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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일진의 곁과 밑엔 또 다른 이진, 삼진등이 대거 포진해있었습니다.
완벽한 먹이사슬 피라미드 구조였죠.
이 조직구도는 중학생들이 작당하여 한다기에는 생각보다 규모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일진은 모든 학생들을 괴롭히고, 이진은 일진을 제외한 학생을 괴롭히고, 삼진은 그 아래를...
거기에 속하지 않는 극소수의 학생들.
철저한 상명하복의 구조가 바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서라벌 중학교였습니다.
이미 중2 시절에는 특정 일진에게 상납하는 구조가 있었구요.
저는 저 상납에 해당되지 않았지만, 상납에 이용당하고 맞고 팽 당하고 괴롭힘당하는 학우들 정말 많았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일진 애들이 남대문에서 사온 자칭 ‘수제 리바이스 바지’와 기타 다른 옷들도 거의 강매에 가깝게 팔아서 돈을 벌어왔죠.
처음 글을 쓸 때 비교적 수위가 세지 않아 글을 간추리다 삭제했던 추가적인 경험도 나열하겠습니다.
몇 명은 알 걸요. 김지수는 저를 포함한 지나가는 평범한 학생들을 보면 가끔씩 실수인 양 자기 삼선 슬리퍼를 던져서 등에 먼지를 묻히고, 분필 지우개, 물폭탄, 침 등등 여러 테러 많이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해맑게 웃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미안^^’ 이랬죠.
맞은 학생은 어떻게 하냐고요? 그 이후는 다른 피해들과 같은 흐름입니다.
맞은 애는 표정도 썩으면 안되고, 얼른 화장실에 가서 마이를 씻어야 했죠.
행여나 기분 나쁜 표정으로 쳐다보거나 한다면 다음에 날아오는 건 온갖 욕설과 뺨따구이니까요.
다행히 전 물폭탄이나 침은 안 맞았지만, 김지수의 그 행동에 이유는 오로지 하나입니다. 즐거움. (당시 저게 물풍선에 물을 담았는지, 콘돔에 담았는지 기억은 헷갈립니다.)
물론 학생들도 피임은 중요하니까 성숙한 몇몇 일진 아이들은 항상 지갑에 콘돔을 넣고 다녔거든요. 이 부분(콘돔)은 김지수라고 특정하지 않겠습니다.
수련회 때나 현장학습을 가는 날은 정말 각오 많이 하고 갔습니다.
동창들이라면 다들 아실겁니다. 수련회 때 장기자랑 타임.
처음 폭로 글의 댓글 중에 수련회 때 장기자랑 사진을 누가 올리신 것 같은데, 무대에 나간 그들 모두가 일진 혹은 그 주위 무리입니다.
일반 학생은 그들이 군림하는 서라벌 중학교에서 감히 장기자랑 같은 눈에 띄는 행동은 못합니다.
그거야말로 “나!! 나!!!나 너무 나대고 싶으니까 얼른 때려줘!!!” 이 꼴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 당시 담임선생님은 우리가 그들에게 타깃이 되어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어서, 우린 항상 현장학습이나 이런 활동 때 다른 애들보다 30분은 일찍 먼저 귀가했습니다.
항상 그럴 때마다 일진 애들과 그 밑에 있는 애들이 벼르고 있었거든요.
그땐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농구를 좋아했던 저는 중1 때에는 김지수, 박준규 같은 일진들과도 같이 농구를 하며 원만하게 지냈습니다. 그 둘도 덩치와 키가 있어서 농구를 좋아했고, 2학년 때에도 이따금씩 같이 농구를 하곤 했죠.
그러다가 중3 때 제가 일진들과 사이가 안 좋아지고 나서는, 농구는 못했습니다.
점심시간이나 수업이 다 끝나고 여유가 있을 때면 30분에서 1시간 정도 농구를 해왔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낀 농구 코트에 박준규나 김지수가 꼭 찾아와 절 괴롭혔죠. 운동이란 명분하에 몸싸움을 이용하여 절 괴롭히려고요. 그 당시에는 신고하기에 참 애매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이후 혹시라도 그들이 멀리서 보이면 좀 씁쓸했지만, 후딱 도망쳤었습니다.
어쩌다가 농구가 너무 하고 싶어 그들이 없는 운동장에서 가져온 공으로 친구 몇 명과 놀고 있으면 어느샌가 김지수와 박준규가 찾아와 공을 뺏은 다음 학교 담 너머로 차버리거나 멀리 던져놓고, 그 자리에서 또 욕설과 패륜적인 발언을 했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동창, 후배, 선배 혹은 그 관계자 여러분.
저 제 말에 책임질 수 있습니다.
전 그때 결심한 전쟁을 지금까지 해온 거거든요.
제가 겪은 여러 부분 말로 표현하면 자칫 불쌍해 보일 수 있는데, 전혀요.
힘들긴 했지만 전 괜찮았습니다.
그때 굳건해진 친구들은 제 결심에 힘을 실어주어 지금 이렇게도 제 주장이 더 탄탄해졌지만, 그때 김지수한테 충성을 맹세하던 그 아이들은 지금 다 어디갔나요?
왜 댓글에는 ‘무작정 믿지만 말자’는 중립적 글이나 말도 안되는 비방글 말고는 지수측의 구체적인 반박이 없을까요?
그들이 비록 당시에 무력으로 절 해칠 순 있어도, 그 당시에도 뼛 속 깊이 자리한 제 신념과 자존감은 절대 못 꺾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가족과 주위 분들에게 당시에 구체적으로 말씀 안 드렸어요.
말 안한 이유가 단지 보복이 두렵거나, 말하면 더 큰 일 날까 겁이 나서 그런 게 아닙니다.
무서웠지만 견딜만 했고, 힘들었지만 이겨낼 자신 있었거든요.
육체적인 힘이 안 되는거지, 제가 그 당시 그 더러운 일진들에게 마음이 꺾여서 진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보세요. 제가 뚜렷하게 믿고 있었던 제 신념에 대한 자신감은 이렇게 여러 증언들에 힘입어, 결국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알게 되었잖아요.
감히 말하지만 전 현재 제 삶에 너무 만족하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청년입니다.
잃을게 없어서 막 던지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 또 다른 증언 >
제 피해를 입증 할 만한 증거가 하나도 없어서 지금까지 속으로 삭히며 잠자코 살았는데 배우 김지수 이 개자식 드디어 터졌네요.. 지금까지 왜 안 터지고 이제서야 터지는지 이해가 안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터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피해를 입증할 증거는 없다고 다시 한번 밝히며 믿고 싶지 않으시다면 안 믿으셔도 좋습니다. 어차피 저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논란 터트린게 많은데 나도 껴서 속 풀이 한다는 생각으로 할 말 좀 하겠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버디버디 1:1채팅 캡쳐라도 해놓을껄 그랬네요) 일단 저는 서울 강북구 미아동 에 2000년도에 이사와서 21년째 살고 있는 29살 먹은 사람이고요 (배우 김지수랑 동갑입니다. 93년생) 미아동에 있는 화계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까진 별 탈 없던 제 인생이었는데 5학년부터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 갔는데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당시 같은 빌라 밑 층에 어떤 친구A가 이사 왔었습니다. 처음엔 안 친해서 서먹 했지만 비 오던 어느날 우산이 없어 비를 맞으며 집에 가고 있었는데 뒤에서 이사온 친구A가 저에게 우산을 씌워줬고 그렇게 말이 트이며 그 친구랑 친해졌고 한동안 잘 지냈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로서 좋은 감정이 그리 오래가진 못했는데요 어느날 볼 일 보러 학교 화장실에 갔는데 그 친구 A가 화장실 소변기 사이에서 당시 약골로 유명했던 다른 반 친구를 발로 밟고 때리고 있었고 비 맞으며 길가는데 우산을 씌워줘서 마음씨 착한 좋은 친구인줄 알았는데 다른 반 친구를 발로 밟는걸 보니까 알고보니 좋은 친구가 아니었다는 생각에 그걸 보고 충격 받아 그 친구A를 서서히 멀리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 A는 그런 제 마음을.. 알고 그런건지 모르고 그런건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게도 슬슬 본색을 드러내며 등교와 하교를 그 친구와 무조건 같이 해야했고 특히 등교를 하기 전 집에서 나올때 무조건 친구A 집에 들려서 그 친구를 불러 같이 가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 니네 집 바로 밑층이 우리집인데 들리는게 귀찮냐며 맞은 적도 여러번 있었기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친구A와 멀어져야겠다는 생각을 잊고 그저 맞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같이 붙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 배우 김지수 이야기 꺼내기 전에.. 강북구 미아동 사시는 분들은 잘 알겁니다. 화계 초등학교에서 미아 사거리 방향으로 어느정도 가다보면 송중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친구 A가 처음 보는 키 크고 덩치 있는 친구를 데려 왔는데 화계 초등학교 근처 송중 초등학교의 짱이었던 김지수였고 그 때 처음 만난 이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엔 그냥 같이 있기만 해도 무서웠습니다. 친구A보다 더 크고 더 쎄고 더 무서운 김지수가 옆에 끼기 시작하다보니 쳐 맞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달라지는거 없이 여전히 찍소리도 안하고 따라 다녔으며 김지수의 집에 가서 김지수의 부모님이 안 계신 틈을 타 김지수, 친구A와 함께 몰래 담배까지 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만나면 만날수록 김지수도 저에게 행동이 격해지더니 어느날 제가 갑자기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자기 집으로 데려가 저에게 뺨을 때리고 발로 걷어 차며 구타를 했고 하다하다 불 때문에 달궈진 라이터 화구 부분으로 오른팔 뒷 쪽 삼두근 외측두 부분에 라이터 빵까지 당했었습니다. (16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저거 하나는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럼에도 전 그 당시 너무 무서워서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말을 하지 못하며 끙끙 앓다가.. 결국 엄마가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엄마에게 말을 했었는지 아니면 엄마가 어쩌다 우연히 알았는지 기억은 잘 안납니다만 어찌됬건 엄마가 제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던 집에까지 찾아왔던 김지수에게 엄마는 화를 내며 다신 내 아들 곁에 나타나지 말라고 하며 김지수를 내쫒으셨고 그 후 버디버디 1:1 채팅으로 온갖 욕설과 협박 및 엄마 욕(패드립) 까지 하며 너 길가다 마주치면 죽여버린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배우 김지수와의 짧지만 개같은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당시 김지수는 제가 사는 집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 찾아와 보복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 후에도 한 동안 두려움을 가지고 등,하교를 했어야 했습니다만 다행히 찾아 오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친구A와의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었고 중학교도 같은 중학교로 올라가게 되서 알게 모르게 친구A의 친구들에게 사소한 괴롭힘과 삥을 뜯겼으며 고등학생이 되기 직전인 중3 겨울방학 쯤 친구A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며 친구A와의 길고 개같은 인연도 그렇게 끝이 나며 저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드디어 완전히 자유가 되었습니다. 그 후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심경변화가 있었고 무에타이를 접하며 일반인 치곤 어느정도 좀 칠 수 있는 놈이 되었고 바르지 못한 사람에게 더 이상 기 죽어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나마 초딩때 만난데다가 친구의 친구로 만난거라 얼추 네다섯번 밖에 만난 적이 없어서 다른 피해자 분들에 비해 그나마 덜 당한 축에 속해서 그런지 16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그 당시 겪은 일에 대한 마음의 상처나 트라우마도 치유 되었습니다. 하지만 몸에 난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가 남듯 마음의 상처 또한 마찬가지로 치유가 되더라도 기억이라는 이름의 흉터가 남죠 16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이젠 그런 일도 있었지 하며 그 때의 기억이 대강 떠오르면 무덤덤하게 넘기지만, 간혹 그 때의 기억이 세세하게 떠오르게 만드는 엿같은 상황이 있는데 여전히 혐오스러울 정도로 불쾌하고 지금이라도 인생 포기하고 다 찾아가 칼로 찔러 죽이고 싶지만 그건 당장 내 기분 풀자고 아무 이득 없이 부모, 친척, 친구들의 얼굴에 먹칠만 하는 일이라 꾹꾹 참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금 말한 그 때의 기억이 세세하게 떠올라 혐오스러울 정도로 불쾌 해지는 엿같은 상황은 바로... 배우 김지수가 티비에 나올 때 입니다. |
소속사 키이스트에도 이런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입장문 보았습니다.
어떤 의도로 보내신 건지 모르겠으나, 피해자들이 듣기엔 마치 “어디 한번 들어줄테니 말해봐” 식으로 들립니다.
이미 많은 용기를 낸 피해자들에게 “자신 있으면 어디 연락해봐.”라는 의견이신가요?
피해자인 사람들이 ‘왜’ ‘당신들에게’ ‘직접’ ‘일일이’ 제보를 해야 하나요?
메일 주소를 통하여 신상을 알아내려는 건 아닌지도 염려됩니다.
또 그 신상을 감추고자 주위 다른 계정을 쓰는 수고를 해서까지 왜 우리가 보내야 하나?라는 의문도 듭니다.
계약 관계인 김지수 측의 회사에 왜 피해자들이 제보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소속 연예인인 배우 김지수씨께 직접 물어보세요.
학폭가해자 이 사실 여부에 대해서요.
스스로가 인정하냐 아니냐에 따라
앞으로
그냥 ‘학교폭력 가해자’ 김지수
혹은 ‘학교폭력 가해자’ 배우 지수
이렇게 타이틀이 바뀌겠네요.
소속사 측이나 개인적으로 제게 법적인 절차로 겁을 준다거나 한다면, 저도 당연히 그에 맞서고 응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무법자' 김지수에게 ‘법적’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짊어질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뭐 상관 없습니다.
말씀드렸죠. 전 전쟁이라고.
100억을 줘도 필요 없습니다. 보상따위 아무것도 필요없어요.
당신의 모든 걸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당신이 피해자들과 믿었던 팬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