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파악하는 성도가 되렵니다
2023년 4월 2일 / 눅 14:7-11
주제파악을 하는 성도(눅 14:7-11)
눅 14:7-11 / [낮은 자리(섬기는 자리)에 앉으라] 예수께서는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저마다 식탁의 윗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것을 눈여겨 보시고 나서 그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8) ‘너희가 결혼 잔치에 초대받아 가거든 윗자리에 앉지 말라. 만일 너희보다 더 귀한 손님이 오면 9) 주인이 그를 데리고 너희가 앉은 자리에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주시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창피를 당하면서 제일 낮은 자리로 내려앉게 될 것이다. 10) 그러므로 맨 끝자리에 가서 앉으라. 그러면 주인이 너희를 보고 ‘친구여, 윗자리가 당신을 위해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때에 너희는 모든 손님들 앞에서 높아지는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높이면 낮아질 것이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어떤 목사님이 신자들에게 ‘삼척이 어디에 있는 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신자들이 일제히 ‘강원도’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틀렸습니다. 삼척은 여러분들 마음 안에 있습니다. 잘난 척, 있는 척, 아는 척하는 이 세 가지가 바로 삼척입니다.’라고 했다.
그리스도인 곧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섬기며,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들어 모시는 신앙인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또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가? 누가복음 14:7-11에서 예수님은 이 물음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모인 사람들에게 한마디로 낮은 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다시 말하자면 신앙인들이란 겸손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잔치에 초대받았을 때, 자기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마치 자기가 잔치의 주인공이나 되는 양 스스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거만하고 오만스러운 인간이 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스스로 낮은 자리에 앉아 섬기는 사람들이 참된 그리스도인, 제자라고 하셨다. 이렇게 겸손한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에서도 윗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예수님은 분명히 가르치셨다.
우리도 진정으로 겸손한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회 생활에 앞장을 서는 열심있는 사람은 많이 보았다. 하지만 나 자신부터가 그러하듯 겸손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겸손이란 무엇일까?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일이 겸손일까? 결단코 그렇지 않다. 자신을 비굴하게 낮추고, 그것을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겸손일 수 없다. 그뿐 아니라, 나중에 높은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계산된 마음으로 스스로 낮은 자리를 차지하는 행위도 겸손일 수 없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오만함이며 거짓이다. 그렇다면 겸손이란 무엇일까? 겸손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고 참된 자기 인식이다’라고 표현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겸손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아는 것, 하나님의 시선에서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시쳇말로 주제 파악을 잘하는, 분수를 아는 것이 겸손이라고 할 수 있다.
▶ 파악(把握)은 ‘손으로 잡아 쥠’, ‘어떤 대상의 내용이나 본질을 확실하게 이해하여 앎’의 사전적인 의미로, 주제파악(主題把握)이란 복합성어로 ‘변변하지 못한 처지 따위를 확실하게 이해하여 앎’이란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주제 파악을 하자는 얘기는 정확하고 밀도 있게 나를 성찰하고, 본질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쉽게 말하면 ‘네 주제 파악을 하라’, ‘네가 너 자신을 얼마나 알고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알아라’는 말이다. ‘너의 무지(無知)를 알아 무지의 지(知)에 이르러라’는 것이다.
주제파악을 하기 위하여 주제파악과 관련된 속담을 보자. 도움이 될 것이다.
➊ 까마귀가 까치 보고 검다 한다 : 제가 더러운 주제에 도리어 남을 더럽다고 흉본다는 뜻으로, 자기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남의 흉을 봄을 비웃는 말.
➋ 제 코도 못 씻는 주제에 남의 코를 씻어 주겠다 한다 : 자기 앞에 닥친 일도 처리하지 못하면서 남의 일을 걱정하며 도와주겠다고 나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➌ 조석거리도 없는 주제에 천하를 걱정한다 : 제구실도 똑똑히 못하면서 주제넘게 큰일에 관여하는 어리석음을 비꼬는 말.
➍ 파총 벼슬에 감투 걱정한다 : 하찮은 파총 주제에 감투 걱정을 한다는 뜻으로, 별로 대단치 아니한 일을 맡고도 시끄럽게 자랑하고 다니며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➎ 아이 못 낳는 년이 밤마다 용꿈 꾼다 : 실제로 할 능력도 없는 주제에 허황된 생각만 하고 있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➏ 벼룩이 황소 뿔 꺾겠다는 소리 한다 : 보잘것없는 능력밖에 없는 주제에 터무니없이 큰소리를 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➐ 참빗이 뭔지도 모르는 참빗 장사 : 맡은 일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그 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비꼬는 말.
➑ 장님이 장님을 인도한다 :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분에 넘치게 남의 일까지 하여 주려고 나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➒ 동정 못 다는 며느리 맹물 발라 머리 빗는다 : 동정 하나 제대로 못 달아 너절하게 하고 사는 며느리가 그래도 모양을 내겠다고 물 발라 머리만 빗고 있다는 뜻으로, 일을 할 줄 모르는 주제에 멋만 부리는 밉살스러운 행동을 비꼬는 말.
➓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체병이 있다 : 똑똑하지 못한 사람은 흔히 모르면서도 아는 체하고 없으면서도 있는 체하며 못난 주제에 잘난 체하는 면이 있다는 말.
⓫ 서뿌른 약국이 사람 잡는다 : 약에 대하여 잘 모르면서 약국을 차려 약을 지어 주다가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는 뜻으로, 능력이 없어서 제 구실을 못하는 주제에 함부로 날뛰다가 큰일을 저지르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⓬ 선가(船價) 없는 놈이 배에 먼저 오른다 : 뱃삯을 낼 돈도 없는 주제에 배에는 염치없이 먼저 오른다는 뜻. 실력없는 사람이 오히려 실력 있는 사람보다 앞서서 덤벙대거나 서두름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⓭ 아이 못 낳는 년이 밤마다 용꿈 꾼다 : 실제로 할 능력도 없는 주제에 허황된 생각만 하고 있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 자기 주제 파악을 못하여 책망을 받은 많은 경우로 볼 수 있다.
마 7:1-5 / 남을 판단하지 말라. 그러면 판단을 받지 않을 것이다. 2) 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 3) 왜 너희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탓하느냐? 4) 네 눈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 속의 티를 빼주마' 하고 말할 수 있느냐? 5)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줄 수 있을 것이 아니냐.
마 9:32-34 / [벙어리를 고치시다] 그들이 떠난 뒤에 사람들이 귀신 들려 벙어리가 된 사람을 예수께 데려왔다. 33)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자 그 사람은 곧 말을 하였다. 사람들은 너무도 놀라 외쳤다. `우리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일을 보기는 처음이다.' 34)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렇게 빈정거렸다. `그가 귀신을 쫓아낸 것은 바로 그가 귀신이 들렸기 때문일거야. 그는 귀신의 왕 사단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있어.'
마태복음 23장은 주제파악은 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자기를 드러내는 못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대한 책망이 가득차 있다.
마 23:2-4 /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뿐이고 실행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4) 그들은 자기들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요구를 너희에게 강요하지만 자기들은 그것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마 23:5-7 / 그들은 무슨 일이든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산다. 그들은 기도할 때 이마나 팔에 매다는 성구함을 크게 만들어 달고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니며 거룩하게 꾸민다. 6) 그리고 잔치에 가면 윗자리에만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만을 찾는다. 7) 길에 나서면 거드름을 피우며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랍비'라거나 스승이라고 불러 주기를 바란다.
마 23:11-12 / 너희 중에 가장 낮아져서 남을 섬기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임을 받게 될 것이다.
마 23:23 / 화가 있으라.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아,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율법에 따라 바치면서 정의와 자비와 믿음과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무시하고 있다. 물론 십일조를 바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마 23:25 / 화가 있으라.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아,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닦아 놓지만 그 속은 방탕과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 26) 눈먼 바리새파 사람들아! 먼저 잔 속을 깨끗이 닦으라. 그래야 잔 안팎이 다 깨끗해질 것이다. 27) 화가 있으라.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아,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아름답게 장식한 무덤 같아서 겉은 좋아 보이지만 그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썩은 것이 가득 차 있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거룩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온갖 위선과 죄가 가득 차 있다.
마 23:29-32/ 화가 있으라.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아,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너희 조상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단장하고 성인들의 무덤 앞에 비석을 세워 놓고는 30) `우리는 조상들이 저지른 행동을 결코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31) 이것은 너희가 예언자들을 죽인 악한 자들의 자손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는 셈이다. 32) 그리고 너희는 그들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밟아 가고 그들의 악을 다 채우고 있다.
직장에서도 주제파악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나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라고 말하는 사람 말이다. 회사사장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사람 하나가 없으면 회사가 안돌아가도록 만들어 놓았겠는가? 정말 회사가 안 돌아간다면 그 회사는 언젠가는 망할 회사가 맞다. 그리고 회사 경영자들은 그렇게 바보가 아니다. 그러니 제발 ‘나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라고 착각하지 말라.
오늘 하루 열심히 성실히 생활해서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지,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바보이다. 내가 아무 것도 안 하는데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성실히 노력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214장 찬송을 부르며 내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➊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 하시사 날 받아주소서
후렴 :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아멘
➋ 큰 죄에 빠져 영 죽을 날 위해 피 흘리셨으니 주 형상대로 빚으사 날 받아주소서
➌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아주소서
➍ 내 주님 서신 발 앞에 나 꿇어 엎드렸으니 그 크신 역사 이루게 날 받아주소서
2. 주제파악을 한 사람은 예수님처럼 섬기는 자가 된다.
누가복음 14장 전체가 주제파악을 하라는 권면과 책망으로 볼 수 있다.
누가복음 14:1-24을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초대를 받아 그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1).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수종병 든 사람을 그 자리에 데려다 놓았을지 모른다(2). 그리고 늘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12제자들도 있었다.
수종병 걸린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나름대로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 병자에게 손을 얹어 고쳐서 돌려보내셨는데, 고침을 받은 사람도 자기의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오히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보다 사명을 가지고 외쳤을 것이다. 제자들이야 얼마 후에 사도가 되어 목숨까지 걸며 복음을 증거하였는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무엇을 하였는지? 주제파악을 하기는커녕 이를 악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 앞장을 섰다.
자기네들이 백성들의 지도자라면 수종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고쳐주기를 요청하여야 했다. 그뿐 아니라 오랫동안 수종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허락을 받고 준비한 식탁에 앉도록 하여야 했다. 오죽 답답하셨으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눅 14:12-14 / 이어서 자기를 초대한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을 차려 놓고 사람을 청하려거든 친구와 형제와 친척과 잘사는 이웃 사람들을 초대하지 말라. 그들이 다시 너를 초대하여 갚을 것이기 때문이다. 13)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과 절름발이와 맹인들을 초대하라. 14) 그러면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을 초대한 대가로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보상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직접적으로 빌립보교인들에게 주제파악을 하라고 지적하였다.
빌 2:1-8 /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서로 격려해 줄 마음 가짐이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은 나를 도울 마음이 우러날 만큼 나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까? 우리가 함께 성령을 받았고 주님 안에서 형제가 되어 있다는 참다운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애정이 있고 동정심이 있습니까? 2) 그렇다면 서로 사랑하고 서로 마음을 열어 화합하십시오. 한마음과 한생각과 한목적을 가지고 함께 일하여 내 마음을 기쁘게 해주십시오. 3) 자기 본위가 되거나 남에게 과장된 행동을 하지 말고 겸손하게 남을 존중해 주십시오. 4)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지 말고 남에게도 눈을 돌려 그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5)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자세를 본받으십시오. 6)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면서도 하나님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거나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셨습니다. 7) 오히려 그 큰 능력과 영광을 버리고 종의 형상을 취하여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8) 아니, 훨씬 더 자기를 낮추어 죄인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당연히 예수님처럼 죄인들, 나중된 사람들을 위해 먼저된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 발까지 씻겨주는 섬기는 봉사를 한다. 이것이 주제파악을 한 성도로서 해야 할 일이다. 한 사람의 병자가 고침을 받아 새로워지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기 위하여 어떠한 수고와 땀 흘림이 필요한지!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는 아버지의 심정,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오늘도 내일도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 성도가 해야 할 일이다.
노아 때에 사람들처럼 노아가 방주 안에 들어갈 때까지 흥겨운 잔치를 벌이며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에 몰두하려는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이제부터라도 마음에 담자.
마 24:45-47 / 슬기롭고 충성스러운 종은 과연 어떤 사람이겠느냐? 주인이 맡긴 집을 잘 관리하고 주인의 자녀들에게 때맞춰 양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46) 그 주인이 돌아왔을 때 종이 맡은 일을 충실하게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 종은 칭찬을 받을 것이다. 47)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주인은 이런 충성스러운 사람에게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맡길 것이다.
주제파악을 한 사람과 하지 못한 사람의 결말들
마 24:45-47 / 슬기롭고 충성스러운 종은 과연 어떤 사람이겠느냐? 주인이 맡긴 집을 잘 관리하고 주인의 자녀들에게 때맞춰 양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46) 그 주인이 돌아왔을 때 종이 맡은 일을 충실하게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 종은 칭찬을 받을 것이다. 47)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주인은 이런 충성스러운 사람에게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맡길 것이다.
마 24:48-51 / 그러나 만일 그 종이 악해서 자기 스스로 `내 주인은 곧 오시지 않을거야'하면서 49) 동료 종들을 억압하고 술친구들과 흥청망청 놀고 술에 취해 있다면 50) 생각지도 않은 시간에 예고도 없이 집주인이 돌아 올 것이다. 51) 그러고는 그 종을 모진 매로 때리고 위선자들이 받는 심판을 받게 할 것이다. 그러면 그는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재림의 예수님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를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아 심판하실 때 이런 칭찬을 받은 자기 주제파악을 하고 묵묵히 봉사했던 사람과 같이 되자.
마 25:34-40 / 그리고 왕인 나는 내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받을 사람들아, 와서 천지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에 들어가라. 35) 너희는 내가 배고플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 집으로 따뜻하게 맞아들였다. 36)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와 주었다.' 37) 그때 그 의로운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이 배고프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또 언제 주님이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도와 드렸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이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왕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내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곧 내게 해준 것이다!'
반면 주제파악조차 하지 못하여 자기만을 생각하는 미련한 사람은 심판 때 안타까울 뿐이다.
마 25:41-46 / 그리고 나는 왼편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 마귀와 그 부하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배고플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찾아와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대답할 것이다. `주님, 주님이 언제 배고프고 목마르셨으며, 나그네 되고 헐벗으셨으며, 병들고 감옥에 갇히셨던 일이 있었기에 저희가 보고도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 하십니까?' 45) 그때 왕이 말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여기 있는 내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46)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벌받을 곳으로 쫓겨날 것이고 바르게 산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것이다.'
맺는 말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는 암염(巖鹽)이 많았다. 암염을 옮기다 비를 맞게 되면 소금기가 다 빠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가치가 없어진다. 오늘 이 시대에도 소금인 그리스도인들이 비 맞은 암염처럼 그 맛을 잃어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고 있지는 않는지 염려스럽다. ‘누가 소금의 역할을 하였으면 … .’ 하면서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어떻게 하면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기도해야 한다. 내가 소금의 맛을 회복하면 이 세상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새롭게 변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소금은 맛을 내지만 썩는 것을 방지한다. 우리 몸의 인체를 보면 70%가 물이라고 한다. 그 70% 중에 소금의 성분이 약 2.7-3%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몸을 건강하게 유지시킨다. 바닷물의 짠맛을 내는 소금의 양은 2.071%에 불과하다. 생각보다 아주 적은 양이다. 모든 오염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그러나 그 바다가 늘 푸르고 싱싱할 수 있는 것은 3%의 염분, 소금이 제 맛을 내기 때문이다. 단 3%의 크리스천이 있었는데 로마의 국교가 기독교로 변할 수 있었다.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약 20%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유럽은 약 90% 이상이 크리스천이라고 한다. 태어나면 교회로 가고, 결혼식 할 때 교회로 가고, 장례식 할 때 교회로 간다. 그 많은 크리스천이 있어도 유럽이나 한국을 보면 점점 더 악하여간다. 자신들의 입에서 ‘종말이다. 말세다’라고 하면서 자신들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려고 하지 않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의외로 단순하다. 남에게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하지 말고 자신에게서 찾으면 답은 쉽게 나온다. 예수님은 오늘도 나에게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는 말씀이 옆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일 것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처럼 산 사람 / ‘노인들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소오 엘리저는 1990년에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던 이탈리아 여인이다. 엘리저는 중국에서 선교하던 중에 폐병이 걸려 본국으로 소환되었다. 그녀는 하나님께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이라고 원망하지 않고 ‘나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이후 그녀는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중국 선교를 도왔다. 그런데 추수를 하다 그만 탈곡기에 손이 들어가 오른손을 잃었다. 이때도 엘리저는 ‘주님! 오른손이 없는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기도했다. 기도의 응답으로 엘리저는 양로원을 세웠고 버려진 수천명의 노인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노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엘리저는 불행한 환경을 극복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며 남은 생을 살았다. 이제 우리의 기도도 ‘왜 나에게?’가 아니라 ‘주여! 무엇을 원하십니까?’로 바뀌어야 한다.
의인 한 사람을 통하여 / 죄인이 많아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의인이 없어서 멸망한다. 한 명의 중보자가 온 성을 멸하지 않게 막을 수 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겔 22:30)- 결국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중보하는 의인 한 명이 없어서 롯과 두 딸만 구출받고, 소돔고모라는 멸망을 했다. 그나마도 아브라함의 중보의 결과 이루어진 일이다.
주제파악을 한 로버트 하디 선교사(Robert Hardie)로 인하여
로버트 하디는 우리들에게 친숙한 사람이다. 토론토 대학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캐나다연합교회의 전신인 캐나다감리교에서 조선으로 파송을 받았다. 하디는 1900년경 함경도 원산에서 선교와 의료 활동을 했는데, 의료 활동도 신통치 않았고 선교 활동도 신통치 않았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성령이 내게 오셨을 때 성령의 첫 번째 요구는 교인들 앞에서 내 과거의 실패와 원인을 자백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사람을 감동시킬 만한 능력이 자신에게 없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영적인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조선 사람들을 미개하고 무지한 백성들로만 생각했을 뿐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깨달았다. 서양 선교사의 눈에 비친 구한말 조선 사람들은 그저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로 보였을 것이다. 성령님을 체험하기 전 하디 선교사는 환자들이 기피하는 권위적이고 엄격하고 쌀쌀맞은 의사였다. 하디는 1903년 8월 30일 원산감리교회 주일 예배 시간에 자신이 그동안 교만했던 것과 조선 사람들을 멸시했던 것을 회개했다. 서양 선교사가 조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교만함을 고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소식이 원산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도 하디를 따라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하디에 의해 시작된 회개가 널리 퍼져 평양대부흥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1. 하디선교사는 의사였던 하디선교사는 대단히 성실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조선 사람들에게 정말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쳤지만, 이름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을 얻기를 갈망하였다.
2. 그러나 조선교인들에게서 ‘분명하고, 지속적인 회개의 구체적인 열매’를 보지 못하여 깊이 좌절하고 있었다.
3. 그러던 중 1903년 원산에서 열린 선교사 수련회에서 말씀을 전할 준비를 하다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였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하디에게 조선 사람들에게서 진정 회개의 열매를 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셨다.
4. 조선 교인들에게서 진정한 회심의 열매를 얻고자 하는 동기도 옳고, 열심히 성경을 가르치는 것도 좋으나,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던 것이 문제임을 깨달았다.
5. 성령님을 체험한 하디 선교사는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신의 학력과 의사라는 직업, 영국시민이라는 교만이 있었음을 회개하였다.
6. 성령님께서는 하디에게 그것을 고백하게 하셨다. “성령님이 내게 오셨을 때 첫 번째 요구는 내 교인 앞에서 내 과거의 실패와 그 원인을 자백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경험이었다.”
7. 하디는 이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했다. 선교사 수양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동안 내내 울면서 동료 선교사들 앞에서 선교의 결실이 없었던 원인이 자신의 ‘교만과 강퍅함, 믿음이 부족’한 연고라고 공개적으로 통회했다. 하디의 고백은 동료 선교사들의 회개로 이어졌다.
8. 그리고 하디는 조선 교인들 앞에서도 낱낱이 고백하고 눈물로 참회하고 회개하였다. 조선 교인들은 하디 선교사의 고백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고, 그들에게서도 회개가 터졌다. 이것이 하디 대 부흥의 시작이었다.
9. 하디 선교사를 통해 선교사들과 조선 교인들이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디 선교사의 회개 후 하디 선교사의 성품이 완전히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10. 같은 토론토 대학을 졸업한 제임스 게일(James S. Gale)은 은혜를 받기 전 하디와 은혜를 받은 후 하디가 180도로 달라졌다고 했다. ‘은혜를 받은 후 하디는 마치 40일을 금식한 후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그 얼굴에 광채가 나던 모세의 얼굴과 같았고, 베드로가 처음 갈릴리에서 부름을 받았을 때와 베드로서를 쓸 때만큼이나 차이가 있었다.’
11. 성령님을 체험하고 공개 회개를 하기 전, 하디 선교사는 솔직히 환자들이 기피하는 엄격하고 쌀쌀맞아 교만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의사였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후 하디의 성품과 인격이 완전히 변했다고 한다. ‘차라리 아픈 것이 더 났다’며 병이 들어도 하디에게 치료를 받기를 주저했던 환자들은 하디가 은혜를 받은 후 손만 만져도 병이 나았다고 증언하였을 정도이다.
12. 성령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 하디의 성품과 인격과 삶은 이전과 확실히 달랐다. 하디는 조선 교인들에게 진정한 회개의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과거에도 그는 회개에 대해서 설교했지만 그 실례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회개의 설교와 더불어 자신의 회개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회개가 실제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13. 이렇게 원산 부흥은 일어난 것이다. 1906년 8월에 평양에서 선교사들의 성경공부와 기도모임이 있었을 때, 강사로 초청된 하디는 자신이 경험했던 은혜를 간증했다. 은혜를 받기 전 얼마나 자신이 교만했는지, 그런 자신에게 어떻게 성령님께서 찾아오셔서 자신을 변화시켜주셨는지를 진솔하게 전했다.
14. 이날 하디는 이렇게 외쳤다. ‘사람이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무엇을 잘해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심과 믿음의 부족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이상도 영적인 힘이 없다면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러한 영적인 힘은 계속적인 기도로만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 슬프도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역하는 목회자가 얼마나 되는가!’
15. 선교사들은 이때부터 1907년 초에 모일 겨울사경회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기도의 열매가 1907년 평양대부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