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인터뷰] 수덕사 方丈 설정 스님
인간의 욕구는 끝없어… 우리 삶과 생각에는 브레이크 필요해"
자기 중심 분명히 하되 마음 내려놓고 비우는 下心한다면 세상 변할 것
참선과 농사는 서로 통해… 특수작물 키우기 위해 서울대 원예학과 진학
'소나기'가 종일 오지 않듯 용기 잃지 않고 노력하면 누구나 기회 오고 성공
충청남도 예산 수덕사의 선원(禪院)인 정혜사 능인선원 뜰에는 산나물이 봄볕에 몸을 뉘고 있었다.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方丈) 설정(雪靖·68) 스님이 손수 말리고 있는 '반찬거리'였다. 농사와 수행이 둘이 아닌 '선농일치(禪農一致)'를 가풍(家風)으로 삼는 수덕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부처님오신날(21일)을 앞두고 지난 11일 설정 스님을 찾아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을 들었다.
―1년 전 방장에 추대되신 후 '방장 행자(行者·정식 스님이 되기 전 절에서 여러 일을 하는 수행자 지망생)'로 생각하고 살겠다고 하셨지요. 이젠 행자는 졸업하셨나요?
"영원히 행자입니다. 칸트가 말했지요. '태초에 움직임이 있었다'고요. 불교의 가르침은 '참 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공부하고 정진(精進)하는데 끝이 있을 수가 없지요. 수도(修道)와 중생제도(衆生濟度)의 길은 세세생생(世世生生) 걸어야 할 길입니다. 삼라만상이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불이(不二), 그래서 모두가 한몸이라는 동체대비(同體大悲), 나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 등을 실현하기 위해선 과거도 미래도 없이 영원히 가야 할 길이지요. 그래서 영원한 행자로 살 겁니다."
―경허(鏡虛) 만공(滿空) 스님이 머물며 근대 한국 선(禪)불교를 중흥시킨 수덕사는 선농일치의 전통이 깊습니다. 참선과 농사는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초대 방장인 혜암 스님이 지혜가 섬광처럼 번뜩인 분이라면, 2대 방장 벽초 스님은 모든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전통도 벽초 스님이 세우셨죠. 벽초 스님은 새벽부터 밤 9시까지 쉬지 않고 늘 일을 하셨습니다. 겨울밤에도 새끼를 꼬고, 멍석과 맷방석, 구럭과 짚신을 삼으셨지요. 밭곡식, 나물은 물론이고요. 그래서 우리도 쟁기질, 풀매기, 논밭 가꾸기도 다했지요. 정말 일이라면 자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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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은“삭풍이 항상 부는 것은 아니고 어려움 뒤에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며“모두가 하심(下心)하고 마음을 닦고 올바르게 쓴다면 희망찬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 수덕사=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스님은 30대에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농대 원예학과에 진학하셨지요. 13살에 입산해서 농사라면 지겹도록 하셨을 텐데 왜 원예학과를 고르셨나요?
"당시만 해도 수덕사 살림은 스님들이 농사지어서 자급자족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약초나 화훼 같은 특수작물을 키워서 절 살림에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절에 땅이 많으니까 작은 집 짓고 그런 작물들 키우며 정진하고 싶었어요. 늘 느끼는 것이지만 농사를 지어보면 참 환희스러워요. 땅은 정성을 들인 만큼 보답을 해줍니다. 삼라만상의 진리가 땅에 있습니다."
―지난 3월 송광사에서 있었던 법정 스님 다비식에 참석하셨지요.
"법정 스님은 독특한 길을 걸었던 분입니다. 삶의 기조는 불조(佛祖)의 유훈을 따라 살면서 글과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달한 불교계의 지성이셨죠. 마치 서리 내린 날에 밝은 달빛 같은 상큼하고 싸늘한 느낌으로 살다 가셨죠."
―오는 21일이 부처님오신날입니다. 부처님은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요?
"우리가 자기 안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무한한 보배창고를 열어서 참생명을 구현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서양식 사고는 너와 나를 구분하고 신(神)과 인간을 구분하는 이분법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니고 모든 것이 인드라망(網)으로 연결됐다는 연기법(緣起法)으로 봅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소(大小), 유무(有無), 선악(善惡), 장단(長短)을 따지지 않지요. 이런 가르침을 통해 세상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처님이 오신 것이지요."
―국민들은 여러 어려움, 특히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스러워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비하면 매우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지요. '100만원만 있으면…' 하다가 막상 100만원이 생기면 그동안 가졌던 희망은 사라집니다. 1억원이 생겨도 마찬가지입니다. 감각적이고 외형적인 행복을 추구하면 늘 불행하게 됩니다. 우리 삶과 생각에는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이기심과 개인주의, 물질의 노예가 되어 끌려가는 것을 되돌아보면서 스스로를 반성할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걸 불교에서는 '회광반조(回光返照·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춤)'라고 합니다. 마음속에 자란 원망과 미움, 질투와 저주의 어두운 삶을 돌아보고,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파장을 주도록 서원(誓願)을 갖고 마음을 닦고 쓴다면 그 찰나에 절망과 어둠에서 벗어나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스님은 평소 지도층의 솔선수범을 강조하시지요.
"불교에서는 청렴과 검소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청렴은 가난한 것이 아니라 정당한 노력에 의한 깨끗한 재산, 즉 '청부'(淸富)를 가리킵니다. 이 시대엔 청부가 필요합니다. 졸부(猝富)와 의롭지 않게 재산을 모은 사람들은 쓰는 법도 모릅니다. 탁부(濁富) 대신 청부, 염직(染職) 대신 청직(淸職)을 이루도록 특히 지도층들이 노력해야 합니다."
설정 스님은 지난 1998년 완쾌가 어려운 병으로 알려진 췌장암 진단을 받았지만 참회기도와 정진(精進)으로 병을 이겨냈다. 그는 "병이 생겼을 때 전생(前生)에 무슨 잘못을 했던 업보(業報)로 생각하고 참회하고 살다 보니 악업(惡業)이 떨어졌는지 지금은 괜찮아졌다"며 "요즘은 병 생각은 안 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암이 발병했을 때 참회기도로 이겨내셨지요. 참회란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원래 선방에서 수행하던 이판(理判)이었는데 30대에 벽초 스님이 시키셔서 수덕사 주지를 맡으면서 사판(事判)에 발을 들여놓게 됐습니다. 10년 동안 본사 주지를 하고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까지 지내면서 총무원장을 맡아 종단을 이끌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병을 앓고 보니 '많이 부족한 사람이 괜히 설쳤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자질이 안 되면 결국 남에게 해(害)를 입힐 수 있는데 진정한 수행자로서 모자랐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론 뒤에서 공양주(절에서 식사를 장만하는 소임)나 채공(菜供·절에서 채소 등 부식을 관리하는 소임)을 하면서 대중을 위해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는 참회가 필요합니다. 참회란 무엇을 구체적으로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하심(下心)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드러내면 무엇이 문제인지를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서울 봉은사를 조계종 총무원 직영사찰로 전환하는 문제로 두 달 넘게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제의 출발은 소통 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총무원이 충분히 소통을 시도하지 않은 데서 문제가 비롯됐죠. 사태가 진행되면서 서로 감정이 앞서게 돼 점점 악화된 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절 집안의 문제는 수행자가 제 모습으로 돌아가면 다 끝입니다. 진퇴(進退)가 중요합니다. 나아갈 때와 물러갈 때, 할 때와 안 할 때를 아는 것이 수행자의 모습이지요."
―세상엔 여전히 어려움이 많습니다. 좋은 말씀 하나 해주시죠.
"삭풍(朔風)이 항상 부는 것은 아닙니다. 소나기도 하루 종일 오지 않습니다. 어려움 뒤에는 반드시 기회가 옵니다. 그 기회를 잡으려면 평소에 노력하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삶은 희망이고, 모든 것은 용기의 문제입니다. 용기를 잃지 않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습니다.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해 주길 바라기 전에 스스로 개척하고 부지런하게 노력하면 곳곳에 일거리가 쌓여 있습니다. 또한 모두가 하심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합니다. 마음을 낮춘다는 하심은 비열하거나 굴종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매사에 거리낌 없고 당당하고 떳떳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하심입니다. 자기 중심이 분명하되 자기를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하심이지요. 모두가 하심한다면 희망찬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상생활에서 하심은 쉽지 않습니다.
"예를 하나 들지요. 제가 어렸을 때 지금 인천 용화선원 원장이신 송담 스님이 선방(禪房)에서 규율을 담당하는 입승(立繩)을 맡으신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제가 죽을 끓이다 보니 솥에 지네가 빠져 있었습니다. 공양시간은 다 됐고, 죽 한 솥을 다 버릴 수도 없어서 송담 스님께 여쭸습니다. 스님은 '나 말고 지네 빠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으시더니 '건져내고 대중들에게 드려라'고 하셨어요. 당신도 한 그릇 맛있게 비우시더니 대중들 앞에서 저를 보고 '맛있게 죽을 끓여줘서 고맙다'고 하시더군요. 죄송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모르는 저를 그렇게 위로해 주신 것이죠. 인자하고 곧은 마음, 하심하는 마음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큰 마음입니다."
>> 설정 스님은
1942년 수덕사가 자리한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불자(佛子) 가정에서 자란 그는 1955년 수덕사 전 방장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해인사 강원을 마치고 범어사·봉암사 등 선원에서 수행했다.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를 1년 만에 끝내고 서울대 농대 원예학과에 진학, 1976년 졸업했다. 경허·만공·벽초·원담 스님으로 이어진 수덕사의 선맥(禪脈)을 잇고 있는 스님은 수덕사 주지(1978~1988년),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1994~1998년), 서울 화계사 회주 등을 역임했으며 원담 스님 입적 후 1년여 공석이던 덕숭총림 수덕사의 4대 방장으로 2009년 4월 추대됐다. 방장(方丈)은 선원·강원·율원 등을 갖춘 초대형 사찰의 최고 어른을 가리킨다. 현재 해인사·통도사·수덕사·송광사·백양사 등 5개 사찰이 방장을 모시고 있다. [모셔온 글]