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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신춘문예 당선작 시 부문
경향신문: 노이즈 캔슬링 / 윤혜지
국제신문: 고독사가 고독에게 / 박소미
동아일보: 여름의 돌 / 이근석
부산일보: 변성기 / 김수원
서울신문: 최초의 충돌 / 김민식
세계일보 가작-1: 언더독 / 변혜지
세계일보 가작-2: 돌고래 기르기 / 한준석
조선일보: 단순하지 않은 마음 / 강우근
한국경제: 유실수(有實樹) / 차원선
한국일보: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 / 신이인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노이즈 캔슬링 / 윤혜지
우리는 한껏 미세해진 우리를 내려다보며 기내식을 먹었다 책을 뒤적거렸다 구식(舊式) 동물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그것은 동물들이 있다,로 시작된다
유기인지 실종인지 자연발생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구식의 동물들이 발견되었고
그들은 제각기 살고 있다
매일 똑같은 구절을 읽어줘도 너는 언제나 놀라워한다
연하게 와서 끊임없이 훼손되는 마음으로
침목(枕木)을 고른 적이 있다 비를 맞고 볕을 쪼이길 반복한 나무토막들 위로 뜨거운 기차가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달렸다 모든 것이 멈추면 아웃렛에 가서 새 셔츠를 사고 카페에 앉아 아주 뜨겁고 단맛이 나는 차를 마셔야지 하다가 자신이 데려올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영영 잊어버린 사례도 있었다 이것이 소음으로 소음을 지워내는 방식입니다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각자 잊어버린 것을 접어올리고 등받이를 세우고 얌전히 차례를 기다렸다
가팔라지는 날개
여러 개의 의자에 앉아야만 생각나는 것이 있다
이국의 빛과 온도
잎사귀와 해변의 선량한 사람들
규칙적인 것은 예상 가능해서 지울 수 있다 다만 어떤 통화 소리
바빠, 계속 바빠서 그래 배회하듯 하는 사과
그것은 틈입이다
나 좀 안아줘, 같은 말은 꼭 돌아누우면서 하는
어떤 나쁨은 너무 구체적이어서
꼭 대낮 같다
물결이 물결로
공들여 썩는 냄새를 맡았다
그것을 생각할 때
깨끗한 공기 속으로 무언가 빠르게 나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눈앞에서 파도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저마다의 계단처럼
△ 윤혜지 - 1984년 생.
▼심사평/ 김행숙, 신용목, 김현
가능하면 오래, 더 가까이서 듣고 싶은 목소리
시가 고백의 장르라면 당연히 그 내용보다 방법이 중요할 것이다. 아무리 전언이 분명하고 어조가 강렬해도, 나와 당신 사이 징검돌을 하나하나 밟아오지 않는다면 금방 무용해지는 게 고백이니까. 이제 바위처럼 던져져 이 세계의 진의를 되묻는 식의 ‘낯익은 새로움’보다도, 무심하게 놓인 돌의 모양과 간격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존재를 확인한다. 물론 징검다리 이편과 저편에 있는 ‘나와 당신’을 ‘세계와 언어’ 또는 ‘삶과 시’로 바꾸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최종까지 함께 읽은 시는 그렇게 서로를 건네주는 것들이었다. 여한솔의 시가 시간을 견디는 슬픔을 연구실 불빛으로 켜놓는 저력을 보여줄 때도, 박다래의 시가 낯익은 순간의 낯섦을 비닐하우스의 물방울로 달아놓을 때도 그랬다. 전윤호가 사물과 세계를 빈틈없이 연결하고 정보영이 존재의 물질성을 생의 실감으로 드러낼 때, 우리는 이 시대의 고립을 단순히 고독의 심연을 헤매는 일로 소진하지 않고 세계의 이면을 파헤치는 힘으로 돌려놓는 데 놀라워했다.
윤혜지의 ‘노이즈 캔슬링’에는 기차 소리로 달려가는 지상의 시간이 있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공중의 시간이 있다. 날아가는 동안, 우리는 자신들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시는 부유와 진공이 꼭 공중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결처럼 규칙적으로 이어지던 관계가 대낮의 파도처럼 무너질 때, 일상의 비애를 지워내는 것 또한 일상이고 그것이 진짜 비극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흔한 구식(舊式)의 삶을 일깨우는 것이 유일한 미덕이었다면 이 시를 내려놓고 각자의 비애 속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우리를 붙든 것은 그 말의 의미가 아니라 그것을 실어나르는 목소리였다. 숨기지도, 대놓고 드러내지도 않으며 이어짐과 멈춤의 무심한 굴절을 만들어내는 매혹 앞에서 우리는 가까스로 구식(舊式) 동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하면 어떨까. 가능하면 오래, 그리고 더 가까이서 이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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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여름의 돌/ 이근석
나는 토기처럼 앉아 형의 작은 입을 바라보았다. 그 입에선 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형한테선 지난 여름 바닷가 냄새가 나, 이름을 모르는 물고기들 몇 마리 그 입 속에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무너지는 파도를 보러 가자, 타러 가자, 말하는
형은 여기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미래를 이야기했다. 미래가 아직 닿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형을 들뜨게 했다. 미래를 돌 속에 있어.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미래가 번져있어. 우리가 이 돌을 미래로 가져가자. 그 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그동안 우리는 몇번 죽은 것 같아, 여름, 여름 계속 쌓아올린 돌 속으로 우리가 자꾸만 죽었던 것 같아. 여기가 우리가 가장 멀리까지 온 미래였는데 보지 못하고 보이지 못하고 우리가 가져온 돌 속으론 지금 눈이 내리는데
내리는 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내리는 눈 속으로 계속 내리는 눈 이야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우리가 우리들 속으로 파묻혀가는 이야기들을
우리가 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계속
전화벨이 울리고 있다
△ 이근석
- 1994년 충남 논산 출생.
- 2012년 고등검정고시 합격.
▼ 심사평/ 문정희, 조강석
자연스러운 리듬감으로 과장 없이 표현해
11명의 작품이 최종 논의 대상이 됐다. 우선 드는 생각은 다양성이 아쉽다는 것이다. 질적으로 고르지만 단정한 묘사와 소소한 토로가 주를 이뤘다. 예년보다 표준형에 수렴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은 모험과 담론이 활성화되지 않는 시단의 풍경을 보여주는 듯해 슬쩍 미안해지기도 했다.
‘구조’ 외 5편은 시적 묘사의 특이성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사태를 목전에 놓고 주도면밀하게 살피는 힘을 보여준다. 한 대목 한 대목 인상적인 묘사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묘사가 구조를 이루지는 못했다. 근사하게 그려 보이는 능력은 사태를 전체적으로 헤아리는 사유 없이는 왕왕 심부름꾼의 성실함에 그치기 마련이다.
‘수변’ 외 5편은 우선 문장 단위에서 매력을 발한다. 문장의 힘과 이미지의 리듬이 조화를 이뤄 마지막까지 검토 대상이었다. 산문 투의 진술에 대한 아쉬움, 절제가 더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조금 더 기다려봄 직하다는 의견과 부합해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여름의 돌’ 외 5편이 당선작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운 리듬감 때문이다. 과장이나 과잉 없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연스러운 리듬에 실어 말할 수 있는 것은 범상해 보이나 드문 기량이다. 일종의 빼어난 ‘예사로움’에 달한 기량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름의 돌’은 청년의 불안과 기대를 수일한 이미지와 자연스러운 리듬을 통해 순조롭게 표현해 당선에 값한다. 과감함이 숙제라면 숙제인데 안정 없는 기획보다 신뢰할 만한 시적 진술이 올해의 선택이 된 것은 당선자에게 영광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 축하의 악수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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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변성기/ 김수원
접시는 바꿔요
어제 같은 식탁은 맞지 않아요
초승달을 키우느라 뒷면이었죠
숨기고 싶은 오늘의 숲이 자라요 깊어지는 동굴이 있죠
전신거울 앞에서 말을 터요
알몸과 알몸이 서로에게
내 몸에서 나를 꺼내면
서로 모르는 사람
우리는 우리로부터 낯설어지기 위해 자라나요
엄마는 앞치마를 풀지 않죠
지난 앨범 속에서 웃어야지 하나, 둘, 셋, 셔터만 누
르고 있죠
식탁을 벗어나요
눈 덮인 국경을 넘어
광장에서의 악수와 뒤집힌 스노우볼의 노래, 흔들리
는 횡단열차와 끝없이 이어지는 눈사람 이야기, 말을
건너오는 눈빛들과 기울어지는 종탑과 나무에서 나무와 나무까지 밝아지는
모르는 색으로 달을 채워요
접시에 한가득
마트료시카는 처음 맛본 나의 목소리
달 아래, 내가 나를 낳고 나는 다시 나를 낳고 나를 낳고
내가 누구인지 누구도 모르게
당선소감
나는 너무 반듯하다. 아버지가 내게 남긴 유일한 유산이다. 그런 나를 버리기 위해 지금껏 시를 썼다. 구겨버린 가족사진처럼, 기형적으로 구겨진 사진 속 미소처럼 나는 나로부터 낯설어지고 싶었다. 오빠가 죽었을 때, 내 시는 울음 속에서 질척거렸고 아버지가 오빠를 뒤쫓아 갔을 때는 딸꾹질만 해댔다. 죽음은 쉬운 거네, 몇 해 휘갈기는 동안 딸꾹질도 그치고 울음도 그치고, 시가 '곁'이라는 걸 그때 느꼈다. 그로부터 나는 나를 죽이는 일에 몰두한다. 내가 곁이 될 때까지. 시의 곁에 작은 자리를 마련해 준 부산일보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고 8년, 서두르는 마음을 눌러 준 정봉석 교수님을 비롯한 동아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시를 놓지 않도록 독려해 준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인사드린다. 유병근 선생님이 하루빨리 쾌차하시길 기원드린다. 함께 문학을 찢어발겨 준 벗들과 동아대 글패고갱이들, 그리고 시 앞에서 독해지자던 진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가족은 나의 무한 동지다. 지금껏 시는 내 편이 아니었지만 앞으로도 내 편이 아니길 바란다.
약력: 1971년 경남 고성 출생, 본명 김경숙, 동아대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수료, 동아대 강사.
[심사평]
호흡·이미지, 얽매임 없고 자유로워
올해 응모작들은 폭넓은 시적 탐색을 담고 있었다. 생활의 감정을 담은 시편들은 진정성은 있으되 대체로 상식적이거나 평이했고, 현란한 언어와 이미지를 보여주는 시편들은 수사(修辭)의 영역을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시들은 삶의 내면과 그 너머를 응시하는 눈길이 매혹적이었으나 미학적 형상화가 부족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마지막에 남은 작품들은 ‘위시본’ ‘흑백극장’ ‘물사람’ ‘그후’ ‘변성기’였다. 심사자들의 기대가 높았던 탓이었을까? 꽤 오랜 시간 숙의를 해야 했다. ‘위시본’은 흥미로운 제재를 입체적으로 펼쳐 내는 상상력을 보여주었지만 다소 현학적이고 사변적이었다. ‘흑백극장’은 간명한 언어와 이미지의 전개가 장점이었는데, 입체적 확산의 힘이 모자랐다. ‘물사람’은 차분하되 정서적 흡인력이 강했다. 잘 익은 서정의 세계를 보여주었으나 소품으로 그친 게 아쉬웠다. ‘그후‘는 남다른 시적 깊이와 인식을 지니고 있음에도 마지막 2행- 결말이 아쉬웠다. ‘변성기’는 일견 조금 서툴고 추상적인 시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려는 시도가 있다. 호흡과 이미지도 얽매임이 없이 자유롭고, 상상력의 폭이 크다. 심사자들은 기존의 문법에 익숙한 잘 다듬어진 시보다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를 선정하기로 했다. 시는 카오스의 세계에서 코스모스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한다. 보다 힘찬 모험을 통해 유니크한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박태일 전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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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최초의 충돌 / 김민식
나는 화면 너머의 테니스 경기를 본다
테니스 라켓이 공을 치는 순간
무수한 공중이 한꺼번에 태어난다
고래의 힘줄
산양의 창자
얇게 저며진 살점으로 직공은
라켓을 짠다
종선과 횡선이 지나간 사이에
태어나는 눈
공중에 이름을 붙이는 최초의 노동이었다
천사를 체로 걸러낼 수 있다고 믿은 프랑스인이 있었다
축과 축의 직교 속에서 성령은 좌표를 얻었다
의심 속에서
의심도 없이
체의 촘촘한 눈을 세는 귀신의 눈은 비어 있다
?
눈알만 파먹힌 생선들이
부둣가에 쌓여 있다
백경白鯨의 투명한 수정체
멸종된 거대 수각류의 담석
전체를 상상하면 그것들은 차라리 허공이었다
한국의 산에는 호랑이 모양 구멍이 반드시 하나씩 있으며
돌탑 위에 둥근 돌을 하나 올려도
산이 무거워지는 것은 아니었고
무수한 왕의 안구가 뽑혀나가도
지구가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믿음 속에서
믿음도 없이
삶의 질량을 변화시킬 혁명이 필요했다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
이렇게 말하면 믿는 사람이 없었고
하늘에 빛나는 돌이 불과 물과 함께 떨어졌다
이렇게 말하면 믿음과 의심이 동시에 생겼다
외계에서 날아온 돌은 지구를 확실히 무겁게 만든다
그것은 종종 과학의 영역이었다
“마음 속에 천 개의 방이 있고, 그 안에서 천 개의 멜로디가 흘러나옵니다. 나는 어떤 계열의 천사인 것만 같습니다”*
처음으로 운석을 발견한 아이가 남긴 말이었다
그가 발견한 검은 돌은
검은 신전의 기둥이 되었다
운석이 떨어진 자리엔, 빛과 유리와 불과 물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는데요
정말 그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자의 이글거리는 눈빛과
다만 우주의 조각을 만져보고자 하는 순례자들의
계획 속에서
계획도 없이
푸른 언덕에 모여 유성우를 구경하는 사람들
얼굴들이 깊게 파인 구멍 같다
나뭇가지에 걸린 셔틀콕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표정만 같다
너, 라고 부르면 뒤돌아보는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아무도 귀엽거나 밉지 않았고
아나운서의 어깨 너머로
카메라가 풍경을 화소로 만들기 직전
나는 주머니에서 빛나는 하얀 공을 꺼냈다
아직 세상에 없는 구기종목의 공인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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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신춘문예 가작-1]
언더독/ 변혜지
이 세계를 네가 구했어.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린다. 폐허가 된 도시에 둘러싸여서, 꿈속의 나는 아름다웠다. 나의 아름다움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였다.
눈을 빼앗길 만한 장면이어서 나는 이 세계와 어울리는 음악을 마련하였다.
화관(花棺) 속에 두 손을 가슴에 모은 내가 누워있었고, 살아남은 모든 이들의 행렬로 거리가 잠시 가득 찼다.
나는 어떻게 이 세계를 구했나. 나의 궁금증이 이 세계와 무관하였다.
연인이 내게 입을 맞추며 엄숙하게 사랑을 맹세하였고,
잠들었던 관객이 영화의 결말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듯이, 나는 영문 모를 격정에 휩싸였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 네가 아니야. 내가 꿈속의 나를 향해 소리치자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일제히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행렬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의 격정이 나와 무관하였고, 화관에 누운 내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비로소 이 꿈의 구성방식을 알 것 같았고,
나는 이 세계에 두고 나가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 변혜지
-1991년 서울 출생.
-동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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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신춘문예 가작-2]
돌고래 기르기 / 한준석
미소는 돌고래로 기르기 좋습니다
돌고래의 주파수를 라디오로 들어요
나는 무심하게 시작되어집니다
축축하게 연필심이 밤새 헐었습니다
돌고래는 미소에 좋습니다
나는 웅크리기 좋은 무게로 태어났어요
돌고래의 고도는 새떼의 무게 같아요
새들이 흩어지는 사이로 연필 소리가 들립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나가는 새를
잃어버렸다 말할 수 있을까요
나무에 없는 새들을 세어보는 일은
열 손가락으로 모자라고
두 팔로는 충분한 일입니다
돌고래를 기르기에는 남해에 사는 당신이 좋습니다
눈 내리는 남해로 가는 버스 창밖
길러 본 적도 없는데
둥글게 헤엄치는 돌고래를 바라봅니다
나는 당신의 웃음을 빌려 가벼워지고 싶습니다
일기예보에 오늘 아침은 잔기침을 주의하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안정은 멀리 있습니까
나는 이런 예감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눈 감으면 버스의 흔들림만 남겨집니다
나는 돌고래가 아닙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릴 줄 압니다
잘 가, 돌고래는 휘어지는 몸짓으로 수평선을 밀어내고 있어
끝에서 끝이 부드럽게 멀어져야 좋은 미소
나는 돌고래로 기울어질 수 있습니다
돌고래는 미소를 기르기에 좋습니다 슬픔을 조심합니다
세계는 서로를 미끄럽게 기를 줄 알고
나는 입김에서 햇빛으로 조용하게 옮겨집니다
나는 한 종류의 돌고래가 됩니다
? △ 한준석
-1990년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 심사평/ 김영남·이학성
“작품마다 상처 치유코자 대변… 과장되지 않은 비유·상징어 눈길”
저마다 고립된 외딴섬처럼 단절과 멈춤이 뼈저렸고, 과연 우리가 우리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물음만으로도 버겁고 지난했던 시기. 예심을 거친 스물다섯 분의 시편들이 공통적으로 시절의 무력감에 대응하며 상처와 아픔을 치유코자 대변하고 있었으니, 왜 문학이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을 안기며 시대의 가늠자 역할을 자임하는지 여실히 실감케 했다.
최종 논의로 하연, 김성백, 홍진영, 변혜지, 한준석 씨의 작품을 주목했다.
하연의 작품은 익숙한 표현과 소재들이란 점이 아쉬웠다. 김성백의 경우 팬데믹 시대를 겪고 있는 젊은 세대의 고민을 엿보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지만 감정과 표현이 곰삭을 시간이 필요하리라 여겨졌다. 홍진영에게서는 시어와 이미지를 다룰 줄 아는 기본적인 능력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몇 개의 서툰 문장들이 심사자의 눈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장래를 위해서 올해의 보류가 본인들에게 더 큰 득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긴 시간 변혜지의 ‘언더독’과 한준석의 ‘돌고래 기르기’를 놓고 토론을 벌였으나 아쉽지만 당선에 준하는 가작 2편을 뽑기로 합의했다.
변혜지의 ‘언더독’은 남다른 사유의 깊이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과장되지 않은 비유를 제대로 다룰 줄 알았고, 절제된 수사의 미덕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어 모자람을 찾기 어려웠다. 막힌 혈로를 뚫듯 날카롭고 예민하되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아우르는 너끈한 묘사력을 겸비했으니, 이만한 사유의 세계라면 우리 시단을 풍요롭게 메우고도 남으리란 믿음에 선작(選作)으로 민다. 언제까지 무거운 짐을 걸치고 거침없이 나아갈지 모두가 기대를 걸고서 지켜보리라.
한준석의 ‘돌고래 기르기’는 ‘돌고래’라는 상징어를 넣어 이미지가 보일 듯 말 듯 그려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미소는 돌고래를 기르기에 좋습니다”의 표현이 말하듯 시가 기본적으로 비유의 장르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돌고래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불분명하지만 시 내용으로 보아 사랑, 꿈, 슬픔, 기쁨까지 다 아우르게 한다. 돌고래 자리에 이 단어들을 집어넣고 읽어보면 금세 느껴질 것이다.
두 분을 축하하며 최종심에 오른 분들도 조만간 지면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위로의 말씀을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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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단순하지 않은 마음 / 강우근
별일 아니야, 라고 말해도 그건 보이지 않는 거리의 조약돌처럼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고
작은 감기야, 라고 말해도 창백한 얼굴은 일회용 마스크처럼 눈
앞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눈병에 걸렸고, 볼에 홍조를 띤 사람이 되
었다가 대부분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병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걸
어오는 우리처럼 살아가다가 죽고 만다.
말끔한 아침은 누군가의 소독된 병실처럼 오고 있다.
저녁 해가 기울 때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감자튀김을 먹는 사
람들은 축구 경기를 보며 말한다. “정말 끝내주는 경기였어.” 나는
주저앉은 채로 숨을 고르는 상대편을 생각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
다. 아직 끝나지 않아서
밤의 비행기는 푸른 바다에서 해수면 위로 몸을 뒤집는 돌고래처
럼 우리에게 보인다.
매일 다른 색의 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에서 사람들은 끊임
없이 모이고 흩어지고 있다.
버스에서 승객들은 함께 손잡이를 잡으면서 덜컹거리고, 승용차
를 모는 운전자는 차장에 빗방울이 점점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편
의점에서 검은 봉투를 쥔 손님들이 줄지어 나오지.
돌아보면 옆의 사람이 없는, 돌아보면 옆의 사람이 생겨나는. 어
느새 나는 10년 후에 상상한 하늘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쥐었다가 펴는 손에 빛은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었다. 보고 있지
않아도 그랬다.
내가 지나온 모든 것이 아직 살아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 강우근
-1995년 강원도 강릉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문태준, 정끝별
마스크, 소독된 병실… 코로나 시대 투영한 詩語 돋보여
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영토를 가려 한다. 한 편의 시는 매번 새로운 길을 가려 한다. 그 길에 앞장 설 신예에게 기대하는 것은 모험의 불꽃일 것이다. 본심 대상작인 열두 분의 작품들은 고르게, 시적 모험의 흔적과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전 지구적 재앙의 영향인지 고립된 현실에 대한 암중모색 속에서도 희망 혹은 미래에 대한 사유가 눈에 띄었다. ‘자두’ ‘소문은 눈을 즐겁게 해요’ ‘단순하지 않은 마음’을 놓고 오랜 숙고와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자두’는 젊은이들의 일상과 세태를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디테일한 감각에서 삶에 대한 애착과 부정이 동시에 느껴지며, 절제된 감정에서는 숨겨진 절망과 분노가 감지된다. 무엇보다 ‘자두’라는 물성에 대한 천착과 그 상징성은 이 시의 비유적 깊이를 더해준다. 그러나 이 디테일한 묘사가 때로 산문과의 경계를 묻게 했다. ‘소문은 눈을 즐겁게 해요’는 검은 봉지 속 고구마에서 싹튼 순을, 실체 없는 소문에서 돋은 뿔로 비유하고 있다. “아낌없이 썩은 고구마가 딸려 나왔”다는 통찰은 우리 사회의 왜곡된 소통 방식을 풍자한다. 모범 답안과도 같은 시적 완성이 오히려 낯익음으로 다가왔음을 밝혀둔다.
최종적으로 ‘단순하지 않은 마음’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일일(日日)의 단일하지 않은, 갈래와 가닥이 많은 사건들이 어떻게 내면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주목한 작품이다. 돌발적이고, 바뀌고 달라지며, 충돌하고 흩어지는 일상, 그것이 곧 우리 존재의 본모습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말한다. “마스크”, “소독된 병실”과 같은 시어를 통해서는 코로나 대유행의 사회적 상황을 투영하고도 있다. 무엇보다 ‘마음’과 같은 관념어를 제목으로 내세우면서도 정공법으로 개진해가는 뚝심에서 앞으로 펼칠 시작(詩作)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갖게 했다. 한국 시단의 일신에 기여하기를 기대하며, 당선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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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한경 신춘문예 시 당선작>
유실수(有實樹) / 차원선
너의 눈 안에는 열매를 맺으려 하는 나무가 있다
너의 눈에 나무를 심은 사람이 저기 소각장에 앉아 있다
자신의 옷을 다 태우고도 헐벗은 너를 보고 있다
멀뚱히 있는 너와 떨어진 잎을 한데 덮는다
앙상해지도록
베고 누웠다
잔향 더미로 만든 모래시계
마른 낙엽을 주워 구덩이로 몰아넣었다
왜 내 얘기를 듣고 있어요?
낯선 사람인가 봐 쓸쓸하다고 하면 데려갈 텐데
그대로 있어요
반딧불이 무리지어 올리는 온도
올라가는 건물
빈 곳은 비어있었던 적이 없고
마지막으로 옮긴 불씨 조각이 다 자란 나무의 잎에 옮겨붙는다
오랫동안 그를 알았다
열매를 남긴 나무, 앨범에 적히고
눈 안에 마른 씨앗을 품던 자리가 바스러져 날아간다
몇은 땅으로 몇은 모를 곳으로
[당선소감]
"내가 머물렀던 자리 돌아봐…주변에 귀 기울일 것"
12월의 당선 소식은 그동안 내가 머물렀던 자리들을 되돌아보게 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내가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던 날이 있다. 그 사람에게 내 말이 어떻게 들렸는지 몰라도 나에게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진심으로 떨리는 일이었다. 그 사람은 담담하게 내가 쓴 시를 읽어주었고 그때의 그 벅찬 순간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줬다. 어디에나 쓸쓸한 소식이 번지던 한 해가 지났다. 이겨내겠다는 말이 무색하게 시간은 흘러 새해가 밝았고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1년을 더 보낸 내가 조금 더 성장했음을 느낀다. 무언가를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삶의 순간들에 주목하는 시를 써나가고 싶다. 나와 함께하는 시간들을 담아나갈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기회를 준 한국경제신문과 내 시에서 가능성을 봐준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같은 자리에서 말없이 나를 헤아려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감사드린다. 혼란스러운 날에 그들이 있어 말하고 싶은 것들을 변함없이 써내려 갈 수 있었다.
▼[심사평]
이미지가 눈에 생생…기교와 비약 참신
본심에서는 네 분의 시를 다뤘다. ‘전래동화’ 외 네 편은 직설적인 언어로 기성세대와 맞서는 자세가 만만치 않았다. 다만 그것이 사회와 깊이 부대껴서 얻은 것은 아니어서 시야가 좁고 다소 막연해 보였다. ‘가장 내밀한 스펙트럼’ 외 네 편은 흡입력과 호소력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시에서 흐름을 끊는 직접 발화를 자주 사용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리지 못했다. ‘어둠’ 외 네 편은 과감한 생략과 거침없는 반복 등 난숙한 화법으로 이목을 끌었다. 다만 논리가 시를 압도하는 지점이 가끔 눈에 띄었고, 최근 시의 스타일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침윤된 것은 아닌가 하는 혐의도 받았다. ‘유실수’ 외 네 편은 각각의 시마다 이미지를 극적으로 쌓아가면서 심화시켜 가는 상상력이 돋보였다. 본 적 없는 기교와 비약이지만 우리는 이 상실에 맞닥뜨린 자의 눈에 비친 낯설고 속절없이 슬픈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유실수’ 외 네 편을 응모한 차원선 씨를 당선자로 정했다. 게임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면 아류가 되기 쉽다. 우리는 차씨가 익숙한 새로움을 되풀이하기보다 낯선 전환점을 만드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 황인숙 손택수 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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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 신이인
오리너구리를 아십니까?
오리너구리,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아에게 아무렇게나 이름을 짓듯
강의 동쪽을 강동이라 부르고 누에 치던 방을 잠실이라 부르는 것처럼
나를 위하여 내가 하는 일은
밖과 안을 기우는 것, 몸을 실낱으로 풀어, 헤어지려는 세계를 엮어,
붙들고 있는 것
그러면 사람들은 나를 안팎이라고 부르고
어떻게 이름이 안팎일 수 있냐며 웃었는데요
손아귀에 쥔 것 그대로
보이는 대로
요괴는 그런 식으로 탄생하는 겁니다
부리가 있는데 날개가 없대
알을 낳지만 젖을 먹인대
반만 여자고 반은 남자래
강물 속에서도 밖에서도 쫓겨난 누군가
서울의 모든 불이 꺼질 때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기슭에 떠내려오는 나방 유충을 주워 먹는 게 꽤 맛있다는 거
잊을 수 없다
모두가 내 무릎에 올려두었던 수많은 오리너구리
오리가 아니고 너구리도 아니나
진짜도 될 수 없었던 봉제 인형들
안에도 밖에도 속하지 못한
실오라기
끊어낼 수 없는
주렁주렁
전구 없는 필라멘트들
불을 켜세요
외쳐보는 겁니다
아, 이상해.
신이인/ - 1994년 서울 출생.
-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심사평/ 장석주, 김소연, 서효인
"완벽한 관리자와 특별한 난동꾼, 그 모두를 해내는 시"
개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개성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각자의 고유성을 얼마간은 지니고 있으며 생활과 사유 곳곳에서 그 고유함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숨기려 해도 얼핏 내비치는 사투리처럼, 감추려 해도 별안간 나타나는 표정처럼. 시는 나도 모르게 드러나는 개성을 서랍장 곳곳에 잘 수납하고 연과 행에 맞춰 잘 구획하는 관리자일지도 모른다. 혹은 반대로 가끔 얼굴을 비추는 고유성을 극대화해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는 난동꾼일 수도 있다.
심사에서는 완벽한 관리자와 특별한 난동꾼 중 하나라도 그 자리에서 나오길 바라게 된다. 관리자이면서 난동꾼이 될 수 있는 시인이 등장하길 차마 바랄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잘 없으니까. 그 어려운 일이 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일어났다.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은 정돈되면서 어질러진 시였다. 익숙한 지명을 동원하고 친숙한 어투로 말을 건네어 귀를 붙잡아 두면서도 “안에도 밖에도 속하지 못한/ 실오라기” 같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정리된 채 구성된 이미지 속에서도 곳곳에 돌출하는 의외성이 시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지금의 시만큼 앞으로의 시 또한 기대된다. 기대하는 자의 설렘을 담아,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함께 마지막까지 이야기한 작품은 '새, 하고 열린 옷장', '언젠가 부하들은 반란의 내색을 비춘 적 있다', '한국어 감정' 등이다. '새, 하고 열린 옷장'은 사소한 장면을 일시정지 상태로 만들어 더 이상 사소하지 않게 하는 미덕이 있었다. '언젠가 부하들은…'은 유머러스하고 의의성 있는 진행이 돋보였다. '한국어 감정'은 언어와 언어가 부딪쳐 생기는 감각과 진폭을 그리는 주제 의식이 담백했다. 모두 당선되지 않을 이유보다 당선될 이유가 더 많았으나, 약간의 행운이 부족했던 것으로 오늘의 아쉬움을 갈음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당선자에게 다시 한번 축하의 말씀을 건넨다.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닌 세계 어딘가에서 역시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들을 껴안으며 써나가 주실 것이라 믿는다. 관리자가 될 것인가, 난동꾼이 될 것인가? 그런 생각할 겨를 없이 시는 당신을 끌고 어딘가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만나면 좋겠다.
[출처] 2021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리오/블러그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