 대부분 차비가 없다거나 배가 고프다거나 하는 비슷한 사연들로 구걸을 한다. 그럼 나는 “풀잎 한 장” 선뜻 건넨다. 혹여 손님이 매정하다는 소리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되어서다. 하지만 정작 손님들은 “어디서 뭣을 해도 / 먹고 살 수 있어 보”인다며 오히려 나를 “핀잔”한다. 나 역시 마음으로는 못마땅하다. 어디서든 악의적인 사람은 늘 있다. 그 때문에 “허름한 옷을 입고 / 젖을 물린 한 여인”처럼 싸잡아 욕을 먹고 “문전박대”를 당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둘러보면 생활고로 고생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처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그녀”들도 적지 않다. 행여 지나쳐버릴지도 모르는 “그녀”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도 한번쯤 속아주는 것은 어떨지 ···
손바닥만 한 햇살 값이 얼만 줄 아시나요?
“창 달린 지하방은 7만 원쯤 더 얹어야죠”
햇살 값 참, 비싸네요 한 줌 될까? 고 정도에 ···
-노영임 「햇살 값」전문, 나래시조 2018 봄호
봄이 채 오기도 전부터 황사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 연이은 가뭄으로 식수까지 제한을 받는 터라 불편을 넘어 불안하기까지 하다. 이런 여러 가지 환경문제의 폐해에 힘입어, 지천이라서 오히려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물, 공기, 햇살 같은 것들이 새삼 그 가치를 평가받게 되었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연과 공생관계에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내심 우월적 위치에 있는 것처럼 거드름을 피운다. “창 달린 지하방”에 “손바닥만 한 햇살”을 들이기 위해서 “7만 원쯤”이 아니라 70만 원쯤 더 얹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는데 · · · 시인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모든 사람과 자연이 그러하듯이 시간과 함께 현재를 살뜰히 살아가는 사람이며 자신도 이야기가 되는 사람이다. 언제부턴가 스토리텔링이 대세다. 희곡, 소설, 영화 등에서 일부분을 차지하던 것이 어느 순간 음악, 미술, 광고, 영상 등의 전반에 걸쳐 필수 장르가 되었다. 인상적인 이야기는 독자나 소비자에게 각인 되어 오랜 시간 뇌리에 남아있을 공산公算이 크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5편의 시조에도 이야기가 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어 이질감마저 느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네가 대신하는 나의 이야기고 내가 대신하는 또 다른 너의 이야기다. 자연히 울림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시조는 상차림의 예법이 있다. 뼈대 있는 가문의 전통은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바 고수하는 것이 오히려 자랑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 눈을 부릅뜨자. 때로는 망원경이 되고 때로는 현미경도 되자. 촉각을 곤두세우고 귀를 기울이자. 거기에 못다 한 우리의 이야기가 있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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