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녹진타워서 AI사진 생성 서비스가 있다고 하넌데 올라 온 사진덜얼 봉께 孝宗羹(효종갱)이라고 한문 글자가 잘못댜가꼬 나오걸래
일요일이라 군청 전화도 안 되고 그라걸래 군청 자유게시판에다가 어찌어찌해가꼬 에럽게 올레놔 봤어람짜.
**** 진도군청 자유게시판에다 올린 내용*****
진도 녹진타워의 AI사진 생성 서비스 내용 중 틀린 글자 바로 잡기를 요망.
-효종갱(曉鐘羹)이 맞는데 효종갱(孝宗羹)이라고 잘못 나옴-
저는 타관 땅 서울에 사넌 향우로 항시 지 안태고향 진도서 존 소식덜 디키기만 귀럴 쫑굿 셔가꼬 지달리넌 사람인데람짜.
'요참에 녹진타워에서 재밌넌 AI사진 꽁짜 생성 서비스가 생겨가꼬 사진이 아주 정교하게 잘 합성 댜가꼬 나온다'고덜 하넌 소리가 디케가꼬 찰로 즐건 맘인데 옥에 티가 뵈걸래 한말씸 올레 디립니다.
거그서 합성되넌 영상 바탕 자료덜 가운데서 '이전에 효종갱 폴라고 한양 도성얼 출입했든 배달 짐꾼 기림' 사진에 한문 글자가 孝宗羹(효종갱)이라고 써져서 나오는 한문 글씨넌 曉鐘羹(효종갱)이 본래 맞잉께 요것얼 얼릉 잔 바까줘사라 씨겄다고 부탁 말씸 디립니다.
조선시대 도성에서 새북에 통금해제함시로 치든 파루(罷漏)를 효종(曉鐘), 서종(曙鐘)이라 해가꼬 새벽 曉자나 새벽 曙자에 쇠북 鐘이고 '새벽 성문을 열 때 치는 종'을 뜻합니다.
갱(羹)은 내나 지사(祭祀) 때 ‘메랑 갱을 올려라’ 하던 그 메(밥)랑 갱(羹, 국)이로 국의 높임말이고라.
그래서 효종갱(曉鐘羹)이 맞는데 효종갱(孝宗羹)이라고 했잉께 이는 얼릉 옳게 고쳐 놔사라 씨겄다고 생각합니다.
이 효종갱(曉鐘羹) 기록은 일제강점기 때 우리 전통 이야기덜을 적어가꼬 냄긴 《해동죽지(海東竹枝, 1925년)》를 적은 최영년의 글에 나오는 얘기지라.
※최영년(崔永年, 1859~1935년): 국민신보 사장, 조선문의 주필 등을 역임한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구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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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년의 《해동죽지(海東竹枝)》, 경성장학사(京城奬學社), 1925, 중편 111쪽 발췌.
<원문>
曉鍾羹 廣州城內善調此羹 造法菘心 爲主菽芽松耳蔈菇牛肋·陽骨·海蔘·全鰒和土醬終日煮熱 夕天以綿裹缸擔送于京城 時宰家時値曉鍾 羹缸猶溫爛 酒啜羹甘澹香腻 名擅一世 或目之 以北村羹
<직역 해석>
효종갱은 광주성 안에서 이 국을 잘 만든다. 배추 속대를 위주로 콩나물, 송이, 표고, 쇠갈비, 쇠뼈, 해삼, 전복에 토장을 넣어서 하루종일 끓인다. 밤에 국항아리를 솜에 싸서 도성으로 보낸다. 재상가에 도착하면 새벽종이 울릴 때(새벽 4시경)가 되는데, 국항아리는 아직 따뜻하여 술 마신 후에 이 국을 먹으면 달고 담백하고 향기롭기로 유명하다. 어떤 이는 이 국을 북촌갱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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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께 요즘들어가꼬 ‘우리나라 최초에 배달 음식’이라고도 불리넌 음석(飮食)이로 이 효종갱을 치는데, 일부에서는 ‘그렇게 인기가 있었다면 도성에서 만들어 팔지. 광주(廣州, 경기도 광주)가 해삼, 전복 산지도 아니고 도성에서 거리도 먼데, 굳이 멀리 광주에서 만들어서 밤새 달려서 올려 올 일이 그리 많았겠느냐?’ 하고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는 반론도 있기는 한 얘깁니다.
한편 조선시대 한양 도성에 사대문을 밤과 새북에 여닫어가꼬 통행을 금지하고 풀어주던 종소리는 파루(罷漏)와 인정(人定)이라고 했었구만이라.
※조선 시대에 밤 시간을 초경(대략 오후 7시∼9시), 2경, 3경, 4경, 5경(대략 오전 3시∼5시)으로 나눴고, 여기서 1경은 다시 5점(點)으로 나뉘었다.
◎파루(罷漏)는 새벽 4시경(새벽 동이 틀 무렵) 5경 3점에 33천(三十三天, 4방 8개씩과 중앙에 1개의 하늘로 33개 하늘)의 의미를 담아 33번의 종을 쳐가꼬 사대문(도성 문)의 성문을 열어줌시로 통금을 해제했는데 새북에 치는 종을 일반적이로 효종(曉鐘) 또는 서종(曙鐘)이라고도 했었어람짜.
◎인정(人定)은 28수(二十八宿, 4방 각 7개씩의 28개)의 별자리를 뜻해가꼬 밤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인 초경 3점 말에 28번의 종을 쳐서 사대문을 닫는 통행금지를 알렸는데, 인정(人定) 외에 달리 인경(人磬) 또는 정종(定鐘)이라고도 했고라.
그때 치던 종은 지끔도 종로에 있는 보신각(普信閣)에 달렸던 종이로 보신각을 일반적으로 종각(鐘閣) 또는 종루(鐘樓)라고 불렀었구만이라.
또, 보신각 종루의 종은 도성 안에 큰 화재가 나도 종을 쳐가꼬 백성들한테다가 알렸다고 해람짜.
그 원 보신각 종은 ‘옛 보신각 동종(1963년 대한민국의 보물 제2호로 지정)’이라고 불리는데 조선 세조 14년인 1468년에 맨들아가꼬 하도 오래 하도 많썩 종치다봉께 금이 잔 가가꼬 더이상 손상을 방지한다고 1985년 부텀 국립중앙박물관에다 욍게다 놓고 보관·전시하고, 지끔 보신각에 걸려 있는 종은 1985년에 국민덜 성금이로 새로 제작한 것이랍디다.
야튼 녹진타워서 사진 AI합성하므는 나오넌 합성 이미지덜은 관광객덜한테 추억이 될 재밌고 존 써비스인데 옥에 티로 효종갱(孝宗羹)은 효종갱(曉鐘羹)이 맞잉께 효종갱(曉鐘羹)이로 옳게 나오거끄럼 얼릉 바까놔 주시십쇼.
그라믄 올해 여름이 오살라게 더와도 인자 음마 안 댜가꼬 금방 찬바람도 불 겅께
대지금 건강덜 잘 챙기심시로 미벵무탈하시게 망지막 말복 앞 둔 삼복 더우럴 잘 나시십쇼. 덜~!
-진도 솔개 출신 향우 조병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