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욥기 9장 17-35절)
17-21.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소환하겠느냐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 나는 온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욥은 자신이 까닭없이 하나님께로부터 고난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가중되는 재난으로 말미암아 욥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계속되는 불행의 연속으로 보았다. 욥이 재난을 처음 당했을 때부터 그의 신앙 의식을 괴롭혀온 난제였다.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소환하겠느냐”
법정 분위기가 강하게 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전권을 소유하고 계시는 심판자이시며, 인간은 그의 재판을 받아야 하는 피고 내지는 원고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의 재판을 번복할 권능도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를 법정에 불러낼 권한, 곧 소환권 조차도 없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본질적인 차이를 나타낸다.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
욥은 자신도 여느 인간과 다를 바 없은 죄인임을 고백했었다. 그러나 욥의 자기 확신도 고통의 나날이 지속되면서부터는 흐려져 갔다. 고난의 강도가 심해지고 그것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질책을 예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욥은 고통 속에서 때로는 구원을 갈망하고, 때로는 불평과 원망을 토로하는, 신앙적 `씨름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와 신앙을 확인시켜 갔다.
“나는 온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회복 가능성이 없는 자신의 병세에 회의를 느끼고 체념적으로 한 말이다.
22-23.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
선악이 공히 똑같이 대우받는다는 의미이다. 나름대로 경건에 대해 누구보다 자신 있었던 욥 자신이 재난을 받자 이러한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
욥이 그의 가축과 자녀를 잃어버린 사건을 두고 한 말이다. 욥은 자신의 고난이 그의 범죄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도리어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 곧 의인과 악인을 동일하게 취급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로써 그는 자신이 무죄하다는 것을 변호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시적으로 악인의 흥왕을 묵과, 허용하시는 바 이는 사탄의 활동을 하나님께서 일시적, 제한적으로 허용하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욥은 의인의 고난을 기뻐하시는 하나님,곧 냉소적이며 무자비한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보았다. 욥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욥 역시, 현실에 나타나는 현상에만 집착한 나머지 하나님의 숨겨진 공의를 온전하게 보지는 못한 것이다.
24-28.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갔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려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냐 나의 날이 경주자보다 빨리 사라져 버리니 복을 볼 수 없구나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고 먹이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갔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려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냐”
욥은 이 세상의 공의와 질서가 왜곡된 것으로 보았다. 욥은 더욱더 하나님께 대한 불평을 털어놓고 있다.
“나의 날이 경주자보다 빨리 사라져 버리니 복을 볼 수 없구나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고 먹이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경주자는 중요한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조정에서 고용한 발이 빠른 자를 가리킨다. 당시 이러한 전령자들을 많이 사용하여 군사적, 행정적 사무를 원활히 처리하였다.
독수리는 창공을 배회하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전속력으로 하강하여 그것을 채어간다. 이러한 독수리의 하강 모습을 통하여 아무런 소망없이 허무하게 흘러가는 자신의 삶을 한탄하고 있다.
욥은 육지(`경주자). 바다(`빠른 배), 공중(`독수리)등에서 빠르다고 생각되는 것을 일일이 열거함으로써 보잘 것 없고 짧은 자신의 삶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욥은 자신의 고통이 멈출 날을 기대하면서 병고 가운데 보내는 참혹한 시일들이 빨리 흘러가기를 소망하고 있다.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극심한 고통 중에 휘청거렸던 심령을 바로잡으려는 욥의 굳은 결심이 엿보인다. 내 불평을 잊는다는 말은 자신의 처지를 동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정죄하는 태도를 보였던 친구들을 염두에 둔 말이다. 욥이 하나님께 불만을 토로하였던 것도 친구들의 비난과 조롱 탓이 컸다.
욥의 굳은 결의도 극도의 고통 앞에서는 여지없이 해체되고 말았다.
29-31.내가 정죄하심을 당할진대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할지라도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
“내가 정죄하심을 당할진대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아가)”
하나님이 내리시기로 작정하신 고통을 피하려고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곧, 고통의 엄연한 현존 앞에서 깊이 절망해 하는 탄식이다. 아가는 기진맥진하다라는 뜻으로서 고된 노역으로 말미암은 쇠약함에 강조점을 두고 말이다.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할지라도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욥은 자신을 정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생각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무죄성을 주장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결국 흠많은 존재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한계 상황을 말하고 있다.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
의복은 어떤 사람의 도덕적, 영적 특질과 결부되어 언급된다. 죄악에 대한 징계로 말미암아 황폐화된 예루살렘도 더러워진 치마를 입은 여인에 비유된 바 있다.
32-35.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주께서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의 위엄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리하시면 내가 두려움 없이 말하리라 나는 본래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니라
욥은 자신의 무죄성을 보이기 위한 최선의 방도를 강구하였거니와,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토로하고 있다.
욥은 지식, 능력, 거룩성 등에 있어서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놓인 엄청난 간격을 통절히 인식하고서 그 간격을 연결시켜줄 대상을 마지막 희망으로 찾고 있는 것이다. 욥은 현재 자신의 판단력과 삶의 의지마저 흐리게 만드는 지독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막대기(쉬베토)는 양떼를 인도하고 보호하기 위해 목자들이 들고 다녔던 지팡이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지팡이가 주는 안위감에 대해 노래하고 있으나, 이 지팡이가 징벌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주께서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의 위엄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한다.
(요약)
욥기 9장 17-35절은 욥이 친구 빌닷의 정죄에 답하며, 까닭 없는 고난 앞에서 느끼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연약함을 탄식하는 내용이다.
욥은 자신이 무죄함에도 하나님이 압도적인 힘으로 자신을 누르신다며 괴로움을 토로한다. 하나님이 폭풍으로 치시고 까닭없이 상처를 깊게 하신다고 고백하며, 힘과 심판에 있어 하나님이 너무 강하시므로 인간이 그분을 이길 수 없다고 토로한다. 욥은 자신이 의로울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스스로를 정죄할 수밖에 없음을 토로한다. 하나님은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구별 없이 멸망시키실 수 있다고 느낀다.
그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중재자의 갈망을 부르짖는다. 자신의 인생이 경주자보다 빨리 지나가며 재난 속에 절망하며, 결백하게 씻으려 할지라도 하나님이 자신을 더러운 구덩이에 빠지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므로, 인간이 그분에게 대등하게 대답하거나 재판정에 함께 나아갈 수 없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손을 얹고 판결을 내려줄 중재자가 오기를 부르짖는다.
그 중재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의 마음에 고통이 있을지라도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계시면, 분명히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