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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주일 [옛 사람을 버린 그리스도인들]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우리는 예수를 처음 믿을 때, 그 이전의 삶을 다 버렸다.
그 이후로 우리는 그가 주시는 새 삶, 은혜가 충만한 삶을 이어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때, 버릴 것을 버렸다는 것이다.
만약 버리지 않았다면, 구원의 역사는 이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버리지 않았다면 절망적]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않는다면,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복음이 요구하는 가장 첫째의 요구조건을 순종해야 하는데, 그것은 죄로 가득한 삶 속에서 가졌던 옛 삶을 버리는 것이다.
우리 구원받은 삶은 예수 믿기 전에 가졌던 모습 위에다 새 삶을 추가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관점이다.
우리는 예수 믿을 때, 옛삶을 다 버렸어야 한다.
옛삶의 방식, 옛삶의 정서, 방법, 사고방식을 다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옛본성은 예수 믿음으로 다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마치 갓난아이가 새삶을 배우며, 익혀가는 식으로 했어야 한다.
그런데, 이전에 새가족이 우리 교회에 오면, 교육을 중요시 하지 않고, 대예배 설교 위주로 듣게 했다.
물론 들어야 하지만, 복음의 진리를 꼼꼼히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그들에게 기초는 다 빼고, 너무 고등과정만 했기 때문에, 복음의 처음부분을 그냥 넘어갔다.
그러면, 복음을 과연 받은 것일까.
복음이 요구하는 것은 옛삶과의 결별이다.
[우리 자신을 속이는 삶 속의 관심들]
그런데, 문을 열고, 복음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냥 자기 스스로 소설을 쓰듯, 자기 스스로 만들어 갈 것이다. 그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복음과 대단히 반대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의 거의 모든 것은 진리와 호환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반대되는 요소로 가득하다.
진리는 참된 것을 말하는데, 세상에는 참된 것이 없다.
세상은 그냥 구성원들간의 약속으로 거의 이루어져 있다.
자신들의 안전을 유지하고, 경제적 이익을 상호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약속이다.
우리는 이 사회속에 너무 익숙해져있고, 삶의 방법이 우리 자신의 모습과 거의 다름없다.
너무 익숙하다.
이 세상의 삶은 육신의 요구에 맞추어져서 설계되고, 발전되어 있다.
육신이 원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죄악도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져 있다.
사회법으로 통제하지만, 당장 물리적으로 피해볼 것만 통제할 뿐이지, 그 악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은 그대로 두고 있다.
세상은 육신을 위해, 그것만 원하며 달려간다. 그래서, 오늘까지 이르렀다.
문제는 육신만 위하는 제어가 안되는 욕망을 가지고, 교회까지 오는 것이다.
[절제를 모르는 정욕]
절제되지 않는 욕망을 가지고 왔으니, 이 사회가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가.
사람들은 늘 아쉬움이 있다. 이 아쉬움 때문에, 범죄하고, 범죄하려고 하는 준비성이 갖추어져 있다.
범죄의 가능성이 항상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물질에 대한 욕망이 지극히 많다.
누구도 돈이 싫다고 진정으로 말할 사람은 없다. 다 아쉽다.
정욕을 잘 충족하는 자와 충족하지 못하는 자의 투쟁이 항상 있다.
사람들은 항상 아쉬운데, 결국 돈이 없어서 아쉽다.
정욕을 위한 것을 얻어내기 위해 인생 거의 전부를 해온 것이다.
이 세상의 것이 참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고 달려갔는데, 거의 대부분 속는다.
거기 내가 원하는 것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없다.
[새 새명을 위해 비워야 할 나의 옛자아]
그러니까, 이 세상 시스템은 진실되지 않고, 속이는 것이 많다.
거기 익숙하진 내 자아가 거기에서 구원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썩어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잡아 올리시는 분이 주님이시다.
예수 믿으면서, 우리는 새생명을 얻어서, 주님이 주시는 새삶을 살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 세상 살면서, 완벽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마음으로 염치없이 자신을 그냥 드러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기하고, 의를 위해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더 좋은 것은 의만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의만으로 살기는 힘들다. 그런 역량은 안된다.
의를 위해 사는 사람이라면, 실제적으로는 넘어지고, 배반하기도 하지만, 돌이키는 사람이다.
자기가 쓰러지더라도, 의를 위한 자기 인생을 결단한 사람이다.
평생 회개하며, 의를 위해 평생 싸운다고 주님께 고백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고개를 뻣뻣히 들고, 떳떳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넘어지지만, 내 심령은 주의 것이라고 결단이 있는 삶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회개하는 삶이다.
이 자가 영원한 주의 나라를 꿈꾸는 자다.
영원한 나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약속해주셨기 때문에, 그 길을 보고, 목표를 잡고 가는 삶이다.
마귀같은 성품을 가졌지만, 주님이 이끄시는 길로 가려고 하는 자.
적어도 나는 죄와 결별한다.
주님이 주신 그 방법, 진리의 길을 간다.
천국 가는 길을 주셨을 때, 아멘하고, 옛사람을 버리는 자, 이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옛날에는 시골에 가면, 농사지을 때, 사람의 배설물을 거름으로 썼다.
그런데, 어쩌다 거기에 빠지게 되는 일이 있다.
오물이 가득 묻으면, 집에 들어갈 수 없다.
처음에는 냄새도 났지만, 익숙해지면, 본인은 냄새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 상태로 집에 들어가려고 하면 쫓겨날 것이다.
오물에 빠지지 않은 입장에서는 명확히 보인다.
우리는 우리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우리 옛사람이 가망이 없는 존재임을 모르고 있을 수 있다.
계속 쏟아져 나오는 욕망을 채우지 못하고, 그 거짓 때문에 속이 타고, 반복하면서, 인생은 수백세대를 이어살고 있다.
복음은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했다.
하나님의 성질과는 먼 곳에서 파묻혀 살고 있는데, 본인은 멸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복음은 그 문제를 드러내고, 밝혀주었다.
주님이 오시기 전부터 복음은 이미 예고해왔다.
희망이 없는 인간에 대해서, 회개를 촉구해왔고, 지난 이천년동안 계속 요구해 온 것은 여기에 구원이 있으니, 너 자신을 버리라고 한 것이다.
너 자신을 개발하라, 향상하라 하지 않았다. 옛 자아를 버리라고 했다.
오물 빠진 자에게 아무리 향수를 뿌려도 소용이 없다.
아직 복음의 첫요구를 정상적으로 밟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라도 이 말씀은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것이다.
하나님 주신 새사람을 입기 위해, 옛사람을 버리자.
늦게나마, 옛사람을 오늘 과감하게 포기하기 바란다.
[본문]
이전에 너희는 그리스도를 배운 자라고 하였다.
너희는 그에게서 듣고, 그분 안에서 배웠다.
거기 있는 성도들은 예수님께 직접 배운 것은 아닌데, 성경 말씀은 직접 배웠다고 한다.
전승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려고 길을 만드셨다.
성령의 감동이 전승으로 전달된 말씀 속에 역사하신다.
[문제의 옛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배운 내용중에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바가 있다.
그 요구를 내가 순종했는가. 이것이 문제다.
옛사람을 제거하는 것.
옛사람이 우리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이다. 옛사람을 붙들고 있으면, 신앙생활하지 못한다. 우리 앞에 미래가 없다.
옛사람은 죄로 오염된 우리의 이전 사람이다. 타락한 자연인이다.
그 자가 우리 자신이긴 하다.
그 자가 이전에는 무지속에서 마음대로 이끌고 다녔다.
예수 믿기 전에 그렇게 활개치던 그 사람은 내가 갖고 있던 본성이다.
또한 나 자신이다.
옛사람이 나라고 하면서, 내 정체성 전체를 장악하고, 육신의 관점에서 내 삶을 이끌었다.
더 진리로 가지 못하게 하고, 육신으로 오게 했다.
그가 나라는 개체 주인인 것처럼, 내 생각도 그가 지시하고, 내 행동도 그가 지시했다.
육신으로 습성이 되어, 체질화된 그가 나를 장악하여, 이끌고 왔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자가 된 것이다.
우리의 옛사람은 썩어져 있다. 이 말은 타락하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문법적으로 현재 수동태다. 계속 썩어져 가고 있다.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쁜 것이다.
점차 더 나빠진다.
특히 악한 욕망을 좇아가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욕망이 오면 견디지 못하고 따라간다.
어떤 속임에 대해서도 잘 속는다.
엡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유혹으로 인해 속아서 살아왔다]
유혹은 속임이다.
당시 성경이 번역될 때, 유교사상이 가득한 시대였다. 당시 제일 좋은 단어라고 생각한 것은 유혹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속임이 더 맞는 말 같다. 진리의 반대말.
진리는 참된 것, 진실한 것이다.
살후2:10-12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인간은 잘 속기 때문에 망한다.
왜 자꾸 속는가.
[옛사람의 치명적인 약점 : 욕심(정욕)]
벧후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같은 단어가 욕심으로 번역되기도하고, 정욕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정욕은 세상에서 썩어지게 한다.
본문의 말씀도 욕심 때문에 썩어져간다고 직접 연결해서 말하고 있다.
문제는 현실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 대한 이해가 하나님의 사람과는 매우 다르다.
현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진실에 대한 접촉이 없기 때문에, 인생은 그 안에서 맴돌고 있다.
그러는 중에 욕망은 유혹의 힘의 영향을 받아, 정욕을 계속 채우려고 가동된다.
그것은 결국 자기 멸망의 길이다.
나의 옛사람의 습성 때문에, 내가 파멸한다.
롬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롬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갈5:16,24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막4:19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유혹과 욕심에 속지 말라.
유혹으로 말씀이 막히고,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된다.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과거의 우리]
썩음은 복음과 대치되는 것이다.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우리는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아서 살았었다.
옛삶의 방식 때문에 썩어져 간다.
계속 부패하면, 결국 멸망한다. 부패는 멈추지 않는다. 끝까지 간다.
끝은 멸망이다.
현재 시점에도 계속 썩고 있다.
이런 옛날 습관(구습)은 우리 욕심을 따라 지내는 것이다.
옛사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영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가장 불행한 미래, 영원한 멸망을 향해 가게 한다.
이런 부패는 당장 도덕적 악행으로 나타난다.
벧후2: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죄가 크고 작건, 차이가 없이, 사망의 길을 달려간다.
엡2:1,5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자기에겐 그런 일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우리 출신이 원래 사망한 자였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만나서, 새생명을 주셨고, 죄의 짐을 대신 지셨다.
지금 우리에게 부패의 성질은 여전히 남아있어서, 그것으로 주님을 섬기겠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배운 자는 이방인 같은 모습을 첫째로 버리고 시작하는 것이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아무나 다 구원받는다는 신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성도들로 하여금 옛사람을 버리는 것을 실패하게 하면, 많은 영혼을 지옥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내면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자는 미움을 받더라도, 할 말을 해야 한다.
이것이 매주 겪는 고민이다.
잔소리 싫어하니까, 안하려고 하지만, 잔소리가 나온다.
목자는 미움을 받더라도, 주님의 경고하시듯 해야 한다.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면, 개선이 안된다. 그러면 썩어지게 될 것이다.
성경의 말씀은 절대 죄를 벗으라고 한다.
이런 죄, 저런 죄, 다양한 죄에 대해서 벗으라고 한다.
골3: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죄는 모두 악행으로 나타난다.
주께서 죄 때문에 자신의 몸을 찢으셨는데, 계속 죄를 범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엡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약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수천년간 어느 교회든지 계속 죄를 벗으라고 했다.
죄를 버리라는 것은 정죄가 아니라, 주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 자체가 죄를 범하는 것이 문제다. 근본적으로 옛사람을 버려야 한다.
갖고 있으면, 계속 충동을 받아, 주님의 본성을 받지 못한다.
자기를 비워야 한다.
단호한 결단으로 주님이 주신 삶을 받을 수 있도록 결심을 해야 한다.
침례가 결단이다.
침례는 온세상을 향해 선포하는 자기의 결단이다.
침례를 받으면, 하나님 나라의 질서로 들어가는 것이다.
새 질서에 내가 들어가 살겠습니다. 내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으니,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최소한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겠습니다. 하는 것이다.
침례를 받고, 옛사람을 버린다는 공개적 선언이다.
그런 적 없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달리 말할 수 없다.
본문의 말씀은 이런 것을 다 했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배운 자로서, 이미 이 단계를 거치지 않았느냐 묻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신자라고 하지만, 여전히 죄의 영역안에서 죄를 궁리하고 있다.
자기에게 그 증거가 있다. 그럼에도 본인은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죄의 영역안에 있으면, 항상 안테나가 가동되어 있다. 남을 나쁘게 말하고, 이간질하고, 겉으로는 신령한 체하지만, 속에는 더러운 사람이 그대로 있다.
자기가 신자라고 하지만, 신자를 자칭하고 있는 자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것을 볼 때, 우리는 너무 죄송해서, 죄와는 결별했어야 한다.
죄에게 자주 지기는 하지만, 결단이라도 세게 해야 할 것이다.
레위기에 보면, 문둥병자에 대해 나오는데, 어떤 것은 옷을 씻는 것도 있지만, 악성은 불사르는 것도 있다.
요한복음에서도 회개되지 않는 나무는 그냥 불에 사르라고 되어있다.
가라지 같이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에 대해서 불에 태운다.
나를 다시 오염시키기 때문에 벗는 것인데, 벗는 것을 하나의 행위처럼 묘사하고 있다.
한번의 액션인데, 영원히 단 한번의 액션이다. 그것을 했느냐.
막1: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처음 오셔서, 회개하라 하고 말씀을 시작하셨다.
사도들도 마찬가지고 회개하라 하였고, 요한도 회개를 외쳤다.
마3:7,8,10,12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침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옛 자아의 죽음]
그냥 말로 회개하는 것이 회개가 아니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요한의 침례를 받으러 왔을 때,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임박한 진노를 피하려고 하느냐 비판을 했다.
그들은 자기 종교성을 그대로 가지고, 회개한 표시를 하기 원했다.
종교성은 중요하지 않다. 그 마음이 중요하다.
죄를 범하며 살던 옛자아를 버려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죽어야만 가능하다.
골3:3,9,10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벗는 것은 옛자신이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간상태가 없다.
조금 버리고, 새것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버려야 한다.
벗고, 입는다. 죽고, 산다.
롬6:2,8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우리는 침례를 통해 주님의 죽음에 합한다.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종교적으로 개종하는 것이다.
결단하고, 회심한 결과 아래와 같이 된다.
롬6:12-23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옛사람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어 있다.
[옛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존재]
우리는 이미 연합이 완성되어 있다. 보장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사람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된 것이다.
고후6: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약속으로 그에게 연합된 것처럼, 옛사람을 떨쳐놓은 것은 영원한 부활을 예비한 모습이 된다.
내게 고칠 수 없는 저주받은 것은 버려야 한다. 그래야 새생명을 받을 수 있다.
치워야 거기에 주님을 모실 수 있다.
우리의 옛사람 위에 새사람을 두는 것이 아니다.
완전히 버리고, 대체하는 것이다.
옛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떠났다. 아직 떠나지 않았다면, 오늘 이 시간 떠나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배우면서, 이 말씀이 왔다.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 포함된 절차]
우리가 처음 믿을 때,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했다. 만약 아니라면 문제다.
구원은 인간의 기여가 하나도 없는 백프로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구원의 절차가 있는데, 거기에는 우리의 반응도 포함된다.
우리가 거절하면, 구원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인간이 자기 공로로 구원받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인간의 반응이 구원의 절차에 포함되어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은 구원의 문을 두드리신다.
인생동안 여러차례 물으심이 있을 것이다.
물으실 때, 옛사람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부르신다.
우리는 침례를 통해, 망할 옛사람을 버리고, 영원한 운명의 변화를 수용했다.
그리스도가 주신 운명을 받으리라.
과감한 결단으로 바꾸어야 한다.
엄청난 것을 받았다. 결단이 필요하다.
아직 버리지 않았다면, 누구에게 말할 필요없이, 과감히 버리고, 우리를 부르고, 가르치신 주님의 노고가 성공되기 바란다.
우리가 완전히 옛사람을 버릴 수 있도록 강화시켜주소서.
혹시 결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결단하게 하시고, 이 시간 이후에도 계속 거듭되는 강력한 결단, 회개가 있게 하소서.
주님이 주신 새사람을 받기 원합니다.
오늘 옛사람을 포기하오니, 주여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